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순간은 언제나 도둑처럼 온다. 이번 달 역시 그러했고, 나는 2주만에 당장 이사할 수 있는 방을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높디높은 서울 부동산 가격을 실감하며 겨우 계약을 하고, 오늘부로 이사를 마쳤다. 그리고 새로운 3월을 준비하면서 이사 준비까지 마쳐야 하는 탓에 정신없는 2주를 보냈다. 사실 생각해보면 2월 초부터 내 정신은 이미 없었던 것도 같다. 아니 더 오래되었나..?
이사를 할 때 내가 세웠던 원칙은 단 하나였다. 미니멀리즘. 군더더기 같은 짐은 과감히 버리자는 것이었으나, 이것 때문에 이삿짐을 꾸리면서 많은 충돌이 있었다(주로 부모님과). 그러나 가장 큰 싸움은 어떤 책을 가져가고 어떤 책을 집에 둘 것인가 하는 나와의 싸움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원칙은 1. 읽지 않은 책을 우선 챙긴다. 2. 읽다 만 책을 챙긴다. 3. 자주 참고해야 할 책을 챙긴다. 였지만, 자꾸 눈에 밟히는 책들이 띄고, 조만간 보아야 할 것 같은 책들도 자꾸 눈에 들어왔다. 정작 당분간 책을 읽을 시간마저 없을 것 같은 나날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이를 악물며 서가에 꽂힌 책들을 추려 작은 박스 하나에 담고, 오늘 이사하면서 진열식을 마쳤다.
옆에 책장이 한 칸 더 있으나, 서랍장이 따로 없는 관계로 잡동사니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꽂힌 걸 보면서도 '그 책도 가져왔어야 하는 건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 책장이 새로운 책으로 꽉 찰 날이 머지 않았음을 짐작하건만..
새로운 일은 3월부터 시작된다. 아마 한동안 적응하느라 책에는 손도 대지 못할 것이고, 지금도 3월을 준비하느라 마음만 계속 바쁘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상태랄까. 다만 이런 과도기가 얼른 지나가 책을 여유롭게 손에 집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당장 눈에 밟히는 것은 1장만 읽고 덮어둔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