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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ㅣ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소위 '있는집'에서 태어났음에도 제국주의에 반대하여 일본공산당에 가입한 아버지를 둔 저자는, 공산주의의 국제주의적 전통의 소산이라 할법한 '평화와 사회주의에 관한 제문제'라는 잡지의 편집위원이 되어 프라하로 가게 된 아버지 덕택에 프라하의 '국제학교'를 다니며 구 공산권의 다른 나라 친구들과 생활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된다. 본서는 이러한 저자의 학창시절 경험담과 함께 동구권 몰락 이후인 1990년대 중반,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나 그들의 변화된 생활을 보며 느끼게 된 감정을 굉장히 아름다우면서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주로 프라하 국제학교에서 만났던 세 친구에 관한 에피소드를 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본서에서, 흥미롭게도 그 친구들 중 공산주의의 종주국이랄 법한 소련이나 현지인인 체코 출신은 한명도 없다. 그리스에서 정치적인 박해를 받아 프라하로 망명한 가족을 따라 온 리차, 루마니아 공산당의 고위층 자제이지만 유대인이라는 신분을 숨기고 싶어하던 아냐, 공산주의 주류로부터 굉장히 이탈하여 있던 유고슬라비아(이지만(?) 보스니아) 출신의 야스나와의 학창시절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저자는 명시적으로 정치나 네셔널리즘에 관한 언급을 거의 하고있지 않지만,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 속에서 서로 다른 뿌리를 갖고 외국의 학교에 다니게 된 소녀들의 경험담, 그리고 동구의 몰락 이후 친구들을 만나 그 친구들이 정치적인 격변으로 인하여 얼마나 변하였고, 뜻밖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속에서 그런 것들은 매우 세련되고 은은하게 서술되고있다.
동구가 몰락하고 역사라는 수레바퀴에 치이고 깔리면서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인생을 살게 된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저자의 문체는 여전히 담담하다. 리차-아냐-야스나 모두 자신이 유년시절에 품었던 꿈과 자의반 타의반 다른 삶을 살고 있고, 그러한 삶을 바라보는 저자의 자세는 때로는 비판적이고 때로는 감성적이지만 이를 이용해 독자로 하여금 어떠한 보편적인 감상을 의도하지는 않는다. 헌데 책을 읽고 난 후에서야, 그러한 자연스러움이 모여 송곳하나 들어갈 곳 없는 짜임새가 엿보이더라는 점은 개인적으로 정말 짜릿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심지어, 세 명의 친구들의 이미지는 세가지 색깔-파랑, 빨강, 하양-으로 엮이고, 그 친구들은 색깔이 상징하는 것들에 대한(즉, 자유 우애 평등에 대한) 표상으로 읽히기까지 했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건 너무 과도한 해석일까?
학창시절의 추억과 90년대 중반의 만남 사이에서, 소녀들에게 역사는 어디까지나 조연이고 정치는 엑스트라였다. 하지만 이러한 조연과 엑스트라는 이 세상 모든 '주연'들의 인생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소녀'시절과 글이 쓰여지던 당시의 변화된 상황 사이를 오가며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고집하기보다는 그저 그 친구들을 조용히 비추고 묘사해준다. 물론 저자 자신의 생각 자체가 아예 서술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생각이 표현될 경우 친구가 받을 섭섭한 감정에 대해 저자는 항상 주의를 기울인다. 역사로부터 소외되고, 때로는 자기자신으로부터까지 소외된 친구들의 모습을 보듬으며 추억을 거슬러올라가는 저자의 어조는 담담하기 이를데없지만, 독자는 그 속에서 무지개처럼 많은 감상을 쏟아낼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서 무어라 콕집어 이야기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휴머니즘? 글쎄, 그와 유사하긴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따뜻한 무엇말이다.
'노동자들의 국제적인 연대'라는 기치를 내건 공산주의 운동과, 그 이상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의 일환으로 운영되던 국제학교에서의 저자의 경험을 읽다보면, 역설적으로 네셔널리티라던지 애국심 같은 것이 더 도드라져보인다. 저자 또한 가끔씩 지나가듯 언급한 바, 보편성(즉, 국제주의)을 파악함에 있어서도 어찌되었건 결국 개별성(내셔널리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듯하다. 하지만 타국 국적의 어린시절 친구들을 대하는 저자의 자세 속에서 '무슨'이론을 택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람이 자의식을 확립하기 위해 어떠한 집단에 의지하는 것은, 그것이 가족이건 국가건 무엇이건 간에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론이 하나의 이상이자 목표로 설정될 수는 있겠지만, 잊지 말하야 할 것은 문제에 접근하는 '자세'이다. 국제주의라는 이상은 초기 공산주의에도 있지만 신자유주의에도, 68년 프라하를 진압하러 온 소련군에도 있다. 네셔널리즘은 나치나 파쇼들에게도 있지만, 서로간의 차이를 확인하고, 인정하고, 그 차이에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는 소녀들의 따스한 대화 속에도 존재한다.
이처럼 저자의 독특한 경험은 자연스럽고 세련된 서술로 인하여 자연스레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아니, 그런 부분은 따지고보면 '너무 당연한'메시지이기에 전한 것이 아니라 전해질 수밖에 없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본서의 가치는 민족이나 국가, 혹은 사회주의와 그 이후 정치의 역설적인 부분에 대한 것에 있지는 않은 듯 하다.(사실 명시적으로 이런 부분에 대한 언급은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아름답다고 할만큼 빈틈없는 짜임새와 문체, 그리고 그 경험담을 통해서 느낄수 있는 따뜻함. 우리 모두 한 때 가지고 있었던, 하지만 이제는 잊어버린(그리고 되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기약도 없는) 민족이니 국가니 정치적인 차이니 하는 것마저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되돌릴 수 있을만큼 강력했던(?) 어린시절의 호기심과 천진난만함, 그리고 사람에 대한 꾸밈없는 애정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이 본서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미덕인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서의 한국어판 제목이 '소녀'시대라는 점은 나름의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어찌보면 우리가 그 무엇으로부터도 흔들리지 않고, 그저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을 만나고 사귈 수 있었던 가장 강인했던 전성기(?)는, 이제는 다시 돌아가지 못할 소년 소녀 시절이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