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23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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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작년 국내 출판시장에서 가장 센세이셔널한 뉴스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움베르토 에코 전집의 출간을 꼽을 것 같다. 그만큼 에코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자 철학자이자 기호학자이자 음음음 하여간 그런 사람이고, 또 과문한 나조차도 자신있게 누군가에게 추천할 수 있는 철학자이자 기호학자이자 작가이자....아무튼 그렇다. 

본서는 사실 이전에 출간된 바 있는 미네르바 성냥갑1,2권을 다시 편집해 나온 것이다. 물론 표지디자인도, 편집도 바뀌었고 목차 순서도 살짝 바뀌었다. 에코가 '레푸블리카'라는 잡지에 싣던 칼럼의 모음집 형식인 본서는, 시기상으로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의 후편으로 이해해도 좋다. 즉, 시기적으로 새 밀레니엄 직전에 쓰여진 칼럼들의 모음이고,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고 읽어야 몇몇 칼럼은 조금 더 제대로 다가올 듯 싶다. 

이탈리아 판 제목을 봐도 아마 이런식으로 편집되어서 출간된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할 듯 싶은데, 이 책과 짝이라고 할법한(즉, 역시나 이탈리아 판 미네르바 성냥갑에서 번역되어 별개의 책으로 묶인) '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해치는가'와는 달리 다소 문화비평적인 성격의 칼럼을 위주로 묶어내고 있다.(그런 의미에서 이 두권은 '에코 전집'으로 바뀌면서 보다 더 적절한 제목을 갖게 된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법하다. 전집으로 나오면서 '소설의 숲으로 여섯발자국'이라는 어여쁜 제목이 '하버드에서 한 문학강의'로 바뀐 것을 생각해보면 그 적절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칼럼하면 흔히 시사문제를 다룰 것 같지만, 단순히 표피적인 시사문제를 다루기엔 에코의 내공은 이를 초월해 있다. 물론 에코의 익살은 여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심지어 익살만을 위해 쓰여진, 아니 익살 그 자체인 농담같은 칼럼(우리의 정서상으로는 잡지에 실렸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또한 등장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표피적인 현상을 대하면서도 그 속에서 철학적인 화두와 날카로운 지적을 해내는 그의 시각은 여전하다.  

우석훈씨는 언젠가 '움베르토 에코가 우울증 환자들 여럿 살렸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에코의 유쾌함과 그 속에서의 진리를 향한 갈구는 우리를 '더 살고싶게 하는'묘한 매력이 있기는 한 것 같다. 별로 좋은일이라고는 들리지 않은 이 때, 에코를 읽으며 '의미있는 미소'를 지어보는 것은 어떨런지. 에코를 접하는 방법에는 에코의 그 박학다식함만큼이나 다양한 경로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잡문집'을 통한 접근이 가장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울하고 위로받기를 원하는, 그럼에도 언제나 진리를 갈구하는 모든 분에게 본서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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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의 모색 -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할 것인가
장회익.최장집.도정일.김우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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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성상의 약점과 단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유형의 책으로 인터뷰집(혹은 대담집)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유형의 책은, 인터뷰이 개개인의 가십성 이야기와 깊이있는 학술적 주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너무 가벼워진다거나 아니면 굳이 인터뷰집의 형식으로 내지 않아도 될법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를 어렵잖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경우 인터뷰집은 잘 해야 입문서 정도로 기능하거나, 혹은 입문서도 아닌 무언가 어정쩡한 형태를 띠게 되어 얼마지나지 않아 그 유통기간이 다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본서는 비교적 성공한 인터뷰집(?!)으로 봐도 될 것 같다. 사견을 이야기하자면-그 엄청난 분량으로 인해 예외로 두어야 할 법한 리영희 선생의 '대화'를 제외하고-최근에 이렇게 만족스런 인터뷰 형식의 책을 읽은 적이 없는 듯 싶다. 같은 출판사의 '問라이브러리'시리즈의 일종의 에피타이저로 나온 듯 보이는(인터뷰이 네분은 모두 이 시리즈의 저자이다. 그런 면에서 기왕하는거 강수돌씨와 윤평중씨의 인터뷰도 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본 인터뷰집은 무엇보다 평소에 단행본으로 접하기 어려웠던 분들이라던지, 아니면 다소 난해하거나 논쟁적인 주장을 하는 학자들의 인터뷰를, 인터뷰이에게 적당한 질문을 날릴법한(?) 괜찮은 인터뷰어 선정을 통해 비교적 깊이있는 대담을 엮어내고 있다.

어찌보면 본 대담집에 대한 개인적인 만족감은 최장집 선생님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의 사상을 접한게 이번이 처음이라는 신선함에 상당부분 기인하기도 하는 것 같긴 한데, 장회익 선생님의 온생명사상이라던지, 도정일 선생님의 '근대주의론' 혹은 '시장전체주의 비판론'이라던지, 김우창 선생님의 그야말로 '깊이있는' 변증법적 사고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한 인터뷰어(정정호, 여건종, 박명림 선생님)의 질문으로 인해 기대보다 더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울러 너무나 자주 접한 최장집 선생님의 대담은 역시나 '논쟁적인'학자인 임지현 선생과 이루어져 기대 이상으로 논쟁적으로 읽힌다.(선생께선 참여 민주주의에 대한 과도한 믿음을 경계해서이신지, 읽히기에 따라 굉장히 '권위주의'적인 주장을 하신다. 사실 이러한 논쟁성은 근작인 '어떤 민주주의인가'에서도 이미 드러난 바 있긴하다.)

개인적인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신선함으로 따지자면야 장회익 선생의 온생명 사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읽혔고(적어도 개인적으로는, 황우석사건 이후 굉장히 모호한 상태로 남아있던 '생명'에 대한 고민을 풀어나가는데 '온생명 사상'이 적잖은 도움이 될 것만 같았다.) 내용상으로는 김우창 선생님의 인터뷰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다소 절충론적 냄새를 풍기는 선생의 말씀은, 그럼에도 결국엔 '변증법적 결론'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려는 듯 추상과 구체, 현실과 이상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수준에서 양자를 모두 포함하는 사유를 보여주시는데 이런저런 촌철살인에 가까운 분석하며, 이것이 박명림 선생의 굉장히 '정치적(?)'인 질문과 연관하여 의외로(?!)박진감 있게 읽혔다.(물론 네개의 인터뷰 중 가장 어렵긴 했다.)

전환의 모색이라고 하지만 네분 모두 전환의 방향과 모색을 적나라하게 대놓고 제시하시는건 아니다. 네 분 모두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향하여 이야기 하시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생각을 말씀 하시고, 자신의 주장을 하시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본서의 제목인 '전환의 모색'은 순전히 독자의 손에 맡겨진 셈인데, 그런 점에서 본서가 '전환'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그 모색에 있어 적어도 괜찮은 '도구'로 기능할 것 같기는 하다. 가을에 산보하듯(?!) 읽어볼만한 책이다. 무게있는 인터뷰이지만, 인터뷰집이라는게 또 그리 무겁게 읽히는 형식은 아니지 않은가.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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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1-01 16:40   좋아요 0 | URL
김우창-박명림 최장집-임지현이라...흥미로운 대담이 되겠군요.

率路 2008-11-05 00:11   좋아요 0 | URL
전자는 스승과 제자구도, 후자는 비슷한 결론과 상이한 맥락에서 야기되는 묘한 긴장감 뭐 그런게 재밌더라구요^^;;;;

okcom 2008-11-27 22:1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우와 저도 이거 읽어볼래요~ 개인적으로 대담집을 좋아하는데, 이유는 읽기 쉬운 구어체일 뿐더러 주석이 없어서라는 ㅎㅎ

率路 2008-11-28 15:46   좋아요 0 | URL
주석ㅋㅎ 인문학도의 비애가 느껴지는 대목이네용^^;;;;;
 
장자 현암사 동양고전
오강남 옮기고 해설 / 현암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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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선생님이 역주한 본서는 장자의 완역본은 아니다. 본서는 장자가 썼다고 '추정'되는(사실 장자라는 인물 자체가 실존했느냐부터 논란이 있는 문제인지라) 내편 전체와 장자의 후학들이 썼다고 하는 외편 및 잡편의 일부, 거기에 그 내용들에 대한 오강남 선생의 역주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여기에 실려있는 외편 및 잡편의 내용 또한 내편의 이야기를 변형, 반복하는 형식이라거나 혹은 아예 조금은 삐딱선을 타는 듯한 내용인 걸 보면, '내편'을 중심으로 수록, 역주한 본서만을 읽어도 '장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은 충분히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물론 장자 완역본을 안읽어보고 하는 소리라 장담은 못하겠다.^^;;;)

포스트모던적 사조가 유행한지도 한참이 지나 근대의 이분법적 사고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는 이제 거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몇천년전에 이루어진 사유의 기록인 '장자'가 갖는 현대성과 혁명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대부분 운문체로 이루어진 도덕경과 달리 이야기의 모음으로 이루어진 '장자'는 재미있기까지 하다. 신선놀음같은 이야기들(참고로, 시작하자마자 무려 '봉황'이 등장해버린다ㅋ)을 읽다보면 웬지 가슴이 따뜻해지고 웬지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것 같다.

물론 세상에 '장자'같은 사람만 산다면 이 또한 우리가 사는 '사회'는 구성되지 않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는 한다. 장자의 세계관'만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너무나 행복하고 평화로울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구상 그 어느 곳보다도 '빡세게'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요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것아니면 저것을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듯한 오늘의 현실에서, 장자의 가치는 공유할만한, 아니 공유 해야만하는 현대적 의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동양적 가치'(?)라는 것이 진정 존재한다면 '논어'와 함께 그 가치를 양분하며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법한 '장자'가 서양의 철학에서 재발견되어 우리에게 역수입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본서의 참고문헌에도 서양 도서 목록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학계의 연구실적과는 별개로 사회 모든 사람들이 '장자'를 읽고 그 가치를 내면화한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평화롭고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해서 즐겁게 살고 싶은 분이라면, 명랑해지고 싶은 분이라면-동양 고전에 대한 선입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재기발랄(?)한 내용으로 가득찬-바로 이 책'장자'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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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 시공 로고스 총서 2 시공 로고스 총서 2
데이비드 매클릴런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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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가장 많이 읽혀지는 맑스 개론서는 역시 캘리니코스의 '마르크스의 사상'(흔히들 '마혁사'라고 불리웠던-구판은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이기에 줄여서 그렇게 불렀었다)일 것이다. 다소 성격은 다르지만, 비교적 최근에 푸른숲에서 출간된 '마르크스 평전'이 그 뒤를 잇고 있는 듯 싶고. 그런 측면에서 시공 로고스 총서의 하나로 기획된 '마르크스'는 솔직히 말하자면 다소 찬밥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사실, 맑스에 관한 지식이 일천한 내가 보기에도 개론서치고는 저자의 개인적인 견해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매클릴런은 맑스를 그냥 '헤겔의 제자'로 만들어 버리고, 구조주의적 맑스주의에 대해서는 거의 '폭언'(?!)에 가까운 혹평을 늘어놓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안다.) 더군다나 이 짧은 책 속에 그의 생애 넣어야지, 경제, 정치, 철학 등 각종 사상 넣어야지, 관련 서적 소개도 해야지, 더군다나 평가 및 이후 맑스의 영향을 받아 발전된 몇몇 학파-크게 알튀세르 학파와 프랑크푸르트 학파-소개까지 하느라 독자로 하여금 다소 '허덕인다'는 느낌까지 받게 만들고 있다.(그럼에도 출간시기라는 물리적 제약으로 인하여 최신의 이론까지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_-;;;)

사견이지만, 맑스는 너무나 뛰어난 자신의 정신적 능력에 육신이 따라가지 못한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곤한다. 아니, 애초부터 한 인간이 할 수 없는 기획을 실행에 옮기려 노력한 사상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변혁에 필요한 사전 정보를 정리하고 올바른 분석을 하기위해 그는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인류의 정치, 역사, 경제, 철학 등등 모든 학문분과를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정리'하려 했고, 그 말도 안되는(!) 방대한 양의 작업 도중 완성을 보지 못하고 사망하였기 때문이다.(알다시피 '자본론'의 2,3권도 미완성 작품이다.) '실천'의 기획을 오류없이 이루기 위해 그 이전에 무엇보다 철저하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즉, 자본주의 사회-을 해석하고자 했던, 그 '해석'의 기획 도중 사망한 그. 세상을 해석하기만 한 당대 철학의 현실을 비판하며 '실천'을 강조했던 그의 작업이 정작 해석에서 시작해 해석으로 끝난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하다.(허기사, 아무리 아이러니한들 본서의 출판사가 전두환 아들내미 소유라는것 만큼이나 아이러니 하겠느냐마는)

하지만 그의 해석이 실천을 염두에 둔 해석, 실천에 열려있는 해석이라는 점에서 그의 사상이 오늘의 우리에게 갖고 있는 함의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업이 종종 교조적으로 해석되곤 한다는 것, 혹은 지금은 작고하신 정운영교수가 이야기 한 바 몇몇 학자들의 '비표'로서 그의 정치경제학이 기능하는 것은 그 자신부터 굉장히 유감스럽게 여길 만한 일일 것 같다. 어찌되었건 너무나 많은 맑스에 관한 평전/개론서가 나와있는 오늘, 다소 무색무취하게까지 뵈는 본서를 추천하긴 다소 머뜩찮은 일이기는 하다만,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건 맑스를 접하고자 하시는 분에게는 본서 또한 '하나의 길'정도는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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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믿을 것인가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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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와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간의 서신 대화를 묶은 본서는, 말이 서신대화이지 사실 월간지에 실린 글을 모은 것이므로 각 꼭지가 그렇게 부담스러울만큼 긴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본서는 모두 네가지 주제로 나누어지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종말론 문제/낙태문제/성차별 문제/비신앙인의 윤리적 근거문제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네가지 주제를 봐서 알겠지만, 앞의 셋은 모두 에코의 질문에 마르티니 추기경이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마지막 주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르티니 추기경의 질문에 에코가 답하는 형식의 글이 실려있다.(이러한 형식에 대해서 에코도 살짝 불만을 늘어놓기는 한다.) 토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질문-답변의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두사람간의 은근히 불꽃튀는(?) 신경전이 엿보이는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에코의 질문이 모두 교회에게 있어선 조금은 피하고 싶은 질문들인지라 에둘러 넘어갈 법도 한데 마르티니 추기경은 아주 솔직하게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고 있다는 점이다.(심지어 자신도 잘 모르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기까지 한다!)

사실 어지간하면 대화가 되지 않을법한 '믿음'의 문제에 대한 논의이기에 애초부터 자신들의 이야기만 하다가 끝날법도 한 대화가 깊이 있으면서도 독자의 마음을 울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것은 두 사람의 능력에 기인하는 바가 큰 것 같다. 가톨릭 신자'였던' 에코의 이력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두 사람 모두 상대의 영역에 대한 지식이 상당할 뿐더러(에코의 박사학위 논문은 무려 '토마스 아퀴나스'에 관한 것이었다) 상대를 설득하기보다는 이해하려는 접근을 지속적으로 취하고 있는바, 그러한 자세는 토론을 한없이 격조높게 만들고 있는 듯 하다.

사실 비신앙인, 혹은 나이롱 가톨릭 신자라 할법한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에코의 세가지 질문에 대한 마르티니 추기경의 답변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쪽 사투리(?!) 몇가지 써가며 희미하게 넘어갈 수도 있을 부분에 대해서도 비신앙인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솔직하게 답변을 이어나가는 그의 모습에서 괜히 차기 교황으로 꼽혔던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참고로 말하자면, 그는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현임 교황과 함께 가장 강력한 교황후보로 꼽힌 사람으로 현임 교황이 당시 가톨릭 교단의 우파를 대표했다면 마르티니 추기경은 좌파(?!)를 대표했다고 한다. 비신앙인과 대화함에 있어, 자신의 신앙을 사회윤리에 다소 '접어주는'굉장히 전향적인 그의 태도는, 애초 그러한 그의 입지에서 기인하는 바도 없지 않을것 같다라는 생각도 든다.)

때문에 시종일관 토론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진행자로 보이는 부분이 없잖았던 에코가 그 능력(?)을 발하는건 비로소 마지막 부분에서였던 듯 싶은데(참고로 이 마지막 글은 그의 또다른 저서인 '무엇을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묻지 맙시다'에도 실려있다.) 비신앙인의 윤리적 근거로서 '타자'를 들고나온 그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실 그 또한 비신앙인의 윤리적 근거로서 '믿음'을 들고나온 꼴인데, 이는 독자로 하여금 결국 인간이란 어찌보면 '믿음'의 존재가 아닌지, 해서 우리의 윤리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 아닌지라는 고전적이면서도 아직 극복되지 못한 질문에 맞대면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내용만 봐서는 별다섯을 주고 싶은 책이지만, 이 얇은 책을 양장으로 부풀려 고가의 책으로 만든 출판사의 심뽀가 맘에 안들어 하나를 뺐다. 그새 품절이라는데 재출간될 때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볼수있는 가격(?!)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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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8-10-15 01:01   좋아요 0 | URL
나일롱 카톨릭 신자라..리뷰보고 한 번 읽어봐야겠다... 라는 마음으로 땡스 투를 누르려는 순간 마지막 단락에서 시선을 멈춰버렸습니다. -_-
아 고민되네요 ㅋㅋ 근데 리뷰.. 멋지네요 ^^

가시장미 2008-10-15 01:04   좋아요 0 | URL
근데 이 도서 품절이군요 -_-;;

率路 2008-10-15 11:3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세례는 받았는데 성당 안나간지 거의 15년은 된듯한ㅋㅎ(사실 세례도 어머님의 강압에-_-;;;;)품절이긴 한데, 오프라인 서점에선 심심찮게 널려(?)있더군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