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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앨버트 칸 지음, 김병화 옮김, 파블로 카잘스 구술 / 한길아트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지간한 클래식음악 애호가라면 그 존재를 외면할 수 있는 아티스트, 그가 바로 파블로 카잘스다. 첼리스트에게 있어 성서라고 할 수 있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재발견-개별 곡이 아니라 전체 음악으로 연주해야 건축적인 구조와 예술성이 완성됨을 최초로 인식-하고 전곡을 최초로 녹음하였으며, 물리적 시대를 초월하는 불멸의 가치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음악가가 아닌 인간 카잘스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소개되어 있지 않다. 바흐 악보와 관련된 에피소드, 프랑코 독재정권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 정도만이 단편적으로 흘러나올 뿐이다.
이 책은 카잘스의 자서전이 아니다. 엮은이는 애초 특정한 질문 주제를 정해놓고 이에 대한 카잘스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구성하려고 하였으나 최종 단계에서 오로지 카잘스 자신의 목소리만 부각시키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 하에 구술 형식으로 변경하였다. 따라서 이 책은 ‘카잘스의 초상화’이되, 카잘스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와 판단에 따른 주제가 아닌 엮은이의 의도가 반영된 초상화로 이해해야 한다. 이 점에서 부분적 한계는 있지만 그의 육성으로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이므로 자서전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카잘스는 확실히 특출한 재능을 지녔다. 어린 나이에 귀족과 왕족의 전폭적 성원과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그만의 천재적 재능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파리에서 잠시 고생을 한 시기를 제외하면 그에게는 오직 탄탄한 성공 가도만이 앞날에 드리워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천재의 오만함과 경박함 대신 소박함과 겸허함만이 묻어나온다. 삶과 자신을 진실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 만이 품을 수 있는 성품이다.
카잘스의 인생에 짙은 암운을 드리운 것이 스페인 내전이다. 역설적으로 스페인 내전을 통해 카잘스는 단순한 예술가에서 세계사적인 인물로 거듭났다.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가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쇼 정권의 지원을 받아 민주적 공화정을 세우고 발전시켜 나가던 민간 정부를 무너뜨리고 수십 년간 독재정권을 수립한 계기가 되었다. 이때 합법적 스페인 정부는 서방 국가의 지원을 호소했지만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수년 간 처절한 투쟁을 벌이다 마침내 전복되고 만다. 이 전쟁은 무솔리니의 에티오피아 침공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을 촉발하는 단초가 되었다.
사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어보았지만 그 참혹함과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인식되지 않았다. 서가 한 구석에 꽂혀있는 <스페인 내전>은 언제 읽게 될지 기약없는 상황에서 카잘스의 생생한 증언은 우리에게 무엇이 정의이며, 인간의 기본 가치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 것인가? 권력 앞에 인간성이란 존재하는가 등의 원초적 질문을 반복하게 만든다. 인간 카잘스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스페인 내전에 대해 카잘스의 토로는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만큼 깊은 울림을 지닌다.
카잘스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녹음한 연도는 1936년부터 1939년까지에 해당한다. 더 일찍 음반을 만들 수도 있었던 그가 하필 60대에 접어들어서야 녹음을 했던 연유가 궁금했다. 좀 더 음악적 해석의 깊이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막연하게 추론들 하였다. 이 책이 그에 대한 명시적 답변을 주지는 않지만 그럴듯한 해석은 가능하다. 그의 녹음 시기는 스페인 내전과 정확히 겹친다. 내전의 치열함과 참혹성을 목도한 카잘스는 혹시 자신의 앞날이 잘못될 경우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수십 년간 갈고 닦은 음악을 후세에 남기지 못하는 것, 그것은 크나큰 죄악이다. 또 하나 현실적인 이유로 내전 세력과 맞서기 위한 공화국 정부의 빈약한 재정으로 사회의 많은 부문이 지원이 끊어진 채 방치되고 있을 때 카잘스에게는 이를 돕기 위한 금전적 고려가 매우 필요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카잘스의 바흐 음반을 들을 때 파이프 담배연기 뒤에 드리워진 짙은 전쟁의 깊은 영혼의 슬픔을 동시에 헤아려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의 음악이 유달리 치열한 것은 여기에 기인하기 때문일 것이다.
카잘스는 만년에 첼로 연주보다는 지휘를 더 즐겼다. 노년이 될수록 악기 연주가 무리가 되니 자연스레 지휘에 관심을 기울이는 연주자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런데 이 책에서 카잘스는 자신이 처음부터 지휘를 더 선호하였음을 증언한다.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독주를 펼치는 것에 심적 부담을 느끼고 있었음을. 그리고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교감을 주고받으며 함께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묘미를. 개인적으로 카잘스의 지휘 음반에 편견을 품고 있어 가까이 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카잘스의 개인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노년에 수십 년 연하의 여제자와 결혼하였다는 점이다. 팔순 노인에게 결혼과 아내는 젊은이와는 다른 의미를 지닐 것이다. 그에게는 일상사를 같이할 동반자가 필요하였던 것이며, 더구나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의 고향 출신이며 유사한 외모를 지녔음도 상승 작용을 더했다.
예술가 카잘스에 앞서 진실한 인간 카잘스가 존재한다. 카잘스는 이 점을 한 치도 잊지 않았다. 이것이 그가 프랑코와 나치의 생명의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고 투쟁하였으며 후에 프랑코 독재정권을 수립한 국가들을 용서하지 않았던 바탕이었다. 그는 음악가에게 있어 음악과 삶의 태도는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음악의 의의는 자체보다 더 큰 어떤 목표에 봉사하고 인간성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