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사랑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20
막스 뮐러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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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간 사랑의 본질과 관련한 주제는 인류 역사와 궤를 나란히 한다. 진부한 듯 하지만 싫증을 유발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생명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생명체로서 생존과 번식에 사랑은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제각각이다. 누구나 자신의 체험을 반추하며 사랑의 의미를 곱씹는다. 체험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가슴 속에 품은 이상화된 사랑의 모습을 열렬히 간구한다. 이 작품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사랑의 모습 역시 작가 개인의 시각과 관념에서 형상화된 양태이다.

 

무수한 모방을 이끌어냈던 젊은 베르테르의 사랑은 비극적이다. 뜨겁고 격렬하여 목숨마저 무가치하게 만들 정도의 폭풍 같은 사랑. 많은 소설가와 시인들이 제재로 다루었고 찬미해마지 않았던. 작가는 이를 거부한다. 순수하고 완전한 사랑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그것은 이미 순수하고 완전한, 기쁨에 충만한 어린이의 사랑은 아니다. 그것은 두려움과 궁핍이 섞인 사랑-작열하는 불꽃이요, 타오르는 정열일 뿐이다. 달아오른 모래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스스로를 소모하는 사랑-갈망하는 사랑이지 헌신하는 사랑이 아니다. 나의 것이 되어달라고 요구하는 사랑이지 너의 것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본위의, 의혹이 뒤섞인 사랑이다! 이것이 바로 시인들이 노래하며 젊은 남녀들이 믿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의 실체다. (P.27)

 

그러면 작가가 생각하는 참된 사랑의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반문에 이 소설로 응수한다. 이 책은 소설화한 사랑학 개론이자 시화(詩化)된 산문이다. 단순한 줄거리와 구성은 글의 힘과 문체로 정면 승부를 보겠다는 작가의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기기묘묘하고 이채로운 풍경에 대한 열광은 찰나적이며 비반복적이다. 한적한 시골길의 돌담 위에 자리 잡은 이름 모를 들꽃의 질박한 아름다움이 차라리 나그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플라토닉한 사랑은 예찬보다는 조소에 가깝다. 젊은 남녀의 사랑은 정신과 육체의 결합을 통해 완성된다. 그들의 결합이 법률적으로 인정되면 곧 결혼이다. 시행착오는 있을망정 사랑은 결국 결혼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자연적이면서도 세속화된 사랑의 외양이다. 작가 역시 이를 긍정한다.

 

, 육체 없이도 정신이 존재할 수 있다는 듯이 정신을 들먹이지 마라! 완전한 현존, 완전한 의식, 완전한 기쁨이란 오로지 정신과 육체가 하나인 곳에만 있을 수 있다......실재하는 삶이란 어디에서든 육체적, 정신적 삶이요, 실재하는 향유란 어디에서든 육체적, 정신적 향유다. 또한 실재하는 만남이란 어디에서든 육체적, 정신적 만남이다. (P.142~143)

 

주인공과 마리아의 사랑은 순수하지만 세속적 잣대에 익숙한 우리의 시선으로는 불순하다. 간계와 음모가 숨어 있고 순진을 기만하는 속임의 가면을 쓴. 두 사람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세상은 고귀한 사랑의 가치를 믿지 않는다.

 

두 사람의 사랑은 운명적이다. 그들은 단번에 상대방의 의미를 깨닫는다. 여주인공의 이름 마리아는 상징적이다. 이름 자체에서 순수함과 고결함을 배어나와 여느 사랑과 같을 수 없음을 암시한다. 그들은 평범한 연인이 될 수 없고 부부도 될 수 없다. 사회적 신분의 차이와 마리아의 불치병. 통념적 사랑의 수순을 밟아갈 수 없는 처지. 사랑의 기쁨을 누리기에도 힘겨운 육체적 쇠약과 멀지 않은 나날.

 

여기서 두 사람의 사랑을 좀 더 공감해 보련다.

 

그녀를 본 첫 순간에 나는 그녀의 전부를, 그녀의 내부에 감춰진 모든 것을 알아보았다. 우리는 인사를 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인식했던 것이다. (P.62)

 

나의 소유는 아니지만 당연히 나의 것이어야 하며, 나의 것이고자 원하는 존재임을. 내가 나 자신처럼 믿을 수 있는 존재, 나와 동떨어져 있지만 나 자신보다 더 가까운 존재, 그것이 없으면 나의 생명은 이미 생명이 아니며 나의 죽음조차 이미 죽음이 아닌 존재, 그것이 없으면 내 가엾은 현존이 한숨처럼 허공으로 사라지고 말 그 존재 (P.143)

 

그녀를 다시 못 만난다니? 나는 진정 그녀 곁에 있을 때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조용히 있을 테다. 그녀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고, 그녀가 잠들어 꿈을 꿀 때 가만히 창가에 서 있을 테다. 그런데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고? 작별 인사조차 할 수 없단 말인가? 그녀는 알 리가 없다. 내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다. , 하긴 나도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 거다. 나는 그녀를 탐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는다. 실로 그녀 곁에 있을 때처럼 내 심장이 평온히 뛰는 적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그녀가 곁에 있음을 느끼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그녀의 영혼을 호흡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P.91)

 

이처럼 내 마음이 깨끗해진 순간에 있는 그대로 내 온 마음의 사랑을 고백하게 해주십시오. 우리가 초지상적인 것을 이처럼 가까이 절감하고 있는 지금, 우리를 다시는 갈라놓지 않도록 영혼의 약속을 맺읍시다. 사랑이 어떤 것이든 간에, 마리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느끼고 있습니다. 마리아 당신은 나의 것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나는 당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P.129)

 

양자의 사랑이 흠 없이 순수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으련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들 역시 세속적 사랑의 순서를 따라갔을 것이다. 사랑고백의 대사와 뒤이은 키스는 남들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사랑의 발현과 인정, 고백에 이르는 일련의 감정의 흐름은 자체로 더없이 순수하였다.

 

마리아는 기쁨과 행복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자신의 짧은 생에 이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해 준 경험은 일찍이 없었으므로.

 

마리아는 묻는다.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

주인공이 대답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P.151)

 

이 이상 완전한 대답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작가는 작품의 사상과 감성을 심화하고 구성의 단조로움을 깨기 위하여 적절한 인용을 비중 있게 삽입하고 있다. 작자미상의 <독일 신학>에 대한 논의가 그러하며, 매튜 아널드의 <파묻힌 생명>(P.80~85)과 워즈워스의 <산지의 소녀>(P.115~119)이라는 장시도 흥미롭다.

 

사랑이란 만인의 심장을 타고 흐르는 대양이 아닌가. 그래서 누구든 저마다 그것을 자신의 사랑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온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맥박인 것이다. (P.114)

 

의사는 주인공에게 당부한다. 마리아와의 사랑을 일개인적 체험으로 축소하지 말고, 이루지 못한 사랑을 기반으로 전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하고 승화시킬 것을, 그리하여 보다 큰 차원에서 사랑을 이루어낼 것을. 표제의 독일인을 지역적으로 국한해서는 안 되는 연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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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세상의 아름다움 태학산문선 105
정약용 지음, 박무영 옮김 / 태학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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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구성을 먼저 언급한다. 판형치고는 300쪽에 가까운 제법 볼륨감이 느껴진다. 다만 227쪽부터는 한문 원본이다. 한문을 애호하는 독자라면 환영하겠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관심 영역 밖이다. 결국 200쪽을 살짝 넘는 아담한 분량인 셈이다. 앞부분에 30쪽에 달하는 작가 해설이 상세하다. 각 글마다 친절한 작품 해설도 덧붙여 있으니 다산 정약용의 산문을 알리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다산은 조선 후기의 거인이다. 그의 장대한 학문세계에 기죽기 마련이지만 여기에 실린 글들을 읽다 보면 그도 새삼 평범한 인간이었음을 알게 되며 그의 희로애락에 공감하게 된다. 청년기에서 노년기에 이르는 전 생애를 포괄하는 글들은 명승 유람의 기행문에서 동병상련의 형에게 보내는 서신, 죽은 아이들을 기리는 글, 아들들을 훈계하고 당부하는 글 등 다양한 성격을 보여준다. 이는 옮긴이가 논설문을 배제하고 다산의 인간적 면모를 드러내는 서정적 글 위주로 선별한 취지에 따른 결과다.

 

1. <적벽, 물염정><서석산 유람기>, <곡산 북쪽의 산수>는 기행문에 해당한다. 전자를 통해 화순 적벽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고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다. 서석산은 오늘날의 무등산을 지칭한다. 여기서 다산의 감상은 단순히 풍경 자체에 대한 감흥을 뛰어넘는다.

 

조공은 이 산이 다른 모든 산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홀로 알아보았으니, 그 산과 사람이 모두 위대하다고 하겠다. (P.45)

 

<금강산에 가는 까닭>에서는 우리가 자연을 애호함을 마음을 기르는 것으로 인식하여 그 가치와 중요성을 십분 강조한다.

 

마음을 기르는 것은 설령 탐닉하며 돌아 나올 줄 모르더라도 군자는 탐욕스럽다고 하지 않는다. (P.55)

 

2. 탄탄대로를 걷던 그의 관로는 정조의 죽음과 함께 끝나고, 서학 세력으로 몰려 가문이 몰락하고 그는 유배를 떠나게 됨은 대체로 알려진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그가 많은 사색과 깊은 고뇌를 거듭했음은 당연하다. 자신의 비참한 현재 처지와 알 수 없는 앞날의 불안감 등은 새삼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다.

 

대체로 천하만물이 모두 지킬 필요가 없는데, 오직 만은 지켜야 한다......유독 이른바 라는 것은 그 성질이 달아나길 잘하며 들고남이 무상하다......나는 허술하게 간직하였다가 를 잃어버린 자다. (P.94~95, <나를 지키는 집>)

 

망설이기를 겨울에 시내를 건너듯, 겁내기를 사방 이웃을 두려워하듯 한다. (P.87, <겨울에 시내를 건너듯>)

 

윗 대목에서는 그의 또 다른 유명한 호인 여유당의 출처와 의미를 알게 해주는데, 사방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그의 처참한 심경을 그대로 드러낸다.

 

지금 천하가 온통 다 떠다닙니다......생각해보면, 떠다닌다는 것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P.109~111)

 

이 책의 표제이기도 한 <뜬세상의 아름다움>은 나산처사의 추상적인 떠다니는 삶을 구상으로서의 뜬세상으로 변용한다. 일종의 언어유희로 나산처사를 희롱하는 듯 하지만 실은 그에 동의를 하면서 뜬세상의 답답함을 표출하고 있다. 굴원의 고사를 상기시키는 듯 한 뉘앙스가 가슴에 스며든다.

 

3. 다산이 천주교도인지 아닌지는 명확하게 드러난 게 없다고 한다. 나는 여기에 수록된 글로써 그가 천주교도가 아님을 믿고 싶다. 그는 현세주의자 내지 현실주의자다. 그는 피안을 중시하지 않는다.

 

이미 가버린 것은 뒤쫓을 수 없고 앞으로 올 일은 기약할 수 없으니, 하늘 아래 지금 누리고 있는 처지처럼 즐거운 것이 없다. (P.67, <지금 여기서>)

 

그가 천주교도였다면 자식들에게 보낸 글에서 아래와 같은 훈계는 결단코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서학을 믿지 않았음을 처절하게 부정하였다.

 

사대부의 마음이란 비 갠 뒤의 바람이나 달과 같이 털끝만큼도 가리워진 곳이 없어야 한다. 하늘과 인간에게 부끄러울 일은 칼로 끊은 듯 범하지 말아라. (P.204, <입을 속이는 방법 가훈>)

 

4. 사상가 다산이 아닌 인간 다산의 면모는 그가 죽은 아이들을 위해 쓴 여러 편의 묘지명에서 우선 확인할 수 있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당대에 천연두와 홍역 등의 질병으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그들을 잊지 못하고 삶의 흔적을 기록으로 남기는 수고와 배려를 아끼지 않은 이가 또 누가 있겠는가? 다산의 애틋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아아, 내가 하늘에 죄를 지어 이처럼 잔혹한 일을 당하는 것이니, 어찌 하겠는가. (P.126, <소라껍질 두 개>)

 

형 정약전의 죽은 아들의 양자를 들이는 과정에서 벌어진 집안 내 갈등도 원칙과 예법보다 인정을 우선시하는 다산의 변모된 모습을 보여준다.

 

옛 경전을 고지식하게 지키느라고 화기를 상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P.153, <예법과 인정 형님께 4>)

 

다산의 학문적 동지이자 정신적 의지자인 형 정약전의 죽음은 그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형의 뛰어난 인품과 학식을 세상은 물론 가족들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지음(知音)을 잃은 자신의 슬픔이 <나무나 돌도 눈물을 흘리는데>에서 절절히 드러난다. 앞서 정약전의 건강을 염려하여 개고기 요리법도 적어 보낸 다산이었지만, 오히려 다산의 참혹한 건강 상태가 두드러진다. 이런 처지를 무릅쓰고 그는 거작들을 완성해 냈던 것이다.

 

중풍은 병근이 이미 깊어져서 입가에는 항상 맑은 침이 흐르고, 왼쪽 다리에는 늘 마비증세가 느껴집니다. 머리 위에는 두미협에서 얼음 낚시 하는 늙은이들의 솜 모자가 늘 얹혀 있습니다. 게다가 근래에는 혀도 굳고 말도 엇갈립니다. 살 날이 길지 않음을 스스로도 알겠습니다. (P.145, <꽃 피자 바람이 부니 형님께 2>)

 

5. 유배 생활이 장기에 접어들고 사면에 포함되지 못함에 따라 다산은 귀향의 마음을 서서히 놓는다. <뜬세상의 아름다움><은자의 거처>를 보면 다산이 자신의 유배지를 이모저모 아담하게 가꾸었음을 알게 하며, 그가 꿈꾸는 은자가 머물만한 거처의 모습과 요건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였는데도 끝내 돌아갈 수 없다면 이것도 운명인 것이다. (P.211, <세상의 두 가지 저울 연에게>)

 

하지만 제아무리 체념하고 이곳의 생활을 미화하고 포장하지만 인간인 이상 어찌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마음 속 계산 형님께 6>에서 대사면에 포함되지 못한 서운함을 여기가 낫다며 역설적으로 표현하지만, 돌아가고 싶은 못나고 약한 마음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다.

 

6. 다산이 유배지에서 쓴 무수한 글은 자신의 두 아들을 위한 것이다. 졸지에 몰락한 집안, 아버지마저 죄명을 쓰고 머나먼 타지에서 귀양살이하는 형편에 놓인 두 아들. 그는 아들들이 올바로 자라지 못할까 노심초사한다. 엄격하게 훈계하고 때로는 당부와 애원도 마다하지 않는 다산의 부성애가 너무나 사실적이다.

 

내가 저술에 전념하는 것은 눈앞의 근심을 잊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남의 아비가 되어서 이처럼 누를 끼치고 있는 것이 부끄러워 이로써 속죄하려는 것이다. (P.166, <남의 아비가 되어>)

 

내 책이 전해지지 않는다면 후세의 사람들은 오로지 사헌부에서 올린 장계와 심문 기록으로만 나를 판단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겠느냐? 너희들은 반드시 여기까지 생각해서 분발하여 학문에 힘써라. (P.172, <자포자기하지 말아라 아이들에게>)

 

그는 자식들을 통해 자신의 글이 세상과 후대에 전해져 자신이 진실로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올바로 평가받고 싶어 하였다.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과 자식들이 세상에 당당하게 설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다산의 글을 읽으며 새삼 그의 인간적 면모에 주목하게 된다. 자신의 약점과 단점을 솔직히 시인하며 더 나은 세상, 올바로 선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처지와 애환에 등 돌리지 않는 다산. 사상가를 넘어서 인간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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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의 트럼펫 - 지혜가 자라는 책꽂이 1 지혜가 자라는 책꽂이 1
엘윈 브룩스 화이트 지음, 프레드 마르셀리노 그림, 윤여숙 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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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리틀>, <샬롯의 거미줄>, 그리고 이 작품. 공통점은 동일한 작가가 쓴 동화라는 것과 모두 동물이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동화라는 장르에는 인간보다 동물을 전면에 내세우는 게 적합하다고 생각한 때문일까. 이 책의 주인공은 루이라는 이름의 백조다. 트럼펫 백조라는 종류인데, 우리말로는 울음고니라고 한다. 우는 소리가 트럼펫 소리 같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란다.

 

우는 소리로 유명한데 언어장애로 소리를 내지 못하는 백조가 있다면 참으로 난감할 것이다. 루이가 바로 그러하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며, 의사소통도 어렵게 되어 사회생활이 여러모로 힘들게 되기 마련이다. 우여곡절 끝에 학교에 가서 글자를 깨우치지만 인간에게는 유효해도 백조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책은 샘이 어느 봄날 아빠와 캐나다의 숲지대에서 캠핑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고즈넉하고 인적조차 드문 깊은 들판. 이곳에 남쪽에서 날아온 트럼펫 백조 부부가 둥지를 튼다. 평화로움과 여유로움이 공존하는 문장이 독자의 인내심을 시험하려는 찰나 우연한 계기로 샘과 트럼펫 백조 부부는 친구 사이가 된다. 훗날 태어난 새끼 백조 루이도. 이 작품은 루이와 샘의 깊은 우정이 끝까지 이어지고, 샘의 도움으로 루이는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게 된다.

 

아빠 백조가 훔쳐온 트럼펫으로 소리를 내지만 한편으로 빚을 갚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게 된 루이. 그는 샘의 도움으로 온타리오의 청소년 캠프, 보스턴의 공원 호수, 필라델피아의 나이트클럽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며 돈을 저축한다. 이 대목에서 인간과 백조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을 작가는 천연덕스럽게 기술한다. 처음엔 어리둥절하고 의구심을 표하지만 금방 인간 사이의 관계처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한다. 나아가 인간의 (돈을 향한) 탐욕도 말미에 슬쩍 보여주면서 백조의 정직함과 대비시켜 부끄러움을 유발케 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암컷 백조 세레나와 재회하여 사랑과 행복을 성취하고, 열심히 모은 돈으로 아빠 백조는 떳떳하게 빚을 갚으며 모두가 만족스러운 결말로 이어지는 것은 동화의 전형적 구성이다. 또 다른 동화의 특징인 우연성을 작가는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주요 대목마다 의존하고 있어 단순히 운이 좋다고 하기에는 자연스런 전개와도 다소 어긋난다. 루이가 너무도 쉽게 샘을 발견하는 것, 필라델피아 호수공원에서 폭풍에 휘말려 떨어진 세레나와의 조우 등. 아마도 이 작품의 약점을 꼽으라면 이게 대표적이 아닐까 싶다.

 

작품의 축은 아빠 백조의 부성애, 루이와 샘의 우정, 그리고 루이와 세레나의 사랑이다. 장애를 지닌 아들을 위해 위험과 명예를 무릅쓰고 트럼펫을 훔친 아빠 백조. 유난히 드높은 자부심을 지닌 그로서는 불가피하지만 양심에 생긴 흠집은 회피할 수 없다.

 

밤하늘을 날면서 아빠 백조는 자신의 물음에 스스로 분명하게 대답했다.

그건 내 아들 루이를 사랑하기 때문이지.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 (P.103)

 

루이와 샘의 우정은 각별하다. 샘의 도움으로 루이는 글자를 익혔고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으며 세레나와의 사랑과 자유를 무사히 이루어 낼 수 있었다. 샘은 루이를 통해 자연과 동물에 보다 깊은 이해와 사랑을 품게 되었으며 자신의 진로 방향을 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루이와 세레나의 사랑.

 

루이의 마음은 오로지 아름다운 사랑, 세레나한테만 쏠려 있었다. 오직 세레나만을 위해 그 곡을 연주했던 것이다. (P.196)

 

이제 루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백조였다. 마침내 진짜 트럼펫 백조가 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말하지 못하는 불행과 어려움을 마침내 이겨 낸 것이었다. (P.200)

 

이 작품은 동화를 떠나서 트럼펫 백조의 생태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미국과 캐나다 사이를 오가며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는 방식, 군집으로 어울리며 생활하는 습성, 그리고 사랑과 짝짓기 등이 작품 전반에 세심하게 반영되어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트럼펫 백조에 대한 준 전문가적 식견을 자부할 수 있을 정도다.

 

자유는 정말 멋졌다! 사랑하는 것은 정말 행복했다!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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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뒷모습 태학산문선 401
주자청 지음, 박하정 옮김 / 태학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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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주자청의 이름을 처음 듣게 된 것은 윤오영의 글을 통해서라고 기억한다. 지난세기 초의 중국에서 전개된 소품문학 운동과 함께 인용된 주자청의 글의 평가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과거의 문장은 도덕적이며 군자연하며 추상적인 거대담론 지향적이라면 주자청의 글은 솔직하고 감정에 충실하다.

 

표제작 <아버지의 뒷모습>은 장성한 자식도 안심 못하며, 하나라도 챙겨주고 싶어 하는 부모의 마음과 모습이 코끝을 찡하게 한다. 대개 자식의 반응은 지나친 신경 씀에 부담스러워하고 촌스런 부모의 행동에 성질을 버럭 내게 마련이다. 하지만 훗날 상기하면 그때의 장면이야말로 돌아갈 수 없는 부모의 사랑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다. 풍수지탄이다.

 

,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당시 난 지나치게 똑똑하게 굴었던 같다. (P.84)

 

<죽은 아내에게>는 세상을 뜬 지 3년이 지난 시기에 죽은 아내에 대한 추억을 풀어놓는다. 비슷하게 <내 친구 백채>, <매화후기>, <위악청을 그리며>는 죽은 친구에 대한 회상이다. 풍경과 시절을 다룬 글도 제법 있다. 그 중 <>이 인상적이다. 피천득의 표현을 떠올리게 한다.

 

봄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선한 채 새롭게 성장해 가는 것.

봄은 아리따운 처녀처럼 꽃단장을 하고서 미소지으며 걸어가는 것.

봄은 건강한 청년처럼 무쇠같은 팔뚝과 허리와 다리로 우리를 인도해가는 것. (P.201)

 

주자청이 살다간 시절은 격동과 전화의 시기다. 청 제국이 수명을 다하고 쑨원과 군벌과 열강의 침탈, 그리고 중일전쟁으로 대륙 전체가 몸살을 앓던 때, 일세의 지성인으로서 그의 심경도 결코 편할 리 없다. 봉건의 잔재에 치를 떨며 외세에 무력한 현실에 분개하고 할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시대에 개탄한다.

 

! 7전에 너의 모든 생명을 사들였다. 너희 피와 살이 결국 하찮은 7개의 동전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냐. 생명이 정말 참으로 하잘 것 없구나! 생명이 정말 너무나 싸구려란 말이다! (P.57, <7전짜리 목숨>)

 

내가 당황하고 공포감마저 느낀 것은 오만하게 나오고 유린했던 자가 다른 사람이 아닌 십여 세에 불과한 백인꼬마였기 때문이다. 정말 불과 열 살 안팎의 백인 꼬마였기 때문이다. (P.79, <백인종-하느님의 귀염둥이>

 

진정 자신의 말을 하는 사람은 몇몇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진정한 생활을 하면서 그 생활을 음미하는 사람은 몇몇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반사람들은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들 그렇고 그렇게 살아간다. (P.179, <‘할 말이 없음에 대하여>

 

그럼에도 주자청의 본령은 <여인>, <아하> 그리고 <야경에 노젓는 소리 들리는 진회하>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인>은 친우의 입을 빌려서 작가의 미인론을 전개한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화자는 이상적 여인을 예술적인 여인으로 칭하며, 예술적인 여인의 신체 조건을 허리, 종아리, 어깨 및 얼굴 등 세밀하고 관능적으로 묘사한다. 현대라면 여성론자들의 반감을 살 정도로 솔직하고 대담하다.

 

예술적인 여인의 현실적 구현이 <아하>의 여주인공이다. 화자는 몸종 신분의 아하에게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품지만 내색하지 못한다. 아하의 개가 소식을 접한 화자의 반응은 아하의 이중성에 대한 충격과 더 이상 아하를 그리워할 수 없음에 대한 아쉬움이 상반된 탓이리라.

 

나는 곧 깨달았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그저 멍하니 아제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의 얼굴에서 어렴풋이 아하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 내 무슨 말을 하리오! 운명의 신이 그녀를 영원히 감싸주기를 바랄 뿐이다. (P.123~124)

 

<야경에 노젓는 소리 들리는 진회하>는 수록작 중 가장 긴 글인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글로 손꼽고 싶다. 남경의 옛 영화를 추억하며 한밤에 뱃놀이를 하는데, 다가오는 화려한 조명의 배에 탄 기생과 노랫소리. 유혹과 본능이 체면과 이성과 줄다리기하는 가운데 은밀하고 관능적이며 몽환적인 정서가 전편을 휘감아 아우른다. 황홀하지만 덧없는 한 여름밤의 꿈.

 

주자청은 친구, 아내, 주변 인물 및 사물, 풍경 등 일상을 소재로 하여 담백하게 글쓰기를 한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당연한 게 아니냐는 반문도 있겠지만 백여 년 전 중국 문단에서는 파격적이고 선구적인 글쓰기로 평가받는다.

 

역사적 평가를 차치하더라도 그의 글은 가식의 탈을 벗어던진 지극히 인간적인 현자의 향취가 풍긴다. 온전히 벗은 모습이 누구나 항상 아름다운 법은 아니지만 주자청이라면 안심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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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백 개의 산을 넘어 글누림 비서구문학전집 5
레이나 그란데 지음, 박은영 옮김 / 글누림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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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품격> 중 한 챕터로 이 작가의 사연이 소개되어 급관심이 생겼다. 국내에 이 작품이라도 나와 있어 부분적 실체나마 접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멕시코 출생과 미국 불법이민의 개인사를 겪은 가진 작가가 자신의 체험과 느낌을 고스란히 이 데뷔작에 쏟아놓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

 

가난한 멕시코인들에게 이웃 나라 미국은 저 건너편(El Otro Lado)’이다. 국경만 넘어가면 지긋지긋한 가난을 탈출할 수 있기에 그들은 생사의 위험을 무릅쓰고 월경을 시도한다. 후아나의 아버지도 이 대열에 합류한다, 훗날을 기약하면서. 익숙한 장면이다. 우리도 어려운 시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으며, 동남아인들 역시 이곳에서 마찬가지의 기대를 품는다.

 

아버지로부터의 소식이 전해지지 않으며 남겨진 후아나와 엄마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경제적 곤란과 버림을 받았다는 심적 두려움과 배신감. 전자를 견디지 못한 엄마는 돈 엘리아스에게 몸을 허락한다. 심적 불안과 도덕적 비난은 그녀가 임신을 하면서 극도로 격해지며, 돈 엘리아스에게 아기를 빼앗기면서 절정에 달한다.

 

밖에서 엄마는 바위에 대고 접시를 던지기 시작했다. 접시는 하나씩 날아가 산산이 부서졌다.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어떻게?” 엄마는 이렇게 소리치고는 컵을 던졌다. (P.107)

 

후아나는 자신의 행위가 원인이 되었다는 죄책감마저 더해진다. 두 사람의 삶은 서서히 수렁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독실한 신앙심도 희미해지고, 엄마는 알코올중독에 빠졌으며 어린 후아나는 생계를 위해 동분서주한다. 사방엔 그들의 처지를 비웃고 비난하는 이들로 가득하다.

 

후아나는 성인들과 과달루페 성모가 자신들을 위해 곁에 있어주었던 오래전을 기억했다. 그러나 지금, 모든 성상들은 먼지에 덮였고, 꽃잎들은 시든지 오래다. (P.173)

 

이후 후아나의 일생은 미국으로 건너가 아버지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점철된다. 아버지를 찾으려는 후아나의 갈망은 정보와 경비 마련을 위해 창녀 생활마저 감수하도록 만든다. 그 선택의 정당성과 불가피성은 논란이 있겠지만, 아버지 찾기를 절대가치화하는 후아나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버지만 돌아오면 모든 비정상이 정상으로 회복될 것이다. 아버지가 가족들을 정말로 버렸는지, 그랬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뿐. 이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제대로 숨 쉬고 온전한 밤잠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랑조차도.

 

아델리나, 사랑을 위해서조차도 아버지 찾기를 그만둘 수 없는 거냐?”

사랑을 위해서도요.”

사랑은 찾기 힘들어. 그걸 놓쳐서는 안 된다. 네 젊음을 유령을 찾느라 허비하지 말아라.”

저희 아버진 유령이 아니어요. 저는 그를 찾을 거예요.” (P.209)

 

미국에서 아버지 같은 존재였던 돈 에르네스토의 권유에도 그녀는 포기할 수 없다.

 

이 작품은 계급 대립적 구도를 지닌다. 부유한 미국과 가난한 멕시코, 부조리하지만 잘 사는 돈 엘리아스와 정직하지만 못 사는 후아나의 아버지. 그리고 후아나의 엄마를 위협하고 정복하는 돈 엘리아스와 아델리나에 기생하며 착취하는 헤라르도. 헤라르도는 여러 면에서 돈 엘리아스의 판박이다. 차이점이라면 누구는 죽임을 당했고 다른 이는 살인을 했다는 것인데, 대응되는 여인들의 의지와 주체성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다.

 

중간에 삽입된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 토막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일조한다. 버스에서 쫓겨날까 봐 아이의 죽음도 내색하지 못하는 아이엄마. 아이들을 만나려고 월경 일행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는 불법체류로 추방된 여인.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일으킨 교통사고로 아이가 죽었다고 자책하며 무너지는 여인. 대부분의 피해자가 여자라는 점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남성 중심의 엄격한 가부장 체제에서 여성은 종속적, 수동적 지위에 머물 수밖에 없게 되므로. 이에 반발하고 나선 게 페미니즘이다. 이 작품은 엄밀히 여성주의 유형에 속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후아나의 삶은 제아무리 정당화하더라도 아버지의 존재에 매달려 있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실감이 이렇듯 만사를 비정상화시킬 만큼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온당한 것인가. 그녀에게 아버지는 실제를 초월하여 극도로 이상적인 존재로 미화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야 자신의 죄책감이 조금이나마 경감될 수 있고, 자신의 아버지 찾기 노력이 유의미성을 갖게 되니 말이다.

 

후아나의 미국행은 순탄치 않았다. 비용 마련을 위해 티후아나에서 한동안 머물다가 일행과 함께 월경을 감행하며 성공을 목전에 두고 실패하는 대목은 영화의 한 장면과도 극적인 스릴이 넘친다. 후아나는 진정으로 아델리나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후아나는 여느 멕시코 여인들처럼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다.

 

19년 만에 그녀는 아버지를 찾는데 성공한다. 비록 유골이지만, 그 의미는 남다르다. 이제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떳떳함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이것은 아델리나가 엄마에게 주는 선물이 될 것이다.

평화.

그리고 진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들을 버리지 않았다. (P.249)

 

후아나(아델리나)가 자신의 친동생과 상면하게 되는 장면은 감동적인 동시에 감상적이다. 후아나(아델리나)의 입장에서는 비밀이 속 시원하게 밝혀지는 게 나을 수도 있지만, 작중 인물의 말마따나 때로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차라리 후아나(아델리나)와 세바스티안과의 관계처럼 알 듯 모를 듯 여운을 남기는 게 결과적으로 좋았지 않았을까. 친동생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 어떤 남자도 원하지 않았다. 그녀에겐 충분히 많이 있었다. 그녀가 마음속에 머물도록 허용한 유일한 남자는 그녀의 아버지였다. 비록 그가 오직 기억에 불과할 지라도 말이다. (P.122)

 

아델리나가 세바스티안을 만날 때 품은 심정이다. 이때는 단지 아버지의 존재감을 강조한 문장으로 이해되었는데, 후에 아델리나가 되기 전 후아나의 삶을 볼 때 새삼 새롭게 의미가 다가왔다. 그녀는 세바스티안과 정말로 정상적인 삶의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 작품은 구성이 특이하다. 아델리나와 후아나가 각자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종래에는 한 곳에서 만나게 된다. 양자는 이름만큼이나 시기와 지역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그들의 삶 자체도. 그리고 우리는 알게 된다. 작중 진짜 아델리나를 통해 서로가 연계되어 있음을. 이것은 흘러간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당대에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이며 작가가 상당 부분 체험하였기에 생생함은 논픽션 못지않다. 부분적 아쉬움은 있지만 미국-멕시코의 현대 모습을 담고 있어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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