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박생강 지음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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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면 한번에 뇌리에 콕 박히는 이름이다. 생강이라니. 서점에서 생강이 몸에 좋다는 책을 보고 즉흥적으로 필명을 결정했다는 말에 저자의 정신세계(?)가 궁금했는데, 나중에야 성인saint과 악당gang의 혼성 혹은 '생각의 강'을 염두에 둔 작명이란 걸 알게 됐다. 톡 쏘는 생강 맛처럼 종횡무진 통통 튀면서도 은근히 달콤한 냄새가 나는 소설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는 저자의 필명과 딱 어울리는 책인듯 하다.

 

책의 서두는 흥미진진하다. 민형기의 심리상담소에 찾아온 매력적인 여인 한나리. 그가 일하는 카페의 사장이자 애인이 빼빼로가 두려워 대형마트도 기피하는 빼빼로포비아란다. 자신을 소시오패스로 의심하는 민형기에게 빼빼로포비아는 당장 자신의 카페 '스윗스틱'으로 오지 않으면 한나리를 '삭제'하겠다 협박한다. 카페에 도착한 민형기는 드디어 카페사장을 대면한다. 다음 내용이 어떨지 궁금하던 찰나, 이 모든 이야기가 김만철의 소설 속 이야기라는 당황스러운 전개가 이어진다.
          
미스터리한 카페사장의 정체는 바로 지구에 불시착한 실리칸이라는 외계인(오잉?). 미각과 언어의 담당하는 혀를 신성히 여겨 사랑해도  키스하지 않고, 성기는 롤빵과 패스트리 정도로 여기는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 존재다. 소설을 읽다보면 현실 속 김만철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은 소설처럼 느껴지고, 소설 속 빼빼로포비아 쪽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소설인듯 소설아닌 소설같은 이야기. 마지막엔 짜잔! 하고 김만철이 겪은 모든 에피소드야말로 한 편의 소설이었다며 새로운 현실이 드러나는 반전을 의심했지만, 예감은 빗나갔다. (결말은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작가는 "현실에서 비현실의 이야기를 찾는 게 아니라 비현실이 슬그머니 찾아와 어깨를 두드린다"며 "그럴듯한 소설을 쓰는 대신 그럴듯함과 그럴듯하지 않음 사이에서 꿈틀대는 어떤 자리들을 발견하려 애쓰겠다"고 했다.

액자소설의 현실과 비현실의 혼란함 속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 되새겨보는 것도 묘미다. 인간이란 존재의 의미, 소설에 대한 생각, 빼빼로와 빼빼로데이를 바라보는 관점 등이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다.

 

소설 속 민형기가 삼킨 다섯 개의 알약은 현실의 김만철이 삼킨 다섯 마리의 주술사를 연상시키고, ​소설 속 카페사장은 빼빼로포비아였으나 현실에서는 인류애와 이타심이 넘치는 스윗스틱 제조자로 대비된다. ​​오히려 현실의 민형기가 빼빼로포비아에 가까웠다. 김만철이 자신이 쓰는 소설 안에 카페사장, 단골손님, 상담가, 짝사랑을 등장시켰듯, 우리가 읽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김만철의 소설 선생님은 어쩌면 작가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건 아닐까. 알듯 모를듯 재미있는 책이다.

 

 

 

이 시대의 인간은 어쩌면 빼빼로 피플이네. 인간은 태어나기를 딱딱하고 맛없는 존재로 태어났지.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개성이란 달콤한 초콜릿을 묻히지. 타인을 유혹할 수 있는 존재로 특별해지기 위해. 하지만 그 개성의 비율 역시 언제나 적당한 비율, 손에 개똥 같은 초코가 묻어나 불쾌감을 주지 않는 적정선의 비율로 필요하네. 그게 넘어가면 괴짜라거나 변태 취급을 받기 쉽지. 그렇게 이 시대의 인간은 모두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는 양 착각하지만 실은 모두 똑같은 봉지 안에 든, 더 나아가, 똑같은 박스 안에 포장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초코 과자 빼빼로와 비슷하다네. (중략)

 

내 말은 자네의 입장에 대해 누구에게 인정받으려 애쓰지 말라는 거야. 어차피 그들은 자네를 개똥으로 여길걸세. 그러니 비닐 포장 속에 담긴 빼빼로 병사가 아니라 차라리 비닐 포장까지 뚫고 나올 수 있는 살아 있는 막대 벌레가 되라는 거야. ​(p.145-146)

 

<어쩌면 ​21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소설은 「빼빼로」가 아닐까? 빼빼로라는 소설이 있기에 어쩌면 사람들은 소설을 읽지 않는 게 아닐까?>

 

빼빼로는 문장 아닌 막대 과자로 구성된 과자 상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11월 11일이 가까워 오면 그 과자를 통해 자신이 상상하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건 대개 사랑에 대한 환상이지만, 그 환상은 얼룩지고 음산해지며 종종 우울하게 가라앉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그때뿐이다. 시답잖은 베스트셀러를 읽은 뒤에 던져 버리듯 빼빼로데이가 지나면 이내 그 과자는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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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함께 읽기다 - 독서공동체 숭례문학당 이야기
신기수 외 지음 / 북바이북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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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문화센터 독서토론 수업을 통해 알게 된 '서평독토'. 한 달에 한 권, 같은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모임이다.

어디 내어 놓기 부끄러운 '발서평'을 사람들 앞에서 낭독하고, 비평보다는 격려와 칭찬이 오가는 훈훈한 공동체.

여기서 책을 냈다. 이제는 함께 읽고 같이 토론하자며, 참여를 권한다.

 

독서토론은 몸소 체험해 봤기에 얼마나 좋은지 안다. 독서토론을 하고 서평까지 쓴 책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세상은 넓고 책도 많으니 알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아, 다양한 분야에 두루두루 오지랖을 펼치고 싶어하는데

기억력 만큼은 욕심을 따라가지 못하는 나는, 읽은 책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어버린다.

그렇게 블로그에 발췌해둬도 소용 없다. 그런데 토론을 하고 서평을 썼던 책은

제목만 떠올려도 토론 현장이 영상처럼 스쳐지나가며 책 내용도 한 토막씩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르니 신기한 일이다.

 

책에서는 독서토론 방법도 친절히 안내해 준다. 책으로, 독토로, 인생이 바뀐 사람들의 경험담도 소개한다.

여기 나온대로 가족, 친구, 직장 선후배와 토론할 수만 있다면.. 만남이 즐거워지고, 심지어 회식도 행복할 것 같다.

마음 맞는 사람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내가 먼저 기초체력을 길러둬야 할 것 같다. 

언젠가는 발제자로, 사회자로 나서게 될테니.

 

책에 언급된 도서리스트는 뒤쪽에 따로 정리되어 있다. 무려 10페이지에 달한다.

책읽기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이 추천해준 책이니 믿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것만 다 읽어도 내 독서세계가 크게 확장될 것이라 믿는다. 벌써 몇 권은 온라인서점 장바구니에 담아뒀다.

 

책 자체도 알차거니와 읽으면서 체크해둔 글귀를 옮겨 적은 발췌록마저도 보석같으니,

어떻게 이 책을, 이 모임을, 책 좋아하는 다른 이들에게 추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책에서 인용한 베이컨의 말이 머릿 속에 맴돈다.

"독서는 풍부한 사람을, 대화는 재치있는 사람을, 글은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독서가 고요한 관조의 세계라면, 다른 생각을 듣고 그 차이를 경험하는 독서토론은 실천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삶의 문맥에 놓인 타자를 체험하고, 또 경험하는 자리다. 그러므로 독서토론은 인문적 실천의 시작이다. (24쪽)



많은 직장인들이 독서 토론을 통해 한가한 사람들이나 본다고 생각한 문학, 필요 없을 것 같은 역사와 철학, 예술 분야 책에서 예기치 않은 영감과 깨달음, 즉 세렌디피티를 발견한다. 창의성은 재미있게 놀다가 불현듯 찾아온다. 나태와 여유로움은 다른 개념이다. 바쁜 가운데서도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자세, 그걸 습관화할 수 있는 게 바로 삶이자, 공부 아닐까.  (149쪽)



 2차대전 당시 잠수함에 토끼를 태웠다고 한다. 토끼는 산소 결핍을 예민하게 느끼기 때문에 토끼가 죽으면 잠수함이 수면 위로 올라갔다.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시인을 '잠수함 속의 토끼'에 비유했다. 1974년 박정희 독재정권 치하의 한국을 방문한 그는 "시인이 괴로워하는 사회는 병들어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가 남긴 한마디가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의미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46쪽)



모두가 정규직에 편입하려 하는 오늘날,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아예 '백수의 시대'를 선언했다. 취업에 목매달 게 아니라 지금이야말로 자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공부하기에 좋은 기회라며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화폐경제와 시장자본에 길든 현대인들이 백수의 자유로움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삶의 관성 때문이다. 개미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베짱이로 살고 싶은 사람들은 늘 평행선처럼 마주 보고 달린다. 그렇다면 그 중간 단계인 '개짱이'로 살아가면 어떨까?

그렇다. 우리는 개짱이로 살아보려고 한다. 인문학과 자기계발의 절묘한 줄타기를 하려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해야 하는 일만 할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도 시도해보는 용기. 자신의 진짜 욕망을 발견하고 거기에 충실하는 게 후회없는 삶을 사는 길이다. 남들의 시선과 기대에 휘둘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 숭례문학당에 오는 사람들은 바로 그런 영혼의 안식처이자 피난처가 필요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277-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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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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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 동화 <프레드릭>과 함께 읽기.



<프레드릭>의 서두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 같다. 하지만 결말은 다르다. 네 마리의 들쥐가 열심히 일할 동안 프레드릭은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은다. 다른 쥐들에겐 한량의 여유로 보인다. 추운 겨울이 되어 식량도 다 떨어질 무렵 프레드릭은 생쥐들에게 일 년간 간직해온 자연의 생생함을 전해준다. “프레드릭은 파란 덩굴 꽃과, 노란 밀짚 속의 붉은 양귀비꽃, 또 초록빛 딸기 덤불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들쥐들은 마음속에 그려져 있는 색깔들을 또렷이 볼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프레드릭을 시인으로, 예술가로 인정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필경사 바틀비>의 배경은 19세기 중반 월스트리트, 법률문서 필사원이다. ‘나’는 터키, 니퍼스, 진저너트라는 별명을 가진 직원들의 고용주이다. 신입 필경사 바틀비는 사흘 동안 기계적으로 필사를 해낸다. 다른 일을 시키려는 변호사에게 그는 상냥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I prefer not to)."라 대답한다. 다른 일을 시켜도, 이유를 말해보라 해도 ‘안 하는 편을 택’한다는 의지를 표현한다. 주체적 선택을 고집하던 바틀비는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프레드릭>에 다섯 마리의 들쥐가 등장했듯 <바틀비>에도 다섯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통념에 따르지 않고 소신을 따르는 소수(1명)와 당연한 듯 의문없이 사회의 질서를 따르는 절대다수(4명)로 나뉜다. <프레드릭>이 동화 속 해피엔딩이라면, <바틀비>는 현실세계를 반영한다. 프레드릭은 다수의 인정, 심지어 찬사까지 받지만 소설에서 바틀비는 그를 외면하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아래 죽어가는 모습으로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주목할 부분은 바틀비를 바라보는 고용주의 심경과 태도의 변화다. <바틀비>의 서술자가 “나”라는 관찰자이므로 자연히 독자도 그의 시선을 따라가게 된다. 처음에 바틀비에게 매료되었던 그는 바틀비로 인해 난처한 입장에 처하자 반쯤 등을 돌린다. 회유하고 화를 내기도, 피하기도 하지만 나중엔 동정심과 책임감으로 바틀비를 돌아본다. 안타깝게도 그를 건져내는 직접적인 행동은 취하지 않는다.

  

옮긴이는 바틀비에서 기독교적 색채가 강한 부분을 주목하기도 했는데, 전전긍긍하는 변호사의 모습에 예수를 심판하던 빌라도가 오버랩 된다.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당대의 통념과 사람들의 등쌀에 못 이겨 해결사의 자리에 섰으나, 결정을 남에게 미루며 회피한다.

속으로는 동정(혹은 동경)하며 관심을 갖고 지켜볼지언정 적극적으로 죽음을 막지는 않은 방관자다. 행동에 나서지 않음으로써 다수의 의견대로 흘러가게 방조한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은 아닌지.

  

프레드릭과 바틀비는 우리에게 타인의 의지와 선택,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메시지를 던진다. 동시에 바틀비의 고용주를 통해, 남과 다르다고 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방관하는 것은 다수의 폭력에 동조하는 것이라 외친다. 물질적 만족보다 무형의 만족을 추구하는 신념가도 있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행동가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용기를 낼 자신은 없는 평범한 소시민일 것이다. 프레데릭이 되지 못할 바엔, 프레데릭의 친구들이 되자. 바틀비가 만약 들쥐 친구들을 만났다면, 이야기의 결말은 분명 달라졌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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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한입 더 - 철학자 편
데이비드 에드먼즈 & 나이절 워버턴 지음, 노승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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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철학 대담집이라 하여 읽기 전에 지레 겁먹은 건 사실이다. 15분짜리 영국 팟캐스트 <철학 한입Philosophy Bites>을 글로 옮긴 책이란 걸 알게된 후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다. 남들은 귀로 듣는데 난 활자로 읽으니 좀 더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과연. 각 장의 분량이 많지 않아 집중도가 높았다. 한정된 시간(지면) 안에 각 철학자의 핵심사상이 쉽고 명료한 언어로 담겨 있어 눈에 쏙쏙 들어왔다. 낭독하며 읽으면 더 좋을 듯 하다.

27편의 인터뷰 안에는 2500년의 철학사가 담겨 있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철학자부터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니체, 사르트르 같이 이름만 잘 아는 철학자까지. 토마스 아퀴나스, 키르케고르 같은 신학자로만 알던 철학자부터, 몽테뉴, 애덤 스미스처럼 철학자인줄 몰랐던 철학자도 있었다. 존 로크, 존 스튜어트 밀, 존 롤스는 몇해 전 한국을 놀라게 했던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에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진행방식은 기획자인 데이비드 에드먼즈가 주인공 철학자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면 인터뷰어 나이젤 워버턴이 질문을 던지고, 해당 철학자에게 공감하는 저명한 학자가 키워드를 쉽게 풀어 설명해 주는 문답 형태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의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통해 설명되는 그의 논증과 저서 <성찰>을 소개하는 식이다. 이와 같이 아퀴나스의 <행복>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덕>과 <중용>에 대해, 스피노자의 <정념>,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에 대해 설명한다.

각 철학자의 아이디어의 장점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 반박하기도 하고, 어려운 개념은 쉬운 비유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기도 한다. 안경이 장밋빛이면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것이 장밋빛일 수 밖에 없다는 비유로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실재에 대한 칸트의 입장을 이해시키려 노력한다. 건축가가 조수에게 던지는 "석판!"이라는 외침에 담겨 있는 다양한 의미를 통해 비트겐슈타인의 <사용으로서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각 대담마다 빠지지 않는 질문은 철학자의 사상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 현 사회에 대한 시사점, 후대 철학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기독교 신학을 화해시킨 아퀴나스, 경험에서 시작해 세계에 ​도달하려는 시도를 한 데카르트, 개인적 차원에서 머무르던 철학을 사회적 현상으로 확장한 스피노자, 종교적 관용의 교훈을 준 로크, 화려한 파리에서 등을 돌려 시골에 정착함으로 자신의 신념을 실천한 루소, 종교적 믿음을 보호하기 위해 정교한 이론적 체계를 구축한 칸트, 양측의 입장을 고려하여 대립을 해소하는 방법을 찾고자 한 헤겔, 신중하고 자율적인 삶이 '좋은 삶'이란 메시지를 던지는 존 스튜어트 밀, 후대에 정서적 울림을 선사하는 키르케고르...

​학창시절, 쉬운 철학입문서라던 <소피의 세계>도 채 완독하지 못하고 덮은 아픔이 있는 내게, 철학은 더 이상은 피하지 말고 마주해야 할 숙제와도 같았다. 이 책은 철학의 문을 살짝 열어 방 안을 엿볼 수 있게 해 줬다. 이제 읽어볼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로, 관심이 생긴 철학자들의 책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루소의 <고백록>,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키르케고르의 <두려움과 떨림>... 어려워도 꾹 참고 철학 한 입만 더 먹어보자.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칸트의 진짜 관심사는 자유 속에서 믿음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 믿음, 특히 우리에게는 도덕(칸트가 생각한 바로는 전통적인 기독교 도덕)과 조화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유로운 행위자가 아니면 도덕은 의미가 없습니다.

​칸트는 이 모든 믿음과 도덕을 자연 과학의 위협적 주장으로부터 지켜 내고 싶었습니다. 칸트의 시대에는 자연 과학이 정말로 위협적이었죠. 과학은 앞선 세기에 놀랍도록 발전했습니다. 특히 뉴턴의 업적은 거의 모든 것을, 어쩌면 모든 것을 순전히 과학으로만 설명할 수 있음을 입증한 듯했습니다. 세계는 무정한 기계적 법칙이 만물을 지배하는 장소처럼 보였습니다. 자유에 대한 믿음, 만물이 그 믿음과 조화를 이룬다는 믿음이 심각한 위협에 직면한 것 같았습니다.

​칸트는 이 정교한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우리가 과학의 위업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도 자유에 대한 믿음을 굳게 고수할 수 있음을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그 방법은 사물이 안경을 통해 어떻게 보이는가와 사물 자체가 어떠한가에 대한 구분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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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
솔로몬 노섭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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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헬프』라는 영화를 보고 원작을 찾아 밤새 읽은 적이 있다. 1960년대 인종차별 심한 미시시피주, 백인 가정에서 일하는 유색인 가정부의 삶과 그녀들의 용기를 다룬 이야기였다. 『노예12년』은 그보다 100년 전 미국상황을 보여주며 인권과 정의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뉴욕의 평범한 자유민이던 솔로몬 노섭은 1841년 노예상인에게 납치되어 ‘플랫’이라는 이름을 달고 루이지애나주로 팔려간다. 노예를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윌리엄 포드를 위해 성실하게 일했지만, 주인의 재정난으로 난폭한 목수 티비츠에게 양도된다. 변덕스러운 성격으로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두 번째 주인을 거쳐 노예에게 채찍질하기를 즐기는 무자비한 농장주 에드윈 엡스 밑에서 10년간 일하다가 노예제도에 대해 진보적 입장인 떠돌이 목수 배스를 만나 자유를 되찾는다.

 

 

노예를 ‘말하는 재주가 있어 조금 더 값나가는 동물’ 쯤으로 여기는 주인에게 비인간적 대우를 받지만, 솔로몬은 한순간도 자유인임을 잊지 않고 ‘백인의 정신’으로 살았다 고백한다.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담담하게 그가 겪은 일을 들려준다. 자녀와 생이별당하는 어머니, 채찍질이 고통스러워 탈출을 감행하다 붙잡혀 죽는 노예, 가장 일을 잘하지만 젊고 예뻐 가장 많이 맞는 노예, 앉아서 점심을 먹을 새도 없이 온종일 착취당하고 얻어맞는 노예의 삶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잔혹함에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그럼에도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솔로몬의 세상을 보는 시선이 희망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12년간 노예로 살면서 인간성의 바닥을 접했지만, 그를 지배하는 감독관과 농장주를 절대적인 악인으로 단정 짓지 않는다. 심지어 주인의 어린 아들이 늙은 노예를 엄하게 혼내고 채찍질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할 정도다.

 

 

그들에게 가장 잔인한 형태로 존재하는 노예제가 그들이 지닌 인간적이고 훌륭한 감정들을 야수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중략) 노예 소유자가 잔인한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며, 오히려 그가 몸담고 있는 체제의 잘못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관습과 사회의 영향을 이겨 내지 못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보고 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채찍은 노예의 등을 후려치라고 있는 것이라고 배우기 때문에, 그는 성장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바꾸기가 쉽지 않게 된다. (p.199~200)

 

 

영혼의 색깔은 다르지 않고, 인간의 잔인함은 체제와 환경에서 비롯한다는 그의 신념과 이미 맛본 적 있는 자유의 힘이 버팀목이 되어줬다. 비록 그가 기소한 노예상인에게 당대에는 정의가 구현되지 않았지만, 후세를 살고 있는 우리는 알고 있다. 그의 정신은 승리했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선’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솔로몬의 시선과 약자에게 귀 기울이는 배스의 마음, 그리고 『헬프』 여인들의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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