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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모신 하미드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 특이한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되는 법(How to Get Filthy Rich in Rising Asia)>은 자기계발서의 형식을 차용한 소설로, 파키스탄 출신의 저자가 최대한 감정을 배재한 담담한 필체로 남아시아 신흥국의 상황을 그린다. 도시로 나가 교육을 받고, 사랑에
빠지지 않으며, 이상주의자를 멀리하고, 고수에게 배우고, 스스로를 위해 일한다. 때론 폭력 사용을 마다하지 않고, 관료와 친구가 되고, 전쟁 기술자들을 후원하며, 부채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기본에 충실하고, 출구 전략을 마련한다. 물론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이므로 각 장의 제목과는
다르게 돌발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저자가 자기계발서 형식을 차용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첫번째 이유는 풍자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과거의 한국이 그랬듯)에서 흔히 유행하는 ‘~하라’, ‘~하는 법’과
같은 책처럼, 이렇게만 하면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처럼 독자를 유혹하는 책들에 대한 씁쓸한 조소(문제는 진짜 부자들은 자기계발서를 쓰지 않는다는거)와 그걸 알고 있음에도
자유롭지 못하고 흔히 말하는 성공 법칙을 어쩔 수 없이 쫓는 사람들에 대한 안쓰러움도 포함하고 있는 것 같다. 비꼬는듯한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결국 주인공은 더럽게 부자가 되지도, 급변하는 사회에서 그리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다.
두 번째로는 주인공을 당신(you)으로 둠으로써 독자를 개도국 현장으로
데려간다는 장점이 있다. 독자는 (주인공임에도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남아시아 시골 출신의 한 남자가 되어 유년시절부터 80세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인생을 직접 경험하는듯 여행을 한다.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상경한 요리사 아버지를 따라 온가족이 이주한다. 누나는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청소부 일을 하다 나이많은 홀아비에게 시집가고, 형은 방독면도 없이 페인트공 조수로 일하느라
기침을 달고 산다. 학교의 선생님은 뇌물로 얻은 일자리인지라 사명감이라고는 없고, 학력과 인맥이 없는 가난한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라곤 한 명이라도 학교를 졸업하게 해주는 건데, 그나마도 딸과 장남에겐 기회조차 없다. 막내 아들인 당신(you)만이 행운을 누리는데 그건 ‘순전한 우연’이라 자조한다.
부를 향한 길에는 가끔 갈림길이 나오는데, 그 향배를 좌우하는 건 선택이나 욕망, 노력 등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순전한 우연이다. 당신의 경우 출생 순서가 그 향배를 결정한다.
셋째로 태어났다는 사실인즉 조만간 시골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페인트공의 조수로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세상을 일찍 떠난 당신 집안의 넷째와는 달리, 어느 나무 밑동의 조그만 무덤 속에 유골이 돼 누워 있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사실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 (40쪽)
주인공이 가난한 시골 출신에서 도시의
사업가로 성공하기까지가 이야기의 한 축이라면, 다른 한편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예쁜 여자’와의 엇갈리는 사랑이야기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기에 예쁘장한 외모로 수많은 남자들을 거치며 성공가도를 달리지만 마음속에는 고향의 주인공을
생각하는 여인. 때로 둘의 인생이 교차하는 시기의 애틋함도 잘 드러난다.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는 주인공을
둘러싼 아시아 신흥국의 사회상을 엿보는 것인데, 개도국과 선진국을 모두 경험한 저자이지만 개도국 사회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서술하는 입담(?)이 훌륭하다. 예를
들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수염이 긴 남자들’이라 에둘러 표현하거나, 권위주의 사회의 고부관계를 ‘상대방이 나이들기를 기다리는 게임’이라 묘사하고, 사업가로 성공하기 위한 팁이라고 충고하는 것조차도 웃기다.
족벌주의가 ‘내 자식이 바라는 대로
해줘’라는 식의 가장 노골적인 청탁의 도구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아주 교활한 변장, 예를 들어 복장이나 억양 같은 형태로 구현될 때도 많다. 지금까지
당신이 학문적으로 어떤 업적을 쌓았든, 영화를 통해 사람들의 다양한 스타일이나 태도에 얼마나 익숙해졌든, 당신이 하류 계층 출신임을 숨길 방법은 없다. (67쪽)
당신이 다니는 대학은 국가의 보조를
받는데도 굉장히 돈에 민감하다. 시험 시간에 부정행위를 하다 걸려도 감독관에게 조금만 돈을 쥐여주면
눈감아준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당신 대신 시험을 치를 수도 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답안지를 백지로 제출해도 A학점을 받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68쪽)
당신은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가 되고 싶어 하며, 이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이야기했다. 당신은
스스로를 위해 일해야 한다. 노동의 열매는 달콤하지만 영양가가 높지는 않다. 그러니 당신의 열매를 남과 나누지 말고, 기회가 닿는 한 남의 열매에
눈독을 들여야 한다. (106쪽)
이 얼마나 솔직하고 뼈있는 조언인지! 가난한 국민과 쉽게 무시되는 인권, 사회 깊숙히 침투한 부패와 인플레이션,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극단주의 종교집단들, 경쟁사를 폭력으로
처단하는 것이 용인되고, 국가가 불의를 눈감는 사회에서 부자로 성공,
아니 생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발버둥쳐야 한다고 저자는 소설 속 당신(you)의 삶을
통해 이야기한다. 유쾌하고 시크한 자기계발서의 필체이지만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의 인생은 부조리 투성임을
발견한다.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해준 ‘순전한
우연’에 감사할 만큼.
자기계발서의 가볍고 중립적인 필체가
아니었다면 무거운 현실을 떠올리고 책을 금방 덮어버렸을지 모르겠다. 아프가니스탄을 주배경으로 하는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은 아름답지만 읽고나면 마음이 무거운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택한 서술방식은 그의 재능이 잘 드러난 신의 한 수가 아닐까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