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사전 - 기지와 해학 위트의 백과사전
앰브로스 비어스 지음, 정시연 옮김 / 이른아침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앰브로즈 비어스의 이름을 오늘날까지 떨치게 한 문제의 사전이다. 원래는 냉소자의 사전이라는 타이틀을 지녔으나 후에 현재의 표제로 바꾸었다고 한다. 글쎄, 개인적으로는 이전의 표제가 보다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내용상으로는 악마적이라고 볼 수 없다. 다만 당대에서 세간에 전달된 충격과 반향에서 악마의 입김을 연상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형식은 어휘 사전이다. 즉 어휘 명을 알파벳 순서에 따라 나열하고(번역본에서는 가나다순이다) 여기에 어휘의 뜻을 풀이하는 전형적인 사전 방식이다. 관건은 어휘의 뜻에 있다. 통상 사전에서 기대하는 의미가 아니라 작가 나름의 시니컬한 관점에서 파악한 의미가 제시된다. 사회비판적 인식이 강하므로 부조리한 정치, 사법, 행정, 종교 등을 냉소할 뿐만 아니라 사회와 개인의 일반적인 행동 양태에 대해서도 비딱한 빗대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요즘이야 하도 네트워크가 발달하여 순수한 의미로 수용되고 해석되는 현상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므로 비어스의 시니컬이 그다지 생소하지 않다. 그저 조금 흥미롭구나 하는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때로는 꽤나 색다른 관점에서 어휘적 정의를 이해하는데 대한 신기함이 관심을 끄는 정도다. 풍자와 비판, 독설이 난무하며 그래야 주목받는 때가 바로 작금의 우리 사회가 아닌가! 하지만 이 책이 출간된 20세기 직후의 당대 사회에서라면 어휘 하나하나에 짙게 배어있는 냉소와 어두운 그림자에 화들짝 놀랐을 수도 있겠다. 그만큼 여기에 수록된 2천여 개의 어휘에 대한 작가의 일관된 신랄함과 뒤틀린 위트는 낯선 매력을 제공한다.

 

대체적으로 단어의 의미만을 풀이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따금씩 사례 또는 해설이 덧붙여지는 경우도 있어 동일 형식의 반복적 나열에 따른 지루함을 깨뜨리고 있다. 광고 문구와 같이 악마도 웃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정도 훑어보면 어휘의 사전적 의미를 뛰어넘는 함의를 되새겨볼 수 있다. 또한 어휘가 사전에 박제된 것이 아닌 현실 사회에서 기능하고 작동하는 신선함도 느껴볼 수 있다. 덤으로 당대 사회나 현대 사회나 인간과 사회가 돌아가는 현실은 별다른 차이가 없음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훗날 기억을 위해 몇 가지 어휘만 임의로 인용한다.

 

남편 husband :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를 도맡는 인물.
비미국적인 un-America : 사악한, 용납할 수 없는, 이단의.
사임하다 resign : 쫓겨날 기미가 보일 때 하는 안성맞춤의 짓.
                          : 이익을 위해 명예를 포기하다. 더 큰 이익을 위해 하나의 이익을 버리다.
서양 occident : 동양의 서쪽(혹은 동쪽)에 위치하는 지구의 일부분.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위선자’로 알려진 기독교도가 살고 있다. 그들의 주요 산업은 살인과 사기인데, 그들은 이것을 전쟁과 무역이라 일컫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동양의 주요 산업이기도 하다.
성나게 함 provocation : 사람들에게 그의 아버지가 정치가였다고 말하는 것.
소요학파의 peripatetic : 돌아다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관계가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 강의중에 자기 제자들의 반론을 피하기 위해 이곳 저곳으로 돌아다녔다. 그런데 이것은 불필요한 경계였다. 제자들도 철학에 관해서는 스승만큼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악당 blackguard : 시장에서 딸기상자를 볼품 있게 하기 위하여 좋은 것들만을 골라 맨 위에 늘어놓았는데, 심술궂게 밑바닥을 뜯어보는 사나이. 안팎이 뒤집힌 신사.
양손잡이의, 두 마음을 품은 ambidextrous : 남의 주머니라면 그것이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똑같은 솜씨로 훔쳐낼 수 있는

 

재밌는 것은 사전에 대한 정의다.
사전 dictionary : 언어의 자유로운 성장을 억제하여 탄력성 없는 것으로 고정시키고자 생각해 낸 언어와 문자에 관한 악랄한 저작. 단, 본 사전은 예외로 지극히 유익한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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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2014-05-25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악마의 위트 사전
앰브로즈 비어스 지음, 정예원 옮김 / 함께(바소책)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비어스의 문명(文名)을 떨친 작품은 <악마의 사전>이다. 이 책의 표제와 타이틀이 상당히 흡사하지만 원제가 그러한지 아니면 유명작의 명성에 기댄 것인지는 알지 못하겠다. 다만 부제가 ‘판타지 우화집’으로 되어 있어 표제와는 달리 형식면에서 차이가 있음을 드러낸다.

 

전체 2부로 되어 있는데, 전반부는 작가 자신의 순전한 창작 우화이며, 후반부는 이솝 우화를 인용하여 재창작한 우화로서 전체적으로 전반부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우화란 무엇인가? 새삼스레 답변이 불필요한 우문(愚問)일 것이다. 우화는 2가지 속성을 지니는데 직설적이 아니라 빗대어 드러냄이다. 그리고 교훈과 풍자의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재담과는 구분된다.

 

비어스가 빗대는 것은 당대 현실이다. 그가 바라보기에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은 부조리와 불의가 판치는 어긋난 사회이며, 사람들 역시 그 무대에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의 본성을 왜곡시키기 위해 여념이 없는 딱한 이들이다. 웬만한 이라면 그저 그러려니 넘어가겠지만, ‘신랄한 비어스’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날카롭고 예리한 비평을 언론계에서 활약한 작가는 이를 허투루 여기지 않는다. 조그만 빈틈이라도 발견하면 뾰족한 송곳으로 사정없이 헤쳐 버리는 필치에 독자는 통쾌함과 아울러 짜릿함을 느낄 만하다.

 

풍자의 대상은 포괄적이지만, 대체로 종교, 정치, 언론, 정부 등이 타겟이 되고 있어 예나 지금이나 공공악의 존재 양태는 변함없으며, 공공 악에 대한 반감도 여전함을 알게 된다. 한편 간혹 드러나는 여성 편견은 시대적 한계라는 생각이 들어 비교적 인종평등 지향적인 진보성과는 묘한 대조를 이루기도 한다.

 

솔직히 이런 우화는 당사자가 읽고 마음속에서 공감을 느껴 피식 웃음이 번져 나와야 즐기는 제 맛이다. 따라서 섣부른 감상 소감은 출근시의 만원 전철에서 이어폰으로 개그 방송을 듣다가 혼자 낄낄거리다가 불현 듯 느끼는 주위의 시선으로 인한 민망함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1부와 2부에서 각각 짤막한(내용의 두드러짐보다는 순전히 길이에 초점을 두고) 우화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친다.

 

국고와 정부 권력
국고는 정부 권력이 내용물을 꺼내는 것을 느끼며 외쳤다.
“의원님! 표결을 요청합니다.”
그러자 정부 권력이 말했다.
“의회 용어를 제법 아는 것 같군.”
국고가 답했다.
“예, 저는 입법부가 저를 비워가는 것에 익숙하답니다.”

 

뱀과 제비
법정에 둥지를 튼 제비가 어린 새끼들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어느 날 뱀 한 마리가 벽의 틈새로 기어 나와 새들을 잡아먹으려 했다. 그러자 판사가 즉각 새들을 자신의 집으로 옮기라는 명령을 내리고 자신이 직접 잡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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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독파하는 셰익스피어 이야기 - 소설로 읽는 10대 희극, 6대 비극, 4대 로맨스
찰스 램.메리 램 지음, 박별 옮김 / 나래북.예림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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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사에서 셰익스피어가 차지하는 위상은 사뭇 대단하다. 문학작품 탐독에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도 그를 피해가지 못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주 작품은 우리에게 그나마 익숙한 이야기체인 소설이 아니라 연극 상연을 전제로 하는 희곡이다. 희곡은 대중성 면에서 소설에 비할 수 없으며, 독서법도 소설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처음부터 셰익스피어에 도전하는 진지한 정공법을 택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망설이게 되는 게 현실이다.

 

찰스 램과 누나 메리 램은 이에 착안하였다. 대중들이 조금 더 셰익스피어에 다가가도록 하자. 그의 익숙지 않은 희곡들을 말 그대로 이야기 형식으로 번안한 것이다. 이로써 독자는 셰익스피어 작품들에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으며, 원작인 희곡에 도전할 수 있는 든든한 베이스캠프를 갖게 된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는 작가 특유의 극적 구성과 언어적 표현 등은 일단 뒤로 제쳐놓자. 중요한 것은 원작의 묘미를 가능한 한 살리면서 독자에게 재미를 안겨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 그래서 이것은 재창작과 다름없다.

 

램 남매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작품 38편 중에서 역사극 등을 제외한 20편을 택하여 이야기로 바꾸어 놓았다. 각각 희극 10편, 비극 6편, 로맨스 4편으로 분류된다. 이 중에서 내가 읽어본 작품은 얼추 열편 남짓하다. 하도 오래전에 읽은 것이라 유명한 비극 몇 편을 제외하고는 줄거리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특히 배경과 전개가 비슷비슷한 희극 작품들은 매우 헷갈린다.

 

셰익스피어하면 일단 4대 비극으로 각인되어 있고, 여기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추가된다. 자고로 인간은 비극에 더 깊은 감명을 받는 존재인가 보다. 소위 카타르시스의 작용인가. 처음 접하는 <아테네의 타이몬>의 희극성과 비극성이 심금을 울린다. 인간성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절망한 타이몬이 숲속에서 나체로 생활하며, 죽음에 이를 때까지 철저하게 인간과 사회를 혐오하고 증오한다. 비극 작품을 통해보건대 셰익스피어는 인간성에 대해 극히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희극과 로맨스는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본다. 희극 중에서 보다 주인공의 모험적 성격이 강한 것을 특히 로맨스라고 명명한 것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배경이 대개 이탈리아 등 영국 이외이지만, 로맨스는 희극에 비해 보다 이국적 요소가 강하다. <겨울 이야기>는 시칠리아와 보헤미아, <심벨린>은 고대 브리튼과 로마제국, <페리클레스>는 그리스이며, <폭풍우>는 아예 지중해의 외딴 섬을 설정한다.

 

10편의 희극 중 확연히 기억 남는 것은 <한여름 밤의 꿈>과 <베니스의 상인>이며, 나머지는 등장인물과 사건 등이 기억에 혼재되어 이것이 저것인양 머릿속에 어지럽다. 그만큼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인물과 사건 및 구성에 있어 상당한 유사성을 공유한다. 개별적 무대 공연을 체험했다면 독자적 개성을 목도할 수 있겠지만, 글로 읽어서는 혼동하기 딱 좋다.

 

셰익스피어는 초기에 희극, 중기에 비극, 후기에 로맨스로 작품 집필을 집중적으로 하였다. 따라서 희극 작품은 아무래도 작가의 원숙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며, 비극 작품에서 그의 최고의 작품성이 구현된 것으로 이해된다. 로맨스는 확실히 초기 희극보다는 우수하지만 지향점이 다르다고 본다.

 

램 남매의 시도는 매우 성공적이다. 국내 출판계에서 왕성히 출판되고 있는 셰익스피어 이야기들이 이를 입증한다. 특히 아동 및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램 남매, 특히 찰스 램을 이 책 한 권만으로 평가하기는 무리다. 그는 수필 장르에서 중요한 소위 미셀러니의 대표자로, 그의 <엘리아 수필>은 문학사에서 뚜렷한 평가를 받고 있다.

 

간접적이지만 간만에 셰익스피어를 다시 접한다. 고전은 한 번 읽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셰익스피어를 읽은 지 너무 오래되었다. 슬슬 그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 때가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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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록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지음, 이영석 옮김 / 누멘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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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환상록(A Vision)>은 예이츠의 작품 목록에서 특이한 성격을 지닌 작품이다. 1917년부터 기술된 기록은 초판 출판에 이어 전면적 재검토를 거쳐 예이츠의 말년에 개정판이 출판되었다. 이것을 문학 작품으로서 받아들여야 할지는 논의가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중기 이후 예이츠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창으로서 그 의의는 무시할 수 없다.

 

타이틀과 같이 이 책은 예이츠가 신들린 아내의 입을 통해 이루어진 영적 존재와의 대화를 통해 구현한 거대한 환상을 다루고 있다. 예이츠의 아내는 우리나라의 무당과 같이 신 또는 혼령과 접촉할 수 있는 색다른 감각 능력을 지닌 듯하다. 신이 내린 무당이 하는 말은 평상시의 무당 자신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때 무당은 신과 인간을 중개하는 매개의 도구가 된다. 예이츠의 아내 또한 마찬가지다. 영적 존재가 들려준 이야기는 그 아내의 인지를 초월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주안점은 소위 이성과 감성으로 구축된 잘 갖추어진 체계가 아니라 무의식에서 구성된 환상에 대한 감수성과 수용력에 달려 있다. 환상에 공감하면 그것은 밝은 빛으로 다가올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허무맹랑하며 뜬구름 잡는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책을 읽으면서 수박 겉핥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정말 오랜만에 받았다. 글자가 글로써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개별적 철자에 불과할 때 이것을 독서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통상 이런 경우라면 재독, 삼독을 거쳐 이해에 다가가려고 노력하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예이츠의 전문적 연구자라면 모를까 순수한 독서가에 불과한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게다가 단순한 환상과 꿈에 불과한 주장이 아니라 나름대로 치밀한 체계를 갖춘 일종의 철학이라는 판단이며, 그 철학에 대한 공감적 수용이 아니라면 제대로 된 이해는 거의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는 먼저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에즈라 파운드에게’와 ‘마이클 로바티즈와 친구들’이라는 글을 통해 이 작품을 집필하게 된 계기와 배경을 서술하고 있다. 이따금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대체적 이해는 가능한 대목이다.

 

이어서 세계를 분석하는 거대한 작업이 시작된다. 응답자들 또는 안내자들(예이츠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은 우주를 시간(주관)과 공간(객관)의 차원으로 이루어진 주관적 원뿔과 객관적 원뿔의 이중 원뿔로 이해한다. 그것은 또한 4가지 기능인 의지, 마스크, 창조적 마음, 그리고 운명의 몸으로 분류가 가능하며, 이것이 어우러져 다양한 인식의 차원이 생성된다. 예이츠는 이것을 28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달의 수레바퀴로 도식화(P.86)하였다. 각각의 상은 4가지 기능별로 고유한 특성을 가지며 이는 100면~102면의 표로 설명되고 있다. 제1권 거대한 수레와 제2권 상징의 완성은 이러한 체계의 구축과 28상에 대한 개별적 상술을 다루고 있다. 사실 여기까지는 어지럽지만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대략적 이해와 추론은 가능하다. 물론 구체적 내용까지는 이해와 공감이 어렵지만 말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예이츠가 사용하고 구축한 체계의 방방법론에 대한 공감의 정도에 좌우된다.

 

한편 제3권 영혼의 심판은 완전이 해독 불가다. 아마 이 작품에서 가장 환상적인 대목을 손꼽으라면 단연 제3권이다. 아마 이 부분을 이해하려면 앞선 두 권을 철저하게 숙지하고 공감해야 하지 않을까?

 

제4권과 제5권은 앞에서 구현된 이해 체계를 바탕으로 역사를 분석하고 있다. 거대한 수레바퀴의 순환 주기를 다양하게 검토한 후 작가는 4000년을 한 주기로 제시한다. 그 한가운데가 바로 예수의 일생에 해당하며, 기독교의 시대는 이후 2000년을 지속한다. 작가는 각 시기별로 예술을 포함한 문명을 자신의 이해 체계에 맞추어 독자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무척 흥미롭다. 그의 환상에 공감하지 않더라도 일독할 가치는 있다.

 

예이츠의 후기 시에는 그의 독자적 사상에 대한 이해 없이는 해독이 어려운 사례가 제법 많다. 마이클 로바티즈와 관련된 시편들, 종종 언급되는 거대한 원뿔과 순환, 비잔티움에 대한 찬미는 물론 직접적으로 달의 상(相)을 제재로 삼기도 한다. 이런 시들을 이해하기 위한 창문으로써 이 <환상록>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도구로서의 의의 외에도 하나의 통합된 작품으로서 가치를 부여할 수도 있다. 옮긴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무엇보다도, 이 책을 하나의 거대한 시로 본다. 산문시와 운문이 잘 짜인 아름답고, 정교하고, 신비로운 시, 가장 추상적이면서 구체적인 시이다. 하나의 환상이면서, 형형색색의 채석 창문들이 하늘로 나 있는, 환상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신비주의적(종교적) 건축물이다.” (P.309)

 

역자의 의견에 동의하든 아니든 간에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은 작가 특유의 철학 체계에 기반한 통합적 사상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환상으로서의 시의 속성에 주목한다면 이 작품을 시로 파악해도 무리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작품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일반 독자에게는 무척이나 쉽지 않은 과제이다.

 

이 책은 <A Vision>의 우리말 번역문은 물론 영문 원문도 수록하고 있다. 원서 해독에 관심있는 이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전체 면수도 번역문 319면과 원문 247면을 합한 566면으로 표기하는 게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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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 언덕의 소녀 레인보우 북클럽 11
비욘스티에르네 비요른손 지음, 고우리 옮김, 어수현 그림 / 을파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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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비요른손의 작품은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다. 이는 북구 문학 전반에 관련된 사안으로 국내 출판계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현상이라 하겠다. 그나마 비요른손의 작품 중 간혹 소개되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양지바른 언덕의 소녀’ 또는 여주인공의 이름을 딴 ‘신뇌베 솔박켄’ 등의 여러 타이틀로 나왔는데 모두 단종되고 근래에는 소식이 없다가 이번에 을파소에서 아동과 청소년 문학 시리즈의 일환으로 새로 간행되었다.

 

이 작품이 작가 비요른손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장 인기작이다. 아마도 북구의 전원을 배경으로 누구나 공감 가능한 소년과 소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기인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는 아름답고 따뜻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같은 인상을 기대하였다.

 

북구의 자연환경이 작가의 필치와 문체에 우러나온다면 과장일까. 사건 전개상 완전히 아동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다. 북구에서는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길며 겨울의 추위는 매섭기 그지없다고 한다. 따라서 그네들에게 봄과 여름의 햇볕은 소중하기 그지없는 존재이며 심리적으로 받아들이는 영향도 자못 클 것이다. 이 소설이 딱 그러하다. 한마디로 하자면 밝음 속에 드리워진 북구의 정서! 그것은 자연 묘사와 사람들의 성격과 행동, 특히 토르비욘의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불량소년 아슬락에게서 두드러진다. 자연이 그 속에 안주하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지대한가. 한편 아슬락에 대해서는 작가가 더 할 말이 많은데 아낀 흔적이 역력한데, 작품의 전체적 성격상 더 깊은 관심과 비중을 쏟아 붓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이해된다.

 

기실 토르비욘과 신뇌베는 비슷한 또래로 같은 마을에서 자라나 서로에 대해 잘 아는 사이였고, 우정이 애정으로 발전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대도시도 아닌 적은 인구가 모여 사는 고립된 소도시 또는 마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두 집안이 한쪽으로 크게 치우치지도 않으며, 비교적 원만한 이웃관계를 유지한 점도 나쁘지 않게 작용하였다. 그럼에도 두 청춘남녀가 맺어지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토르비욘의 인격적 성숙이다.

 

새삼 서구인들의 삶과 생활을 지배하는 교회와 종교적 영향력에 대해 주목한다. 환경과 교통으로 고립된 마을에서 교회는 사람들의 내적 불안을 완화시켜 줄 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교류와 소통을 하는 열린 공간의 기능도 담당한다. 게다가 탄생과, 견진성사, 결혼 및 장례 등 인생 대소사의 중요 의식이 거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는 제2장에서 새삼 “노르웨이 농부의 삶이란 교회와 연관 없이는 말할 수 없다”고 표현하고 있다.

 

타이틀에서 풍기는 뉘앙스만큼 밝고 화창하지는 않지만, 소년 소녀가 꾸려나가는 소박하면서 대견한 사랑은 한번쯤 읽어 볼 가치가 있다. 더구나 주인공들과 동년배의 독자들이라면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나의 것으로 쉽게 동화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동에게 있어 동화, 청소년에게 있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으로 대표되는 성장문학의 의의가 바로 이런 것이다. 그 시기를 놓치면 이해는 하되 절대적 공감을 하기 어려운. 현재의 나가 아닌 당시의 나였다면 아마도 독서중과 독서후의 감회는 분명 지금과는 많은 차이를 보였을 것이다. 시기를 놓친 점이 자못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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