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재발견 - 기본만 지켜도 사람을 얻는다
김만기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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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를 위해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인데, 배송 과정에서 착오가 있어 돌고 돌아 드디어 연을 맺게 됐다. 230여 페이지 분량의 짧고, 읽기 편해 부담이 없는 책이다. 통근길 지하철 안에서만 읽었는데 완독하는데 이틀이면 충분했다. 다만 저자의 오랜 경험이 녹아 있는, 공들여 쓴 글을 너무 휘릭 읽은 것 같아 약간의 미안함이 있긴 하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이것이야 말로 독서의 장점이지 않을까. 저자의 소중한 시간, 노력의 결정체를 독자는 편안하게 간접 경험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리뷰를 통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는 것도 독자의 특권이라 생각한다.)


<관계의 재발견>은 성공한 사업가이자 중국 전문가인 저자의 '인간관계'에 대한 철학(원칙)과 폭 넓고 질 높은 관계 구축 비결을 담고 있다. 중국 진출을 고려하고 있거나, 중화권 고객을 대상으로 비즈니스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한편으로는, 중국인을 위한 '한국인과 관계맺기 가이드북'으로도 활용 가치가 높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혹시 중국 출판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닌지..ㅎㅎ)


책에서 소개하는 비결은 딱히 기발하지도, 어렵지도 않다. 시간 약속 지키기, 인사 잘 하기, 받으려기 보다는 행복하게 주기(준 건 잊어버리고 받은 건 기억하기), 말하기 보단 듣기, 귀인을 소중히 여기기, 긍정 에너지 품기, 나쁜 관계는 현명하게 정리하기, 역지사지의 자세, 비즈니스 관계를 위한 실력 쌓기 등.. 관계를 소중히 여겨 정성을 쏟고, 상대방에게 소소한 감동을 안겨 주고. 평범해 보이지만 마냥 쉽지만은 않은 '기본 지키기'가 바로 저자의 비결인듯 하다. 정말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정리하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고 싶다면 숙성기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깊이 있는 인간관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그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뢰는 상호 교감하는 시간이 흐르면서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다. 몇 차례의 만남으로 누군가를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신뢰는 '신용'이라는 객관적인 요소와 '믿음'이라는 주관적 요소의 결합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약속을 잘 지키면서 신용을 쌓고, 거기에 누가 봐도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더해졌을 때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한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는 오랜 기간을 함께 겪어봐야만 알 수 있다. (198쪽)


또한 저자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그의 인생관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비단 인간관계 뿐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다는 게 느껴졌다. (물론 과장 없이 본인의 삶 그대로를 소개했다는 가정 하에. 저자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아는 바가 없어 조심스럽지만.) 책에서는 멘토와 롤모델이란 용어를 구분해 소개하는데, 가까운 곳에서 실질적인 조언과 도움을 주는 사람이 멘토라면, 롤 모델은 닮고 싶은, 인생의 본이 될 만한 사람을 말한다. 그가 닮고 싶어하는 마윈의 말이 와 닿았다. 

 

"많은 젊은이가 저녁에는 수천 개의 길을 생각하지만 다음 날 아침 일어나면 어제 갔던 그 길을 다시 간다. 성공하려면 뛰어난 생각, 이상, 꿈을 가졌는가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가도 중요하고, 최선을 다해 그것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139쪽) 

이는 성공을 위한 삶 뿐 아니라 인간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중국에 관심이 있는 학생, 사회 초년생에게 용기를 주고, 관계풀기를 어려워 하는 비즈니스 피플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멘토'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저자의 삶 자체로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될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나중에 더 유용한 비결을 공유해 줄 수 있다면, 독자로선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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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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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기원전 110년 전의 로마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로마 시내를 가만히 걷고 싶다눈을 감으면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율리아가이우스 마리우스가 보일 것 같다율릴라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어떻게 될까아프리카 대륙 누미디아의 왕 유구르타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콜린 매컬로의 <로마의 일인자> 1권을 완독하자마자, 나머지 두 권도 주문했다저자가 20년이란 세월을 쏟아 완성한 역작엄청난 양의 사료와 연구서적을 검토하며 글을 썼던 그는 결국 시력을 잃었다는데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쓴 책을 동시대에 읽을 수 있어 행운이다.

로마의 일인자(왠지 제목에서 낯간지러움이 느껴진다) 1권은 기원전 110년부터 108년까지의 로마의 모습을 보여준다한 권의 분량으로는 비교적 짧은, 3년이라는 시간에 세 명의 주요인물과 그들 가문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한 로마 이야기가 그려진다로마의 유서깊은 명문귀족이지만 재산이 많지 않아 정치적 영향력이 떨어지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무관 출신의 실력자에 재력도 겸비했지만 귀족 혈통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계에 제대로 진출할 기회가 없던 가이우스 마리우스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가문의 피를 물려 받았으나 알코올 중독으로 재산을 탕진한 아버지 때문에 빈민가에서 자라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인물 한 명한 명이 작가의 손을 빌려 생생하게 살아나 자기 이야기를 들려 준다.

남성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그 시대 여성들의 생활상도 엿볼 수 있기에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몰입도가 높다또한기원전 110년 전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에서 벌어질 법한 에피소드도 많다가문의 재력이 부족해 자녀들이 꿈을 펼치지 못할까 걱정하는 마음에 믿을 만한 신랑감을 골라 정략 결혼을 제의하는 아버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사려 깊음기쁜 마음으로 부모의 제안에 따라 결혼을 결심하는 장녀 율리아의 태도율리아를 소중히 여기는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자상함과 명문가의 결혼으로 로마 최고 권력자에 도전하는 배짱그리고 장인과 사위 간의 신뢰가 특히나 인상 깊었다반면 말괄량이 막내딸 율릴라가 짝사랑하는 술라의 마음을 얻지 못하자 단식 투쟁을 하는 모습은 우스웠는데막내의 철없음은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모양이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로마의 정치구조에 대한 별다른 설명 없이 새로운 용어가 마구 튀어나온다는 점이다다행히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기에 스토리 파악에 지장을 줄 정도로 방해가 되지는 않았지만로마 역사를 처음 접하는 초심자의 경우에는 집정관호민관법무관원로원 등의 낯선 용어를 접하면 책에 충분히 몰입하기 전에 흥미가 반감될 수도 있을 것 같다앞쪽에 간략하게라도 언급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 책을 꼭 역사물로만 접근할 필요는 없다로마사로마 정치체제에 대해 전혀 모르더라도콜린 매컬로가 이끄는 대로 인물들의 흐름을 따라 가다 보면 한 편의 대하소설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재미있는 소설도 읽고 로마사도 자연스럽게 익히고평소 로마사에 관심이 있던 분들은 물론이고쏟아지는 긴 이름에 지쳐 로마사 읽기를 포기한 분들께도 조심스럽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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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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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청소년 필독서인 이 책의 원제는 "To Kill a Mockingbird (흉내쟁이지빠귀 죽이기)"로, 하퍼 리의 전작이자 후속작인 <파수꾼> 발간에 앞서 한국에 새롭게 소개되었다. 이야기는 1930년대 남부 앨라배마 주의 메이콤이라는 작은 읍내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9살 소녀 스카웃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4살 많은 오빠 젬, 변호사인 아빠 애티커스 핀치와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흑인 가정부 캘퍼니아 아줌마가 살림을 맡아 아이들을 돌본다.

스카웃과 젬이 학교가는 길목에 위치한 래들리 가는 호기심의 대상이다. 부 래들리(본명은 아서 래들리)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자로, 아이들 사이에 소문은 무성하지만 실체는 밝혀진 적 없는 무섭고도 신비로운 존재다. 사춘기 때 물의를 일으켰다고도, 서른이 넘어서 아버지의 허벅지를 가위로 찔렀다고도 하고, 아버지에 의해 감금되어 있다고도 한다. 아이들은 부 래들리의 얼굴이 궁금해 마당 안을 기웃거리지만 좀처럼 만날 수 없다. 그 집앞 나무 옹이구멍에 가끔 놓여져 있는 껌, 메달, 비누조각인형 등의 선물을 제외하고는. 어느날 아버지 래들리의 임종으로 관이 집 밖으로 실려 나올 때, 백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한 적이 없는 캘퍼니아 아줌마는 그를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어 주신 인간 중 가장 비열한 인간"이라 평가한다. 그 이후의 언급은 따로 없기에 독자들은 은둔자 부 래들리보다는 어쩌면 아버지에게 뭔가 문제가 있었을지 모른다고 어렴풋이 추측해 볼 뿐이다.

1929년 미국의 경제 대공황 이후, 가난한 메이콤의 일상은 스카웃이 입학한 학교에서의 에피소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새로 부임한 담임 선생님이 점심 도시락을 싸오지 않은 월터에게 돈을 주자, 아이들은 커닝햄 집안은 갚을 돈이 없기에 무의미한 행동이라 여긴다. 주정뱅이 유얼의 아들은 개학 첫 날만 학교에 오기에 유급 당하는 것이 아이들에겐 놀랄 일이 아니고, 아이의 머리에서 머릿니가 튀어 나오는 걸 보고 기겁하는 선생님을 아이들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때, 스카웃의 반에서 가장 가난한 학생조차도 백인임을 기억해야 한다. 흑인이 같은 반은커녕 한 학교에 다닌다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던 시절이기에.

같은 앨라배마 주의 다른 도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으로 대표되는 흑백차별 철폐운동이 1955년에 일어났다는 걸 감안하면, 그보다 20여년 전 시골마을의 상황이 어떠했을지 그려볼 수 있다. 일요일에 아버지의 부재로 가정부 캘퍼니아 아줌마를 따라 흑인 교회에 가게 된 스카웃은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성경책과 찬송가 없이 앞에서 흑인 아저씨가 선창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따라 부르는 모습이었다. 의아해 하는 스카웃에게 캘퍼니아 아줌마는 가난해서 찬송가 책을 살 수 없는 것이라기 보다는, 글을 읽을 수 있는 흑인이 몇 명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흑인과는 같은 교회를 다니지도 않고, 식사도 함께 하지 않으며, 혹여나 인종이 다른 남녀가 사랑에 빠질 경우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는 흑백 분리 정책이 있던 시기였다.

이야기는 스카웃의 아버지가 백인여성 성폭행 혐의로 재판장에 선 흑인 청년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절정에 이른다. 스카웃과 젬은 유색인종 전용석에서 재판을 지켜보고, 그가 무죄라는 정황적 증거가 있음에도 배심원들이 주정뱅이 백인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뿌리깊은 차별과 배척은 죄 없는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어른들의 이해할 수 없는 판단에 크게 실망한 젬에게 앞집 모디 아줌마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생각을 했단다. 애티커스 핀치는 이길 수 없어, 그럴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는 그런 사건에서 배심원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 수 있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변호사야. 그러면서 나는 또 이렇게 혼자서 생각했지. 우리는 지금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거야, 아기 걸음마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진일보임에는 틀림없어. (399쪽)

이 책의 제목이 '앵무새 죽이기'인 이유는 스카웃의 아빠가 아이들에게 공기총을 사주는 일화에서 드러난다. 애티커스는 맞힐 수만 있다면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좋지만, 앵무새를 죽이면 죄가 된다고 주의를 준다. 앵무새는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농작물에 해를 입히지도 않는 무고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앵무새'를 상징하는 상대적 약자이자 무고한 인물이 여럿 있다. 먼저,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편견 때문에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회적 낙인이 찍힌 부 래들리이다. 두 번째로는 감히 백인여성의 유혹에서 도망친 흑인(심지어 유부남인데)이자 장애인, 그렇기에 누명을 쓰고 실제로 목숨을 잃은 톰 로빈슨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가족 없이 자신이 욕하는 '흑인' 소녀의 시중만 받으며 세상을 뜬 듀보스 할머니. 그도 어찌 보면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세상을 떠난 소외된 앵무새가 아닐까 싶다.

스카웃이 9살일 때 시작한 소설은 12살이 되어 마무리된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와 오빠 젬이 겪은 사건을 통해 아이들은 겉모습뿐 아니라 마음과 생각도 훌쩍 성장했다. 독자들은 그들의 시선을 통해 그 시대 남부의 실상을 간접 체험하며 인간의 이중잣대, 편견,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욕심을 들여다 본다. 한편 애티커스 변호사, 모디 아주머니 등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인물들을 통해 희망을 품기도 한다. 또한 선동에 이성을 잃고 톰을 죽이려 했던 폭도였던 동시에 스카웃의 천진한 말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마음을 바꾼(그러나 행동으로 옮기긴 어려운) 커닝햄과 같은 사람도 있다. 우리 사회의 불합리성을 보고 잘못되었다 느끼고 분노는 하지만, 나서서 행동하기는 주저하는 대중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이 책을 두고 왜 미국에서 편견과 인종에 관한 최고의 토론 교재라 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곁에 두고 우리 사회를 자주 비춰봐야 할 책이다. 현대판 '앵무새 죽이기'는 모습을 바꿔 계속 등장하고 있으니.

더 먼저 집필됐으나 50년 이상 지나서야 발표된 후속작 <파수꾼>에서는 성인이 된 스카웃이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니, 속편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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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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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한 시리즈물의 저작가, 그의 작품을 더 이상 만나볼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특히 시간이 지나도 그가 창조한 캐릭터는 생생히 살아 있을 경우엔 더욱. 홈즈를 그리워하는 셜로키언들의 마음을 아는 건지, 캐릭터의 매력을 고스란히 되살린 작품이 나왔다. 앤터니 호로비츠의 셜록홈즈 '실크하우스의 비밀'(2011),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동일 작가의 '모리어티의 죽음'이다. 아서 코난 도일 재단에서 정식 인증을 받았다니, 믿고 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시리즈 중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은 '주홍색 연구'와 '배스커빌가의 개'인데, 내용도 물론 신선했거니와 단편보다는 장편소설이 줄거리 몰입도가 높았기 때문이기도 하다(재미있는데 분량이 적으면 너무 아쉬우니). 엔터니의 셜록홈즈 시리즈는 행여나 책이 빨리 끝나버릴까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다. 분량도 빵빵하고, 내용은 더욱 흥미진진한 반면, 원작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더 잔인한 방식으로 죽어 나간다. 


모리어티 교수는 셜록홈즈의 숙적이다. 어설픈 악당들과는 차원이 다른, 홈즈와 두뇌싸움을 벌일만한 천재적인 악당이다. 원작에서는 (약간 생뚱맞긴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이름이 등장하고, 베일이 벗겨지기도 전에 라히헨바흐 폭포에서 홈즈와 격투 끝에 사망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코난도일은 홈즈 캐릭터에 끌려다니는 것이 싫어 이 사건을 통해 홈즈를 죽이려 했으나, 독자들의 반발과 작가의 재정악화로 소설 상의 시간 3년 후에 홈즈가 잠적을 깨고 돌아오는 것으로 다시 홈즈시리즈 집필을 시작했다.)


스위스 라히헨바흐 폭포에서의 사건 이후, 어떤 일이 있었을까. 지난 100년간 독자들을 궁금하게 한 잃어버린 퍼즐, 홈즈의 공백기를 앤터니의 상상력이 훌륭하게 메웠다. 더불어 어설픈 수사로 상대적으로 무능하게 묘사됐던 영국 경찰의 체면도 어느정도 회복된듯 하다. 아쉽게도 홈즈의 절친이자 탐정보조, 전기작가, 주치의까지 담당했던 왓슨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홈즈에게 여러번 도움을 받은 적 있는 런던 경시청의 '애설니 존스' 경감과 미국에서 악당을 쫓아 스위스까지 오게된 본인을 '프레더릭 체이스'라고 밝힌 탐정이 파트너가 되어 모리어티 죽음과 홈즈의 실종 이후의 사건을 추적한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팬이라면, 이 책에서 반가운 이름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셜록홈즈 시리즈를 다 읽지 않은 독자라도, 이전 사건들에 대해 잘 몰라도, 충분히 몰입해 읽을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을 계기로 전작들을 찾아보게 될지도..) 등줄기를 서늘하게 하고,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박진감 넘치는 추리소설로 무더위를 잊고 싶은 분들께 적극 추천한다. 

 

 

 

= 출판사의 제공으로 책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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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영어 선생님 - 북한 고위층 아들들과 보낸 아주 특별한 북한 체류기
수키 김 지음, 홍권희 옮김 / 디오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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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에 이은 수키 김의 두 번째 책. 한국계 미국인으로, 전작에서 이민 2,3세대의 정체성 혼란과 한국계 이민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해내 호평을 받았다. 이번에는 평양 과학기술대학교에 영어교사로 잠입해 북한 엘리트 학생들을 직접 만난 경험을 생생하게 써냈다. 원제는 "Without You, There is No Us".  작가의 외할머니는 이북 출신이었고, 피난 중에 장남을 잃었다. 분단의 아픔은 저자 본인 가족사의 상처이기도 했다. 

 

그가 담당한 평양 학생들은 평범하지 않았다. 1학년이었지만 대부분 김일성종합대학 등 다른 학교에서전학해 온 학생들이었고(타 대학들이 폐쇄되었기 때문에), 성적에 따라 1-4반으로 나뉘었다. 저자는 가장 공부를 잘하는 반인 1반과 가장 끝 반인 4반을 맡았다. 학생들 다수는 아버지가 의사, 과학자인 북한 고위층 자제들이었다. 서먹서먹함, 경직된 분위기, (수업내용과 부교재는 물론) 모든 말과 행동을 감시 당하는 상황이었지만 교사와 학생은 조금씩 마음을 열며 같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아 간다. 친구의 예쁜 여동생에 대해 농담하고, 이성친구에게 호감을 얻는 방법을 얘기할 때면 평범한 캠퍼스의 모습 같기도 했다.

 

그러나 좁혀지지 않는 간극은 물론 있었다. 저자는 학생들의 상식이 턱없이 부족함에 놀랐다. 그들은 주체사상탑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주장하고, 놀이공원도 북한이 세계 최고, 냉면과 김치가 세계 최고의 음식이라 한다. 심지어 교과서에는 미국 정부가 애틀랜타 올림픽 공식 음식으로 김치를 지정했다고 써있다 주장한다. 맨체스트유나이티드에 북한 선수가 스카우트 되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늘 자신들이 최고라고 선언하면서 자신과 누구도 본 적 없는 바깥 세계를 비교"하곤 했고, 최상급 표현은 너무 자주 쓰여 그 본래 의미를 잃어 갔다.

 


나는 세상에 대한 그들의 일반적인 지식이 놀랄 만큼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북한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인데 유엔, 타지마할, 기자의 피라미드 등의 사진은 멍한 표정만 이끌어 낼 뿐이었다. 몇명만이 한참 더듬거린 뒤에야 에펠탑과 스톤헨지의 이름과 위치를 추측했다. 그들이 과학과 기술 전공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어느 나라가 달에 처음으로 인간을 착륙시켰는지 아무도 몰랐다. (…)

동시에 그들 모두는 알래스카가 터무니없이 싼 값인 720만 달러에 미국에 팔린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것은분명히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확실한 수업의 결과인 듯했다. 그들의 영어 단어 수준이 고르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줄줄 외는 한 구절이 있었는데 그것은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 두뇌유출)'이었다. 정부가 엘리트들의 탈북이 두려워서 그들에게 이 단어를 연습시켰을까? 단어 공부를  위한 게임 중 종이접기를함께해 보니 그들이 만들 줄 아는 것은 전투기뿐이었다.  (104쪽)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누군지, 페이스북이 뭔지 아마존 킨들이 뭔지 모르는 아이들. '과학기술'대학에 다니지만 교사가 없어 일년 내내 영어만 배우는 아이들. 미 제국주의에 반대하며 맥도날드의 폐해에 대한 에세이를 쓰겠다더니 "맥도날드에서는 무슨 음식을 만듭니까?"하고 되묻는 아이들. 반 대항 퀴즈게임에서 진 이유는 컨닝하다 '걸렸기' 때문이 아니라 컨닝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부끄럼 없이 공개적으로 말하는 아이들. 주말 오전에 노동한다는 걸 알고 묻는 '오전에 뭐 했니'란 질문에 11시까지 늦잠을 잤다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하는 아이들. 


교사는 가까워진듯 하면 다시 멀어지는 학생들로 인해 좌절하기도 하고,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체제에 분노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인식의 폭을 넓혀 주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하는, '질문하는' 제자에게는 정작 하고픈 말을 꾹 삼킨다. 금지된 호기심 때문에 제자가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하는 건 원치 않으니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들이 미국을 비난하는 것으로 에세이 주제를 바꾸기로 단체로 결정한 것은 저커버그에 관한 기사 때문이었다. 내가 자극을 주려고 의도한 것을 그들은 내가 자랑하려는 것으로 보고 업신여김을 당했다고 생각했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수 세대 동안 그들에게 스며들었던 민족주의로 인해 너무나깨지기 쉬운 자존심은 열등감이 되어 그들은 자신을 제외한 세계의 나머지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시민들로 만들어졌다. 그들의 인식을 확장하려는 나의 노력은 계속 역효과를 냈다. (306쪽)


이 대목에서는 얼마전 UN 북한인권회의에서 북한 대표단의 막무가내 발언이 떠올랐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그의 얼굴에 떠오른 불만족스런 표정은 꾸며낸 표정이 아니었다. 그들은 뼛속 깊이 믿고 있었다. 그가 옳다고. 



책을 읽으며 저자와 함께 웃고 울었다. 자유를 반납하고 모든 말과 행동을 자기검열하며 조심할 때 함께 답답함을 느꼈다. 마침내 저자가 마음의 욕구를 따르는 방법도 자유를 누리는 방법도 모르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학생들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나도 같은 먹먹함과 좌절감을 느꼈다. 


북한과 한 민족임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 이해하지는 못하는 내 또래 세대(80년대생?)에선 통일 이후의 삶이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서로 간의 문화 차이가 너무 커져서, 통일 후의 갈등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생생하게 접하게 된 이후의 생각은 달라질 것 같다. 조금씩 밀려들어가는 변화의 물결을 언제까지고 막아내지는 못할 텐데. 어느 날 갑자기, 어떤 형태로든, 찾아올 통일의 날을 누군가는 미리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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