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이 싫어서 ㅣ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얼마전 20대 친구들과 '해외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에 대해 얘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국제대학원 학생들이다보니 필리핀, 일본, 미국, 이집트, UAE, 프랑스 등 1년 이상 장기 체류했던 국가도 다양했다. 결국 사회 내 보이지 않는 편견은 있기 마련이고, 유색인종이자 여성인 우리는 고학력 전문직이거나 백인남성과 결혼하지 않는 이상 외국에서 상위계급로 진입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순간 누군가(어쩌면 나일지도) 나지막히 얘기했다. "외국이든 한국이든 똑같은 흙수저일 바에는 선진국 가서 사람대접 받는 게 낫지 않을까?"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 준비에 지친, 혹은 취업엔 성공했지만 저녁이 없는 직장생활에 회의를 품은 청년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를 정확히 포착해 그린 소설이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읽혀서, 깊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안 좋아할 수도 있지만, 나는 누군가는 꼭 써내야 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잘 비춰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이것도 문학의 기능 중 하나가 아닐까).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모두 현 시점에 청년층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을 짚어냈고, 다른 기성세대보다 청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평가하고 싶다.
부모의 재력도, 좋은 학벌도, 뛰어난 미모도 없는 평범한 주인공이 비전도 즐거움도 없는 회사에서 하루하루를 때우는 모습, 남자친구는 있지만(그나마 낫다) 현실적인 문제로 결혼은 엄두도 못 내고. 엄마는 재테크 잘못해서 재산을 날렸고, 언니는 커피전문점에서 만년 알바생이고, 여동생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린다. 어쩌다 만나는 친구들은 시어머니, 남편, 직장 상사 욕에 신세한탄, 멀쩡한 대학 졸업한 친구는 수능을 다시 봐서 약대에 간다는 둥. 주변에 한 두명씩은 꼭 있는 20대 삶의 단면이다.
한국이 싫어서 호주행을 택한 주인공이 현지에서 고생 끝에 영주권, 이어서 시민권까지 따내는 모습은 대견하기까지 했다. 자력으로 공부해 학위를 취득하고, 파트타임으로 악착같이 일해 자신이 원하던 모습에 가까워진다. 오후 4시에 칼퇴근하고, 일년에 한 달 눈치보지 않고 휴가를 쓸 수 있는 곳, 처음 집을 살 때 2만 달러 정도 보조금이 지급되고, 자녀 학자금도 지원하는 나라, 접시를 닦아도 웨이트리스로 일해도 사람 대접 받을 수 있는 나라. 주인공은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떠난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찾아 호주로 떠난 것이었다.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 어떤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 데서 오는 거야. 그러면 그걸 성취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서 사람을 오랫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 줘. 그게 자산성 행복이야. (...) 어떤 사람은 정반대지. 이런 사람들은 행복의 금리가 낮아서, 행복 자산에서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런 사람은 현금흐름성 행복을 많이 창출해야 돼. (...)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 나한테 필요한 만큼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하기가 어려웠어. 나도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지. 나는 이 나라 사람들 평균 수준의 행복 현금흐름으로는 살기 어렵다, 매일 한 끼만 먹고 살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는 걸. (184-185쪽)
한국에 잠깐 들어온 주인공은 언니와 동생에게 함께 호주에 갈 것을 권하지만 거절당한다. 6년 만에 만난 친구들은 여전히 직장 상사, 시어머니, 남편, 한국을 욕하고 있었다.
걔들은 아마 앞으로 몇 년 뒤에도 여전히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을 거야. 솔직히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없는 거지. 걔들이 원하는 건 내가 "와, 무슨 그럴 쳐 죽일 년이 다 있대? 회사 진짜 거지같다. 한국 왜 이렇게 후지냐."라며 공감해 주는 거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냐. 근본적인 해결책은 힘이 들고, 실행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니까. 회사 상사에게 "이건 잘못됐다."라고, 시어머니에게 "그건 싫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가 무서운 거야. 걔들한테는 지금의 생활이 주는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이 너무나 소중해. (120쪽)
과연 나는 현재가 주는 안정감과 예측가능성에 취해 정체한 사람인지, 주인공처럼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찾아 도전하는 사람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대한민국 청년들도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을 돌아 봤으면 좋겠다. 해외 다녀오면 나이는 나이대로 먹고, 국내 취업 못하면 어쩌지 하고 발만 동동 구를 것이 아니라, 한국이 싫으면 싫다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배짱,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 살아남겠다는 깡이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