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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3세 ㅣ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2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12년 11월
평점 :
부제 : 리처드 3세 왕의 비극
이 희곡은 연대기적으로 <헨리 6세> 삼부작에 이어진다. 헨리 6세를 폐위시키고 동생들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오른 맏형 에드워드 4세, 그의 치세도 왕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불안감이 조성된다. 아직 후계를 이은 왕자는 나이 어린데 왕비의 위세를 등에 업은 인척 세력의 전횡으로 기존 중신들과 갈등이 심화한다. 가슴속 야심을 깊이 숨긴 채 은인자중하던 리처드 글로스터는 서서히 야욕을 표면화시키고.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 아닌가? 조선 왕조의 문종과 단종, 그리고 수양대군을 떠오르게 하는 유사한 상황이다. 단종은 보위에 오르지만 수양대군에 의해 폐위되어 비극적 최후를 마치고, 수양대군은 권력을 위해 자신의 형제마저 죽인다. 리처드 글로스터도 마찬가지다. 대망의 달성을 위해 장애물은 철저히 제거한다. 자신의 형인 클래런스, 왕비 세력, 왕자들은 물론 자신의 반대파인 중신들까지. 리처드는 철저한 속임수로 상대를 안심시키며 은밀하게 행동을 한다. 상대는 미처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죽음을 맞거나 위기에 빠진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가 된다. 클래런스도, 헤이스팅스 경도.
(클래런스) 그럴 리 없어, 그는 내 불운을 울어 주었고, / 양팔로 날 안아 주었고, 흐느낌으로 맹세했어 / 나의 방면을 위해 애쓰겠노라고 말이다. (P.54, 1막 4장)
(헤이스팅스 경) 그때 난 탑으로 끌려가는 죄수 신세였지 / 왕비 일당의 사주에 의해, / 하지만 이제, 내 말해 주네만-자네만 알고 있게- / 오늘 그 원수들이 사형을 당하고, / 나는 처지가 그 어느 때보다 더 낫다네. (P.94, 3막 2장)
자고로 봉건왕조에서 서열 순위가 아닌 자신의 능력으로 권력을 쟁취하고자 하는 이라면 피바람을 모면할 수 없다. 그런 행위가 사회적으로 또한 역사적으로 인정받는 사례는 군주가 된 이가 어떠한 정치 행위를 남기는가에 달려있다. 이 작품에서 리처드 글로스터는 시종일관 부정적 이미지의 표상이다. 신체적으로 기형인데다 마음마저 삐뚤어지고 권력의 위세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그를 보면 셰익스피어의 의도와 실체 중 어디가 본모습에 가까울까 궁금하다. 확실한 건 스스로 천명한 것과 달리 그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리처드 글로스터) 내가 연인 팔자가 못 되고 / 이 아름답고 유창한 나날에 응할 길 없으니, / 난 결심한 거야 악당이 되고 / 요즘 세상의 게으른 오락들을 증오하기로. (P.9, 1막 1장)
리처드는 무지몽매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때를 기다릴 줄 알았고, 때가 오자 과감하게 행동에 나섰으며, 친구와 적을 판별할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정통성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죽였던 헨리 6세의 왕세자 에드워드의 부인이자 워릭의 딸인 앤 부인을 설득하여 아내로 삼은 까닭은 이를 통해 랭커스터 가와 워릭 가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한 것이리라. 철천지원수였던 리처드에게 증오의 언사를 내뱉던 앤 부인이 서서히 리처드의 말재주에 넘어가면서 반지를 받는 대목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지만 전혀 터무니없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리처드의 설득력은 대단하다.
그가 죽은 형 에드워드 4세의 딸, 즉 자신의 조카딸을 아내로 취하고자 애쓴 까닭 또한 요크 가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것이 만약 이루어졌다면 그가 그토록 쉽사리 리치먼드에게 왕위를 빼앗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리처드 왕) (방백) 난 내 형 딸과 결혼을 해야 해, / 그렇지 않으면 내 왕국은 깨지기 쉬운 유리 위에 선 꼴. / 그녀 남동생들을 죽이고, 그런 다음 그녀와 결혼을 한다? / 잘될지 모르지만, 내 손에 / 묻은 피는 죄악이 죄악을 선동할 정도이니. (P.130, 4막 2장)
전작에서 에드워드 4세는 워릭의 명예를 손상시킨 연유로 위기에 처하고 수년을 더 고생하였다. 리처드가 버킹검 공작을 박대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역시 리치먼드와의 대결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가능성이 있었다. 공통점은 일단 왕좌에 오르자 왕이라는 자리에 눈멀어 자신의 최측근이자 최고 공신을 경시하였다는 점이다. 버킹검의 의견에 곧바로 실망하고 외면하지 않고, 약속했던 권리를 이행하였다면 그는 여전히 리처드의 오른팔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아직 군주의 권력이 월등히 우위에 있는 절대 왕조가 아니라 귀족과 영주의 독자성이 강하게 잔존하던 시기였음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리처드 왕) (방백) 계략이 음흉하고, 머리가 좋은 버킹검은 / 더 이상 이웃이 아니리로다 내 자문에. / 그토록 오랫동안 줄기차게 나와 보조를 맞추던 그가 / 이제 숨 돌릴 짬을 가져야겠다고? 뭐, 그러든가. (P.129, 4막 2장)
(버킹검) 그래 그렇단 말이지? 목숨을 건 내 충성에 대한 보답이 / 이런 경멸? 내 이걸 받으려고 그를 왕으로 만들어 주었나? (P.133, 4막 2장)
리처드 3세는 모친에게조차 버림받은 인물이다. 어머니 요크 공작부인은 그를 매우 부정적이고 차갑게 대한다. 그의 신체가 기형이므로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적 인식 상 실망할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그의 어머니임에도 그녀는 리처드의 뒤틀린 몸과 마음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감추지 않는다. 모르는 이라면 생모가 아니라 계모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찌 보면 리처드의 성격 파탄은 그의 어머니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생모에게 인간으로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면 누구에게서 동등한 인격적 대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리처드 3세의 비극은 어머니 뱃속에서 배태된 것이다.
(요크 공작부인) 피비린 자이므로, 너의 최후 피비릴 것이다. / 치욕이 너의 삶에 동반했고, 네 죽음에 시중들 것이다. (P.147, 4막 4장)
이 작품에서 유령처럼 출몰하며 작중 인물들을 놀리고 괴롭히며 저주를 퍼붓는 독특한 인물이 있다. 전왕 헨리 6세의 왕비인 마가릿 왕비다. 폐위되어 죽임을 당한 전왕의 부인이 아무 거리낌 없이 궁중에 드나들 수 있다는 설정은 부자연스럽고 역사적 기록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는 그녀에게 일종의 광대와도 같은 역할을 맡기고 저주와 예언을 퍼붓게 함으로써 작중 인물들이 죄책감과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독자는 이를 통해 헨리 6세의 비극이 그대로 끝나지 않고 훗날 가해자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올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마가릿 왕비) 너희 중 누가 나를 보고 떨지 않겠느냐? / 내가 왕비고 너희가 신하라서 절하며 떠는 게 아니라면, / 날 폐위시켰기에, 너희가 역도처럼 몸을 떠는 것이렸다. / (리처드에게) 아, 고상하신 악당, 어딜 가려구.
(리처드 글로스터) 징그러운 쭈그렁 마녀, 내 눈 앞에서 뭔 짓이냐? (P.35, 1막 3장)
(마가릿 왕비) 리처드가 아직 살아 있지, 지옥의 검은 염탐꾼, / 그 이유는 단 하나, 지옥의 대리인으로서 영혼을 사들여 / 그리로 보낼 임무 때문에. / 하지만 이제 곧, 이제 곧, / 벌어진다 그의 처참한 아무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죽음이. (P.141, 4막 4장)
리처드 왕과 리치먼드 세력 간 일대 회전을 앞둔 5막 5장은 리처드의 패전과 죽음이 천명임을 보여준다. 에드워드 세자 유령을 비롯하여 리처드에게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꿈속에서 차례로 등장하여 리처드를 저주하고 리치먼드에 축복을 내리는 장면. 독자는 전투의 결과를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다.
이 희곡은 내내 어둡고 우울함으로 가득한 분위기로 일관하다 대단원에서 갑작스레 밝고 희망찬 메시지를 던진다. 리치먼드 백작, 곧 헨리 7세 왕은 약속한 대로 자신과 엘리자베스의 결합을 공식화함으로써 장미전쟁의 상처가 마침내 아물게 되었음을 밝힌다. 랭커스터 가와 요크 가의 적통의 혼인을 통해서. 이는 단순히 두 가문의 사안이 아니다. 이로써 탄생한 왕가는 모든 귀족과 영주의 지지를 받는 명분과 실력을 갖춘 왕조이며 셰익스피어가 모시던 여왕의 선조이므로 당연히 화려하고 당당한 왕조의 개창일 수밖에 없다. 비극은 끝나고 잉글랜드 전체가 기뻐하고 환호하게 될 대도약의 섬돌.
(헨리 7세 왕) 무디게 하소서 반역자들의 칼날을, 은총의 주님, / 이 피에 굶주린 나날들을 다시 불러 / 불쌍한 잉글랜드가 피눈물 개울 흘리게 하려는 칼날을. / 그들이 살아서 이 땅의 풍부한 농산물을 맛보게 마소서, / 아름다운 이 땅의 평화에 모반의 상처를 입히려는 그들이. / 이제 내전의 상처는 가셨고 평화가 다시 삽니다. / 그것이 이곳에서 만세를 누리도록, 하나님 ‘아멘’하소서. (P.191-192, 5막 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