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26.










이중 하나는 거짓말읽기. 새로 나온 니트 에디션의 디자인이 셋 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구입을 미루고 있다가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 채운과 소리와 지우의 이야기가 처음에는 따로 진행되는 듯하다가 조금씩 엮이기 시작. 문득 청소년문학과 성인 문학(?)의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면 청소년문학일까? 그렇다면 이 책은 청소년문학일까? 나에게 청소년문학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보통 결말 처리 방식인데, 그렇다면 죽이고 싶은 아이당연하게도 나는 너를은 그런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 같고


 

25.3.29.

이중 하나는 거짓말완독.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나 문장의 세공력, 인물에게 몰입하게 만드는 스토리에는 감탄하며 읽었으나, 하나씩 드러나는 진실을 보며 거짓말’, ‘비밀이라는 소재가 하나의 테마로 모이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의 비밀이 다른 비밀을 돕는다는 말이 잘 와닿지 않는 이유이기도. 알면서 외면했거나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실을 하나씩 마주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세 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느꼈던 처연함은 잔잔하게 오래 남았다.


아버지는 자신이 빈말 못하고 솔직하다는 사실을 늘 자랑스러워했다. 실은 그게 어떤 무능을 뜻하는지 잘 알지 못하면서. (75)


지우가 잠시 숨을 가눈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난이란……

지우는 문득 교실 안이 조용해지는 걸 느꼈다.

-가난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

지우는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지만 조금 의연해진 투로 다음 문장을 읽어나갔다.

-작은 사건이 큰 재난이 되는 것. 복구가 잘 안 되는 것…… (85)


지우는 방과후 청소를 하다 미술 선생님 책상에서 낡은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아동'이니 '치료'니 하는 말이 적힌 학술 도서였다. 지우는 별생각 없이 그 책의 책장을 스르륵 넘겼다. 그러곤 익명의 아동들이 그린 어둡고 기이한 그림을 보다 문득 어떤 문장 앞에 멈췄다.

 

미술은 자기 정화 효과가 있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문제를 설명해주지만 쉽게 고통을 덜어주지는 않는다.

 

지우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그 문장을 한번 더 훑었다. '쉽게 고통을 덜어주지 않는다'는 말, 믿을 만한 말이라 생각했다. (119)


'이야기가 가장 무서워질 때는 언제인가?'

소리가 슬픈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때.'

그런데 채운은 지금 무서운 이야기 속에 갇혀 있는 모양이라고, 거기서 잘 빠져나오도록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리는 곧 채운과 만날 예정이었고, 그건 하나의 비밀이 다른 비밀을 돕는다는 뜻이었다. (134-135)


눈앞에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온 힘을 다해 다른 선택지를 찾는 건 도망이 아니라 기도니까. (182)


지우가 이해하기로 지우개는 뭔가를 없앨 뿐 아니라 '있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대상에 빛을 드리우고 그림자를 입힐때 꼭 필요했다. 그 대상이 사물이거나 인물, 심지어 신일 때조차 그랬다. 누구든 신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서는 신의 얼굴을 조금 지워야 했다. '광원', 즉 빛이 출발한 곳을 먼저 파악해 빛이 닿는 곳은 어둡게, 그렇지 않은 데는 밝게 표현하는 게 기본이었다. (200)


이 게임의 목적은 얼핏 '거짓 가려내기' 같지만 실제로 이 게임에서 중요한 건 '누구나 들어도 좋을' '아무에게나 말해도 되는' 진실만 말하는 거였다. 당연했다. 누구도 초면에 무거운 비밀을 털어놓지는 않으니까. (226)


지우는 그보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자신이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 이야기, 그래도 괜찮음을 알려주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떠나기, 변하기, 돌아오기, 그리고 그사이 벌어지는 여러 성장들. 하지만 실제 우리는 그냥 돌아갈 뿐이라고, 그러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당시 자기 안의 무언가가 미세히 변했음을 깨닫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 삶의 나침반 속 바늘 이미지의 자성을 향해 약하게 떨릴 때가 있는 것 같다고. 그런데 그런 것도 성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는데다 거의 표도 안 나는 그 정도의 변화도? 혹은 변화 없음? 지우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다만 거기에는 조금 다른 이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지우는 그 과정에서 겪을 실망과 모욕을 포함해 이 모든 걸 어딘가 남겨둬야겠다 생각했다. (233)

















서리북 17호 읽기. 여전히 지지부진한 헌법의 시간에 통탄을 금치 못하며 서평들을 읽는다. 제헌 헌법이 만들어지던 순간을 다룬 헌법의 순간도 흥미로웠지만 내 눈길을 더 끌었던 것은 히틀러의 법률가들이었다. 나치나 홀로코스트를 떠올릴 때면 끔찍하고 잔혹한 행위들의 이미지 때문에 행위자/세력들을 악마화하거나 단순화, 또는 추상화하여 떠올리는 경향이 있는 듯하지만, 책과 서평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들은 갑자기 대뜸 등장해서 학살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 하나하나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가며 학살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



유정훈_헌법을 공부하는 슬픔과 기쁨














미국에는 헌법 해석에 관한 원전주의(originalism)라는 흐름이 있다. 법철학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보수 진영의 대법관들이 연방대법원 판결에 적용하는 법리다. 헌법은 헌법 기초자가 의도했던 바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헌법은 제정 당시 기초자에 의해 확정된 문서로서 후대의 해석자에 의한 변경은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헌법을 '죽은 문서'라 칭하는 경우마저 있다. 법원의 헌법 해석 원칙이 이렇다면, 헌법 제정 당시 회의록은 역사에 그치지 않고 법 실무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된다. (17-18)


대부분의 개헌은 권력자의 집권 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혹은 쿠데타와 계엄 같은 비정상적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정치권의 합의와 통상적 절차에 따른 개헌은 1960년의 3차 개헌 그리고 1987년의 9차 개헌 정도인데, 그 역시도 4.19 혁명과 19876월 민주화운동이라는 정치적 격변의 결과였다. 우리에게 '개헌'은 제헌헌법을 토대로 부족한 부분이나 시대 상황에 맞지 않는 조항을 고쳐 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존 헌법을 '갈아엎는 작업'이었다. 제정 당시 조문은 그대로 둔 채 수정헌법 조항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미국의 개헌과는 사뭇 다르다. (18)


적어도 초등교육은 의무적이며 무상으로 한다라고 규정한 제헌헌법 제16조에 '적어도'라는 문구가 들어간 과정, 무상의 범위에 관한 의원들의 논쟁 역시 인상적이다.(137-140) 이 부분을 읽으며 현행 헌법 제31조를 찾아보니,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는 내용 외에도 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라는 조항이 있다. 치열한 논쟁을 거쳐 제헌헌법에 들어간 '적어도'라는 세 글자는 지금도 우리 헌법의 일부이다.

헌법을 처음 배울 때 접했던, 무상교육은 왜 수업료에 국한되지 않고 의무교육에 필요한 일체의 비용을 포괄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변은 헌법 공부에 흥미를 느끼게 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헌법 조문을 놓고 직접 다툰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는 무상급식 이슈 때문에 이 문제를 실천적으로 경험하기도 했다. 그런데 무상교육 범위에 관한 대부분의 쟁점에 관한 논의는 제헌헌법 당시 이미 치열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무상·의무교육이라는 원칙과 신생 국가의 국력이라는 제약 사이에서, 헌법의 기초자들은 '적어도'라는 문구를 넣음으로써 무상·의무교육에 관하여는 앞으로 나아갈 일만 있어야지 후퇴나 축소는 없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했다. (21)


이용우_탄핵의 딜레마 














탄핵은 14세기 영국에서 군주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시작되었으며, 고위 공직자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제도로 발전했다. 미국은 이를 차용하여, 공화정과 권력 분립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 장치로 탄핵을 활용했다. 이철희는 탄핵을 '헌정 질서를 유지하면서 나쁜 권력을 축출하는 절차적 장치'로 정의하며, 권력 남용과 헌법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탄핵이 정치적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과 당파성이 개입되는 본질적 한계를 지적한다. (28-29)


탄핵 제도가 도입된 이유는 첫째, 권력을 통제하고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탄핵은 권력이 집중되고 남용될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장치로 설계되었다. 특히, 권력자가 법 위에 군림하지 않도록 하고, 공직자가 공익과 국민 신뢰를 저버릴 경우 이를 바로잡는 헌법적 조치이다. 둘째, 헌정체제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영국과 미국에서 모두 탄핵은 체제 자체를 붕괴시키기보다는, 체제 내에서 권력 남용을 바로잡아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되었다. 이철희는 이를 두고 탄핵은 '헌정 질서를 유지하면서 나쁜 권력을 축출하는 절차적 장치'라고 설명한다.

다른 한편 탄핵은 정치적 도구로 당파성을 지닌다. 탄핵은 본래 법적이고 헌법적인 절차지만, 그 도입 배경에는 강력한 정치적 동기가 자리 잡고 있다. 권력 간 균형을 잡기 위한 제도적 수단이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 탄핵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필연적으로 개입되는 것으로 의회에서의 탄핵 소추 의결은 정당 간의 권력 균형과 정치적 계산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다수당이 정치적 우위를 확보하거나 반대 세력을 제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탄핵이 민주적 책임성을 높이는 장치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도구로 오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29)


탄핵은 정당 간의 극심한 갈등을 초래하고,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협력적 관계를 파괴할 수 있다. 대통령이나 고위공직자가 탄핵 위기에 처할 경우, 국가 운영이 마비되거나 중요한 정책 추진이 중단될 위험이 생긴다. 또한 탄핵은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는 대신, 문제를 법적 영역으로 넘기며 정치권의 책임 회피를 초래할 수 있다. 정치적 논의와 타협 대신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에 의존하면, 대의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기능이 위축될 수 있는 것이다. 국민 여론을 둘로 나누고, 정치적 분열과 대립을 심화하고, 특히 탄핵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추진되었을 경우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신뢰를 약화할 위험이 증폭되고 사회적 분열을 가속화한다. (33)


12·3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의 진행 과정에서 우리는 민주공화국을 지탱하는 서로 다른 이해를 갖는 집단의 사회적 합의 절차로서 정치를 없애고 극단적 대립과 헌법 기구 자체를 부정하는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 대통령이 사적인 목적을 위해 국가의 무력으로 헌법 기관의 작동을 멈추려한 데 이어 대중 동원을 통해 이 행위의 정당성을 찾으려 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 제도를 부정하고 법원에 난입하는 극단적 대립이 나타나고 있다. 사실 이는 탄핵 제도가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불완전성에 기인한다. 이 불완전성은 법적 정당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해 보완되어야 한다. 따라서 작금의 탄핵 정국이 단순히 한 권력자의 축출 여부를 넘어, 민주적 헌정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계기가 될 것인지 주목해야 한다. (35)


이황희_법은 어떻게 정의와 멀어지는가














근대 입헌주의는 18세기 말 미국과 프랑스에서 발생한 시민혁명의 결과로 탄생했는데, 이 새로운 이념은 신분이 아닌 개인을 사회 질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여기서 개인은 과거에 사회를 하나의 질서로 묶어 주었던 종교나 인습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평등한 자유의 주체로서 각자가 자신의 도덕적 세계의 중심으로 간주되었다. 평등한 자유의 사적·공적 실현이라는 규범적 이상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지속적인 요구를 생성했고, 이는 그에 적합한 정치적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동력이 되었다. 이로써 국가 권력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권력은 분할되어야 하고, 상호 견제되어야 하며, 법에 구속되어야 한다.

파시즘의 영향에 따라 개인에 대한 집단의 우위를 관철하고자 한 나치는 이러한 근대 입헌주의의 역사적 기획과 대결을 피할 수 없었다. 우선, 근대 입헌주의의 자장 안에 놓여 있는 바이마르 헌법의 규범적 영향력을 극복해야 했다. 이 극복은 특히 '수권법'이라 불리는 '민족과 제국의 비상사태 해결을 위한 법'(1933.3.24.)'제국 재건에 관한 법'(1934.1.30.)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전자는 "정부가 의회의 감시 없이도 법을 제정하고 헌법을 수정할 수 있도록 승인"(69)한 법이고, 후자는 각 주의회를 중단시키고 그 주권을 제국에 넘김으로써 독일의 연방 구조를 뒤엎어"(70) 버린 법이다. 두 법은 모두 형식적으로는 바이마르 헌법으로부터 탄생했으나, 내용적으로는 자신을 잉태한 헌법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역설을 남겼다. (41-43) 


그들은 먼저 근대 입헌주의의 주축을 이루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편적인 것'이 아닌 '맥락적인 것'으로 재규정했다. 이러한 자유와 권리는 “19세기 군주국가를 겨냥했던 종류의 운동에서나 성립한다"(78)는 것이다. 개인의 주관적 공권을 강조하는 생각은 '통치자와 시민이 대립하는 체제'와 같은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서나 유의미하므로, 나치 국가처럼 개인이 민족공동체의 구성원이 된 새로운 질서에서는 이러한 권리가 필요하지 않다고도 했다. 여기서 개인은 민족공동체의 질서에 따르는 범위에서만 법적 지위를 누리게 된다. 법은 개인의 이익을 보호하는 대신 공동체를 육성"(21)하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의식이 약화되면, 국가 권력의 남용에 대한 경계심도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다. 나치 법률가들이 권력 분립, 견제와 균형 같은 근대 입헌주의의 요소와 손쉽게 결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그들은 권력의 집중을 정당화하고, "한 사람의 손에 최고의 정치적 리더십이 온전히 주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98)라고 주장했다. 권한의 남용 문제는 정치적 지도자의 개인적 자질을 통해 방지할 수 있다고도 보았다. (43)


그간 주류적인 설명은 나치 정권이 법을 이용해 무도한 행태를 보일 수 있었던 책임을 법실증주의에서 찾아왔다. 법실증주의는 법과 도덕을 분리하여 사고하는 탓에, 나치의 부정의한 법을 유효하게 통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나치 법률가들이 법실증주의에 매우 비판적이었음을 지적한다. 오히려 그들은 "법과 도덕의 통합”(244)을 옹호했고, 저자는 이것을 나치 법이론의 가장 큰 특징으로 규정한다. (45)


그러나 나치 법이론의 문제는, 법과 도덕의 연관성 그 자체가 아니라, 법이 어떤 도덕과 연관되어 있는가에 있었다. 도덕이란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행동과 그 조정에 관한 규범 체계를 말하는데, 우리는 통상 정직, 성실, 타인에 대한 존중 등을 떠올린다. 그 반면에, 나치는 다른 방향의 도덕을 추구했다. 그들은 민족공동체나 인종적 동질성 개념을 법의 도덕화를 위한 토대로 삼고, 명예, 충성, 품위 같은 윤리적 개념을 법적 개념으로 변형시켰다. 인종적 균등 같은 "동질적 민족공동체 신화"(251)의 요소들도 법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45)


한편, 나치 법률가들이 추구한 법의 도덕화는 국가 권력이 개인의 내적 영역에 더 깊이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법 규범과 윤리 규범의 차이를 지운다면 국가는 행위에 관한 외적 자유의 영역만이 아니라, 내심(신념, 가치, 동기 등)에 관한 내적 자유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된다. 원래 윤리에 관한 내심의 문제는 사적 자율의 대상일 뿐 국가 입법의 대상이 아니었다. 내면의 윤리적 헌신은 개인의 고결함에 관한 문제이지 국가의 강제력이 미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이 도덕을 자신의 내용으로 동원한다면, 단순한 규범의 준수만이 아니라 윤리적 동기까지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정권의 권력 강화라는 결과는 불가피했다. (46)


그렇다면, 나치 법이론의 재생을 막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릇된 도덕에 매몰되어 있었던 나치와 달리, 올바른 도덕을 법에 새기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법과 도덕의 분리라는 법실증주의의 핵심 주장을 옹호하면서 "도덕과 법을 별개의 규범 영역으로 다루어야" (276) 함을 강조한다. 그와 동시에 공표성, 투명성, 이해 가능성, 신뢰성, 예측 가능성, 일관성, 소급 입법 금지 같은 조건들을 법체계의 규범적 요건으로 설정함으로써 자의적인 권한 행사를 억제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 공정성, 법 앞의 평등, 적법 절차, 공정 절차 등을 포괄하는 정의 개념을 추가함으로써 법체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로 치면 이들은 헌법의 실정 규범과 기본 원리로 포섭할 수 있는 내용이다. 우리가 헌법을 제대로 실현한다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과제들이다. (47)


법의 정당성을 내재적으로 산출해야 하는 근대 입헌주의에서 법은 민주적으로 제정된 실정법이며 헌법이 정한 요건에 따라 비로소 확정된다. 그러나 헌법이 정한 요건 자체만으로 법의 타락가능성이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의 타락을 막는 최후의 방벽은 정의로운 법에 의해 통치되기를 원하는 국민의 요구와 이를 위한 실천이다. 법에 대한 최종적인 감독자는 법의 궁극적인 작성자인 국민이기 때문이다.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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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4-02 0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씨(청소년)하고 마주앉아서,
푸른씨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함께 소리내어 읽을 수 있다면 ‘청소년문학‘입니다.
여러모로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 푸른글(청소년문학)이 한참 멀었습니다.
푸른씨가 눈앞에서 목소리를 들으면서 느끼기에 창피한 글(표현)이 많더군요.

철들어 가면서 스스로 새롭게 ‘어른‘으로 어질게 피어나는 때인 푸른날이기에,
이러한 푸른날에 푸른씨한테 푸른숲으로 나아가는 푸른씨앗을 심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푸른글이라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집 두 푸른씨하고 으레 소리를 내어 책을 함께 읽으면서
느낀 바를 적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