화장 - 2004년 제28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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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래 오랜만에 펼쳐든 수상작품집이다. 별다른 이유없이 그저 시류에 휩쓸리고 싶지 않다는 나름의 오기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제는 그런 치열함마저 무뎌진듯.

김훈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역시 "칼의 노래"를 통해서이다. 워낙에 소재가 특별하였고, 거기에 평론가와 독자의 평가마저도 한번쯤 읽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 정도였으니.

이번 수상작품들이 국문학사에 어떤 위치를 점할 지는 아직 모르겠다. 문순태의 글을 제외한 다른 작품들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우리문학의 흐름에서 얼마나 유리되어 있었는지 (아니면 역으로 현대문학이 대중에게서 얼마나 벗어나 있었는지를) 새삼 절감하였다.

김훈의 '화장'과 자선에세이는 "칼의 노래"의 어조를 연상시킨다. 그것은 작가 김훈의 성조이리라. 결코 감정을 고조시키고 드라마를 장대하게 꾸미지 않는다. 항상 낮고 내성적인 소리울림으로 글의 무게중심을 아래로 아래로 고삐를 꽉 쥐고 있다. 그의 글에는 선동의 흥분이 없는 대신 절제의 미덕이 자리잡고 있다. '화장'에서 죽음과 삶 이외에 두 여체의 대비가 중요한 모티브인지는 몰랐다. 육체의 묘사를 그리 덤덤하게 그려내었으니.

문순태의 전통성, 박민규의 유희성 이외에 다른 작가들의 목소리는 모노톤으로 들린다. 개인성과 고독성.

시대가 하 수상한 탓일까. 문학에서 기쁨과 즐거움 보다는 진한 외로움의 체취가 묻어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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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8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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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사랑하라 - 20세기 유럽, 야만의 기록
피터 마쓰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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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지기 쉬운 인간의 가치에 전율을 느낀다]

보스니아 내전을 다룬 이 책은 언뜻 21세기의 한국과는 전혀 무관하게 보이기 쉽다.

다수의 국민이 평화를 사랑하며, 악을 미워하며 이웃과의 다정한 교감을 지니며 행복한 삶을 살며, 서로의 출신과 신앙을 존중하는 모습.

이러한 삶의 양태는 또한 보스니아 국민의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전쟁이 일어나기 일년전에, 몇개월 전만 해도 민족적, 종교적 갈등이 수십만의 사망자를 낳게될 전쟁으로 귀결되리라고는 꿈조차 꾸지 못했다.

어제의 이웃사촌이 나에게 총을 쏘며, 사돈간에 한쪽은 무슬림이고 하나는 세르비아이기에 등을 돌렸다. 사람들-무슬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을 살인하고, 방화하며, 재산을 몰수하며, 부녀자를 강간할 수 있는 권한이 세르비아인에게 주어졌다. 희생자의 아우성 소리는 미국과 유럽 등 서방지도자들의 외면으로 묻혀져 버렸다.

피터 마쓰는 세르비아의 행위가 유태인에 대한 나치독일과 다를바 없다고 잘라 말한다.

구 유고연방 사람들이 정신적, 문화적으로 열당하기에 이런 일이 생긴다고 항변하고 싶지만, 그렇게 우기기에는 아직 우리의 얼굴이 충분히 두껍지 못하다.

어느 시대나 아무리 평화로운 시기에도 항상 내부갈등은 존재하였다. 그 갈등은 때로는 거의 없는듯 느껴지다가도 한순간에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고 되살아난다. 이것이 터지냐 아니냐는 갈등을 약삭빠르게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려는 개인이나 집단이 권력을 쥐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예컨대 우리나라에 지역갈등이 전혀 없다고 하긴 어렵다. 망국병이라고 지탄을 받아 지금은 가라앉은 상태지만,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무리가 정치와 군대와 언론을 장악하고 서서히 국민을 세뇌시킨다면 보스니아는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피터 마쓰는 조금도 잘난체 하지 않는다. 때로는 총구 앞에서 조용히 몸을 돌리고, 빗발치는 총탄을 피하기 위해 재빠르게 바닥을 기면서 그는 보스니아를, 무슬림을 그리고, 선량한 세르비아인을 안타까와한다.

야수는 바로 문명 옆에 있다. 그리고 문명의 틈을 노린다. 악이 비집고 들어와 퍼지는 것을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 수수방관하고 이를 국제사회가 용인한다면, 야수는 세계 곳곳에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이렇게 그는 조용하지만 단호히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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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8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2.7.11에 쓴 글을 마이페이퍼에서 이동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스티븐 코비 지음, 김경섭 옮김 / 김영사 /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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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중심으로 사는 삶에 대하여]

출간된 지 한참이나 오랜 시간이 지난 책을 이제야 겨우 읽었다. 꽤나 유행에나 둔감한 나의 독서경향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흔히들 자기개발 또는 인생(생활)지침서, 심하게 표현하면 처세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도 연유한다.

우선적으로 털어놓으면 나는 이런 종류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유행에 편승하고 단기간 독자들의 눈을 흐려놓을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연한 기회에 접하지 않았으면 앞으로도 읽을 기회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도 나와 비슷한 의견을 평소 품고 있던 모양이다. 지금까지의 책들은 성격(personality)중심에 치우쳤다고 지적하고, 보다 성품(character)중심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다. 즉 기법위주가 아닌 원칙중심으로 삶을 재구성하라는 조언이다. 그리고는 7가지 원칙(습관)을 제시하며, 이 습관을 체득하면 곧 성공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한다.

저자의 주장대로 7가지 원칙을 준수하면, 진정 효과적인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을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 저자 나름대로 표피적인 문제해결 접근방식이 아닌 내면을 조망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는 점은 평가할 만 하다.

다만 저자의 ‘원칙중심’이 또다른 의미에서의 기법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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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8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2.10.12에 쓴 글을 마이페이퍼에서 이동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짐 콜린스 지음, 이무열 옮김 / 김영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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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업은 많으나 위대한 기업은 드물다]

원제는 『Good to Great』. 수업시간에 담당교수가 추천을 해주어서 읽게 되었다. 표지 디자인과 광고문구를 보건대 솔직히 그렇고 그런 책 중의 하나려니 하는 안일한 마음자세로 시작하였는데, 곧 진지하게 내용에 빠져드는 내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 (Built to Last)』을 쓴 저자의 후속작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전편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있다. 좋은 기업은 많으나 위대한 기업은 드물다. 저자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미국기업은 단 11개 회사이다. 그 회사를 위대하게 많든 요인이 무엇인가를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위대한’이라는 어휘가 일반적으로는 도덕적 가치도 함축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지속적으로 대단한 성과를 올린’ 이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개념들이 여럿 있다. 단계5의 리더십, 고슴도치 컨셉, 규율의 문화, 기술 가속페달, 플라이휠과 파멸의 올가미 등등...

이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바로 전략수립보다 적임자 선택이 우선한다는 주장이다. 최적임자들을 모아놓으면 난상토론 가운데 기업의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자연 수립된다고 한다. 꽤 그럴 듯 하였다.

또한 스톡옵션 등 인센티브 부여가 인재를 끌어오고 동기부여시키는 최고의 유일한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고, 단지 최고의 인재를 기업에 잔류시키는 여러 수단중 하나로 사용하여야 효과가 크다는 주장도 음미할 만하다.

비록 저자의 주장이 미국기업이 아닌 다른 경제권에서도 적용될지는 미지수이지만,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야 될 내용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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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8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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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미친 짓이다 - 2000 제2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만교 지음 / 민음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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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짓, 그러나 누구나 꿈꾼다]

얼마전에 화제가 되었던 영화가 있었다. 타이틀은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고. 내용보다도 여주인공 역을 맡은 모 여가수때문이었다. 최근에 우연히 원작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 그 영화가 무작정 만들어진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또 한번 놀란 것은 표지에 ‘제2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라는 문구가 당당히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쉽게 읽히는 편이었다. ‘나’와 ‘그녀’간의 관계가 작품의 핵심이다. 양자는 모두 결혼은 미친 짓이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녀’는 조건에 따라 결혼을 한다. 결혼을 통해 보장받는 안락한 혜택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는 ‘나’와 마치 부부같은 소꿉장난을 한다.

이 소설이 나타내는 결혼관과 결혼문화가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심적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은 점점 변모하는 사회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리라.

‘나’가 지나치게 현학적이어서 사실감을 떨어뜨리는 아쉬움이 있지만, 탤런트가 되기를 싫어하는 ‘나’에 대하여 약간이나마 공감을 느끼는 것은 내가 ‘나’와 비슷한 또래나 처지라는 단순한 이유만은 아니다.

차마 걸어갈 용기가 없었기에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면서 머무르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어차피 곧 끝나리라는 것을 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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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8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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