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3세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2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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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리처드 3세 왕의 비극

 

이 희곡은 연대기적으로 <헨리 6> 삼부작에 이어진다. 헨리 6세를 폐위시키고 동생들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오른 맏형 에드워드 4, 그의 치세도 왕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불안감이 조성된다. 아직 후계를 이은 왕자는 나이 어린데 왕비의 위세를 등에 업은 인척 세력의 전횡으로 기존 중신들과 갈등이 심화한다. 가슴속 야심을 깊이 숨긴 채 은인자중하던 리처드 글로스터는 서서히 야욕을 표면화시키고.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 아닌가? 조선 왕조의 문종과 단종, 그리고 수양대군을 떠오르게 하는 유사한 상황이다. 단종은 보위에 오르지만 수양대군에 의해 폐위되어 비극적 최후를 마치고, 수양대군은 권력을 위해 자신의 형제마저 죽인다. 리처드 글로스터도 마찬가지다. 대망의 달성을 위해 장애물은 철저히 제거한다. 자신의 형인 클래런스, 왕비 세력, 왕자들은 물론 자신의 반대파인 중신들까지. 리처드는 철저한 속임수로 상대를 안심시키며 은밀하게 행동을 한다. 상대는 미처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죽음을 맞거나 위기에 빠진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가 된다. 클래런스도, 헤이스팅스 경도.

 

(클래런스) 그럴 리 없어, 그는 내 불운을 울어 주었고, / 양팔로 날 안아 주었고, 흐느낌으로 맹세했어 / 나의 방면을 위해 애쓰겠노라고 말이다. (P.54, 14)

 

(헤이스팅스 경) 그때 난 탑으로 끌려가는 죄수 신세였지 / 왕비 일당의 사주에 의해, / 하지만 이제, 내 말해 주네만-자네만 알고 있게- / 오늘 그 원수들이 사형을 당하고, / 나는 처지가 그 어느 때보다 더 낫다네. (P.94, 32)

 

자고로 봉건왕조에서 서열 순위가 아닌 자신의 능력으로 권력을 쟁취하고자 하는 이라면 피바람을 모면할 수 없다. 그런 행위가 사회적으로 또한 역사적으로 인정받는 사례는 군주가 된 이가 어떠한 정치 행위를 남기는가에 달려있다. 이 작품에서 리처드 글로스터는 시종일관 부정적 이미지의 표상이다. 신체적으로 기형인데다 마음마저 삐뚤어지고 권력의 위세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그를 보면 셰익스피어의 의도와 실체 중 어디가 본모습에 가까울까 궁금하다. 확실한 건 스스로 천명한 것과 달리 그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리처드 글로스터) 내가 연인 팔자가 못 되고 / 이 아름답고 유창한 나날에 응할 길 없으니, / 난 결심한 거야 악당이 되고 / 요즘 세상의 게으른 오락들을 증오하기로. (P.9, 11)

 

리처드는 무지몽매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때를 기다릴 줄 알았고, 때가 오자 과감하게 행동에 나섰으며, 친구와 적을 판별할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정통성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죽였던 헨리 6세의 왕세자 에드워드의 부인이자 워릭의 딸인 앤 부인을 설득하여 아내로 삼은 까닭은 이를 통해 랭커스터 가와 워릭 가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한 것이리라. 철천지원수였던 리처드에게 증오의 언사를 내뱉던 앤 부인이 서서히 리처드의 말재주에 넘어가면서 반지를 받는 대목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지만 전혀 터무니없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리처드의 설득력은 대단하다.

 

그가 죽은 형 에드워드 4세의 딸, 즉 자신의 조카딸을 아내로 취하고자 애쓴 까닭 또한 요크 가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것이 만약 이루어졌다면 그가 그토록 쉽사리 리치먼드에게 왕위를 빼앗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리처드 왕) (방백) 난 내 형 딸과 결혼을 해야 해, / 그렇지 않으면 내 왕국은 깨지기 쉬운 유리 위에 선 꼴. / 그녀 남동생들을 죽이고, 그런 다음 그녀와 결혼을 한다? / 잘될지 모르지만, 내 손에 / 묻은 피는 죄악이 죄악을 선동할 정도이니. (P.130, 42)

 

전작에서 에드워드 4세는 워릭의 명예를 손상시킨 연유로 위기에 처하고 수년을 더 고생하였다. 리처드가 버킹검 공작을 박대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역시 리치먼드와의 대결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가능성이 있었다. 공통점은 일단 왕좌에 오르자 왕이라는 자리에 눈멀어 자신의 최측근이자 최고 공신을 경시하였다는 점이다. 버킹검의 의견에 곧바로 실망하고 외면하지 않고, 약속했던 권리를 이행하였다면 그는 여전히 리처드의 오른팔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아직 군주의 권력이 월등히 우위에 있는 절대 왕조가 아니라 귀족과 영주의 독자성이 강하게 잔존하던 시기였음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리처드 왕) (방백) 계략이 음흉하고, 머리가 좋은 버킹검은 / 더 이상 이웃이 아니리로다 내 자문에. / 그토록 오랫동안 줄기차게 나와 보조를 맞추던 그가 / 이제 숨 돌릴 짬을 가져야겠다고? , 그러든가. (P.129, 42)

 

(버킹검) 그래 그렇단 말이지? 목숨을 건 내 충성에 대한 보답이 / 이런 경멸? 내 이걸 받으려고 그를 왕으로 만들어 주었나? (P.133, 42)

 

리처드 3세는 모친에게조차 버림받은 인물이다. 어머니 요크 공작부인은 그를 매우 부정적이고 차갑게 대한다. 그의 신체가 기형이므로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적 인식 상 실망할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그의 어머니임에도 그녀는 리처드의 뒤틀린 몸과 마음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감추지 않는다. 모르는 이라면 생모가 아니라 계모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찌 보면 리처드의 성격 파탄은 그의 어머니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생모에게 인간으로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면 누구에게서 동등한 인격적 대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리처드 3세의 비극은 어머니 뱃속에서 배태된 것이다.

 

(요크 공작부인) 피비린 자이므로, 너의 최후 피비릴 것이다. / 치욕이 너의 삶에 동반했고, 네 죽음에 시중들 것이다. (P.147, 44)

 

이 작품에서 유령처럼 출몰하며 작중 인물들을 놀리고 괴롭히며 저주를 퍼붓는 독특한 인물이 있다. 전왕 헨리 6세의 왕비인 마가릿 왕비다. 폐위되어 죽임을 당한 전왕의 부인이 아무 거리낌 없이 궁중에 드나들 수 있다는 설정은 부자연스럽고 역사적 기록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는 그녀에게 일종의 광대와도 같은 역할을 맡기고 저주와 예언을 퍼붓게 함으로써 작중 인물들이 죄책감과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독자는 이를 통해 헨리 6세의 비극이 그대로 끝나지 않고 훗날 가해자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올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마가릿 왕비) 너희 중 누가 나를 보고 떨지 않겠느냐? / 내가 왕비고 너희가 신하라서 절하며 떠는 게 아니라면, / 날 폐위시켰기에, 너희가 역도처럼 몸을 떠는 것이렸다. / (리처드에게) , 고상하신 악당, 어딜 가려구.

(리처드 글로스터) 징그러운 쭈그렁 마녀, 내 눈 앞에서 뭔 짓이냐? (P.35, 13)

 

(마가릿 왕비) 리처드가 아직 살아 있지, 지옥의 검은 염탐꾼, / 그 이유는 단 하나, 지옥의 대리인으로서 영혼을 사들여 / 그리로 보낼 임무 때문에. / 하지만 이제 곧, 이제 곧, / 벌어진다 그의 처참한 아무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죽음이. (P.141, 44)

 

리처드 왕과 리치먼드 세력 간 일대 회전을 앞둔 55장은 리처드의 패전과 죽음이 천명임을 보여준다. 에드워드 세자 유령을 비롯하여 리처드에게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꿈속에서 차례로 등장하여 리처드를 저주하고 리치먼드에 축복을 내리는 장면. 독자는 전투의 결과를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다.

 

이 희곡은 내내 어둡고 우울함으로 가득한 분위기로 일관하다 대단원에서 갑작스레 밝고 희망찬 메시지를 던진다. 리치먼드 백작, 곧 헨리 7세 왕은 약속한 대로 자신과 엘리자베스의 결합을 공식화함으로써 장미전쟁의 상처가 마침내 아물게 되었음을 밝힌다. 랭커스터 가와 요크 가의 적통의 혼인을 통해서. 이는 단순히 두 가문의 사안이 아니다. 이로써 탄생한 왕가는 모든 귀족과 영주의 지지를 받는 명분과 실력을 갖춘 왕조이며 셰익스피어가 모시던 여왕의 선조이므로 당연히 화려하고 당당한 왕조의 개창일 수밖에 없다. 비극은 끝나고 잉글랜드 전체가 기뻐하고 환호하게 될 대도약의 섬돌.

 

(헨리 7세 왕) 무디게 하소서 반역자들의 칼날을, 은총의 주님, / 이 피에 굶주린 나날들을 다시 불러 / 불쌍한 잉글랜드가 피눈물 개울 흘리게 하려는 칼날을. / 그들이 살아서 이 땅의 풍부한 농산물을 맛보게 마소서, / 아름다운 이 땅의 평화에 모반의 상처를 입히려는 그들이. / 이제 내전의 상처는 가셨고 평화가 다시 삽니다. / 그것이 이곳에서 만세를 누리도록, 하나님 아멘하소서. (P.191-192,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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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6세 3부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2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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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요크 공작 리처드와 착한 왕 헨리 6세의 진정한 비극

 

2부에서 장미전쟁의 서막이 시작되었고 요크 공작 편이 승리를 거둔다. 요크 공작은 헨리 왕에게 왕권을 요구하고 헨리 왕은 이를 조건부로 수용한다. 자신의 생전에는 왕위를 인정해 달라는 것. 장미전쟁의 본질적 계기는 결국 왕권의 정통성에 관한 질문이다. 현재 헨리 왕의 선조가 요크 공작의 선조인 과거 왕에게서 왕권을 빼앗았다.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왕권은 헨리 왕에게 있는 게 당연하지만, 그 선조가 왕권을 탈취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헨리 왕은 신하로 남아있었으리라. 이것이 요크가 지적하는 점이며, 헨리 왕의 마음속 한점 의구심인 동시에 엑스터마저 인정하게 만든 논리다.

 

(헨리 왕) (방백)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내 명분은 약해. (P.16, 11)

 

(엑스터) 그의 명분이 옳음이니, 노여움을 거두소서.

(엑스터) (헨리 왕에게) 제 양심은 그가 적법한 왕이라 말합니다. (P.17, 11)

 

마가릿 왕비 일행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녀는 헨리 왕에게 명예보다 목숨을 중시하고 자식의 앞날을 망쳤다며 맹비난을 퍼붓는다. 헨리 왕이 군주라 일개 평민에 지나지 않았다면 그의 선택과 행동은 양심에 따른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이후 그는 신하들에게 노골적으로 무시와 박대를 받는다. 그들이 보기에 헨리의 왕으로서 부족함 때문에 전쟁이 발발하였으니 그를 향한 비난은 클리포드와 같이 일면 정당하다.

 

(클리포드) 헨리, 그대가 왕들처럼 통치했었다면, / 혹은 그대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가 한 대로 하여, / 요크 가문에 여지를 전혀 안 주었다면, (P.72-73, 26)

 

우리는 여기서 고민해봐야 한다. 왕권 다툼에 도덕과 양심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가. 역사는 대체로 이에 부정적이다. 절대권력을 쥐기 위해 천륜과 인륜마저 뒤엎는 사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일비재하다.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승전을 위해서는 정면승부가 상책이 아니다. 온갖 간계와 기만전술을 구사하더라도 이길 수만 있다면 전쟁의 신으로 추앙받는다. 송나라 양공은 인간적으로 훌륭한 인물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군주로서는 나라를 쇠망케 한 인물이다. 오죽하면 송양지인(宋襄之仁)이란 고사성어가 생겼겠는가.

 

권력과 전쟁은 자체로 반인간적이니 평시의 인간성을 기대하며 곤란하다. 요크가 노인 클리포드를 죽인 행위와 클리포드가 어린 러틀랜드를 죽인 행위에서 경중과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너무나 주관적 감정과 판단이 개입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항상 복수를 다짐한다. 이렇게 복수는 맞물리고 악연은 어느 한쪽이 완전히 스러질 때까지 되풀이된다.

 

2부에서도 언급했듯이 높은 분들의 무력 충돌은 권력의 향방과 전혀 무관한 민초들에게는 고통이 될 뿐이다. 전쟁에 필요한 군대와 물자의 공급원으로 집도 재산도, 심지어는 목숨마저 몽땅 잃기 일쑤다. 전쟁의 광기에 휩쓸리면 부자, 부부, 형제, 친척과 친구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전쟁광이나 학살자 역시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25장은 장미전쟁이 일반인들에게 주는 아픔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전장에서 알지 못하는 채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비통함이라니. 이를 지켜보는 헨리 왕의 슬픔과 탄식 또한 못지않다.

 

(헨리 왕) 오 처참한 광경이다! 오 피비린 시대로다! / 사자들이 자기네 굴을 위해 전쟁과 전투를 벌이는 동안, / 불쌍한 순진한 양들이 겪는도다 저들의 적의를. / 울거라, 가여운 사람,내 그대 눈물을 눈물로 지원할 테니, / 그리고 내 가슴과 두 눈을, 내란처럼, / 눈물로 눈멀게 하고, 부서지게 하리로다, 슬픔의 과부하로. (P.68, 25)

 

우리는 그것을 악어의 눈물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적어도 그의 슬픔은 참이니까, 하지만 이런 전쟁을 막을 수 있었던 사람이 바로 헨리 자신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그의 인()은 작은데 그칠 뿐 큰 인()에 나아가지 못하였다. 오직 그는 선조에게 물려받은 군주 자리를 보전하는데 급급하였을 뿐. 그것이 당대 잉글랜드인과 헨리 자신의 비극이다.

 

요크의 사후 승리를 쟁취하고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의 행동을 보면 좋지 않은 역사는 반복됨을 확인하게 된다. 헨리 왕이 마가릿 왕비를 맞아들인 전철을 에드워드 또한 답습하니 프랑스 왕의 처제와 결혼하였더라면 왕위는 공고해지고 평화가 일찍 찾아올 수 있었을 텐데. 과부 그레이 부인으로의 선택으로 그는 워릭의 분노를 유발하고 동생 조지를 떠나게 만든다. 평화는 일순간에 그치고 장미전쟁은 재개한다. 에드워드 왕은 의연하다, 아니 오만하다.

 

삼부작을 통틀어 가장 비극적 인물은 단연 워릭이다. 그는 요크 공작과 아들 에드워드에게 충성을 바친다. 그의 막강한 세력과 무력은 요크 가문이 승리를 거두는 데 제일 큰 역할을 하였다. 에드워드 왕은 그레이 부인과의 결혼이 그에 대한 엄청난 모욕이라는 점을 몰랐을까 아니면 그저 별것 아니라고 오만하게 생각하였을까. 워릭으로서는 대안이 없다, 왕에게 바싹 엎드리든가 아니면 꼿꼿하게 일어서든가.

 

한바탕의 불필요한 피비린내가 진동한 후 전쟁은 최종적으로 막을 내린다. 랭커스터 가문의 주요 인물은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워릭은 물론 헨리 왕과 그의 아들 세자까지도. 요크 가문의 왕조가 시작되었다. 이제 혼란은 그치고 안정이 찾아오고, 어둠이 스러지며 빛이 떠오르게 된 셈이다. 에드워드 왕의 대사처럼.

 

(에드워드 왕) 나는 이제 내 영혼의 기쁨으로 앉아 있소, / 내 조국의 평화와 내 형제의 사랑을 지녔으니. (P.174, 57)

 

독자는 안다. 이것은 에드워드의 헛된 기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것은 어린 헨리, 리치먼드 백작의 머리에 손을 얹는 헨리 왕의 예언이 훗날의 복선인 점과 마찬가지다. 당시 에드워드 왕은 알았을까? 동생 리처드의 마음속에 시커먼 야욕이 그득 차 있고,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악마와도 같이 주저 없이 제거할 거라는 점을 말이다. 기형의 몸에 절름발이인 그는 철저히 자신을 감춘 채 큰형의 곁을 지킨다.

 

(글로스터의 리처드) 난 아니오-(방백) 내 의중은 더 먼 데지. / 난 머문다 에드워드 사랑 아니라, 왕관 때문에. (P.115, 41)

 

이제 평화가 찾아오고 모든 이들이 안정과 기쁨을 희구하는 찰나, 리처드는 다시금 되새긴다. 자신이 앞으로 수행할 악마와도 같은 행위를. 위협은 가까운 곳에서 오기 마련이지만, 대개 보이지 않는 법, 등하불명(燈下不明)처럼. 셰익스피어는 3막부터 지속해서 리처드의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글로스터의 리처드) 헨리와 그의 아들은 갔다, 네가, 클래런스, 다음이지. /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내가 나머지를 처치한다. / 최선이 될 때까지는 악으로 처신하면서. (P.171, 56)

 

<헨리 6> 삼부작은 영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 중 하나인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의 배경과 결과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등장인물 간 은원이 축적되고 첨예하게 엇갈리는 이해관계 속에서 왕위를 향한 맹렬한 추구와 왕권에 대한 맹목적 집착은 새삼 군주의 본질과 권력의 속성에 대해 생각하게끔 한다. 인간의 욕망이 존재하는 한 인간 세상의 다툼과 불화는 영속할 것이며, 혼란 와중에 인간성은 외면받기에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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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6세 2부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2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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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두 명문가 요크와 랭커스터의 다툼 1

 

셰익스피어의 영국 사극 읽기를 시작하면서 두 번째로 고심한 것은 번역본의 선택이었다. 각 작품이 단권으로 되어 있으면서 한 명의 번역자가 사극 전체를 번역한 사례는 전영옥과 김정환만 해당하였다. 전영옥은 이미 여러 작품을 읽어보았으니 상대적으로 덜 읽었고 근래에 번역이 이루어진 김정환을 택하였다.

 

김정환 번역본은 옮긴이가 시인이라는 특징이 있고, 운문과 산문의 형식미, 원문과 번역문의 행 일치 등을 표방한 면에서 고유한 장점이 있다고 하겠다. 다만 지나치게 원문의 형식에 가깝게 하려다 보니 문체가 딱딱 끊어지고 자연스럽지 못한 점은 우리말과 영문의 차이 상 불가피하다. 독자를 고려하여 매끄럽게 할 것이냐 어색하더라도 원문 준수를 중점으로 할 것이냐는 전적으로 운문 번역의 숙명이며, 번역자의 결단이 필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좋아하고 말고의 차이는 있을망정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1부에서 잠재된 갈등은 제2부에 들어와서 수면 위로 떠 오른다. 2부의 부제가 두 명문가 요크와 랭커스터의 다툼이라고 명명된 까닭이 이를 입증한다. 1부에서 영국이 프랑스 영토를 상실한 결과를 탈봇과 잔다르크의 죽음으로 보여주었다. 2부의 영웅은 단연코 호국경 글로스터 공작이다.

 

(글로스터) , 이렇게 헨리 왕은 목다리를 버리는도다 / 그의 다리가 몸을 버텨 줄 만큼 튼튼해지기도 전에. / 이렇게 양치기가 패퇴합니다 폐하 곁으로부터, / 그리고 늑대를 으러렁대나이다 폐하를 먼저 뜯겠다고. / , 나의 우려가 거짓이기를, , 정말 그러기를! / 왜냐면, 착하신 헨리 왕, 폐하의 몰락을 제가 우려하나이다. (P.82, 31)

 

헨리 왕을 제외한 모든 귀족이 그를 경계하고 싫어하였는데, 이는 당연한 것이 그가 호국경에 있음으로 해서 자신들이 마음대로 행동하는데 제약을 받아서이다. 그가 21장에서 심칵스의 거짓 소경 흉내의 진실을 파헤치는 대목을 보면 그의 현명한 일 처리를 알 수 있다. 마가릿 왕비 또한 그가 자신과 왕의 결혼에 반대하였고, 그의 지위가 군주와 비등할 정도로 큰 것에 불만을 품었다. 그로서는 참으로 우군이 없었던 게 부인조차도 야심에 사로잡혀 적대세력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몰락을 자초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글로스터의 몰락은 헨리 왕의 파멸로 이어진다. 그것은 글로스터의 탄식과도 일맥상통하듯이 그가 헨리 왕의 왕권 버팀목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몰락하자 더는 헨리 왕을 지켜줄 존재가 없어졌고 귀족들은 대놓고 자신들의 이권 쟁탈에 매진하고 군주의 권위를 무시하게 되었다. 야심을 감추었던 요크 공작은 마음 놓고 자신의 발톱을 날카롭게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요크) 가겠소, 추기경,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서포크) 아니, 우리의 권한은 그분의 동의고, / 우리가 정하면 그분이 승인하시는 거죠. / 그러니, 고결한 요크, 이 임무를 맡으시오. (P.87, 31)

 

1부에서 글로스터에 대한 가치 판단을 유보하였는데, 2부에서 그에 대한 극중 인물(귀족들과 왕비를 제외하고)의 평은 전적으로 호의적이다. 이것은 일부 중립적 귀족과 공작 자신의 발언, 그리고 일반 백성들의 인식에서 공통으로 확인할 수 있다.

 

(솔즈베리) 내가 볼 때 언제나 글로스터 공작 험프리는 / 고결한 신사처럼 행동하더군. (P.18, 11)

 

(글로스터) 언제든 내가 나쁜 생각을 / 나의 왕이자 조카, 미덕이 넘치는 헨리에게 품게 된다면 / 그것이 나의 마지막 숨 되리니 이 필멸 세상에서! (P.23, 12)

 

(글로스터) 이 모든 것들도 나를 해코지할 수는 없소 / 내 충직하고, 진실되고, 죄 없는 한. (P.69, 24)

 

(해적 우두머리) 훌륭하신 험프리 공작의 죽음에 미소 짓던 네놈은 (P.117, 41)

 

체제 밖을 떠도는 해적조차도 글로스터 공작을 높이 평가하는 마당에, 음해를 받고 호국경의 지위를 내려놓고, 끝내는 살해당하는 그의 고결하고 진실한 충정에 마음 한쪽이 뭉클하지 않다면 어찌 진정한 독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호국경의 상징인 직장을 왕의 요구에 따라 내려놓을 때조차도 아무런 사심 없이 기꺼움을 나타내는 충심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글로스터는 극 중에서 유일하게 순수한 인물이다. 이런 그가 비극적 최후를 마치게 된다니...

 

글로스터의 죽음과 대비되는 다른 죽음은 서포크 공작이다. 그는 마가릿을 헨리 왕과 결혼시키는 일등 공신이 되면서 실권을 장악하려고 한다. 자신을 가로막는 글로스터를 파멸시키기 위해 함정을 파서 그의 부인을 빠뜨리고 끝내 글로스터 자신을 제거하는 데 앞장선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왕비의 연인으로서 부정한 애정을 지속한다. 그에 대한 세인의 평가가 좋을 리 없다. 글로스터 살인 혐의로 추방당한 그가 해적에게 잡히자 해적 우두머리가 내뱉은 말은 좋은 본보기다. 해적조차도 경멸하는 존재이자 일반 백성들의 여론 반영이리라.

 

(해적 우두머리) 그래, 이 하수구, 웅덩이, 시궁창 같은, 네 추행과 오물이 / 잉글랜드의 은빛 식수원을 더럽히니, / 이제 내가 둑으로 막아 주마 크게 벌린 네놈 아가리를, / 왕국의 보물을 집어삼킨 죄로 말이다. / 왕비와 입 맞추던 네 입술 땅바닥을 쓸게 될 것이고, / 훌륭하신 험프리 공작의 죽음에 미소 짓던 네놈은 / 무정한 바람에 대고 헛되이 씨익 웃겠지, / 바람은 네놈을 경멸하며 네놈한테 다시 쉿쉿거리겠고. (P.117, 41)

 

마가릿 왕비의 편협한 질투심과 오만함은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갈등을 증폭시킨다. 그녀는 끊임없이 헨리 왕에게 글로스터 공작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데, 그럼에도 공작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놓지 않은 헨리 왕이 오히려 대단할 정도다. 그녀의 의심이 남편과 영국의 장래에 대한 순수함에서 나왔다면 용납되겠지만 그녀의 남편에 대한 실망 및 서포크와의 불륜을 염두에 둔다면 별로 동정 가지 않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답답한 인물은 헨리 왕이다. 그는 왕의 지위와 자질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선악 시비를 판단치 못하고, 자신의 의지조차 없이 부평초같이 이리저리 왕비와 귀족들의 뜻에 따라 흔들리는 인물이다. 아무런 대안 없이 호국경을 내쫓는 결과가 자신에게 어떠한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판단 능력조차 없이 그냥 물 흐르는 듯이 떠내려갈 뿐이다. 그가 왕비의 탄원을 물리치고 서포크를 추방할 때의 패기와 결단을 평소에도 보여주었다면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의 꼴을 나지 않았을 터이련만. 극 중에서 유일하게 나타날 뿐이다.

 

(헨리 왕) 고결치못한 왕비로다, 그를 고결한 서포크라니. / 그만, 어명이오! 당신이 정말 그를 위해 탄원한다면 / 더할 뿐이로다 나의 분노를. / 말을 한 이상, 나는 내 말대로 하는 것일 터, / 그러나 내가 맹세를 한다면, 돌이킬 수 없게 되오. (P.104, 32)

 

헨리 왕은 보통 사람으로서 신앙에 몰두하는 사제의 삶을 살았다면 행복하였으리라. 군주라는 자리는 성인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과 자국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벌이고 그래야 하는 게 왕이다. 사서와 역사소설을 읽다 보면 반역죄에 대해 유달리 엄중한 처벌이 가해지는 걸 볼 수 있다. 흔히 삼족 또는 구족을 멸한다고 하는데, 아무 죄 없는 친인척들까지 벌주는 이유는 이 작품에서 요크 공작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신의 현재 처지, 왕실에 대한 불만이 결합하며 없던 반항심이 생기는데, 하물며 왕위계승권의 정당성마저 지니고 있다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세조가 단종을 죽이고,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죽이는 행위는 잔인하지만 왕의 관점에서는 불가피한 처사라고 강변할 수 있다. 태종과 세종이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을 살려 둔 게 오히려 이색적인 처사일 정도다.

 

요크의 부추김으로 일어섰지만 잭 케이드의 반란은 극 중에서 나름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의 반란은 당시 봉건 체제가 반란 진압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유화책을 제시할 정도로 취약한 상태였음을 보여준다. 케이드와 백정, 직공의 교차하는 대사를 통해 해학성을 드러내며 케이드를 희화화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모든 학자, 변호사, 궁정 신하, 신사들”(P.135)기생충”(P.135)으로 매도하는 전언을 통해 일반백성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의 일면을 나타낸다. 케이드는 어차피 죽게끔 운명지어진 인물이다.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그의 불굴의 정신이다. 그는 지배당하고 착취당하는 삶을 감수하느니 고착화된 신분 체제를 타파하려고 죽음을 감내하고 행동에 나선 인물이었다.

 

(케이드) 켄트 사람들에게 내 말 전해 주게 그들이 가장 훌륭한 동향인을 잃었다고, 그리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타이르게 겁쟁이로 살라고. 왜냐면 나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굶주림에 굴복하였느니, 용기가 아니라. (P.157, 49)

 

최악으로 치닫는 사태를 막아보고자 하는 헨리 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발발은 피할 수 없다. 전쟁에서 인정과 자비는 기대할 수 없다. 죽음은 원한을, 원한을 복수를 낳고 살육은 물고 물리며 반복된다. 어느 한쪽이 버틸 수 없을 때까지. 아들 클리포드가 아버지 노인 클리포드의 시신을 보고 무자비한 복수를 다짐하듯이, 이것이 제3부에서 파란을 낳는 복선이다.

 

다만, 불쌍한 것은 중간에 치인 무고한 생명뿐. 귀족들의 전쟁이 백성들에게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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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6세 1부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19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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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영국 사극 독서를 시작하면서 출발점을 어디로 삼을지 고민하였다. 집필 순으로 보자면 <헨리 6> 삼부작이 앞서고, 왕위 연대순으로 따지면 <존 왕>이 첫 번째 순서가 마땅하다. 후자는 시대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전개를 따라갈 수 있고 앞선 시기에 벌어진 사건이 후대에 영향을 미치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전자는 셰익스피어의 작가로서의 역량이 발전되는 모습을 작품을 통해 발견할 수 있고, 작가가 시대순에 연연하지 않고 외연을 확장하게 된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할 기대를 품을 수 있다. 나의 최종 선택은 집필 순이다.

 

영국 역사를 극작의 소재로 삼았으니 아무래도 역사 지식이 있으면 전체적 맥락 이해에 유리하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랭커스터가와 요크가의 장미전쟁을 거쳐 튜더 왕조가 성립하는 영국 중세와 근대 초기의 흐름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으면 작가가 강조하거나 생략한 장면, 변용을 가한 대목을 비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삼국지연의> 감상을 위해 <정사 삼국지> 선행 독서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지 않는 것은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셰익스피어는 헨리 6세 시대를 삼부작으로 나누어 집필하였다. 영국사의 분수령이 되는 이 시기를 좀 더 상세하고 치밀하게 파헤쳐 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짐작게 한다. 백년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와중에 어린 헨리 6세를 둘러싼 귀족들의 권력 암투가 점차 두드러지는 모습을 1부에서 볼 수 있다. 귀족들에게 중요한 건 왕권도 백성들의 고통도 아닌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 도모와 권력 확장에 있다. 호국경 글로스터가 통박하듯이 말이다.

 

(글로스터) 당신들은 그저 나약한 군주만 좋아하지. / 그래야 학동처럼, 당신네들이 겁을 줄 수 있을 테니. (P.11, 11)

 

왕의 삼촌인 글로스터 공작은 어린 헨리 왕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인물로 나오지만, 작중 인물들에게 그의 존재와 행동은 의심과 질시의 대상이다. 호국경인 그의 권력이 강해질수록 귀족들은 운신의 폭이 줄어든다. 게다가 왕위계승권 1위인 그의 지위는 그가 행하는 모든 언행을 정치적 의도를 갖고 해석하도록 만든다. 독자는 아직 그의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는 선인인가 악인인가. 확실한 것은 어린 헨리 왕은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사실이다.

 

귀족들의 불화는 두 갈래로 구분된다. 글로스터와 윈체스터는 친척 간이다. 극 중에서 헨리 왕은 두 사람을 모두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양자는 또한 숙질간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촌수로는 윈체스터가 앞서는 건 분명하지만, 직계가 아닌 방계인 듯싶다. 그래서 글로스터가 그를 무시하는 언사를 보이는 게 아닐까. 하여튼 윈체스터는 사제로서 나중에 추기경으로 오르지만 강력한 권력욕을 드러내어 다른 귀족들에게도 평판은 썩 좋지 않다.

 

서머싯과 리처드, 나중의 요크 공작 간 불화는 사소한 언쟁에서 비롯한다. 각자가 자신의 정당성을 천명하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가운데 붉은 장미와 흰 장미로써 무리를 표시하는 장면은 영국사를 아는 독자라면 훗날 장미전쟁의 발단을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헨리 왕도 말했듯이 어처구니없지만, 이것이 어디 근본적인 원인이겠는가, 방아쇠에 불과할 뿐.

 

(헨리 왕) 착하신 경,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 어떻게 그리도 사소하고 하찮은 이유로 / 이런 파당적 시샘이 생겨날 수 있단 말이오? (P.111, 41)

 

그럼에도 사소하고 하찮은 다툼은 거대한 불화와 분쟁으로 점화되는데, 엑스터 공작이 이를 31장과 41장에서 반복적으로 예언한다. 그는 극 중에서 독특한 인물이다. 어느 파당에도 속하지 않고 헨리 왕의 곁을 지키는 엑스터는 귀족들의 다툼이 비극을 가져올 것임을 초연하게 언명하는 예언자적 인물이다.

 

(엑스터) 하지만 소용없지,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두 눈으로 / 이 삐걱대는 귀족들의 불화를,/ 궁정에서 서로를 어깨로 밀쳐 대는 꼴을, / 추종자들이 일삼는 이 파당 싸움질을 본다면, / 그것이 정말 불행한 결과의 전조임을 알리라. / 왕홀이 어린이 손에 들려 있는 것도 문제지만, / 시샘이 기괴한 분열을 낳는 것이 더 큰 문제로다. / 거기서 멸망이 오고, 거기서 혼란이 시작되나니. (P.114, 41)

 

귀족들 간의 불화가 본격적인 갈등으로 점화되는 계기는 백년전쟁과 연관되어 있다. 시선을 잠시 프랑스로 돌리자. 초기에 유리했던 영국의 전황은 점차 수세에 몰리고 있다. 군사와 물자를 바다로 실어날라야 했던 영국 입장에서는 군주와 귀족이 단합해야 공세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음에도 제1막 초반부에서 사자들의 전언에서도 보았듯이 귀족들의 내분으로 수세적으로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전쟁 영웅 탈봇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본토의 다툼과는 무관하게 그는 프랑스에서 영국의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순전한 애국심의 상징이다. 그의 막강한 무력은 프랑스군을 두렵게 만들고 오직 잔다르크만이 그의 적수가 될 뿐이다. 하지만 제5막에서 볼 수 있듯 탈봇이 오로지 개인의 능력이라면 잔다르크는 악령의 도움을 받았으니 실질적 비교는 어렵다.

 

() 내 몸으로도 피의 희생으로도 / 간청할 수 없단 말이냐 너희가 늘상 주던 도움을? / 그렇다면 내 영혼을 주마-내 몸, 영혼, 그리고 모든 것을- / 잉글랜드가 프랑스에 패배를 안기기 전에. (P.143, 53)

 

이 작품에서 탈봇과 잔다르크 모두 목숨을 잃지만 양자의 최후는 전혀 다르다. 탈봇은 고결한 전쟁 영웅으로서 장엄한 최후를 마치지만, 성처녀는 마녀로서 고결에서 추악으로 전락한 채 경멸로 목숨을 잃는다. 셰익스피어가 영국인이었으므로 잔다르크를 향한 편견과 비난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만큼 백년전쟁에서 잔다르크의 등장은 영국에게 있어 치명타였으므로, 성처녀가 아닌 마녀라고 믿고 싶었으리라. 탈봇, 요크공작의 그녀에 대한 비난적 언사, 자신의 양치기 아버지를 부인하는 잔의 대사, 그리고 애를 가졌다고 하며 목숨을 구걸하는 잔의 행동을 보면 그녀에 대한 영국인의 악의적 감정을 알게 한다. 따라서 이점을 가지고 셰익스피어를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탈봇) 더러운 프랑스의 적, 그리고 참으로 경멸스러운 마녀야, / 네 음탕한 정부들한테 둘러싸여, / 가당키나 하더냐 네가 그의 용감한 나이를 조롱하고 / 반쯤 죽은 이를 비겁하게 야유하는 것이? (P.91, 35)

 

() 형편없는 늙은이, 비천하고 저열한 놈 같으니, / 난 더 귀족적인 혈통 출신이야, / 네놈은 내 아비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란 말이다. (P.154, 56)

 

() 나는 애를 가졌다, 너희 피비린 살인자들아, / 그러니 살해하지 마라 내 자궁 속 열매를, / 설령 너희가 나를 난폭한 죽음에게로 질질 끌고 갈망정.

(요크 공작 리처드) 저런 하나님 맙소사-성처녀가 아이를 배? (P.157, 56)

 

1부에서는 아직 발아되지 않았지만, 향후 분쟁의 씨앗이 심어지는 대목을 볼 수 있으니 제2부와 제3부의 복선에 해당한다. 감옥에 갇혀 죽음을 앞둔 모티머가 조카 리처드에게 모티머 가문이 몰락하게 된 숨겨진 역사를 설명해주는 25장이 하나다. 리처드는 비로소 자신이 헨리 왕보다 왕위계승권에서 더 정통성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고 반드시 이를 회복하리라 다짐한다. 모티머는 조카에게 신중을 기할 것을 재삼 당부한다.

 

(모티머) 조용, 조카, 신중해야지. / 랭커스터 가문은 확고히 섰고, / 산처럼, 제거할 수가 없어. (P.73, 25)

 

프랑스의 우세 속에 전쟁이 하염없이 길어지자 양국은 화친을 시도한다. 프랑스 왕을 영국 왕의 총독으로 삼는 조약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배치되는데, 영국의 패전을 완곡하게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여기서 서포크는 마가릿을 헨리 왕의 왕비로 삼고자 하는 모종의 책략을 꾸미고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헨리 왕을 미혹시켜 마침내 성공을 거둔다. 그의 의도는 제1부의 마지막 대사에서 확연히 나타나는데 이후 작품의 복선을 깐 셈이다.

 

(서포크) 마가릿은 이제 왕비가 되어 지배하겠지 왕을 / 그러나 나는 지배하리라 그녀, , 그리고 왕국 모두를. (P.166, 57)

 

이 제1부는 삼부작의 서막에 해당한다. 대체로 등장인물 소개와 그들 간의 내재한 갈등, 왕위계승권을 둘러싼 오래된 역사적 불씨를 보여준다. 또한 백년전쟁의 최종 결과를 탈봇과 잔다르크의 두 영웅적 인물의 대결로 압축함으로써 패배한 영국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을 볼 수 있다. 헨리 왕의 결혼이 가져올 새로운 국면과 장미전쟁으로 이어질 귀족 간의 본격적 대립은 아직 물밑에 놓여있다. 이는 제2부와 제3부에서 구체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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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평화 - 삼국지 이전의 삼국지, 민간전래본
김영문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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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삼국지 또는 아류작을 제외하고 <삼국지연의>와 같은 고전으로 다른 삼국지류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삼국지평화>라는 작품이 존재하고, 게다가 나관중의 소설보다 무려 170여 년을 앞선 글이라니 삼국지 매니아인 나로서는 도저히 피해갈 수 없었다.

 

이 책은 내용 자체의 감상에 앞서 작품 자체의 소개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나관중의 것보다 앞선 시대의 것이므로 <삼국지연의>가 순전히 나관중의 창작이 아님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으며, 초기작을 통해 삼국지 이야기의 소설화가 발전되는 방식을 비교할 수 있다. 표제의 평화(平話)는 공연 대본을 가리킨다고 하며, 그림과 텍스트를 나란히 수록하여 시각적 이해와 상상을 돕고 있다.

 

<삼국지평화> 원본에는 맨 위 3분의 1 부분이 삽화, 아래 3분의 2 부분이 문자 텍스트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제목 끝에 붙어 있는 평화라는 말은 당시 이야기 공연 장르의 대본이라는 뜻이다. (P.31)

 

원본은 상중하 3권 구성이며, 번역본은 한 권으로 옮길 수 있어 <삼국지연의>에 비하면 매우 간략하다. 따라서 사건과 인물의 다양성, 표현의 풍부함 등은 당연히 기대할 수 없으리라고 짐작하며 사실 그러하다. 대신 빨리 읽는 독자라면 앉은 자리에서 뚝딱 완독할 수 있을 정도니 속도감과 흡인력은 비교작을 능가한다.

 

전체적 구성에서 <연의>와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데, 특히 삼국 정립의 원인과 통일을 언급하는 도입부와 결말부이다. 삼국분열이 후한말 혼란과 부패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한 고조 유방에게 토사구팽당한 한신, 팽월, 영포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후속 조치로 설명한다. 매우 황당하며 비현실적이다. 뒷날 나관중이 이런 논리를 배격하고 완전히 새롭게 짜 맞춘 것은 합당한 판단일 것이다.

 

세 사람은 천하를 삼분하려는 게 아니라,

한 고조에 참수된 원한 갚으러 다시 왔네. (P.45)

 

사마중달은 세 나라를 남김없이 평정했고,

유연은 한을 일으켜 황업을 공고히 했네. (P.389)

 

결말부에서 주목할 대목은 516국 중 하나인 전조(前趙)의 창설자 유연이 한나라를 계승하여 훗날 그의 아들이 한나라를 멸망시킨 진나라를 멸망시킴으로써 복수를 하였다는 설정이다. 실제로 그렇게 믿었던 건지 아니면 흥미를 끌기 위한 단순한 장치로 도입했는지 알 수 없으나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전혀 터무니없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유씨라는 공통점을 내세웠지만 유연은 촉한 황제의 외손”(P.385)가 아니라 엄연히 흉노족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내용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할 말이 많다. 큰 줄기에서는 우리가 아는 삼국지 이야기가 맞지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연의>와 전혀 다르다.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연의>와 비교하여 당혹해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되지만, 그냥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고 간주하는 게 맘이 편할지 모르겠다. 역사적 기록의 부합 여부는 거의 고려치 않는다는 면에서 나관중보다 작가적 자유분방함의 정도가 훨씬 크다.

 

조조는 여기서도 간웅이다. 후대작의 조조는 여기에 비하면 악독함이 덜하다. 황제의 태자를 때려죽이고 강제로 아들 조비에게 물려주도록 직접 행동의 전면에 나선다. 나관중의 작품에서는 예의를 차리며 관대하게 관우를 보내는 조조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여기에서 조조는 호시탐탐 관우를 죽이려고 한다. 조조 죽음의 계기가 되는 관우의 수급을 보고 놀라는 장면도 여기에는 없다. 옮긴이에 따르면 초한지의 내용을 응용하여 관우를 높이고 조조를 낮추는 의도로 나관중이 지어낸 거로 보인다. 이처럼 초한지와 연결시켜 장면을 추가하는 대목이 많은 게 이 책이다. 반면 훗날 나관중은 무리한 관련성을 배격하고 역사적 흐름을 더욱 중시하고 있으며, 번개처럼 지나가느라 놓친 개개의 사건과 인물에 풍성함을 더하기 위해 다양한 일화와 고사를 추가한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적어도 문학적 재미와 흥미로서는 나관중의 압승이다. 그러기에 현대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겠지만.

 

의형제 삼인방에서 세인과 후인의 추앙을 받는 사람은 단연 관우다. 안량과 문추를 베는 용맹, 유비를 찾아가려고 조조를 떠나는 엄중한 의리, 죽어서도 굴하지 않는 기개 등 그가 민간에서 신으로 승격된 까닭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 작품에서는 장비가 더욱 돋보인다. 의병 창설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이는 장비다. 황건적을 무찌르고 유비를 푸대접한 환관에게 주먹을 날리고 태수와 그의 아내 및 병졸 수십 명을 거리낌 없이 죽이고 독우를 매질하여 죽인 후 토막 내 버릴 정도로 용맹과 흉포함, 잔인성이 결합한 캐릭터는 나관중의 것보다 훨씬 강렬하다. 삼국지 이야기에서 자타공인 최강의 무사는 여포다. 그런 여포가 여기서는 장비에게 꼼짝 못 한다. 장비는 여포의 일기토에서 승리를 거두고, 소패성을 포위한 여포를 무려 세 번이나 뚫고 나온다. 마지막에서 여포를 잡아 가둔 것도 장비니 그야말로 천하무적 여포의 유일한 천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포의 이야기를 덧붙인다면 그와 동탁의 만남은 다른 방식이었으며, 여포와 초선은 원래 부부 사이였다고 한다. 하후돈을 애꾸눈으로 만든 인물도 여포이다.

 

제갈량은 본래 신선인데, 어려서부터 학업을 닦았으므로 중년에 이르러서는 읽지 않은 책이 없었다. 천지의 기미에 통달하여 귀신도 헤아리기 어려운 뜻을 품고 있었다.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었으며, 콩을 뿌려 군사를 만들 수 있었고, 칼을 휘둘러 강을 만들 수도 있었다. (P.203-204)

 

<연의>에서도 제갈공명의 능력은 초인적인데, <평화>에서는 아예 대놓고 그를 신선이라고 칭한다. 초능력자 제갈량을 너무 높인 나머지 한편으로는 그렇게 뛰어난 능력자가 어째서 삼국통일의 대업에 실패하였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민간전래본이다 보니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체계성과 일관성이 부족한 게 약점이다. 공명의 신통력과 도술을 강조하는 대목은 남만 정벌에서도 나타난다. 여기서 제갈량은 하늘을 운행하는 풍륜(風輪)을 제작하여 맹획을 정복해낸다.

 

봉추선생 방통의 역할은 <연의>에서 제한적이어서 그의 참 면모를 알기 어렵다. 여기서는 방통과 주유가 호형호제하는 사이며, 유비에게 인정받지 못한 방통이 형주 4군의 반란을 부추기는 등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물로 나온다. 다만 죽은 방통의 도움으로 승리를 거두고 유비가 서천을 얻게 되는 장면은 황당한데, 죽은 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물리친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평화>에서 죽은 공명이 수레에 타고 의젓하게 나서는 장면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제갈량의 북벌 실패의 가장 결정적인 대목은 마속이 가정을 잃은 데 있다. 훗날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유명한 고사성어의 유래인데, 전투의 상세 원인이 전혀 다르다. 마속은 술에 취해서 수비에 실패하였으며, 그에게 충언했던 왕평은 <평화>에서 남만 정벌에서 일찌감치 제갈량에게 참수당하여 등장할 기회조차 없었다. 언제나 느끼는 점이지만 촉과 제갈량의 북벌 실패 제일 원인은 제갈량 일인의 역량에 대한 과도한 의존 탓이다. 그는 승상이자 총사령관이므로 내정과 국방을 총괄해야 했는데, 전시상황에서 내정을 전담할 수 있도록 후주가 믿고 맡길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하는 만약의 가설이 여전하다.

 

조조의 후손이 그러했듯 사마의의 후손이 조조의 후손에게 황권을 빼앗은 걸 보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수십 년을 지속한 삼국 정립을 끝내고 통일,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을 이루어낸 것은 사마의의 후손이다. <연의>는 제갈량의 사후 통일까지를 다루고 있는 반면 <평화>는 공명의 죽음으로 대단원을 내리고 이후는 간단한 해설로 마무리한다.

 

옮긴이가 누차 강조했듯이 <평화><초한지>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나관중은 그것이 지나친 대목은 깎아내고 없던 장면은 덧붙여서 모방이 아닌 창작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연의>에서는 희석되어 두드러지지 않지만 <평화>에 앞서 <초한지>를 읽으면 두 작품의 관계가 더욱 강하게 의식될 것이다.

 

<연의><평화>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며 우월의 격차는 명확하다. <연의>를 먼저 읽은 독자라면 <평화>의 전개와 서술에 이질감을 느낄 것이다. 역으로 <평화>를 접한 후 <연의>를 펼친다면 <연의>의 뛰어남과 나관중의 재능에 새삼 경탄하게 된다. 이는 <연의>가 수준 낮고 일독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두 작품은 소위 삼국지 이야기를 공통의 배경으로 삼았기에 여러 면에서 겹칠 수 있지만, 별개의 독자적 작품으로 접근해야 한다. <연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평화> 자체로도 감상하고 묘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옛사람들은 나관중 이전에 이 작품 속 이야기에 일희일비하지 않았겠는가. 나아가 우리는 <평화>를 통해서 민간에 전승된 삼국지 이야기가 어떻게 기록으로 정착하고 방대한 소설로 발전해 나갔는지를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비교하고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연의>도 비견할 수 없는 이 작품만의 독특한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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