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7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지음, 박종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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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티프터는 개인적으로 무척 선호하는 작가다. 시중에 나와 있는 번역본은 다 찾아 읽었을 정도로. 이제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늦여름>이 출간되었다. 거의 기대하지 않았으므로 기쁨은 곱절 이상이다. 마치 진실로 애호하는 애장품은 섣불리 건드리지 않듯이 조심스레 때를 기다리다가 이제야 책을 펼친다.

슈티프터는 남과 명확히 구분되는 독자적인 글쓰기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인물 간 갈등구조가 희박하며, 작품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 극히 정선된 인물만이 등장하며, 항상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자연(산, 호수, 숲 등)을 배경으로 한다. 슈티프터에게 있어 자연은 단지 공간적 배경을 뛰어넘어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전개까지도 아우르는 중요한 요소다.

<늦여름>은 그의 말년의 대작 교양소설이다. 괴테의 그것과 비견된다는 후대의 평가를 얻을 정도다. 번역본 2권을 합하면 900면에 이를 정도이니 확실히 대작이다. 단지 분량만이 그러한 게 아니고, 책을 읽어가다 보면 슈티프터가 이 작품에 쏟은 정성과 열의를 확실히 감지할 수 있다. 이전까지의 중편 내지 경장편 정도에 해당하는 작품과는 선을 긋는 그로서도 정말 독특하기 그지없다. 이제 1권을 읽기 마친 시점에서 속단하기 어렵지만, 이 작품은 종전의 소설적 서사구조를 외면하고 있다. 자신의 글쓰기 스타일을 더욱 극단으로 확대하여 종내는 소설 구조를 해체시키는 게 아닐까 우려될 정도다.

대개 교양소설이라 함은 어린 소년이 편력을 경험함으로써 인성과 지성을 수양하고 사회의 진정한 일원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음이 통상적이다. 괴테로부터 시작하여 전에 읽었던 고트프리트 켈러의 <초록의 하인리히>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작품의 주인공 하인리히도 역시 집을 떠나 여행을 하지만, 그는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편력은 선형구조 대신 계절에 맞추어 나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회귀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가 우연히 들르게 되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 된 아스퍼호프도 마찬가지다. 이후 그는 집과 아스퍼호프를 오간다. 적어도 공간적 변화란 측면에서는 매우 제한되고 단순하기 그지없다. 이는 작가가 주인공의 편력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음을 뜻한다.


하인리히는 인생에서 2명의 멘토를 만난다. 아버지와 아스퍼호프의 주인어른 리자흐 남작이다. 남작을 통해 그는 아버지의 멘토성을 재발견한다. 작품에 기술된 내용만 보건대 그들은 진정한 의미의 멘토이자 전인적 인간형의 완성자이기도 하다. 과연 그들에게 인간적 단점과 약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과도한 완벽성으로 오히려 사실성이 저해될 정도다.


하인리히는 애초 자연과학적 지식욕으로 산과 자연을 연구하기 위해 편력을 하였다. 이후 그는 장미집에서 주인어른과의 대화를 통해 그의 관심영역을 서서히 넓혀나간다. 문학, 음악, 회화, 조각 등. 그의 인식은 단편적이고 협소하였는데 보다 개방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작가는 스스로의 세계관 또는 예술관을 아래와 같이 드러낸다.


“위대한 작품이란 여러 부분적인 아름다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예술 작품은 모든 부분이 똑같이 아름다워야 하고, 그래서 어떤 부분도 홀로 부각되어서는 안 된다.” (P.404~405)


기실 작품에서 세밀하게 기술되고 정밀하게 묘사되는 자연과학적 지식과 회화 및 조각에 대한 전문가적 식견, 그리고 고대 예술에 대한 해박한 능력 등은 모두 작가 자신의 것이다.


슈티프터는 작심하고 이 작품을 쓴 것이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순정한 문학의 표본으로 <늦여름>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가 보기에 당대 개인과 사회는 뭔가 잘못되어 있다. 산업혁명 이후 급속히 발전된 산업의 영향은 당대를 변혁의 도가니에 휩쓸리게 하였지만, 그것이 항상 올바른 방향은 아니었다. 리자흐 남작은 이를 지적한다.


“선조들에 대한 무지 속에서 늘 우리의 진보만 떠들어대는 그런 습성에서 벗어나서 말이네. 물질에 대한 숭배는 경험의 빈곤을 떠올리게 하지.” (P.117)


이는 하인리히가 대리석상을 통해 깨닫게 된 인식에도 드러나 있다.


“그들에게는 영혼이 없었기 때문이다. 후대의 예술가들은 영혼으로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 주류의 형상화 원칙에 입각해서 작업했고, 때문에 예술가는 자신의 감정에 없는 것을 작품의 불안과 격렬함으로 대체하려고 했다.” (P.407)


슈티프터는 이 작품에서 미숙한 젊은이가 참된 스승을 만나 인식의 폭과 깊이를 확대하며 올바른 인간형으로 발전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교양소설적이다.


한편 소설의 다른 주인공은 장미집의 주인어른 리자흐 남작이다. 작품에서 그는 시종일관 하인리히에게 특별한 우정을 갖고 전지적 시점에서 그를 깨우치고자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대사는 매우 길면서 문명사적, 철학적 의미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게다가 그의 아스퍼호프는 자연에 대한, 그리고 자연과 공생하는 이상적인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그의 철저한 조화와 질서의 원칙은 장미집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곳, 갈등과 난잡함이 없는 순결한 곳으로 승화시킨다.


하지만 분명 긍정적 공간이어야 마땅할 텐데 내게는 과도한 인위적 개입이 오히려 인공성을 극대화하고 있는 듯 여겨진다. 자연에 거슬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는 곳, 조금만 주의에 소홀해도 곧 무너질 사상누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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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이야기 - 양장본
이형식 엮음 / 궁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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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에 걸쳐 쓰여진 여우 르나르를 주인공으로 하는 우화집이다. 옮긴이는 총 27편 중 일부 중복되는 부분을 제외한 21편을 최대한 원전에 충실하게 옮기고 있다. 옮긴이는 “간혹 듣기에 민망스러운 어휘나 표현을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하는데 이런 태도는 칭찬받을 만하다. 이 우화집은 프랑스 민중에게서 태어나 민중의 손으로 보태지고 다듬어져 오늘에 전승된 것이다. 따라서 품위 운운하면서 민중적 요소를 제거해 버린다면 작품에 내재된 원초적 생명력은 이미 죽어버린 거나 진배없다.

 

주인공은 여우 르나르다. 르나르의 맞수인 동시에 숙적으로 늑대 이장그랭이 등장하며, 그의 아내는 에르상이다. 여기에 황제인 사자 노블과 황후 휘에르가 무게감을 더한다. 그 외 각종 동물들이 의인화되어 나오며, 주변 인간들도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일단 우화인 만큼 의인화를 통하여 무엇인가를 풍자하고 있음을 예상할 수 있는데, 작품 전체를 통해 보건대 풍자의 범위와 폭이 매우 광범위함을 알 수 있다. 위로는 황제로부터 아래로는 시골 촌부에 이르기까지, 당대를 지배하던 종교와 관련해서도 종교의식과 수도사들을 신랄하게 까발린다. 그렇다고 르나르가 매우 사회적 이슈에만 민감한 것은 아니다. 인간 자신과 성(性)에 대하여 숨기거나 거리낌 없이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음도 자못 흥미롭다. 읽는 이에 따라서는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나 요즘도 사람들은 음담패설을 즐기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을 섣불리 비난하거나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인간 세상에서 성(性)은 중요한 만큼이나 영원한 호기심의 근원이 아니겠는가.

 

르나르나 이장그랭의 일과는 배고픔에 시달려 먹이 구하기에 나서는데서 시작한다. 이는 비단 동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니, 당대 민중의 삶이 넉넉하지 못하여 기아를 면하는 것이 그네들의 지상과제임을 반영하고 있음이다.

 

다년간에 걸쳐 여러 작가들이 쓴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이기에 등장인물과 주요 배경을 제외하면 사건과 인물의 관계는 중구난방으로 체계가 부족하다. 이장그랭은 르나르의 삼촌이었다가 이웃지간에서 숙적으로 관계가 바뀐다. 어느 순간에는 르나르와 합세하여 황제 노블에 대항하기도 하는 등 변환 자재하다. 곰 브렁처럼 앞에서 죽었는데 뒤의 일화에서는 여전히 살아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단일 작가에 의한 체계적인 작품과 같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여우 르나르의 성격과 행동이 작품 이해의 핵심으로 생각된다. 그는 작중에서 한결같이 간악한 사기꾼으로 지칭된다. 그의 악명은 동물 사회 및 인간 사회에서도 자자할 정도이어서 그에게 원한을 품은 이들이 한둘이 아닐 지경이다. 한편 그는 궁정예법에 밝고 황제 노블에 대한 지극한 충성을 지닌 것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황제의 명을 거부하고 황후와 상관하며 후에는 황제에 대항하기도 하는 등 그는 반체제적 성향이 농후한 인물이다.

 

악인적 요소와 반체제적 성격은 우화의 대명사인 <이솝 우화>와는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는 것으로서, 이른바 피카레스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악한소설의 원형에 흡사하다. 르나르가 황제가 하사한 순례용품을 황제와 일행들에게 던지며 야유를 퍼붓는 장면(‘다시 심판대에 선 르나르’)은 불손함이란 면에서 가히 압권이라고 할 것이다.

 

르나르가 간만에 착한 일을 하려다가 되려 곤욕을 치르는 장면(‘르나르와 브렁, 그리고 농사꾼 리예따르’)에서 언약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거나, 수도회 및 수도사에 대한 비판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장면(‘꼬리로 낚시질하는 늑대’와 ‘고해신부를 삼켜버린 르나르’) 등은 당대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를 여실히 드러낸다.

 

르나르의 악행과 함께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다른 축은 르나르의 여성 편력이다. 르나르는 이장브랭의 아내 에르상과 교접을 하였으며, 후에는 휘에르 황후와도 은밀한 관계를 지속하고 아예 스스로가 황제가 되어 당당하게 결혼도 한다. 르나르의 성적 방탕을 늑대는 황제에게 고발하나 황제는 오히려 어떤 남편이나 오쟁이 진다고 하며 이를 가볍게 넘긴다. 기독교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중세에서 암암리에 자행되던 성적 타락이 일상화되어 더 이상 시빗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임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민중 작가들은 우스갯소리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벼운 동물 우화의 형태로 당대 개인과 사회, 종교적 현실을 풍자하고 표면에 드러내고 있다. 시덥잖은 동물 이야기로 치부하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여우 르나르가 활약하던 시절과 작금의 때와 무슨 큰 차이가 있는지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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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벨룽겐의 노래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7
허창운 옮김 / 범우사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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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확인한 부르군트왕국에 대한 자료의 내용이다.

 

동(東)게르만의 일파였던 부르군트족(族)이 세운 서양 중세 초기의 왕국(413∼436, 443∼534).
1세기경에 오데르강(江)과 비슬라강 중류에 거주하던 부르군트족은 군디카르 영도하에 3세기부터 점차 남서쪽으로 이동하여 413년에는 서(西)로마의 맹방부족(盟邦部族)으로서 마인강(江) 남쪽에서 라인강 중류 지역에 있는 보름스를 수도로 왕국을 세웠는데, 436년에 서로마와 동맹관계에 있던 훈족(族)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였다. 이 사건은 나중에 전설화되어 《니벨룽겐의 노래》의 주제가 되었다...

 

<니벨룽겐의 노래>는 바로 이 부르군트왕국과 훈족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구전되어 오던 영웅담이 기록화된 것은 13세기 전후, 게다가 단일한 작가에 의하여 창작된 것이 아닌 만큼 다양한 사건과 일화들이 시대와 관계없이 구전 과정에서 덧붙여졌다. 북유럽 게르만족의 원형 신화의 자취가 여실히 남아 있으며, 여기에 후대 프랑크왕국에서 벌어진 내전의 이야기가 작품 전개에 깊은 영향을 드리우고 있다.

 

<니벨룽겐의 노래>를 바탕으로 리햐르트 바그너는 북유럽 신화를 가미하여 독자적인 서사를 구축하고 여기에 음악을 추가하니 유명한 <니벨룽겐의 반지>가 그것이다. <반지>의 주요 등장인물 중에 알베리히, 하겐, 지크프리트, 브륀힐데 등이 등장함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여하튼 독일 고전문학의 일대 대작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2~13세기는 프랑스와 독일에 걸쳐 많은 구전 설화 및 로망스들이 문자화되는 시기로서 프랑스에서는 크레티앵 드 트루와를 필두로 마리 드 프랑스의 이름이 보이며, 독일에서는 <파르치팔>과 <트리스탄> 등의 대서사시가 창작되기도 하였다. 즉 르네상스에 앞선 소박한 문학 부흥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역사적 가치를 떠나 <니벨룽겐의 노래>의 예술적 가치는 어떠한가. 이미 옮긴이도 언급한 것이지만, 번역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운문으로서의 매력은 상실되었다. 따라서 하나의 산문문학으로서의 판단 여지만 남게 되었다. 우선 구비문학인 만큼 플롯의 전개가 매끄럽고 통일적이지 못한 태생적 한계는 여전하다.

 

작중 인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중립적이다.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는 경우도 있지만 재빠르게 밸런스를 회복한다. 영웅 서사시에 흔히 있기 마련인 영웅 편애와 권선징악에 입각한 악인에 대한 증오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이는 작품을 유장하게 흐르게 하는데 효과가 있는 반면, 극적인 긴장의 조성에는 불리한 측면을 지닌다. 작가의 시점은 저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듯하다. 그곳에서는 세상사와 인간사의 다툼은 하찮게 보이기 마련이다.

 

이 작품의 특징적 요소를 살펴보면, 제1부와 제2부의 등장인물은 동일 인물이라 할지라도 편차가 매우 크다. 부르군트족의 왕 군터는 트리스탄 이야기에서 마크 왕을 연상시킨다. 과거에는 고귀하고 훌륭하였지만 현재는 나이 들어 그렇지 못한 노쇠한 영웅이었던 그(“그가 일찍이 강했던 적이 있었다 해도 이제 그는 더 이상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639연))는 수십 년 후 제2부에서는 강력하고 위대한 영웅으로 여전한 존재감을 떨친다. 이는 “젊은” 기젤헤어가 세월의 흐름에 무관하게 계속 “젊은 왕”으로 남아있고 뤼디거의 딸과 약혼한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이런 관점에서 크림힐트의 미모도 시간을 가뿐히 초월한다. 언뜻 계산한 바에 따르면 크림힐트가 복수를 하기 위해 동족들을 초청하였을 때 최소 쉰 살에 다다랐을 터인데, 전설 속 영웅들은 거의 신적인 존재인가보다.

 

제1부의 주인공 지크프리트는 반신반인의 영웅이다. 브륀힐트가 지크프리트를 증오하게 된 사유는 일면 이해가 되는 부분인데, 여기서 군터 왕은 소극적인 반면 오히려 하겐이 이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기실 하겐이 군터 왕을 설득하여 지크프리트를 암살하게 된 근본적 목적은 명확하다. 하겐은 단순히 왕비의 복수를 도모하지 않는다. 부르군트왕국보다 더 큰 세력을 떨치고 부를 자랑하는 지크프리트를 제거함으로써 얻게 될 정치적, 경제적 이해를 노린 것이다. 그것이 군터 왕을 설득한 가장 큰 논리이다.
“그는 군터왕에게 지크프리트가 죽게 되면 많은 왕국들의 영토 지배권을 얻게 될 것이라고 속삭였고, 그로 인해 군터왕은 심한 갈등 속에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870연)

 

브륀힐트와 크림힐트 간의 갈등은 남편의 지위를 통해 대변되는 여인들의 신분 질서에 관한 사항이다. 브륀힐트가 보기에 군터는 왕이며, 지크프리트 역시 비록 왕이지만 군터의 종사일 뿐이다. 반면 크림힐트의 입장에서 군터와 지크프리트는 지위에 있어 동격이다.
“지크프리트는 군터와 완전히 동등한 신분이랍니다!” (819연)


중세의 관념에서 신분과 계급질서는 매우 엄격하며 개인과 사회를 떠받치는 근본적 개념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상호간의 신분을 확인함으로써 사회 내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며, 오늘날과 달리 이러한 질서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뒤흔드는 일은 매우 패역적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래서 두 여왕 간에는 한 치도 양보 없이 팽팽한 신경전과 언쟁이 계속되었다.

 

제1부의 주인공이 지크프리트라고 하면, 제2부에서는 하겐이 그러하다. 아니 이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인물이 바로 하겐이다. 하겐과 군터왕의 관계는 단순한 왕과 신하의 관계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봉건제 하의 왕과 제후에 해당하지만, 하겐은 더 나아가 왕에게 독자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신(權臣)으로 이해된다. 하겐은 간웅이자 영웅이기도 하다. 제2부에서 하겐의 절대적 활약상에서 죽음에 초연한 그의 태도를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모든 불화의 원인이기도 하다. 지크프리트를 죽이고, 크림힐트에게서 모든 보물을 빼앗으려 하며, 훈족의 땅에 가서는 에첼과 크림힐트의 아들을 죽임으로써 화해의 여지를 없애는 그의 모든 행동을 군터왕은 감히 저지하지 못한다. 물론 이러한 그의 행동이 군터왕에 대한 충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음은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니벨룽겐의 노래>는 중세 기사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로 일컬어지지만, 여기서 우리는 기사도의 본령이 아닌 쇠락하고 일그러진 기사도만을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지크프리트의 영웅성은 제1부에서 끝을 맺는다. 이는 그의 신화적 영웅성이 현실적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암시하며, 신화적 관념이 더 이상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는 점이기도 하다. 부르군트족의 죽음을 앞둔 처절한 항전에서 보이는 당당한 기개, 뤼디거의 고귀한 고민 등이 그나마 돋보이지만, 이 분쟁의 끝은 승자가 없다. 분쟁 당사자들은 모두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여기서는 나치 독일이 그렇게 추앙하던 ‘독일정신’과 ‘독일인’의 본령을 찾을 길 없다. 작가가 노래한 것은 결국 영웅 정신의 소멸과 스스로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인간 정신의 간교함, 비열함의 발현 결과가 아닐까.

 

문학 작품에서 우열을 논하는 것은 위험하며 무의미하지만, 그리스와 로마의 서사시에 비교할 때 이 작품은 두드러지는 인간성의 부정적 요인과 파괴성으로 인하여 보다 우수하다고 평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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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심리학 - 생각의 오류를 파헤치는 심리학의 유쾌한 반란
리처드 와이즈먼 지음, 한창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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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프로이트 전집 몇 권을 읽으면서 매우 흥미진진하게 그의 견해를 접할 수 있었다. 그의 독자적 이론은 당대는 물론 현대에도 찬반이 숱하게 격돌하는 전장이며, 그의 이론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프로이트로 인해 인간 심리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그의 가치는 유효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물론이고 많은 심리학자들의 연구와 분석은 대체로 정신 또는 신경에 병리학적으로 이상이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정상적인 인간 심리를 알기 위해 비정상적인 심리 상태에 의존해야 함은 아무리 타당성과 불가피성이 있더라도 마음 한켠 개운치 않았다.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어려운 것인가. 프로이트의 저서 중에서도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나 <일상 생활의 정신병리학> 등이 있지만 썩 부합되지는 않았다.

 

저자는 이 책에 괴짜심리학(Quirkology)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있다. quirk는 별나고 기이함을 가리킨다. 무엇이 그렇게 별나고 기이한지는 실제적 내용과는 관계가 없다. 주류 심리학에서 볼 때 여기서 다루는 연구 분야들이 기이해 보이는 모양이다.

 

시간과 날짜의 심리학, 거짓말과 속임수의 심리학, 미신과 초자연의 심리학, 암시와 선택의 심리학, 유머와 웃음의 심리학, 이타성과 인간관계의 심리학의 각 장의 표제만을 보더라도 이 책의 내용이 호기심을 자극하며, 그다지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일상 생활의 심리학’ 정도가 적당한 부제가 되지 않을까?

 

저자가 다루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신호등 앞에서 앞 차가 꼼짝도 안 할 경우 뒤차들이 몇 초나 기다린 후 경적을 눌러대는지 측정한 실험,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과 관련된 직업(저자의 이름도 연관성이 있다)을 갖게 되는 이유를 연구한 실험, 대형 마트의 소량 계산대에서 물건을 잔뜩 계산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분석한 실험, TV 화면의 숨겨진 광고 메시지가 실제 구매율에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실험, 세상에서 가장 웃긴 농담을 찾아내기 위한 전세계적 실험 등.

 

소위 정통 심리학의 학문적 엄숙주의와 현학성에 혼이 난 일반 독자들이라면 여기서 언급한 실험과 그 결과에 커다란 흥미를 느낄 수 있다. 기실 심리학이란 인간 심리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는 데 목적을 두는 게 아니겠는가. 현실 적용이란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참말과 거짓말을 파악하는 방법과 가장된 웃음을 알아내는 방법은 유효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다. 뛰어난 주식투자 전문가를 가리기 위한 실험에서 점성술사와 투자전문가를 제치고 다트를 통한 무작위 투자가 더 좋은 수익을 낳았다는 점은 섣부른 주식투자에 경종을 울릴 것이다. 더욱이 현대에도 점쟁이가 득세하는 연유는 인간의 취약성을 깨닫게 한다.

 

클래식음악을 좋아하는 개인으로서 저주파 음악회 실험은 특히 인상깊다. 저주파가 신체와 감각에 영향을 미쳐 초자연적 경험을 갖게 된다는 사실. 교회와 성당의 오르간과 건물 구조상의 음향적 특징 등이 이에 근거한다는 점은 낯설지만 어색하지는 않다. 귀로 듣는 음악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초저음이 음악 감상의 폭과 감동에 기여함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므로.

 

여하튼 괴짜심리학은 대중에게서 멀어져 간 심리학을 다시금 대중과 재결합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고 관심을 가지고 수용할 수 있는 영역에는 열성적인 반응과 호응을 보여주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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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앨버트 칸 지음, 김병화 옮김, 파블로 카잘스 구술 / 한길아트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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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한 클래식음악 애호가라면 그 존재를 외면할 수 있는 아티스트, 그가 바로 파블로 카잘스다. 첼리스트에게 있어 성서라고 할 수 있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재발견-개별 곡이 아니라 전체 음악으로 연주해야 건축적인 구조와 예술성이 완성됨을 최초로 인식-하고 전곡을 최초로 녹음하였으며, 물리적 시대를 초월하는 불멸의 가치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음악가가 아닌 인간 카잘스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소개되어 있지 않다. 바흐 악보와 관련된 에피소드, 프랑코 독재정권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 정도만이 단편적으로 흘러나올 뿐이다.

 

이 책은 카잘스의 자서전이 아니다. 엮은이는 애초 특정한 질문 주제를 정해놓고 이에 대한 카잘스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구성하려고 하였으나 최종 단계에서 오로지 카잘스 자신의 목소리만 부각시키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 하에 구술 형식으로 변경하였다. 따라서 이 책은 ‘카잘스의 초상화’이되, 카잘스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와 판단에 따른 주제가 아닌 엮은이의 의도가 반영된 초상화로 이해해야 한다. 이 점에서 부분적 한계는 있지만 그의 육성으로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이므로 자서전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카잘스는 확실히 특출한 재능을 지녔다. 어린 나이에 귀족과 왕족의 전폭적 성원과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그만의 천재적 재능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파리에서 잠시 고생을 한 시기를 제외하면 그에게는 오직 탄탄한 성공 가도만이 앞날에 드리워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천재의 오만함과 경박함 대신 소박함과 겸허함만이 묻어나온다. 삶과 자신을 진실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 만이 품을 수 있는 성품이다.

 

카잘스의 인생에 짙은 암운을 드리운 것이 스페인 내전이다. 역설적으로 스페인 내전을 통해 카잘스는 단순한 예술가에서 세계사적인 인물로 거듭났다.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가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쇼 정권의 지원을 받아 민주적 공화정을 세우고 발전시켜 나가던 민간 정부를 무너뜨리고 수십 년간 독재정권을 수립한 계기가 되었다. 이때 합법적 스페인 정부는 서방 국가의 지원을 호소했지만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수년 간 처절한 투쟁을 벌이다 마침내 전복되고 만다. 이 전쟁은 무솔리니의 에티오피아 침공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을 촉발하는 단초가 되었다.

 

사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어보았지만 그 참혹함과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인식되지 않았다. 서가 한 구석에 꽂혀있는 <스페인 내전>은 언제 읽게 될지 기약없는 상황에서 카잘스의 생생한 증언은 우리에게 무엇이 정의이며, 인간의 기본 가치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 것인가? 권력 앞에 인간성이란 존재하는가 등의 원초적 질문을 반복하게 만든다. 인간 카잘스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스페인 내전에 대해 카잘스의 토로는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만큼 깊은 울림을 지닌다.

 

카잘스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녹음한 연도는 1936년부터 1939년까지에 해당한다. 더 일찍 음반을 만들 수도 있었던 그가 하필 60대에 접어들어서야 녹음을 했던 연유가 궁금했다. 좀 더 음악적 해석의 깊이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막연하게 추론들 하였다. 이 책이 그에 대한 명시적 답변을 주지는 않지만 그럴듯한 해석은 가능하다. 그의 녹음 시기는 스페인 내전과 정확히 겹친다. 내전의 치열함과 참혹성을 목도한 카잘스는 혹시 자신의 앞날이 잘못될 경우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수십 년간 갈고 닦은 음악을 후세에 남기지 못하는 것, 그것은 크나큰 죄악이다. 또 하나 현실적인 이유로 내전 세력과 맞서기 위한 공화국 정부의 빈약한 재정으로 사회의 많은 부문이 지원이 끊어진 채 방치되고 있을 때 카잘스에게는 이를 돕기 위한 금전적 고려가 매우 필요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카잘스의 바흐 음반을 들을 때 파이프 담배연기 뒤에 드리워진 짙은 전쟁의 깊은 영혼의 슬픔을 동시에 헤아려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의 음악이 유달리 치열한 것은 여기에 기인하기 때문일 것이다.

 

카잘스는 만년에 첼로 연주보다는 지휘를 더 즐겼다. 노년이 될수록 악기 연주가 무리가 되니 자연스레 지휘에 관심을 기울이는 연주자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런데 이 책에서 카잘스는 자신이 처음부터 지휘를 더 선호하였음을 증언한다.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독주를 펼치는 것에 심적 부담을 느끼고 있었음을. 그리고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교감을 주고받으며 함께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묘미를. 개인적으로 카잘스의 지휘 음반에 편견을 품고 있어 가까이 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카잘스의 개인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노년에 수십 년 연하의 여제자와 결혼하였다는 점이다. 팔순 노인에게 결혼과 아내는 젊은이와는 다른 의미를 지닐 것이다. 그에게는 일상사를 같이할 동반자가 필요하였던 것이며, 더구나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의 고향 출신이며 유사한 외모를 지녔음도 상승 작용을 더했다.

 

예술가 카잘스에 앞서 진실한 인간 카잘스가 존재한다. 카잘스는 이 점을 한 치도 잊지 않았다. 이것이 그가 프랑코와 나치의 생명의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고 투쟁하였으며 후에 프랑코 독재정권을 수립한 국가들을 용서하지 않았던 바탕이었다. 그는 음악가에게 있어 음악과 삶의 태도는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음악의 의의는 자체보다 더 큰 어떤 목표에 봉사하고 인간성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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