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6세 3부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2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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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요크 공작 리처드와 착한 왕 헨리 6세의 진정한 비극

 

2부에서 장미전쟁의 서막이 시작되었고 요크 공작 편이 승리를 거둔다. 요크 공작은 헨리 왕에게 왕권을 요구하고 헨리 왕은 이를 조건부로 수용한다. 자신의 생전에는 왕위를 인정해 달라는 것. 장미전쟁의 본질적 계기는 결국 왕권의 정통성에 관한 질문이다. 현재 헨리 왕의 선조가 요크 공작의 선조인 과거 왕에게서 왕권을 빼앗았다.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왕권은 헨리 왕에게 있는 게 당연하지만, 그 선조가 왕권을 탈취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헨리 왕은 신하로 남아있었으리라. 이것이 요크가 지적하는 점이며, 헨리 왕의 마음속 한점 의구심인 동시에 엑스터마저 인정하게 만든 논리다.

 

(헨리 왕) (방백)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내 명분은 약해. (P.16, 11)

 

(엑스터) 그의 명분이 옳음이니, 노여움을 거두소서.

(엑스터) (헨리 왕에게) 제 양심은 그가 적법한 왕이라 말합니다. (P.17, 11)

 

마가릿 왕비 일행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녀는 헨리 왕에게 명예보다 목숨을 중시하고 자식의 앞날을 망쳤다며 맹비난을 퍼붓는다. 헨리 왕이 군주라 일개 평민에 지나지 않았다면 그의 선택과 행동은 양심에 따른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이후 그는 신하들에게 노골적으로 무시와 박대를 받는다. 그들이 보기에 헨리의 왕으로서 부족함 때문에 전쟁이 발발하였으니 그를 향한 비난은 클리포드와 같이 일면 정당하다.

 

(클리포드) 헨리, 그대가 왕들처럼 통치했었다면, / 혹은 그대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가 한 대로 하여, / 요크 가문에 여지를 전혀 안 주었다면, (P.72-73, 26)

 

우리는 여기서 고민해봐야 한다. 왕권 다툼에 도덕과 양심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가. 역사는 대체로 이에 부정적이다. 절대권력을 쥐기 위해 천륜과 인륜마저 뒤엎는 사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일비재하다.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승전을 위해서는 정면승부가 상책이 아니다. 온갖 간계와 기만전술을 구사하더라도 이길 수만 있다면 전쟁의 신으로 추앙받는다. 송나라 양공은 인간적으로 훌륭한 인물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군주로서는 나라를 쇠망케 한 인물이다. 오죽하면 송양지인(宋襄之仁)이란 고사성어가 생겼겠는가.

 

권력과 전쟁은 자체로 반인간적이니 평시의 인간성을 기대하며 곤란하다. 요크가 노인 클리포드를 죽인 행위와 클리포드가 어린 러틀랜드를 죽인 행위에서 경중과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너무나 주관적 감정과 판단이 개입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항상 복수를 다짐한다. 이렇게 복수는 맞물리고 악연은 어느 한쪽이 완전히 스러질 때까지 되풀이된다.

 

2부에서도 언급했듯이 높은 분들의 무력 충돌은 권력의 향방과 전혀 무관한 민초들에게는 고통이 될 뿐이다. 전쟁에 필요한 군대와 물자의 공급원으로 집도 재산도, 심지어는 목숨마저 몽땅 잃기 일쑤다. 전쟁의 광기에 휩쓸리면 부자, 부부, 형제, 친척과 친구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전쟁광이나 학살자 역시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25장은 장미전쟁이 일반인들에게 주는 아픔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전장에서 알지 못하는 채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비통함이라니. 이를 지켜보는 헨리 왕의 슬픔과 탄식 또한 못지않다.

 

(헨리 왕) 오 처참한 광경이다! 오 피비린 시대로다! / 사자들이 자기네 굴을 위해 전쟁과 전투를 벌이는 동안, / 불쌍한 순진한 양들이 겪는도다 저들의 적의를. / 울거라, 가여운 사람,내 그대 눈물을 눈물로 지원할 테니, / 그리고 내 가슴과 두 눈을, 내란처럼, / 눈물로 눈멀게 하고, 부서지게 하리로다, 슬픔의 과부하로. (P.68, 25)

 

우리는 그것을 악어의 눈물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적어도 그의 슬픔은 참이니까, 하지만 이런 전쟁을 막을 수 있었던 사람이 바로 헨리 자신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그의 인()은 작은데 그칠 뿐 큰 인()에 나아가지 못하였다. 오직 그는 선조에게 물려받은 군주 자리를 보전하는데 급급하였을 뿐. 그것이 당대 잉글랜드인과 헨리 자신의 비극이다.

 

요크의 사후 승리를 쟁취하고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의 행동을 보면 좋지 않은 역사는 반복됨을 확인하게 된다. 헨리 왕이 마가릿 왕비를 맞아들인 전철을 에드워드 또한 답습하니 프랑스 왕의 처제와 결혼하였더라면 왕위는 공고해지고 평화가 일찍 찾아올 수 있었을 텐데. 과부 그레이 부인으로의 선택으로 그는 워릭의 분노를 유발하고 동생 조지를 떠나게 만든다. 평화는 일순간에 그치고 장미전쟁은 재개한다. 에드워드 왕은 의연하다, 아니 오만하다.

 

삼부작을 통틀어 가장 비극적 인물은 단연 워릭이다. 그는 요크 공작과 아들 에드워드에게 충성을 바친다. 그의 막강한 세력과 무력은 요크 가문이 승리를 거두는 데 제일 큰 역할을 하였다. 에드워드 왕은 그레이 부인과의 결혼이 그에 대한 엄청난 모욕이라는 점을 몰랐을까 아니면 그저 별것 아니라고 오만하게 생각하였을까. 워릭으로서는 대안이 없다, 왕에게 바싹 엎드리든가 아니면 꼿꼿하게 일어서든가.

 

한바탕의 불필요한 피비린내가 진동한 후 전쟁은 최종적으로 막을 내린다. 랭커스터 가문의 주요 인물은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워릭은 물론 헨리 왕과 그의 아들 세자까지도. 요크 가문의 왕조가 시작되었다. 이제 혼란은 그치고 안정이 찾아오고, 어둠이 스러지며 빛이 떠오르게 된 셈이다. 에드워드 왕의 대사처럼.

 

(에드워드 왕) 나는 이제 내 영혼의 기쁨으로 앉아 있소, / 내 조국의 평화와 내 형제의 사랑을 지녔으니. (P.174, 57)

 

독자는 안다. 이것은 에드워드의 헛된 기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것은 어린 헨리, 리치먼드 백작의 머리에 손을 얹는 헨리 왕의 예언이 훗날의 복선인 점과 마찬가지다. 당시 에드워드 왕은 알았을까? 동생 리처드의 마음속에 시커먼 야욕이 그득 차 있고,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악마와도 같이 주저 없이 제거할 거라는 점을 말이다. 기형의 몸에 절름발이인 그는 철저히 자신을 감춘 채 큰형의 곁을 지킨다.

 

(글로스터의 리처드) 난 아니오-(방백) 내 의중은 더 먼 데지. / 난 머문다 에드워드 사랑 아니라, 왕관 때문에. (P.115, 41)

 

이제 평화가 찾아오고 모든 이들이 안정과 기쁨을 희구하는 찰나, 리처드는 다시금 되새긴다. 자신이 앞으로 수행할 악마와도 같은 행위를. 위협은 가까운 곳에서 오기 마련이지만, 대개 보이지 않는 법, 등하불명(燈下不明)처럼. 셰익스피어는 3막부터 지속해서 리처드의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글로스터의 리처드) 헨리와 그의 아들은 갔다, 네가, 클래런스, 다음이지. /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내가 나머지를 처치한다. / 최선이 될 때까지는 악으로 처신하면서. (P.171, 56)

 

<헨리 6> 삼부작은 영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 중 하나인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의 배경과 결과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등장인물 간 은원이 축적되고 첨예하게 엇갈리는 이해관계 속에서 왕위를 향한 맹렬한 추구와 왕권에 대한 맹목적 집착은 새삼 군주의 본질과 권력의 속성에 대해 생각하게끔 한다. 인간의 욕망이 존재하는 한 인간 세상의 다툼과 불화는 영속할 것이며, 혼란 와중에 인간성은 외면받기에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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