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거래에 대하여 - 책과 서점에 대한 단상
장 뤽 낭시 지음, 이선희 옮김 / 길(도서출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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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것, 나아가 독서(讀書)라는 행위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서점에서 책을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 책장을 닫는 순간까지, 우리는 책이라는 이름이 주는 배음(背音)에 싸여 있다. 그 배음 안에서 우리는 책에 질문하고, 말하고, 책의 말을 듣는다. 그것을 엄선된 언어로 형언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뿐. 낭시의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는 그 배음에 대한 짧은 기록이다. ‘책과 서점에 대한 단상이라는 부제가 붙었으나, ‘책과 서점에 대한 찬가라고 바꿔 불러도 무방하다. 낭시처럼 말라르메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은 낭시가 책이라는 순수하고 투명한 덩어리에 대해 말하기 위해 빚어낸 또 하나의 덩어리이다.


책은 단순히 소통의 수단도, 소통을 표현하는 매체도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책은 중간매체가 아니다. 그 자체로 즉각적으로 그리고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소통이자 거래[교제]commerce이다. 실제로 책을 읽는 사람은 거래 속으로 들어갈 뿐, 다른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점에서 책은 메시지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풍자문이나 논문과 확연히 구분된다. 감히 말하자면 책은 스스로 직접 나서서 자신과의 소통에 가담하기 때문이다. (24-25, 강조는 원문, []는 옮긴이)


낭시가 책을 말하면서 먼저 꺼내는 이야기는 플라톤의 이데아다. 그는 책의 이데아를 이데아의 전달로 정의하고, 플라톤의 책들이 그러했듯이 책은 대화의 특징을 이데아에다 부여한다(21)고 말한다. 그러나 책은 무엇에 대해말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라는 이름의 누구에게말을 건다. 이는 책이 수단을 설정하지 않고, 그렇기에 목표로 환원되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활자caractére라는 흔적을 통한 말걸기야말로 책이 갖는 가장 강력한 특성caractére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유라는 약속을 지닌 재료의 단위(64)와 거래 또는 교제(commerce)한다. 다 카포Da capo.


책이 언제나 우리 앞에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열림과 닫힘 사이를 오가는 것이 책이고, “둘 사이의 긴장감 속에 놓여 있는 것(12)이 책이다. 조재룡 평론가의 말처럼 책이 단단하게 묶어둔 이 이데아가 독서를 통해 이 세계에 풀려나오(88)도록 하는 일은 어렵다. 낭시도 원칙적으로 책은 읽기 어렵다(39)고 말하지 않는가. 그것은 책읽기가 불가독성에서 출발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 열림의 시도들이 무한히 이어지고, 열림의 순간을 만날 때 우리는 수천 개의 방식으로 책을 다시 쓰(29)게 된다.


서적상의 독서는 모든 책의 모든 페이지를 오롯이 해독해내는 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의 독서는 읽기lectio’이면서 동시에 선택하기electio’이다. 선택한다. 책에 나온 생각들을, 책이 본래 지니고 있는 이데아에 따라서, 책에 따라서, 독서에 따라서, 독자들에 따라서, 그리고 편집자들에 따라서 제안해야 할 생각들을 선별하거나 수집한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내가 상품에 대해 환기했던 것을 잊지 않는다면, 서적상은 단순히 책을 파는 상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정당하다. 추호의 모호함도 없이 말해보자면, 서적상은 서적 전달자livreur des livres이다. 서적을 가져오고 전시하고, 서적이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50-51)


아무리 사회가 발전한다 해도 책의 배음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은 서점일 것이다. 일차적으로 서점은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공간이고(*), “서적이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해주는 공간이며, “은밀한 시선, 강렬한 조명, 탐문, 조사, 선별, 추출이나 발췌 등 모든 종류의 열림이 있는 보편적 장소(54)이다. 그리고 이 공간의 주인인 서적상은 인용문에 언급된 것처럼 읽는 자이자 선택하는 자이고, “서점의 천부적 영혼(51)이다. 더 나아가 나는 서점이 책읽기가 타자와 접촉하는 행위라는 걸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독서를 통해 거래·교제되는 사유는 본질적으로 타자를 위해서만 셈을 하며, 타자를 위해서만, 타자에 의해서만 그리고 타자의 안에서만 계산이(42)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재룡 평론가가 글 말미에 독립서점을 언급한 것이 반가웠다. 독립서점이 추구하는 바가 무한한 열림과 닫힘 사이에서 수천 개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고, 각각의 독립서점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유의 거래에 들어서는 첫 걸음을 만들어내려 하는 까닭이다.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말걸기의 방식도 원래 다 다른 것이 아니었던가. 접촉보다 접속이 앞서는 시대에 독립서점들이 타자와 접촉하고 말을 거는 공간으로 은은하게 빛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낭시는 글 말미에서 책의 이중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거우면서도 가벼운 것, 불에 타기 쉽지만 소진되기 어려운 것, 대중적이면서 난해한 것. 이러한 이중성은 commerce라는 단어의 이중적 의미와도, 열림과 닫힘이라는 행위와도 잘 어울린다. 글은 이렇게 끝난다. 물질로 표현하자면 책은 우리의 사유이다. 진지하면서도 덧없는 사유, 손 닿는 곳에 있으면서도 비밀에 가린 사유, 우리가 끈질기게 공유하는 사유가 바로 거래 자체이자 약속이다.”(64-65) 책은 또 다른 책을 부른다고 흔히 말하지만, 사유의 교제가, 거래가 진정 이루어졌다면, 그리고 읽어내기 어려운 현실 세계와 몸을 비비며 접촉(57)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책의 이데아가 갖는 변형성, 유연성, 유동성(56)이 만들어내는 의미엔 종결점이 없다. 다만 나도 누군가에게 사유의 거래의 단위로, 한 권의 책이 되어 대화하고 접촉할 수 있었으면 싶다. 책이라는 이름의 타자가 되어 대화할 수 있었으면 싶다. 그리고 책이라는 이름의 타자와 끊임없이 사유를 교제했으면 싶다.



도서관(bibliothéque)과 서점(librairie)은 본래 서재를 의미하는 용어로 혼용되었다. 48쪽의 역주 참고.

결론적으로 말해 책의 이데아는 이미 최초로 그것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독서의 이데아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독서를 통해서 다른 어떤 책의 이데아는, 처음부터 연이어 나오는 다른 어떤 글쓰기의 이데아가 되었을 것이다. 꼭 다른 어떤 책의 기록이 아니라 적어도 사유의 또 다른 단면의 글쓰기, 표현의, 매개의, 모방과 창조의 다른 굽이, 다른 돌기 혹은 다른 굴곡의 기록이 되었을 것이다. 책의 이데아는 어떠한 종결점도 이데아 자체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이데아이다. 이데아가 품고 있는 것이라고는 자기 자신을 증식하기, 번식하기, 분산하기뿐이다. 그리고 언제나, 어떤 순간에, 어떤 관점에서, 책이 건네는 묵언의 조언 혹은 달변의 조언은 책을 내던지게 혹은 그만 읽게 한다. 책읽기, 그것은 이어서 또 다른 책을 읽어야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 우리가 행동이라고 부르는 것, 때로 경험이라고 부르는 것, 읽어내기 어려운 현실 세계와 몸을 비비며 접촉하는 것이다. (56-57쪽)

책은 무거우면서도 가볍다. 책은 엄숙한 분위기의 도서관 서가에 붙박이처럼 고정되어 있기도 하지만 서로의 뒤를 잇기도 하고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책은 인쇄 1세대의 고서 초판본이기도 하지만 대중적인 책이기도 하며 또 난해한 것이기도 하다. 책은 불에 타기 쉽지만 동시에 소진되기 어렵다. 물질로 표현하자면 책은 우리의 사유이다. 진지하면서도 덧없는 사유, 손 닿는 곳에 있으면서도 비밀에 가린 사유, 우리가 끈질기게 공유하는 사유가 바로 거래 자체이자 약속이다. (64-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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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22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이 책과 <개소리에 대하여>를 같이 빌렸는데, 두 권의 분량이 책 한 권의 절반 분량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생각보다 분량이 얇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아실 겁니다. ㅎㅎㅎ

아무 2017-01-22 15:28   좋아요 0 | URL
잘 알죠..ㅎㅎ.. 전 너무 얇아서 처음에 못 찾았었어요 제가 신청한 책인데도^^;; <나를 만지지 마라>도 같이 빌렸는데, 이 책도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만큼 얇습니다.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는 얇은 만큼 만만한 책은 아니었는데, 이 책도 만만치는 않을 것 같네요..

AgalmA 2017-01-22 2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얇아서 안 사고 도서관에 신청할까 싶었는데 읽고 싶은 책이 많으니 계속 밀려요ㅋ 장켈레비치 <죽음에 대하여>, 아감벤 <불과 글>도 얇아서 좋더라는ㅎ 그런데 아감벤 <불과 글> 생각할 게 많아 진도 잘 안나가서 오늘 500페이지짜리 <마담 보바리> 읽음ㅋㅋ! 앜, 이게 뭐야ㅋㅋ

아무 2017-01-22 23:17   좋아요 1 | URL
얇음이 얕음을 담보하는 건 아니니까요 ㅎㅎ 아 물론 <마담 보바리>가 얕다는 뜻은 아닙니다. 고등학교 때 읽다 포기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조만간 꼭 다시 도전을!!ㅋㅋ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쓰게 된 기획을 보면 그냥 축사 같은 글이었을 텐데 이 사람은 이런 글도 허투루 쓰지 않는구나 하는.. 낭시의 글도 좋았고, 뒤에 붙은 조재룡 평론가의 글도 좋았습니다^^ 리뷰 다 쓰고 나서부터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을 펼쳤는데, ‘이렇게 말해도 초등학생들이 알아 듣는단 말야?‘라는 생각을 했어요 ㅋㅋ
<불과 글>도 처음 나왔을 때부터 제가 노리고 있던 책인데요.. 저의 아감벤 읽기는 언제쯤..ㅠㅠ
 


어제 헌책방 사이트를 이리저리 뒤지며 열심히 웹서핑을 하던 중 헌책 두 권을 찾아 구입했는데, 그 중 한 권이 루이 알튀세르의 『아미엥에서의 주장』이었다. 알라딘 중고에도 몇 권 올라와 있지만 가격이 2만원대를 넘는 수준이라 망설이던 차에 옥션에서 4,500원에 판다고 올라와 있길래 얼른 주문했다. 그러다가 오늘 낮에 알 수 없는 번호로부터 '책에 볼펜 밑줄과 낙서가 많아 판매를 취소하려 한다'는 문자를 받고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나는 읽을 수 없을 정도만 아니면 괜찮다고, 그런 파손만 없으면 '무조건' 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답장을 보냈다.



이후 보내준 사진을 보니 밑줄이 있긴 했으나 엄청 심한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받은 『읽기이론/이론읽기』도 밑줄이 만만치 않아 어떤 페이지는 한 쪽 전체에 밑줄이 그어진 경우도 있었으나, 페이지 손상은 없는 듯하여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받았다(그래서인지 택배 상자에는 맥심 커피가 두 개 들어 있었다). 그것에 비하면 『아미엥에서의 주장』은 양호한 수준인 듯하다. 부산에서 오는 것이라 다음 주는 돼야 도착하겠지만. 이 책을 구매한 건 『마르크스를 위하여』를 읽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내가 알고 있는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ISS)를 이야기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다..



내가 찾는 헌책들은 그밖에도 몇 권이 있지만, 바흐친의 『예술과 책임』, 레비나스의 『윤리와 무한』은 정말 찾기 힘든 책이다. 바흐친의 경우 『프로이트주의』는 알라딘에도 몇 권이 고가에 거래되고 있지만, 『예술과 책임』은 주요 인터넷서점과 여러 헌책방 사이트를 매일 검색해도 도통 나오지 않는다. 『윤리와 무한』도 마찬가지여서 검색하면 '무한도전 윤리' 같은 문제집만 계속 나온다. 몇 달 동안 이틀에 한 번꼴로 검색중인데..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다시 검색하러 가야겠다. 혹시 어디서 파는지 아시는 분은 제가 '무조건' 살 의향이 있으니 꼭 연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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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2017-01-21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올리고 나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두 책 모두 인터파크, 예스24, 교보문고 중고에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가격이 다 짜고 올린 듯이 전부 9만 5천원... 나로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가격이다.. 눈물을 머금고 이번엔 그냥 보내야겠다.

북깨비 2017-01-22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헌책 사냥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해요. ^^

아무 2017-01-22 14:47   좋아요 1 | URL
흥미진진하셨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ㅎㅎ 다음엔 꼭 구할 수 있기를..

cyrus 2017-01-22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판매자님이 마음이 좋으신 분이군요. 저도 정말 비싼 가격의 중고책을 주문했는데, 돌연 주문 취소 통보를 받았어요.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았어요. 제가 주문한 책 금액이 5만 원이었어요. 당연히 금액을 돌려받았지만 그때 너무 아쉬워서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다행히 사지 못한 책을 구하는 데 성공했어요. 그 책이 토머스 핀천의 <브이를 찾아서>입니다. ^^

아무 2017-01-22 15:26   좋아요 0 | URL
아 그 책도 진짜 구하기 힘든 책인데, 정말 아쉬우셨겠어요ㅠㅠ 핀천의 다른 책들은 조금씩 번역되는 것 같은데, 그 책만 새로 나온다는 소식이 없어 항상 아쉽습니다.. 저도 5만원까지면 둘 중 한권이라도 주문했을텐데..ㅠㅠ

2017-02-19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9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수저
나카 칸스케 지음, 양윤옥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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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의, 풍속의 세계에 머물고 싶었으나 결국 헛된 바람일 뿐. 그렇게 인간은 어른이 되고 어린아이의 눈을 잃는다.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공들여 묘사된 풍속이 읽기의 원동력이지만, 그것도 성장소설의 뻔한 구도에 머문다. 왜 시제의 차이를 두었는지 나는 파악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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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을 보다가 우연히 문학과지성사 이벤트를 하는 것을 보고 집에 있는 책들을 끌어모아 보았는데, 생각보다 문지 책이 많지 않았다. 책장 한 칸을 겨우 차지할 정도니.. (도서관 책이 한 권 있는 것 같다면 기분 탓이다) 더욱이 읽지 못한 책이 예상 외로 많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책장 한 칸을 차지하는 것에 안도하고, 동시에 분발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떠오르는 문지의 첫 이미지는 최인훈의 『광장』이다. 고등학생 때 처음 친구의 책을 빌려서 보았으니 빠른 만남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는 출판사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없던 상태였으니 문지 책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읽었을 것이다(그리고 난 아직까지 「구운몽」을 읽지 못했다...). 그리고 나서 내가 구입한 책이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이었는데, 이 때 산 책은 교실에서 돌고 돌다가 실종되었고 나는 책을 다시 사야 했다. 하기야 그때 돌면서 이미 표지도 사라진 상태라 다시 사는 게 나은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명작선 중 가지고 있는 책은 『당신들의 천국』 하나뿐이지만, 이 책은 여전히 내가 읽은 한국소설 중 최고의 자리에 있다.



대산세계문학총서나 문학과지성 시인선, 소설 명작선 등 문지를 대표하는 시리즈들은 많지만, 요즘 나는 그 중에서도 '우리 시대의 고전' 시리즈와 '현대의 지성' 시리즈에 마음이 간다. '우리 시대의 고전' 중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블랑쇼와 낭시의 『밝힐 수 없는 공동체 / 마주한 공동체』 한 권이지만, 시리즈를 검색해서 보고 있으면 언젠가 구입하겠구나 싶은 책들이 많이 보인다. 이런 책들이 어떻게 한 출판사에서 나왔나 싶을 정도로. 물론 이 시리즈는 만만해 보이는 책이 없어서 한 권씩 볼 때마다 험난한 여정이 예상될 때가 많다...


 

'현대의 지성' 시리즈에 눈길이 가는 건 내가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타자', '환대', '기호학' 등등.. 그래서 레비나스로 눈을 돌렸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조금씩 읽고 있는 『서양철학사』(이학사)에서는 레비나스를 다루지 않았다(적어도 목차를 봤을 때는). 그래서 최근에 『시간과 타자』(문예출판사)를 구입했는데, 레비나스의 주저라고 불리는 『전체성과 무한』은 번역본이 없어 2차 텍스트로만 볼 수 있다. 그래서 혹시, 강영안 교수께서 직접 번역할 생각은 없는지.. 그렇게 해서 '우리 시대의 고전' 시리즈로 내면 될 것 같은데...



끝으로 문지의 한국문학전집에 대해서 작은 아쉬움 하나만 이야기하고 싶다. 고등학생 시절, 그리고 학부생 시절에 한국 근현대 문학작품을 읽어야 했던 시기, 문지의 한국문학전집은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표지 디자인도 일관되고 산뜻하고, 책 크기도 적당하고, 뒤에 실린 해설들도 좋았다. 하지만 각주가 아닌 미주는 읽을 때 많은 불편을 주었다. 근대문학일수록 더 불편한 것은 그 시절 사용되던 어휘가 지금과 달라 주석이 없으면 이해가 어려운 까닭이다(『삼대』나 『고향』 같은 작품은 고역이다). 그래서 나는 문지 전집을 더 좋아했음에도 미주의 불편함 때문에 현대문학 출판사에서 나온 전집을 찾아 읽는 일이 잦았다. 지금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으나, 아직도 그렇다면 개선을 좀...


 

많은 사람들이 문지 하면 떠올리는 것은 문학과지성 시인선이겠으나, 너무 유명해서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책들이, 특히 80년대에 나온 시집들이 내 시심(詩心)의 중핵을 이루고 있음은 분명하다. 최승자, 이성복, 황지우... 그들의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며(별 헤는 밤이 떠오른다면 기분 탓이다) 마무리해야겠다..


p.s 1) 사진을 찍으려고 책을 모을 때 문지 책도 아니면서 꽂아보려 했던 책은 낭시의 『무위의 공동체』(인간사랑)였다. 출판사는 다르지만, 『밝힐 수 없는 공동체 / 마주한 공동체』의 짝이니까. 하지만 뒤늦게 발견한 말라르메의 『시집』에 밀려 결국 물러나고 말았다.


p.s 2) '현대의 지성' 시리즈 중 내가 갖고 있는 책은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가 전부다. 작년 초에 샀으나 여전히 다른 책에 치이고 있는, 볼 때마다 '봐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 그러다 작년 가을 무렵 문지 페이스북에서 이 책에 교정사항이 있다는 공지를 보고 캡처해 놓았다(아직 내 책에 표시하진 않았다). 이미 책을 읽으신 분들이 바로잡으셨으면 하는 마음에 사진을 올려둔다. 핵심적인 내용이 수정된 것은 아닌 듯하고, 내가 갖고 있는 책은 7쇄다.



p.s 3) 글을 다 쓰고 보니 이 이벤트는 리뷰에만 적용되는 모양이다. 생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생고생의 결과는 그냥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벤트가 언제까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번 주에 읽어야 할 책 중에 문지 책은 없다...

 

p.s 4) 아무리 수정해도 되지 않길래 어제 밤에 쓴 글을 삭제하고 다시 응모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제 읽고 공감해주신 분과 댓글 남겨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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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20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님, 글 위에 ‘이벤트 참여 중’ 단어가 없어요. 마이페이퍼로 작성해서 글쓰기 창 위에 ‘이벤트 응모하기’에 체크해야 합니다. 체크 안 된 게시물은 이벤트 게시판에 보이지 않습니다. 정성들여 쓴 글을 삭제하고 다시 업로드할 때 난감합니다. ^^;;

아무 2017-01-20 11:54   좋아요 0 | URL
이번에 쓸 때는 체크하고 썼는데도 글 위에 안 뜨더라구요ㅠ 그래서 문지 이벤트창으로 들어가니 제 글이 참여중인 걸로 올라와있길래.. 아무래도 예전처럼 글에 참여중을 띄워주진 않는 것 같습니다^^;; 헷갈리지 않도록 올려주는 게 나을 것 같아요ㅠ

cyrus 2017-01-20 11:57   좋아요 1 | URL
아, 그래요! 몇 달 동안 출판사 사진 이벤트를 하지 않아서 모르고 있었어요. 저도 조만간 문지 이벤트 응모하려고 이번 주말에 책장을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

cyrus 2017-01-20 14:42   좋아요 1 | URL
방금 글쓰기 테스트 해봤는데, 정말 ‘응모 중’ 문구가 안 나오네요.

아무 2017-01-20 15:40   좋아요 0 | URL
오늘 다시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어제도 내가 착각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정할 때면 체크란도 안 나오고ㅠㅠ 사소한 거지만 ‘응모 중‘ 문구가 나오는 게 훨씬 편할 것 같습니다.. ^^;;
 

1월이 되면서 내 일상은 또다른 변곡점을 맞았고, 덕분에 항상성을 유지하던 일상은 롤러코스터에 올랐다. 해가 뜨기 전에 집에서 나와 해가 진 후 집에 들어오는 일상, 그리고 잠깐도 눈 돌릴 틈이 없는 일상, 책 한 장도 넘길 수 없이 흘러간 일상. 감히 말하자면 지난 1년보다 몇 배는 힘들고 고되었던 2주였다. 보통 이렇게 바쁘면 아무런 생각도 없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바쁜 와중에도 어딘가 텅 비어 있는 기분, 허전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글의 부제는 '때늦은 애도'이다. 나에게 그동안 애도의 시간마저 없었음을 한탄하면서..


현자들이 점점 세상을 뜨고 있었다. 에코도 죽었고, 존 버거도 죽었고, 바우만도 죽었다. 평균 연령보다 높은 생을 누리다 죽었으니 급작스러운 부고는 아니겠으나, 그렇다고 이것을 호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기엔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이 너무나 강렬하게 그들의 목소리를 원한다. 하지만 그들은 떠났고, 남은 자들에게는 그들의 책만이 남았다.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남은 자들의 몫이다.






























존 버거의 죽음은 새해 들어 처음으로 듣게 된 부고였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내가 여태 그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집에 있는 책은 『다른 방식으로 보기』 하나뿐이다. 그의 부고 소식을 듣고 겨우 짬을 내어 작년 EIDF 출품작 <존 버거의 사계>를 보았다. 제목만 보면 존 버거와 보내는 사계절 이야기 같지만, 각각의 계절이 다루는 내용은 너무도 이질적이다. 이 다큐는 존 버거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편린 몇 조각만을 던져준다. 김현우 피디는 "연출자는 사상가로서 존 버거의 생각을 90분 안에 친절하게 설명하는 방식을 택하는 대신, 얼핏 혼란스럽지만 그의 활동을 형식적으로도 대변하는 구성을 택"했다고 썼다. 여태 미뤄두기만 했던 독서를 다큐로 달래며, 나는 『제7의 인간』이라는 책을 리스트에 추가했다. 8호부터 작가-번역가 시리즈를 싣고 있는 악스트는(굳이 설명하면 두 개의 글인데, 번역가가 본 작가, 편집자가 본 번역가 순이다), 이번 호에서 존 버거에 대한 김현우 피디의 글과 함께 존 버거의 「자화상」을 실었다. 밀린 악스트를 얼른 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애도하는 마음으로 그의 책을 정리해본다. 일단 가지고 있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부터..




























바우만의 죽음이 나에게는 더 크게 다가왔는데, 그것은 이미 그의 책을 몇 권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맨 처음으로 읽었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 나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아서, 그와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다가 『액체근대』를 읽으며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했고, 그의 책을 열심히 찾아서 사기 시작했다. 『액체근대』의 문제의식은 2000년에 발표된 책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현재도 유효하다고 나는 생각하며, 그가 21세기에 가장 의미있게 다루어져야 할 사회학자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나온 책들이 줄곧 대담집이어서 그가 직접 저술한 책이 나왔으면 하고 내심 바랐는데, 결국 그 희망은 허망한 것이 되었다.


바우만의 책이 국내에 나온 양도 꽤 많고 독자층이 적지 않은데도, 국내 학계에서는 그리 크게 연구되지 않는 모양이다. 부고 소식을 듣고 내가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를 검색해 보았을 때, 서평을 제외하면 그를 다룬 논문은 열 편이 채 되지 않았다. 혹자는 바우만의 책이 체계를 따르지 않아서 학자들이 외면하는 것 같다고 했는데, 문화비평가 또는 사회비평가 정도로 다루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그의 사상이 가장 절실한 시기는 바로 지금이 아닐까.


바우만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책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이다. 이 책을 발표했을 때 바우만은 60대였다...(그래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인가) 임지현 교수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테제를 한 걸음 더 밀고 나아간 홀로코스트에 대한 '악(惡)의 합리성' 테제"라고 평했는데, 내가 읽게 될 바우만의 다섯 번째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네 번째 책은 사놓고 여태 읽고 있지 않은 『사회학의 쓸모』이다..


바우만의 책에서 줄곧 강조되는 결론은 비판적 회의주의인데, 이런 대안을 두고 구체적이지 않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나는 지금처럼 비판적 회의주의가 절실했던 시기를 만난 적이 없다... 사유의 부재를 자랑처럼 늘어놓는 시대에 비판적 회의주의만큼 구체적인 대안이 있을까. 그런 점에서도 가장 절실한 생각을 내놓았던 한 현자의 죽음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결국 이들의 죽음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끝없는 회의가 남는 자들의 몫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 내가 처음 『액체근대』를 읽고 남긴 별점은 네 개였는데, 이것은 내가 그의 사상에 동조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괄호를 닫지 않은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처음엔 번역만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한 바우만의 문체이다. 대담집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바우만의 문체는 긴 만연체를 자랑하고 삽입절도 많이 쓰인다. 특히 삽입절은 한국에 익숙하지 않은 문체여서 바우만 읽기를 주저하게 되는 요인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천천히 곱씹으며 읽으면 다 읽히는 문장이고, 그 고행만 잘 참고 넘기면 현대 사회에 대한 가장 비판적인 통찰을 남긴 바우만과 마주할 수 있다..



사회학을 하는 길에서 `참여`와 `중립`을 선택할 여지는 없다. 참여하지 않는 사회학은 아예 불가능하다. 대놓고 밝히는 자유주의적 입장에서부터 철두철미한 공동체주의적 입장까지 오늘날 통용되는 수많은 사회학 상표들 한가운데서 도덕적 중립 입장을 취하려 한다면 이는 헛된 노력이다. 사회학자들은 자신들의 글이 지닌 `세계관`의 효과나, 인간의 개별적 혹은 연대의 행동에 그 세계관이 미치는 여파를 부정하거나 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모든 다른 인간들이 나날이 직면하고 있는 선택의 책임을 저버리는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사회학이 하는 일은 그러한 선택들이 진정 자유로운지, 인류가 지속되는 동안 그 자유가 유지되는지, 더욱 더 자유로워지는지 잘 살펴보는 일이다. (『액체근대』, 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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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18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말로 번역된 바우만의 글이 읽기 어려워서 학자들 입장에서는 연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바우만이 책에서 언급한 핵심 개념이나 용어를 통일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

아무 2017-01-18 17:45   좋아요 0 | URL
liquid modernity만 해도 제각각이긴 하죠. 액체근대, 유동하는 근대/현대 등.. 일단 modernity가 우리나라에서 근대/현대로 둘 다 번역되는데, 그 차이가 많이 크다 보니... 바우만이나 존 버거의 평전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벤야민 평전도 여태 안 나오고 있는 현실이지만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