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오랫동안 집을 비워놓은 적이 아마 없었을 것이다. 예정에도 의도에도 없던 그냥 그렇고 그런 날들의 연속이다 보니 잠시 잊었다랄까.  까맣게 잊을 정도는 아니지만 잊은 척에 가까운 방임이다. 유쾌하게 살지는 못했다. 행복했다라고도 말하기가 껄끄럽다. 불행과 행복의 중간 정도면 나쁘지 않겠다. 의식이건 무의식이건. 별일도 없이 이렇게 오랜시간을 무얼하고 살았던 건지,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서 어쩔수가 없었다고 한다면 믿을라나. 헛헛한 웃음이 나는 걸 보면 아닐거다. 오늘, 갑작스런 변덕은 맥주 한캔의 마법이다. J가 사온 라이트맥주가 어찌나 부드럽게 목안으로 빨려들어가는지 간만에 마신 술맛에 뿅 갔다. 술, 거의 안마신다. 거의, 아주가 아닌 거의. 때때로 기분에 따라서는 맛나게 들이키거나  홀짝거리지만 어지간해서는 즐기지 않는 것이 술인데, 이 술이란 것에 약간의 의도된 심리적 거부반응이 있어서다. 할아버지가 술을 즐기시다 술 장사도 하셨고 술 주정도 상식 이하였고, 젤 큰 아버지도 술만 들어가면 주사가 장난이 아니셨고 아버지에 대한 나쁜 기억의 전부는 술에 의해서였고(술만 아니면 천하의 둘도없는 호인), 그래서인지 거나하게 취해서 말실수하는 사람과는 상종을 하기가 싫었고 취해서 붉어진 사람 얼굴도 무진장 싫어하고(그러면서 술만 들어가면 빨개지는 얼굴의 소유자면서), 암튼 술과 나는 악연도 인연이라면 인연인 셈이다. 집안이 주당이다보니 작정하면 제법 마신다는 것도 사실 슬프다. 술만큼 멋진 벗도 없다는 데 동의하기에 빌어먹을 나의 선입견이 애달프다. 그러나 어쩌랴. 늘 싫다가도 때때로는 근사해 보이는 걸로 위안삼아야지.  

어떻게 사냐고 묻는다면 그냥 웃지요가 정답이다. 그저 그뿐.  


괭이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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