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국민보고서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지음 / 그린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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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분량의 본서는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산하 '정책기획 연구단'의 1차 공동기획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논문 모음집 형식의 본서는 의외로(?) 다양한 형식과 시각이 혼재해 있으며(심지어 현실적으로 미국과 FTA체결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식의 실용주의(?)적 입장을 취한 글도 있다) 그럼에도 모든 논문이 '지금 추진되고 있는 방식의 FTA는 문제가 있다'는 결론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한미FTA는-IMF사태가 그랬던 것처럼-외려 산술적인 경제문제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한미FTA는 기본적으로 정책이나 제도, 나아가 환경이나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우리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금융과 복지정책에 있어서의 구조적 틀을 어떻게 형성해 나갈 것이냐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부터 시작하여, 한 사회에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며 기업의 위치는 어떠해야하는지, 우리는 어느 정도의 개방을 해야 하며 개인은 어느정도의 자치권을 지녀야 하는지, 우리의 환경은, 그리고 우리 삶의 터전은 어느 정도 속도로, 얼마만큼 지속가능하게 발전되어야 하는지가 모두 이 한미FTA와 무관하지 않은 문제이다. 협상문의 포괄주의적 형식으로보나, 이행강제의무금지조항과 정부-기업간 소송제도 등등의 내용으로 보나, 한미FTA는 그 심대한 영향력도 영향력이지만 한번 잘못 체결되면 그 결과를 돌이키기란 매우 어려우며, 때문에 정부 말마따나 단순히 홍보운운할만큼 한가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산업처럼 우리가 상대적으로 뒤떨어지는 분야에 대해서는 '외국업체를 들여와 경쟁력을 높인다(여담이다만, 고등학교 정치경제교과서적 지식 정도밖에 없는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서 그런데, 유치산업은 개방 이전에 보호하여 경쟁력을 높인 후 시장에 내보내는게 원칙 아니었나?)' 운운하다가 영화산업처럼 국내에서(그나마 우리 영화가 '국내'를 넘어 '세계'시장으로 넘어갈 경우 점유율은 단2%밖에 안된다. 미국? 85%다-_-;;;) 좀 경쟁력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그렇게 자신이 없느냐'운운하며 어찌되었건 개방으로 결론을 내는 말장난만 하고 있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애초 제대로 된 협상의지가 있는 것인지,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이며 무얼 필요로 하는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나 있긴 한건지 의문스러울 지경이다.(뿐만아니라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가 미국과 어느정도 공정한 협상을 체결했다손 치더라도 책에 나와있는 미국의 여타 FTA 사례들을 볼때 이것이 협상문대로 공정하게 운영될 것이냐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단순히 외세에 의해 타의로 FTA를 체결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미 우리는 한미FTA에서 요구하고 있는 수준 만큼의 개방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거나 추진중이었으며, 이에 대한 그간의 저항과 관심이 미미했기에 우리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개방'에 대한 충격이 현재 시점에서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설령 이번 한미FTA가 체결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본의 공세는 계속될 것이라는 것. 때문에 지금의 한미FTA반대에 대한 목소리는 이번 협상의 내용과 그 체결의 여부를 떠나서도, 신자유주의와 그로 인해 침해되는 수많은 민주적 가치들을 논의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본서를 읽다보면 한미FTA도 한미FTA지만,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게된다. 기실, 한미FTA가 체결된다 해도 미국의 노동자, 농민들에게 득될 일은 거의 없다봐도 무방하다.(단적으로 초국적 농식품복합체 덕분에 미국의 중소농가들이 어떻게 궤멸되었는지 책에서도 적나라하게 소개된다) 아울러 어떤 내용으로 한미FTA가 체결된다 하더라도 국내 대기업에게는 득이면 득이지 실이될 요소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한미FTA는 나아가 빈곤의 세계화, 양극화의 세계화, 자연과 인간과 수많은 가치들을 괴물처럼 집어삼키는 신자유주의의 문제이며 때문에 우리는 자유(Free)무역 이전에 공정(Fair)무역을 주장해야 한다는, 세계화 이전에 어떤 세계화이며, 개방 이전에 무엇을 위한 개방인지를 물어야 한다는 저자들의 외침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세계화는 소수의 초국적 자본의 배만 불리게 하는 '돈'의 세계화만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게다. 리우 환경협약,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협약, 세계식량안보에 관한 로마선언 등에서 보여지듯, 진정한 세계화의 목표는 세계인이 쾌적한 환경에서 서로 공존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데에 맞춰져야 할 것이며, 수많은 세계화 중 하나로서 '돈'의 세계화 또한 그러한 목표에 기반되어야 할 것임은 자명하다. 우리는, 아무런 목적없이 순전히 자본의 세계화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이러한 편향된 세계화담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광우병 의심이 가는 소를 국민에게 먹이고, 남아도는 칼로스를 처리해주는 것이 과연 세계화를 통한 후생복지일까? 경부선과 호남선이 경쟁하는 것, 강원도 두메산골의 전화선과 서울 강남의 전화선이 경쟁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경쟁이란 말인가.

책은 정말이지 두껍고 솔직히 말하자면 재미도 없다. 하지만, (전문적인 것을 넘어 다소 시시콜콜하다 싶은 서술이 이루어지고 있는 부분을 제외하자면) 그 두툼한 분량 속에 '자유무역'과 관련된 오늘, 우리의 문제들을 분야별로 거의 다 담고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라 보여지며, 때문에 본서는 오늘날 한국자유무역론에 대한 대안교과서(?) 역할을 잠시나마라도 충분히 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추상적인 주장만 되풀이하는 여타 서적들과 달리 굉장히 구체적인 자료로 구체적인 비판을 하고 있으며, 이로인해 본서는 상당부분 책으로서의 재미는 희생할 수 밖에 없긴 했지만, 그 부분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만족도를 독자에게 선사(?)하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아울러 반대편의 주장을 왜곡시켜 선동하기에 급급한 정부의 어설픈 논리에 비해, 외려 상대의 헛점까지도 메워주면서 그 점을 논박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저자들의 성실성은 책을 더욱 빛나게 만들고 있다. 한미 FTA야말로 오늘, 이땅에 살고있는 우리들이 대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게다. 때문에 그 누구든, 다소 만만치않은 가격에 부담스런 분량이지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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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프로이트 평전 - 제2판
에리히 프롬 지음, 김진욱 옮김 / 집문당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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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웬 맑스? 아니 웬 프로이트? 이 사람들 개론서는 이전에도 읽었었다면서 왜 또 새삼스레 평전? 하지만 이 책의 정확한 면모를 알려면 본 제목보다 '환상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부제(원서는 외려 부제가 제목이다)와 저자인 '에리히 프롬'에 주목하는 것이 더 이로울 듯 싶다.

사실 책은 제목처럼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형식의 '평전'은 아니다. 맑스나 프로이트의 생애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나오지 않는다. 에리히 프롬의 사상적 자전(?)이라 할 수 있는 본서는 에리히 프롬이 어떤 연유로 맑스와 프로이트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각각의 문제의식과 사상적 특성은 무엇인지, 양자의 차이는 무엇이며 공통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들이 제공한 사상적 무기(?)를 이용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서술되어 있다. 처음에는 양자간의 비교와 대조에서 시작해서 점점 가면갈수록 양 사상이 융합되어가며 마지막에는 에리히 프롬의 사상이 등장(?)하는 듯한 형식은 독자로 하여금 갈수록 흥분(?)에 빠지도록 만든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도 초반에는 다소 지루했던 것도 사실이지만(그나마 초반은 목차가 잘게 나누어 있어서 견딜수 있었다) 가면갈수록 속도가 붙었고, 마지막에 가서는 가히 감동감동감동이었다는.

그의 사상에 있어서 물론 주(主)를 이루는 것은 맑스이다. 하지만 맑스는 사회에 대한 통찰속에서 그것이 어떻게 이데올로기적인 상부구조로 변환하는지를 밝히지 않았다. 아울러 그는 주로 사회의 공통된 상태와 그 사회의 특수한 체계에서 오는 특수한 상태에 관심이 있었는데 반해 개인의 상태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 있어 프롬은 프로이트를 끌어와 맑스와 프로이트 간의 실천적인 이론을 만들어낸다.(그리고 누구나 잘 알고 있듯, 이러한 맑스와 프로이트간의 사상적 연대의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여러 사상가들에 의해 이어져오고 있다.) 새로운 사회를 위해선 새로운 인간부터 존재해야 하는 법을 인지해서일까? 저자는 맑스의 기획을 주로 삼으면서도, 책의 많은 부분을 맑스보단 외려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에 관한 설명과 논증에 할애하고 있다. 때문에 그만큼 책은 개개인에게 '구체적인' 행동과 마음자세를 촉구한다.(이 점에서 본서는 다른 고답적인 주류 이론서의 틀을 벗어나 있다)

그가 보는 맑스와 프로이트의 기획(아울러 그의 기획이라 할만한)은 '해방'과 '휴머니즘'이다. 그는 그의 눈을 흐릴 수 있는 이런저런 요소들을 물리치고 세심하고 균형감있게, 그러면서도 강한 신념으로 무엇보다 '실천적인'이야기를 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맑스와 프로이트에 관한 언급은 줄어들고 이 두 거장이(뭐 지금은 에리히 프롬도 거장이라고 불리워질만하지만)제공한 무기를 통해 오롯이 서게된 자신의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단순히 사회적 기획수준으로써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개인의 행복론이나 윤리학적 측면에서도 놓치기 아까운 글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저서들은 프랑크푸르트 학파 내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에 비하자면 굉장히 많이 팔리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듯 싶으며, 이는 다른무엇보다도 그의 저서가 그의 다른 동료들의 저서에 비하자면 비교적 쉽게 쓰여졌다는 점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유가 과연 그것 뿐일까? 요즘 구하기 썩 쉬운 일만은 아니겠지만(그래도 알라딘엔 있더라) 한번쯤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올해 베스트까진 아니어도 원오브더베스트는 된다고 볼만한 책. 솔직히 이런류의 책읽고 감동먹기는 정말 간만이었다는.

ps.여담이다만, 애초 혁신적이었던 심리학이 당시 미국에서 어떻게 타락했는지를 개탄하는 에리히 프롬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현실이 오버랩되었다. 오늘날 심리학자들은 프로이트가 그렇게 걱정한바대로 환자들의 신으로 군림하며 개인을 해방시키려 하기보다는 적응시키려 한다. 지극히 상업적인 심리학 서적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오늘, 우리의 시대에, 따지고 보면 정신분석학 서적이라고 볼만한 본서는 어떤 취급을 당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굉장히 아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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