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는 엄청 추웠다. 봄옷은 아무리 껴 입어도 입은듯 만듯 어설프다. 센 바람에 덜덜 떨면서도 산책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약속이기 때문이었다. 몸을 녹이려고 들른 편의점은 깨끗하고 번듯한 모양에 어울리지 않게도 강아지들의 출입을 거절했다. 솔직히 인간이 개보다 못하지 않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늘 그렇듯이 참았다. 개를 싫어하는 이유는 다양하고 그 또한 존중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다리가 아플만큼 걸어도 꽃들이 지고 피는 광경은 근사했다. 반쯤 꽃잎을 떨군 나무들이 여린 초록잎을 내어놓는 모양은 신비롭다. 어여쁜 게 어찌 꽃 뿐일까. 꽃 뒤를 따라서 피어나는 잎이야말로 계절의 정중한 마중이 아닐까.  

 

블루문은 아주 잘 생긴 젊은 청년이 주인인 카페다. 가끔 들러도 기꺼이 웃어주고 들어오라 문을 열어주는 고마운 곳이다. 커피를 주문하고 피곤한 몸과 마음을 내려 놓으니 행복했다. 뜨거운 커피와 따뜻한 공간에 감사하고 마음이 너그러운 멋진 주인의 미소에 고마움을 표했다. 친절한 사람을 정말 필요로 할 때 만나기란 쉽지 않다. 오늘의 기억은 절대 잊을 수 없을 추억으로 소중에 곳에 보관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늘 길에 달래와 달이, 두 마리의 개를 키우는 그녀를 만났다. 부산이 고향이라는 그녀는 이웃에 살며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는 관계다. 개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특별해서 만나면 반갑고 안부를 주고 받았다. 하나도 아닌 두 마리의 개라는 공통점과 늘 웃는 모습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사람, 디스크를 앓는 푸들 달래도 주인을 닮아 붙임성이 좋고 활달하다. 시추 달이는 정반대로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살짝 뚱보인 무뚝뚝이다. 좋은 주인과 좋은 개들이다. 

 

그녀는 바쁜 직장 생활 중에도 아이들의 산책을 빼먹지 않는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오직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병원에 데려가는 일로 바쁜데 한번도 힘들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무엇보다 사랑스럽다. 잘했어요, 라고 마구마구 칭찬하고 싶다. 그녀가 지치거나 아파하는 일 없이 건강하길 바랜다. 그래서 달래와 달이랑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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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검은 먹구름이 끼어 잔뜩 흐렸다.

댕댕이 토리와의 첫 산책인데, 유감스럽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낙담했다.

비가 올듯말듯 바람도 세차게 불어제겼다. 예상했던 그림은 세 마리, 아니 다섯 마리의 댕댕이가 정답게 산책하는 모습인데 현실은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책을 취소할 수는 없어 일단 출발했다. 걱정대로 역시나 토리는 제멋대로였다. 산책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의 특성이 그래도 드러났다. 앞으로 직진하기 보다는 뒤로 돌아 걸으려고 하고, 낯선 사람을 만나면 짖고 뒤걸음치고 제자리 걸음을 했다. 줄은 계속 엉키고 밀당하느라 팔은 아팠다. 계속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집으로 가야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30여 분을 힘들게 나아갔다. 사거리를 지나 작은 어린이 공원에 도착해서 쉴 때까지 토리는 갈팡지팡, 엉망진창이었다. 커피와 빵을 먹고 댕댕이들은 물과 간식을 간단히 먹였다. 바람이 계속 불었다. 스산한 봄날 댕댕이 다섯 마리의 컨디션도 좋아보이진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시작된 산책에서 토리는 처음과는 완전 다른 아이가 되어 있었다.

토리는 씩씩하게 앞서 걸었다. 한 눈도 팔지 않고, 낯선 사람이나 개를 보아도 크게 짖거나 심하게 경계하지 않았다. 걷는 속도도 당연히 빨라졌고, 엉덩이 아래로 바짝 내려왔던 꼬리도 등 너머로 치켜 올라갔다. 토리는 그렇게 단숨에 산책의 맛과 의미를 깨우친 것이다. 감동이었다.

 

우리는 토리를 위해 산책 시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비가 올듯해서 짧게 끝내려 했는데, 동네에서 더 멀리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낯선 동네, 아기자기한 골목을 찾아서 인간 둘과 다섯 마리의 댕댕이는 멋진 산책을 즐겼다. 토리는 누구보다 앞서서 걸었고, 에너지가 넘쳐서 신나했다. 다른 아이들이 바람과 흐린 날씨에 영향을 받는 것과는 반대였다. 

 

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 않았던 것일 뿐.

토리의 얼굴이 불안과 긴장에서 점점 밝고 환하게 바뀌어 가는 걸 지켜보는 마음은 뿌듯하고 감동으로 촉촉해 졌다. 이렇게 멋진 포메라이언 아이인데, 집안에서 하루종일 주인을 기다리며 낙담해 있었을 것을 상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원치않는 비만견 진단도 받고, 사람과 개를 보면 경계하고 짖는 아이로 단정했다니 인간으로서 미안했다. 토리는 스스로의 약점들을 단시간에 모두 극복한 영리한 개였다. 익숙하지 않았을 뿐, 타인도 개도 좋아했던 것이다. 토리야, 내일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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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강좌를 신청했고 오늘이 그 첫 수업이었다.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일주일에 하루 두 시간 수업이다.

함께 하기로 한 친구 제이가 아니었다면 선뜻 관심도 흥미도 느끼지 않고, 신청은 더구나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이는 글쓰기가 치매에 좋다는 말에 신청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이롭기는 할 테다. 하지만 굳이 강좌를 듣고 배운다는데 큰 의의가 있을까 싶었다. 글쓰기를 배운다는 생각을 해보질 않았다.  

 

그리하여, 첫 수업. 행복한 글쓰기.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2시간 가량 수업을 들었다. 자기소개를 듣다보니 모두에게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글을 써보고 싶고, 잘 쓰고 싶고, 글과 가까운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다른 환경에서 왔지만 글에 대한 열정은 비슷비슷 했다. 살아온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를 들는 일은 나름 재미가 있고, 다음 시간이 기대됐다. 이렇게 또 하나의 관계가 만들어지는구나 싶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 지 흥미롭다.

 

일단은 수업에 집중하고 과제에도 집중해 보련다. 재능은 하늘이 내리고 노력의 결과에 따르므로 누가 잘 쓰고 못 쓰고는 그닥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수업을 즐기고 사람들과 만나는 걸 즐기다보면 좋은 글도 따라올 것이다. 억압이나 강박이 없는 자유로운 상황에서 쓰는 글이야말로 가장 진실하고 소박하므로.

내게 중요한 건 제이와의 시간 공유다. 완전히 다른 환경에 있다보니 우연이나 즉흥으로 만나기가 여려웠는데, 이 수업을 통해 지금보다 더 이해하고 배려하는 관계로 성장했으면 한다.

제이야 너도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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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인가, 엄마가 보내주신 청국장 한 덩어리가 냉장고에서 먹히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먹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두부도 없고 호박도 없고 필요로하는 것마다 없는 바람에 묵혀 버린 청국장을 드디어 오늘, 꺼내 놓았다. 물론 서브 재료가 있을 턱이 없다. 마트나 시장에 간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니까. 냉장고에 있는 거라곤 쉬어터진 석박지 정도? 너라도 재료로 써야겠다 마음 먹으니 어쩐지 그럴싸 하다. 푹 익은 석박지를 송송 썰어 만들어진 육수에 넣고 한소끔 끓였다. 청국장 반 덩어리를 넣어 주고, 마늘 파 고춧가루 등을 넣고 끓이면 끝.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청국장 끓이는 법이라면 진짜 요리사들이 어이없어 할 지도. 버릴 수는 없어 끓였노라면 나름 변명이 될까나. 사실, 청국장은 정말 좋아하지 않는 요리고, 고기도 두부도 즐겨먹지 않는다. 잘 먹는 음식보다는 안 먹는 음식이 더 많은 입 짧은 인간이라는 실토다. 그럼에도 건강을 생각해서 이제부터라도 먹어보려고 노력이라는 걸 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건 현재의 화두는 첫째도 둘째도 건강이 됐다.  건강하게 살고 싶다. 다른 이들에게 민폐 끼치는 일은 죽어도 없어야 한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고 운동의 효과와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 음식과 요리에 대해서도 운동처럼 되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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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여지는 모든 게 글이라고 부를 수가 있을까. 나는 쓰고 있지만 넋두리라고 부르고 싶다. 어디다 쏟아부을 곳이 없어 이곳에 배설하는 중이다. 마음이나 머리에 쌓아 놓으면 병이 될까봐서 주저리주저리 문법도 맞춤법도 안맞는 걸 쓴다. 생각하는 것을 글자로 만드는 과정은 정말 어렵다. 쓰고는 있는데 이렇게 쓰는 게 맞을까 의심할 때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학교가 있는 건데, 배운 적도 없으면서 아는 척 한다. 배움에는 끝도 시작도 없다고 지금 여기서부터라고 하겠지만, 태생이 느리고 게으른 인간이다. 적당히 흉내내어 쓰는 척을 하면서 뭐라도 된냥 즐거움을 느낀다. 사실 누가 뭐랄 것은 없다. 인간으로 태어나 살다 글을 알고 배우고 쓰는 것 뿐. 정리되지 않은 어수선한 생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뿌려지는 모양새다. 사실 관계없다. 여기에서 얻어가는 소소한 만족감이면 된다. 읽기를 좋아하다보니 쓰는 건 자연스럽게 따라다녔다.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쓰면서 정리아닌 정리를 한다. 생각 정리. 사람 정리. 일과 정리. 기타등등.

 

삼월도 곧 끝이다. 완연한 봄의 계절이 온다. 설렌다. 나이들수록 겨울의 매력을 덜 느낀다. 겨울이 좋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던 종자였는데, 이제 봄봄을 부르는 나이가 됐다. 춥고 헐벗은 겨울이 좋았다니, 철 없는 시절이었다. 아니, 젊음이라는 특권을 누린 것이었다. 나이드니 겨울도 별루더라. 봄이 좋더라. 여름은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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