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이야기 - 양장본
이형식 엮음 / 궁리 / 2001년 8월
평점 :
품절


이 작품은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에 걸쳐 쓰여진 여우 르나르를 주인공으로 하는 우화집이다. 옮긴이는 총 27편 중 일부 중복되는 부분을 제외한 21편을 최대한 원전에 충실하게 옮기고 있다. 옮긴이는 “간혹 듣기에 민망스러운 어휘나 표현을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하는데 이런 태도는 칭찬받을 만하다. 이 우화집은 프랑스 민중에게서 태어나 민중의 손으로 보태지고 다듬어져 오늘에 전승된 것이다. 따라서 품위 운운하면서 민중적 요소를 제거해 버린다면 작품에 내재된 원초적 생명력은 이미 죽어버린 거나 진배없다.

 

주인공은 여우 르나르다. 르나르의 맞수인 동시에 숙적으로 늑대 이장그랭이 등장하며, 그의 아내는 에르상이다. 여기에 황제인 사자 노블과 황후 휘에르가 무게감을 더한다. 그 외 각종 동물들이 의인화되어 나오며, 주변 인간들도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일단 우화인 만큼 의인화를 통하여 무엇인가를 풍자하고 있음을 예상할 수 있는데, 작품 전체를 통해 보건대 풍자의 범위와 폭이 매우 광범위함을 알 수 있다. 위로는 황제로부터 아래로는 시골 촌부에 이르기까지, 당대를 지배하던 종교와 관련해서도 종교의식과 수도사들을 신랄하게 까발린다. 그렇다고 르나르가 매우 사회적 이슈에만 민감한 것은 아니다. 인간 자신과 성(性)에 대하여 숨기거나 거리낌 없이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음도 자못 흥미롭다. 읽는 이에 따라서는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나 요즘도 사람들은 음담패설을 즐기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을 섣불리 비난하거나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인간 세상에서 성(性)은 중요한 만큼이나 영원한 호기심의 근원이 아니겠는가.

 

르나르나 이장그랭의 일과는 배고픔에 시달려 먹이 구하기에 나서는데서 시작한다. 이는 비단 동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니, 당대 민중의 삶이 넉넉하지 못하여 기아를 면하는 것이 그네들의 지상과제임을 반영하고 있음이다.

 

다년간에 걸쳐 여러 작가들이 쓴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이기에 등장인물과 주요 배경을 제외하면 사건과 인물의 관계는 중구난방으로 체계가 부족하다. 이장그랭은 르나르의 삼촌이었다가 이웃지간에서 숙적으로 관계가 바뀐다. 어느 순간에는 르나르와 합세하여 황제 노블에 대항하기도 하는 등 변환 자재하다. 곰 브렁처럼 앞에서 죽었는데 뒤의 일화에서는 여전히 살아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단일 작가에 의한 체계적인 작품과 같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여우 르나르의 성격과 행동이 작품 이해의 핵심으로 생각된다. 그는 작중에서 한결같이 간악한 사기꾼으로 지칭된다. 그의 악명은 동물 사회 및 인간 사회에서도 자자할 정도이어서 그에게 원한을 품은 이들이 한둘이 아닐 지경이다. 한편 그는 궁정예법에 밝고 황제 노블에 대한 지극한 충성을 지닌 것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황제의 명을 거부하고 황후와 상관하며 후에는 황제에 대항하기도 하는 등 그는 반체제적 성향이 농후한 인물이다.

 

악인적 요소와 반체제적 성격은 우화의 대명사인 <이솝 우화>와는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는 것으로서, 이른바 피카레스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악한소설의 원형에 흡사하다. 르나르가 황제가 하사한 순례용품을 황제와 일행들에게 던지며 야유를 퍼붓는 장면(‘다시 심판대에 선 르나르’)은 불손함이란 면에서 가히 압권이라고 할 것이다.

 

르나르가 간만에 착한 일을 하려다가 되려 곤욕을 치르는 장면(‘르나르와 브렁, 그리고 농사꾼 리예따르’)에서 언약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거나, 수도회 및 수도사에 대한 비판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장면(‘꼬리로 낚시질하는 늑대’와 ‘고해신부를 삼켜버린 르나르’) 등은 당대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를 여실히 드러낸다.

 

르나르의 악행과 함께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다른 축은 르나르의 여성 편력이다. 르나르는 이장브랭의 아내 에르상과 교접을 하였으며, 후에는 휘에르 황후와도 은밀한 관계를 지속하고 아예 스스로가 황제가 되어 당당하게 결혼도 한다. 르나르의 성적 방탕을 늑대는 황제에게 고발하나 황제는 오히려 어떤 남편이나 오쟁이 진다고 하며 이를 가볍게 넘긴다. 기독교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중세에서 암암리에 자행되던 성적 타락이 일상화되어 더 이상 시빗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임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민중 작가들은 우스갯소리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벼운 동물 우화의 형태로 당대 개인과 사회, 종교적 현실을 풍자하고 표면에 드러내고 있다. 시덥잖은 동물 이야기로 치부하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여우 르나르가 활약하던 시절과 작금의 때와 무슨 큰 차이가 있는지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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