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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심연 - 뇌과학자, 자신의 머릿속 사이코패스를 발견하다
제임스 팰런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뇌에서 사이코패스의 흔적을 발견한 뇌과학자의 인생을 회고한 자서전이다.
제임스 팰런은 행동의 80% 정도는 유전자(특히 뇌의 신경전달물질에 의해)에 의해 결정된다는 믿음을 가진 신경과학자이자 의대 교수다. 가족들의 뇌 PET 스캔 사진을 판독하던 중, 사이코패스라 확신하게 되는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엔 사이코패스의 뇌 스캔사진에서 섞여들어온 것이라 생각했으나, 실은 자신의 뇌였다. 억제, 사회적 행동, 윤리, 도덕성을 관장하는 뇌기능의 활동이 저조하거나 손상된 것이다.
그는 살인충동을 느낀 적도, 범법행위를 한 적도, 전과도 없었다. 성장 과정중 짓궂은 장난으로 종종 주변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긴 했지만, 자신이 공감능력이 떨어진다거나 충동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좀더 심도있게 가계 혈통을 조사해 보니 직계 조상 중 살인자, 범죄자, 가정을 버린 바람둥이, 권투선수도 여럿 있었다. 범죄자 가문이었다니!
그러나 그는 상황을 비관하기보다 과학자로서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편을 택했다. 사이코패스에게서 발견되는 뇌를 가졌고, 폭력성향을 내포한 유전자변이인 전사(warrior)유전자를 가졌음에도 그는 범죄 이력이 없었다. 오히려 성공한 과학자이자 교수, 인간관계가 좋은, 짓궂지만 재미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답을 성장 과정, 즉 양육에서 찾았다. 자신이 주장하던 이론과는 상반된 내용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정원에서 쓰는 다리 셋 달린 나무 의자가 보였다. 어머니가 주말에 제라늄을 다듬을 때 쓰는 물건이었다. 식물에 상처를 너무 많이 입혀도 성장이 지체되고 너무 적게 입혀도 굼뜬 식물이 되며, 딱 알맞은 양의 스트레스와 보살핌이 개화를 최대화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순간, 사이코패시의 병인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이 창조되었다. 사이코패시의 세 요소와 그 상호작용이 뒤뜰 정원의 다리 셋 달린 의자로 표상됐다.
세 개의 다리란, 안와전두피질과 편도체를 포함한 전측두엽의 유별난 저기능, 전사유전자로 대표되는 고위험 변이 유전자 여러 개, 어린 시절 초기의 감정적, 신체적 학대나 성적 학대였다. (128쪽)
뇌스캔에서 드러난 사이코패스의 뇌, 전사유전자와 같은 변이 유전자를 가졌지만, 아들의 남다른(부정적인 면으로) 면을 인지하고 사랑으로 양육한 가족 덕분에 내재된 사이코패스적 기질이 치명적인 방향으로 발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유년기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의 삶 중 사이코패스의 면을 보였던 사건들을 상세히 기술한다. 가족, 친구들에게 진심어린 관심을 가질 수 '없어' 상처를 줬고, 때로는 모험심에 그들을 생명의 위험에 처하게도 했으며, 자신에게 흥미로운 파티에 참여하느라 지인의 중요한 행사(결혼식, 장례식 등)에 참여하지 않았다 고백한다. 영안실의 어린 소녀의 시신을 보고 유족에게 "아이의 드레스가 예쁘네요."라는 말을 건넸다는 일화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자신의 성향과 비슷한 인물로 빌 클린턴과 테레사 수녀, 간디를 꼽는다. 이들과 희대의 범죄자의 가장 큰 차이는, 양육과정에서 다듬어졌다는 사실이다.
60대에 시작한 뜻하지 않은 순례를 통해 발견한 것은 5년 전만 해도 내가 믿지 않았던 뭔가다. 태어날 때 자연이 나누어준 형편없는 카드 한 벌을 올바른 양육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 지금까지 책을 읽었다면 눈치챘겠지만, 나는 결코 천사가 아니다. 하지만 훨씬 더 나쁜 모습으로 성장할 수도 있었다.
나는 사이코패시와 그 유전자를 사회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버리면 인류는 결국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생애 초기에 확인하고 그들이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어야 한다. 공감에 서툴고 공격성이 강한 사람들도 잘만 다루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그들은 나처럼 가족과 친구들에게 스트레스를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시적 수준에서는 사회에 보탬이 된다. (249쪽)
그는 우리 사회에 사이코패스가 어느 정도는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스트레스에 강하고, 그렇기에 면역력이 뛰어나고, 감정과 행동을 분리할 수 있기 때문에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겪을 위험도가 낮다. 특히 군인들에게 필요한 자질이다. 또한 인류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사이코패스의 척도가 아주 높은 사람들은 위험할 수도 있지만, 중간 정도의 사람들은 양육에 의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담하고 활기차고 인류의 생동감과 적응력을 지켜주는", 자신과 같은 사람 말이다.
일상에서의 삶, 인간관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개인적인 부분을 과감히, 솔직하게 서술했기에 독자로서는 상당히 읽기 흥미로웠다. 뇌과학, 신경학 관련 용어가 자주 등장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작가의 삶을 예시로 전반적으로 쉽게 설명했다. 과학에 관심있는 독자 뿐 아니라 교육, 양육에 관심있는 분들께도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