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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 언덕의 소녀 ㅣ 레인보우 북클럽 11
비욘스티에르네 비요른손 지음, 고우리 옮김, 어수현 그림 / 을파소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19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비요른손의 작품은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다. 이는 북구 문학 전반에 관련된 사안으로 국내 출판계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현상이라 하겠다. 그나마 비요른손의 작품 중 간혹 소개되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양지바른 언덕의 소녀’ 또는 여주인공의 이름을 딴 ‘신뇌베 솔박켄’ 등의 여러 타이틀로 나왔는데 모두 단종되고 근래에는 소식이 없다가 이번에 을파소에서 아동과 청소년 문학 시리즈의 일환으로 새로 간행되었다.
이 작품이 작가 비요른손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장 인기작이다. 아마도 북구의 전원을 배경으로 누구나 공감 가능한 소년과 소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기인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는 아름답고 따뜻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같은 인상을 기대하였다.
북구의 자연환경이 작가의 필치와 문체에 우러나온다면 과장일까. 사건 전개상 완전히 아동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다. 북구에서는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길며 겨울의 추위는 매섭기 그지없다고 한다. 따라서 그네들에게 봄과 여름의 햇볕은 소중하기 그지없는 존재이며 심리적으로 받아들이는 영향도 자못 클 것이다. 이 소설이 딱 그러하다. 한마디로 하자면 밝음 속에 드리워진 북구의 정서! 그것은 자연 묘사와 사람들의 성격과 행동, 특히 토르비욘의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불량소년 아슬락에게서 두드러진다. 자연이 그 속에 안주하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지대한가. 한편 아슬락에 대해서는 작가가 더 할 말이 많은데 아낀 흔적이 역력한데, 작품의 전체적 성격상 더 깊은 관심과 비중을 쏟아 붓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이해된다.
기실 토르비욘과 신뇌베는 비슷한 또래로 같은 마을에서 자라나 서로에 대해 잘 아는 사이였고, 우정이 애정으로 발전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대도시도 아닌 적은 인구가 모여 사는 고립된 소도시 또는 마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두 집안이 한쪽으로 크게 치우치지도 않으며, 비교적 원만한 이웃관계를 유지한 점도 나쁘지 않게 작용하였다. 그럼에도 두 청춘남녀가 맺어지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토르비욘의 인격적 성숙이다.
새삼 서구인들의 삶과 생활을 지배하는 교회와 종교적 영향력에 대해 주목한다. 환경과 교통으로 고립된 마을에서 교회는 사람들의 내적 불안을 완화시켜 줄 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교류와 소통을 하는 열린 공간의 기능도 담당한다. 게다가 탄생과, 견진성사, 결혼 및 장례 등 인생 대소사의 중요 의식이 거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는 제2장에서 새삼 “노르웨이 농부의 삶이란 교회와 연관 없이는 말할 수 없다”고 표현하고 있다.
타이틀에서 풍기는 뉘앙스만큼 밝고 화창하지는 않지만, 소년 소녀가 꾸려나가는 소박하면서 대견한 사랑은 한번쯤 읽어 볼 가치가 있다. 더구나 주인공들과 동년배의 독자들이라면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나의 것으로 쉽게 동화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동에게 있어 동화, 청소년에게 있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으로 대표되는 성장문학의 의의가 바로 이런 것이다. 그 시기를 놓치면 이해는 하되 절대적 공감을 하기 어려운. 현재의 나가 아닌 당시의 나였다면 아마도 독서중과 독서후의 감회는 분명 지금과는 많은 차이를 보였을 것이다. 시기를 놓친 점이 자못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