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 시공 로고스 총서 2 시공 로고스 총서 2
데이비드 매클릴런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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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가장 많이 읽혀지는 맑스 개론서는 역시 캘리니코스의 '마르크스의 사상'(흔히들 '마혁사'라고 불리웠던-구판은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이기에 줄여서 그렇게 불렀었다)일 것이다. 다소 성격은 다르지만, 비교적 최근에 푸른숲에서 출간된 '마르크스 평전'이 그 뒤를 잇고 있는 듯 싶고. 그런 측면에서 시공 로고스 총서의 하나로 기획된 '마르크스'는 솔직히 말하자면 다소 찬밥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사실, 맑스에 관한 지식이 일천한 내가 보기에도 개론서치고는 저자의 개인적인 견해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매클릴런은 맑스를 그냥 '헤겔의 제자'로 만들어 버리고, 구조주의적 맑스주의에 대해서는 거의 '폭언'(?!)에 가까운 혹평을 늘어놓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안다.) 더군다나 이 짧은 책 속에 그의 생애 넣어야지, 경제, 정치, 철학 등 각종 사상 넣어야지, 관련 서적 소개도 해야지, 더군다나 평가 및 이후 맑스의 영향을 받아 발전된 몇몇 학파-크게 알튀세르 학파와 프랑크푸르트 학파-소개까지 하느라 독자로 하여금 다소 '허덕인다'는 느낌까지 받게 만들고 있다.(그럼에도 출간시기라는 물리적 제약으로 인하여 최신의 이론까지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_-;;;)

사견이지만, 맑스는 너무나 뛰어난 자신의 정신적 능력에 육신이 따라가지 못한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곤한다. 아니, 애초부터 한 인간이 할 수 없는 기획을 실행에 옮기려 노력한 사상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변혁에 필요한 사전 정보를 정리하고 올바른 분석을 하기위해 그는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인류의 정치, 역사, 경제, 철학 등등 모든 학문분과를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정리'하려 했고, 그 말도 안되는(!) 방대한 양의 작업 도중 완성을 보지 못하고 사망하였기 때문이다.(알다시피 '자본론'의 2,3권도 미완성 작품이다.) '실천'의 기획을 오류없이 이루기 위해 그 이전에 무엇보다 철저하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즉, 자본주의 사회-을 해석하고자 했던, 그 '해석'의 기획 도중 사망한 그. 세상을 해석하기만 한 당대 철학의 현실을 비판하며 '실천'을 강조했던 그의 작업이 정작 해석에서 시작해 해석으로 끝난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하다.(허기사, 아무리 아이러니한들 본서의 출판사가 전두환 아들내미 소유라는것 만큼이나 아이러니 하겠느냐마는)

하지만 그의 해석이 실천을 염두에 둔 해석, 실천에 열려있는 해석이라는 점에서 그의 사상이 오늘의 우리에게 갖고 있는 함의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업이 종종 교조적으로 해석되곤 한다는 것, 혹은 지금은 작고하신 정운영교수가 이야기 한 바 몇몇 학자들의 '비표'로서 그의 정치경제학이 기능하는 것은 그 자신부터 굉장히 유감스럽게 여길 만한 일일 것 같다. 어찌되었건 너무나 많은 맑스에 관한 평전/개론서가 나와있는 오늘, 다소 무색무취하게까지 뵈는 본서를 추천하긴 다소 머뜩찮은 일이기는 하다만,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건 맑스를 접하고자 하시는 분에게는 본서 또한 '하나의 길'정도는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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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스 걸작선
아서 코난 도일 지음, 곽영미 외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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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대형할인마트' 서적코너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유일한 고전(?)이다. 나 또한 그곳에서 샀었고. 어린시절, 추리소설을 썩 좋아했는 편은 아니었던 나였는데, 그럼에도 예전에 읽은 기억이 있는 단편들이 몇몇 있었던 걸 보면, 셜록홈즈가 정말 유명하긴 유명한가보다.

사실, 코넌도일의 작품 중 상당수가-특히나 애거사 크리스티에 비한다면-치밀한 과학적 분석이나, 탄탄한 시나리오로 구성되어 있다고 봐주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소 '날로먹는'듯한 작품도 몇몇 있고(이를테면 '마지막 사건'같은 것), 추리에 오류가 있는 것도 몇 편 있다.(이를테면 '붉은머리 연맹'이나 '얼룩무늬 끈'같은것-이것들은 공교롭게도 내가 예전에 읽은 기억이 있는 몇안되는 단편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웃기에는 너무도, 너무도 매력적인 셜록홈즈의 '캐릭터'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남게 만들어 버린다.

아울러, 코넌 도일의 문학적 역량에 관하여, 개인적으로는 그간 셜록홈즈 시리즈를 어느 한 심심한 의사의 습작 정도로 취급했었는데, 여기에 실려있는 유일한 장편-바스커빌 가의 사냥개-를 보고 그 생각을 접기로 했다. 그러한 장편 뿐 아니라, 코넌 도일의 대표적 단편들 또한 잘 추려서 실어놓은 듯.

ps. 본서에는 '보헤미아 왕국의 스캔들', '붉은 머리 연맹', '입술이 비틀린 사나이', '얼룩무늬 끈', '실버 블레이즈', '마지막 사건', '춤추는 인형그림의 비밀', '프라이어리 학교의 실종사건', '나폴레옹 흉상의 비밀', '소포 상자', '생사의 기로에 선 홈스',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의 전부 11편의 단편과 1편의 장편이 수록되어 있다.

ps.2 이 책의 뒷부분에는 셜록홈즈와 관련된 몇몇 사이트가 소개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국내 홈페이지로는 유일하게 본서에 소개되어 있는 우리나라 셜록홈즈 사이트-베이커가 221B-의 충실함과 치밀함에 가히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 방문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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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2010-12-18 16:08   좋아요 0 | URL
붉은 머리 연맹, 얼룩무늬 끈... ㅋㅋ 아 저도 두근거리며 읽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제가 읽었던 거는 흑백삽화가 아주 무시무시하게 그려져 있었다죠.. 근데 감동의 사이트를 방문해보려고 했더니만 휴면계정이라고 뜨네요.. 아쉬워라...^^

率路 2010-12-21 00:36   좋아요 0 | URL
아- 이런, 사라지기에는 정말 아까운 사이트였는데 정말 아쉽네요ㅠㅠ
 
청산하지 못한 역사 3 - 청년학술 14
반민족문제연구소 / 청년사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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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재수시절 '유일하게' 구입했던 책이고, 그 이후 대학시절에도 틈틈히 봤던 책이다. 사실, 사서 읽을 때만해도 이 책이 내 생각의 흐름에 그렇게 큰 영향을 주리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당시 이 책을 본 덕택에 적어도 국가가 항상 맞는 말을 하는건 아니라는 것. 시민 대중이 스스로 노력하고 투쟁하여 책임을 묻지 않는 한, 역사적 과오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들 스스로가 '알아서' 반성하거나, 하다못해 절대정신이나 신 등등등의 힘을 빌어서라도 '말하게 되어지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 등등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던 듯 싶다.

친일파의 명단과 그들의 간단한 생애를 보면서, 재미있는 것은 친일파들은 항상 그 이후 친미-친재벌-친독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일관성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언제나 '강한자의 편'에 있었다는 것 뿐, 역사의식이나 신념없이 이리저리 휩쓸리며 권력에만 빌붙었다. 그들의 인간적인 면을 이해해주고 싶어도 그들의 존재자체가 그간의 한국사에서는 걸어다니는 폭력이자 위선이었고, 때문에 몇몇 개인 혹은 집단이 우리 조상님이라, 우리 총장님이라, 우리 사주라, 우리 대통령이라 모시는건 자유일지는 모르겠지만 사회 국가적인 역사적 단죄 혹은 그들의 사죄가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 책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이 있다면, 무엇보다 친일파 선정 기준이 다소 모호하지 않느냐라는 점을 들고 싶다. 물론 이 책의 출판당시보다 연구가 많이 진척되어서 이젠 어느정도 기준이 정립되었을 것이라 기대는 하지만, 이를테면 최규하씨 같은 경우 친일 행적보다는 이후의 행적에 대한 비판을 친일에 대한 비판으로 치환한게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었다.(그런 경우는 최규하씨 뿐만 아니라 몇몇 더 있다.) 

책의 제목은 '청산하지 못한 역사'이다. 이는 우리가 친일파를 앞으로 '청산해야 함'을 전제한다. 하지만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역사는 청산하고 끝내야 할 것은 아닐 일인 것 같다. 외려 이는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정리하여 보관하고 두고두고 잊지말아야 할 역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에 대한 단순한 행적 뿐 아니라 심리나 정신들도 지속적으로 심도있는 연구, 분석이 이루어져 후대에 교훈을 삼아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ps. 당시 이 책을 출간했던 '반민족문제연구소'는 현재 '민족문제연구소'로 개칭(개인적으로는, 이전보다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잘 바꿨다고 본다^^)했고, 이 책은 현재 '절판'상태이다.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 책에 있는 내용들이 온전히 자료로 올라와 있어서 찾아볼 수 있는데, 텍스트를 읽기 위해선 가입을 해야 한단다. 관심있으신 분은 가입해 찾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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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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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시절 선배들이 새내기에게 주는 선물목록 1,2위를 다투었던 책이었고, 굉장히 감동적이라는 평이 많았던 책이라 묘하게 경계(?)했던 책이다. 그러한 경계심의 여파는 엄청나서, 개인적으로 본서를 갖게 된 것은 이십대가 꺾인 이후였고, 결국 완독은 서른 가까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내 머리속의 자기검열체계랄까. 생각해보면 체게바라 평전 같은 건 대학 1,2 학년때 어렵잖게 읽곤했던 내 머리가 무엇때문에 이 책을 거부했는지 모르겠다. 어찌보면, 그만큼 이 책의 내용이 진솔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어느 겉멋없는 청년에 의해 쓰여진, 정말이지 겉멋 하나 없는 청년에 대한 평전은 정말이지 멋있기에 그지없다. 아니 '멋있다'는 말이 너무 가벼워진 오늘, 그러한 평을 전태일과 조영래에게 안긴다는 것은 고인들에 대한 누가 아닐까 싶을 지경이다. 그저 이 책을 왜 이제서야 접할 수밖에 없었는가, 내 가슴속에 아직도 남아있는-어찌보면 어린시절의 세뇌에 의해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지도 모를-레드컴플렉스를 저주할 수밖에.

사실 서평을 쓰려고 리뷰창을 열고 키보드를 두드리지만 이 책에 대해 무어라고 써야할지 모르겠다. 시간과 여력이 닿는다면, 그냥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다시 타자로 치고 싶은 심정이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그의 삶은 진정 영웅적이었고 평범함에서 우러나온 그 비범함은 오늘의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나는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가.

저자인 조영래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전태일의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삶을 역사에 남을 고전으로 승화시킨 것은 많은 부분 저자의 능력에 기인하기도 한다. 전태일의 행동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평가는 무어라 형용할 수없는 문체로 우리 가슴에 와닿는다. 그리고 그 문체는, 화려한 미사여구나 어려운 수사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진솔함'이 묻어나기에 더욱 감동적이다. 진솔한 삶이 진솔한 저자를 만나 더욱 빛났다고나 할까.

물론 본서는 어느 노동자가 노동자로써의 자의식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사회과학적 분석자료로 해석될수도 있고, 당대 노동자들의 삶의 현실을 알 수 있는 역사적 사료로 고려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국한해 보기에는 책의 내용이 너무 '광대하다'. 해서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사실 본서는,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어찌보면 우리시대 또 하나의 '성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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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 - 한국 풀뿌리민주주의의 현실과 전망, 민주주의 총서 04
하승수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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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풀뿌리 민주주의'로 상징되던 '지방자치'가 민주주의의 학교라는 이야기는 이제 어느덧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고리타분하면서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은 민주화운동 진영에서마저 지방정부나 지방의회를 직선제로 선출하게 된 것이 시기상조 아니었느냐, 실수아니었느냐 하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지경이다. 저자가 언급한바대로, 오늘의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라기보다는 풀뿌리 보수주의, 즉 민주주의의 걸림돌이자 보수주의의 보험같은 성격이 되어가는 듯 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저자는 지역에서의 시민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이에 대해 다소 장황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런저런 문제제기를 해 나간다. 민주화의 결실로 얻어낸 지방자치가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 지방의 기존 기득권을 어떻게 강화하고 있는지를 거시적, 미시적 측면과 통시적, 공시적 측면으로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는 본서는, 오늘의 지방에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드러내는 점에 있어서는 그 의의가 적지 않다하겠지만, 그럼에도 다소 원론적이랄법한 대안으로 인해 힘이 빠지는 면이 없지는 않다.

그렇다면 저자의 대안이 다소 힘이 빠지게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참여'를 강조하는 저자의 다소 이상적인 대안제시 때문일까? 그보다 문제는 오늘의 지역문제가 그렇게 간단하게 '참여'와 '지역'만을 생각해서 해결될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이는 우리 사회 대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때문이기도 하고, '발전'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왜곡된 발상 때문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오늘 한국의 사회구조가 지방을 결코 시민들이 '살고싶은 곳', 아니 심지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매년 언론은 '살기좋은 곳'을 발표하고 그 지역은 대부분 지방이다. 하지만 단순히 항목별 점수가 아닌 총체적인 한국사회 구조를 통해 생각해보자. 우리 사회는 정말 '수도권 쏠림현상'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 민망할 정도로 모든 것이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교육이건 문화건 경제건간에 어찌되었건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해야 그럴듯하게 살 수 있는 구조에서는 지역민에게 지역이 어떻게 발전되건, 어떻게 아름다워지건 그것은 그 다음 문제다. 특히나 변화를 바라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있어-하다못해 대학이라도-자신의 지역을 떠나 서울로 가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이고, 고향이 어떻게 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자신의 지역 시의원이 어떤 화상이 되건, 자신이 뿌리박고 살던 고향이 어떻게 변하건 그것은 오로지 서울로 향하기 위한 부차적인 효과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런면에서 지방 곳곳에 펼쳐진 공사판도 이해가 갈만한 현상이다. 이러한 사회구조에서 지역의 고향땅은, 많은 주민들에게 결국 서울로 갈 수 있는 자금줄로 보일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는 지방의 문제가 지방에서의 참여 같은 것으로 회복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토호들의 독주는 계속될 수밖에 없고, 지방 정치에 대한 참여동기는 보수적인 구세력이나 땅값상승에나 관심있는 외지인에게 더 강하게 제공되기 마련이다. 이처럼 지방자치의 보수화가 가속되는 상황을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극복하려면 단순히 지방을 '살기좋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힘들다. 때문에 실질적인 권력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것, 경제뿐아닌 문화, 교육의 인프라에 대한 거의 혁명적이랄만한 전향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것과 함께, 기존의 '좋은 삶'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어나가려는 작업-생태적 삶의 가치라던지, 지식에 기반한 경제 구조라던지 하는식으로(이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개인적으로도 생각이 잘 안선다.-_-;;;)-또한 양동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이 쉬운 작업은 아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이후 몇백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21세기 들어 더욱 미칠듯한 속도로 강화되고 있는 서울 중심주의를 해체하는 작업이 손쉬운 일이기를 바라는 것이 허망한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서울 중심주의와 지방의 피폐화가 이제 서울이라는 소위 '중심'마저 온전히 존재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는 오늘, 단순히 삶의 공간을 넘어서 지방이 오늘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오는 중대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 오늘, 지방에 대한 고민은 단순히 지역민만의 고민일수가 없다. 그런면에서 지방자치의 문제를 '드러내어'주기라도 하고 있는 본서는, 오늘의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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