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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뒷모습 ㅣ 태학산문선 401
주자청 지음, 박하정 옮김 / 태학사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주자청의 이름을 처음 듣게 된 것은 윤오영의 글을 통해서라고 기억한다. 지난세기 초의 중국에서 전개된 소품문학 운동과 함께 인용된 주자청의 글의 평가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과거의 문장은 도덕적이며 군자연하며 추상적인 거대담론 지향적이라면 주자청의 글은 솔직하고 감정에 충실하다.
표제작 <아버지의 뒷모습>은 장성한 자식도 안심 못하며, 하나라도 챙겨주고 싶어 하는 부모의 마음과 모습이 코끝을 찡하게 한다. 대개 자식의 반응은 지나친 신경 씀에 부담스러워하고 촌스런 부모의 행동에 성질을 버럭 내게 마련이다. 하지만 훗날 상기하면 그때의 장면이야말로 돌아갈 수 없는 부모의 사랑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다. 풍수지탄이다.
아,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당시 난 지나치게 똑똑하게 굴었던 같다. (P.84)
<죽은 아내에게>는 세상을 뜬 지 3년이 지난 시기에 죽은 아내에 대한 추억을 풀어놓는다. 비슷하게 <내 친구 백채>, <『매화』 후기>, <위악청을 그리며>는 죽은 친구에 대한 회상이다. 풍경과 시절을 다룬 글도 제법 있다. 그 중 <봄>이 인상적이다. 피천득의 표현을 떠올리게 한다.
봄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선한 채 새롭게 성장해 가는 것.
봄은 아리따운 처녀처럼 꽃단장을 하고서 미소지으며 걸어가는 것.
봄은 건강한 청년처럼 무쇠같은 팔뚝과 허리와 다리로 우리를 인도해가는 것. (P.201)
주자청이 살다간 시절은 격동과 전화의 시기다. 청 제국이 수명을 다하고 쑨원과 군벌과 열강의 침탈, 그리고 중일전쟁으로 대륙 전체가 몸살을 앓던 때, 일세의 지성인으로서 그의 심경도 결코 편할 리 없다. 봉건의 잔재에 치를 떨며 외세에 무력한 현실에 분개하고 할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시대에 개탄한다.
아! 7전에 너의 모든 생명을 사들였다. 너희 피와 살이 결국 하찮은 7개의 동전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냐. 생명이 정말 참으로 하잘 것 없구나! 생명이 정말 너무나 싸구려란 말이다! (P.57, <7전짜리 목숨>)
내가 당황하고 공포감마저 느낀 것은 오만하게 나오고 유린했던 자가 다른 사람이 아닌 십여 세에 불과한 ‘백인’ 꼬마였기 때문이다. 정말 불과 열 살 안팎의 백인 ‘꼬마’였기 때문이다. (P.79, <백인종-하느님의 귀염둥이>
진정 자신의 말을 하는 사람은 몇몇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진정한 생활을 하면서 그 생활을 음미하는 사람은 몇몇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반사람들은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들 그렇고 그렇게 살아간다. (P.179, <‘할 말이 없음’에 대하여>
그럼에도 주자청의 본령은 <여인>, <아하> 그리고 <야경에 노젓는 소리 들리는 진회하>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인>은 친우의 입을 빌려서 작가의 미인론을 전개한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화자는 이상적 여인을 예술적인 여인으로 칭하며, 예술적인 여인의 신체 조건을 허리, 종아리, 어깨 및 얼굴 등 세밀하고 관능적으로 묘사한다. 현대라면 여성론자들의 반감을 살 정도로 솔직하고 대담하다.
예술적인 여인의 현실적 구현이 <아하>의 여주인공이다. 화자는 몸종 신분의 아하에게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품지만 내색하지 못한다. 아하의 개가 소식을 접한 화자의 반응은 아하의 이중성에 대한 충격과 더 이상 아하를 그리워할 수 없음에 대한 아쉬움이 상반된 탓이리라.
나는 곧 깨달았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그저 멍하니 아제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의 얼굴에서 어렴풋이 아하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 내 무슨 말을 하리오! 운명의 신이 그녀를 영원히 감싸주기를 바랄 뿐이다. (P.123~124)
<야경에 노젓는 소리 들리는 진회하>는 수록작 중 가장 긴 글인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글로 손꼽고 싶다. 남경의 옛 영화를 추억하며 한밤에 뱃놀이를 하는데, 다가오는 화려한 조명의 배에 탄 기생과 노랫소리. 유혹과 본능이 체면과 이성과 줄다리기하는 가운데 은밀하고 관능적이며 몽환적인 정서가 전편을 휘감아 아우른다. 황홀하지만 덧없는 한 여름밤의 꿈.
주자청은 친구, 아내, 주변 인물 및 사물, 풍경 등 일상을 소재로 하여 담백하게 글쓰기를 한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당연한 게 아니냐는 반문도 있겠지만 백여 년 전 중국 문단에서는 파격적이고 선구적인 글쓰기로 평가받는다.
역사적 평가를 차치하더라도 그의 글은 가식의 탈을 벗어던진 지극히 인간적인 현자의 향취가 풍긴다. 온전히 벗은 모습이 누구나 항상 아름다운 법은 아니지만 주자청이라면 안심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