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 - 진보.개혁의 위기를 말하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엮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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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처럼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 싸이클에 대해 쓴 책인지, 아니면 지난 5년간 이래저래 욕만 먹어온 진보적 가치에 대한 옹호와 대안제시를 도모한 책인지 애매하긴 하지만, 제목과 내용에 다소 불균형이 있으면 어떠한가. 유사이래 '좌파'랄만한 세력이 처음으로 의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며, 어찌되었건 간에 소위 '변화'를 내세운 세력이 보수세력과의 아무런 연합없이 독자적으로 정권을 운영해나간 지난 5년간의 평가와 반성은 앞으로의 한국사회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기에 본서의 가치는-그 강한 저널리즘적 성격에도 불구하고-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닌게 아니라 '경향'에서 이 기획기사가 쓰여질 무렵 개인적으로는 감탄해가면서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신문에서 이 정도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심도있는 기사를 개재할 수도 있구나하는 느낌도 굉장히 새로웠다. 때문에 책이 출판되자마자 본서를 구입했고, 즐겁게 읽을...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이유는 어찌되었던 본서가 경향신문의 기획기사를 모아 엮어 낸 책이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이 내용이 신문 기사였을 때는 정말 '대단했다'. 주변에서도 덕분에 경향본다는 사람들도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독자가 서적에서 바라는 바는 신문에서 바라는 바와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그토록 심도있어보이던 기사도 책의 형식으로 출판되니 무언가 파고드는 듯 하다가 중간에서 끝나는 듯 하는 아쉬움이 남았고, 깊이도 다소 얕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본서가 읽을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이는 많은 부분 이 기획기사의 모티브가 된 별개의 책이 존재하기 때문일 듯 싶다. '열망과 절망'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경향신문의 기획기사는, 그리고 그 기획기사의 모음인 본서는 최장집 선생님의 '민주주의의 민주화'에 많은 부분 빚을 지고 있다.(열망-절망 사이클이라는 개념도 그 책에서 최장집 선생님이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본서가 그 책의 저널리즘적 변용이자 오늘의 현실을 좀더 실감나게 접할 수 있는 부교재(?)정도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민주주의에 대한 나이브한 이해와 그에 따른 현실에 대한 안이한 대처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사람의 살림살이에 실질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할 경우, 그 이념마저도 또한 어떻게 왜곡되고 망가지는지 우리는 지난 몇년간 어렵잖게 목도한 바 있다. 많은 이들이 아직도 '생활로서의 진보'와 '살림에 보탬이 되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굳이 언급된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머뜩찮다. 진보자체가 생활에 보탬이 되는 것이며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삶의 양식이야말로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양식이다. 그러한 진보와 민주적 가치가 '생활'운운하며 별개로 이야기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도 이 땅의 진보와 민주주의가 올바로 안착하지 못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기자들의 그야말로 '돈안되는'꾸준한 노력이 낳은 결과물인 본서는 내용상 다소간의 실망감에도 불구하고, 하다못해 역사적(?)인 이유에서라도 충분히 출판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닌게 아니라 부동산 문제와 소위 '운동권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 있어서의 난맥상에 대한 김헌동씨의 인터뷰라던지, 진보정당과 시민단체 내부의 문제에 대한 저널리즘적 고발이랄까, 그런 것들은 만약 내가 신문에서 미리 접하지 못했다면 굉장히 참신하게 읽었을 것 같다. 때문에 다른 누구보다도, 경향에서 기사로 접해본 적이 없으신 분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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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 다섯 지식인이 말하는 소통과 공존의 해법
신영복 외 지음, 프레시안 엮음 / 프레시안북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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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프로스포츠의 시즌 중반때쯤 하는 올스타전은 그 분야의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각자의 유니폼을 입고 뛴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스포츠 팬들을 설레이게 만든다. 하지만 스타를 빼고 스포츠에만 액센트를 두어 경기를 볼 경우, 사실 올스타전만큼 김빠지는 경기도 없다. 경기 자체가 최선을 다할만한 상황이 안된다는 점도 있고, 최고의 선수만으로 이루어진 팀이 최고의 경기를 보여주는 법은 또 아닌지라 그런 점도 있고, 아울러 개인적으로는 기대가 크다보니 실망도 커진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인 듯 싶다.

본서는 신영복,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 백낙청 선생님께서 프레시안 주최로 강의한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정말 이렇게 모으기도 힘들겠다 싶을 정도로 거의 올스타전을 방불케하는 우리시대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책 한권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반가운 사실이지만, 강연자의 명성과 본서의 내용을 비교해 볼 때 특별히 참신하다거나 감동적이라거나 하는 것은 없다는 점은 정말이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심지어 다소 진부하게 읽힐 지경인데, 이게 애초에-박원순 선생님의 강연을 제외하고는-개인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이미 다 접한 것이기에 그런건지 아니면 원래 강연하신 선생님들께서 줄곳 하시던 말씀을 축약해서 강연하신 것이기에 그런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책의 총론격인 신영복 선생님의 강연을 시작으로 본서는 각각의 선생님들의 자신의 전문분야(이를테면 김종철 선생님은 환경, 최장집 선생님은 정당정치, 박원순 선생님은 시민운동, 백낙청 선생님은 통일문제 하는 식으로)에 대한 입장을 개진한다. 여기에 보조출연자나 질문자라는 양념도 등장하여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더 이해하기 쉽게 와닿도록 돕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강연자들의 다른 단행본을 읽은 이라면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다소 지루한 면이 없잖은 것이 사실이다.

강연내용에 대해 굳이 언급한다면, 개인적으로 박원순선생님의 강연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는데 글쎄, 조금 석연찮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랄까. 보수적 삶의 양식 문제는 덮어두고라도 일단 진보적 활동을 도모해보자라고 권유하는 것처럼 보여서 조금은 불편했다고나 할까. 시민운동이 진정 블루오션이라는 선생님의 이야기 속에, 이 땅에 진보의 언어나 진보의 삶의 양식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존재할까 하는 의문이 들어 조금은 우울했다.(그렇다고 뾰족한 현실적인 대안이 보이는 것도 아닌지라)

아무튼 강연자들의 명성에 비하자면 그렇게 건질 것이 많은 책 같지는 않다. 물론 강연자의 단행본이라던가 별도의 글을 읽은 바 없고, 이 분들이 요즘 어떤 이야기를 하시고자 하는지를 간단하게나마 알고자 하는 독자라면 한번쯤 읽어봐도 실망하진 않을 듯 싶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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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 하룻밤의 지식여행 13
폴 코블리 지음, 조성택 외 옮김 / 김영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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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문화 현상을 이해하고 싶다고요? 그렇다면 우선 기호학을 알고 있어야죠.' 서두의 다소 과장섞인 소개처럼 오늘의 문화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기호학이 '우선'알아야만 할 것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호학을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우리로 하여금 좀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기호학은 접해볼만한 학문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모든 것이 기호로 이루어지지만, 그 기호 자체의 일관되면서도 또 한편 그렇지 못한 성격은 기호학으로 우리를 이끄는 무언가가 있는 듯 싶다.(아님말고ㅋ)

기호학이란 것이-대부분의 새로운(?!) 학문분과가 그렇듯-역사를 굳이 거슬러 올라간다면 고대 그리스까지 갈 수 있겠지만, 결국 오늘 우리가 아는 정리된 의미로서의 '기호학'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19세기 소쉬르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길지않은 역사를 가진 학문인지라 입문서를 구성하는 것이 쉬운 듯 보이지만, 그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고, 더군다나 그 학적 난해함과 사실상 '기호학자'라고 하는 사람들보다 본업은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이 내놓은 아이디어가 자신의 분과로 수렴되곤하는 기호학의 학적 특성상 자칫하면 어떠한 흐름을 잃고 중언부언할 수 있는 위험을 본서는 잘 돌파해나가고 있는 듯하다.

기호학의 간단한 의미를 고대 그리스나 아우구스티누스의 논의를 통해 암시적으로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본서는 기호학의 양대 흐름을 만들어낸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소쉬르와 퍼스의 연구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서술을 이어간다. 책은 기호학의 짧은 역사를 감안해서인지 통시적이라기보다는 공시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어 구성한 듯 싶은데 먼저 소쉬르의 전통('인간'의 기호, 즉 언어 연구에 중점을 둔 흐름)을 이어간 유럽 대륙의 흐름을 서술한 후 퍼스의 전통(인간 뿐 아닌 동물이나 자연의 기호까지 아우르는 흐름)을 이어간 미국의 학적 흐름을 서술한다. 그리고는 형식주의 이래 예술을 중심으로 기호학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한 소비에트 기호학과 소쉬르와 퍼스의 흐름을 통합하려는 야콥슨과 에코의 시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기호학이 오늘날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어떤 효용이 있는지를 몇몇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것으로 책을 끝내는데, 다양하고 어떻게 보면 일관된 흐름을 찾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까지도 시종일관 흥미롭게 서술해나가고 있다는 점이 본서가 갖는 강점인 듯 싶다.

기호학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학문이다. 사실 우리의 학적 창조나 이해라는 것 또한 결국 모두 기호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기호학의 이러한 자신으로의 수렴현상(?)은 기호학이 탄생하는 그 순간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유예되고, 모든 것이 해체되며, 모든 경계가 사라져버린듯한 오늘의 시대. 기호학은 그 모든 불확실성과 다양성마저 자신의 틀 안에 껴안아버림으로서 총체적 프리즘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기호학을 접한 사람의 삶이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보다 더 풍요롭고 행복할 것 같다는 점에서 기호학은 어렵더라도 한번쯤 접해볼만한 학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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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 하룻밤의 지식여행 15
다리안 리더 외 지음, 이수명 옮김 / 김영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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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 '입문서'로서 적지않게 추천을 받는 도서이기도 하거니와, 아닌게 아니라 글보다 그림이 많은 책의 편성은 독자가 '만만하다'는 인상을 갖고 본서에 부딛히게(?) 만들기에 적당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본서를 접한 '입문자'라면 몇페이지를 읽다 포기할 것임에 틀림없다.(내가 그랬다.) 사실 본서는-이는 라캉의 사상 그 자체만으로도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는 이야기긴 하지만-그리 쉬운 책만은 아니다.

본서의 난해함은 라캉 그 자체의 난해함이나 책의 내용 자체의 난해함 때문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무엇보다 너무 많은 것을 두서없이 다루고 있다는 데에 있다. 아무래도 입문서라면 왜 이 사상가가 이런 의문을 가졌는지, 어떤 맥락에서 이런 작업을 했는지부터 논해져야 할텐데, 본서는 그런 부분에서는 굉장히 불친절하다. 그럼에도 대단한 것은 라캉의 그 난해하고도 방대한 개념을 일목요연하게 비교적 빠짐없이 쉽게 설명해냈다는 점에 있다.(그럼에도 솔직히 본서를 100%이해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무엇보다 본서가 여타 라캉입문서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시중에 나와있는 라캉입문서들이 대부분 철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것임에 비해 본서는 실제 개업중인 정신분석의에 의해 쓰여졌다는 점이겠다. 저자의 이러한 위치는 책의 내용에서 대번에 드러나는데, 상당 부분 임상사례 혹은 임상을 통해서나 나올 수 있는 논점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라캉이 어떠한 철학자나 사상가이기 이전에 정신과 의사였다는 점에서 매우 적절한 서술인 듯 싶다.

하여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라캉이나 정신분석학 혹은 철학에 대해 아무런 상식이 없는 독자가 이 책부터 접할 경우 한동안 라캉과는 결별(?!)할 가능성이 크기에 그렇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 본서를 읽기 위해서는 얄팍하게나마 라캉의 문제의식이라던지 대강의 개념에 대한 희뿌연 이해 정도라도 하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프로이트의 학문적 작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필요한 듯 싶은데,(어느정도냐면, 본서에선 '쥐인간'같은 것이 그 사례에 대한 부연 설명없이 그냥 언급된다.-_-;;;;) 이는 사실 따지고보면 라캉이 평생 해온 작업이라는게 결국 '다시 프로이트!!!'로 압축될 수 있는 것이기에 당연한 일일듯 싶다.

이러한 대강의 기본지식이 있다면 본서를 꽤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 싶다. 개인적으로도 딱딱하게 철학이나 정치사상적 측면에서 어느정도 거두절미한 채 목적합리적(?!)으로 서술되는 다른 입문서에 비해, 두서는 없어도 지속적으로 임상이라는 측면에서 라캉을 설명하는 본서가 꽤나 흥미롭게 읽었다. 라캉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확실히 하고자 하는, '완전 초짜'는 벗어났지만, 그럼에도 '입문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 독자라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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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의 지식여행 16
매기 하이드 외 지음, 방석찬 옮김 / 김영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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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리즈의 '프로이트'를 구입하는 겸사겸사 함께 구입하게 된 융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융의 모습-흔히 정신분석학자 혹은 심리학자로 여겨지는-에 심한 균열이 갔다. 그가 과연 심리학자인가, 그가 과연 어느정도 실증성을 띤 작업에 일생을 바친 정신의학자가 맞는가. 흔히 프로이트와 연결되어 가끔씩 언급되는 그의 모습이나, 인간을 몇가지 유형으로 나눠 MBTI 검사같은 것에 영향을 끼쳤다거나, '페르소나'라는 개념으로 대표되는 그의 이미지는 영락없는 심리학자이지만, 그가 평생 매진한 학문적 작업의 분야나 결과물을 보며 그를 심리학자로 보는 것은 차라리 '오해'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는 한평생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신비한 경험'을 많이 했다. 그는 그러한-나처럼 세속적인 인간이 보기엔-참으로 얼토당토 않을 법한 경험들을 탐구해 나가기 위해 정신의학을 택했고, 또 실제 그러한 연구를 평생에 걸쳐 이어나갔다. 자신의 '아니마'가 했다는 말처럼 그의 작업들은 심리학이라기 보단 숫제 '예술'로 보일 지경인데, 4원소 운운하는 것이나 주역에까지 손을 대는거나 '동시성'운운하며 오늘의 과학으로 보기에는 과장 조금섞어 어처구니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일들에 대해 '인간의 언어'로 해명하려고 하는 그의 일생과 학문적 작업들은, 차라리 환타지 소설로 보일 지경이었다.

물론 그가 모든 심리적 문제의 근원을 '성욕'으로 설명한 프로이트보다 조금 더 다양하고 풍요로운 결과물을 내 놓은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신비하고 모호한 개념들과 개인적 경험들이 들어차면서 그의 분석심리학은 더욱 모호한 어떤것이 되어버린 인상이 된 부분도 적지 않다. 더군다나 그의 학문적 작업들은 자신의 틀 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아, 그 개념상의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것'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아쉬움도 조금은 보인다.(아닌게 아니라 프로이트가 정치학이나 사회학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융의 그것을 비교해보라!)

하지만 환자를 '내담자'로 이야기하며 그들을 치유해주기 보다는 같이 이야기하고 서로 치유해가는 과정에 서있는 사람으로 보려는 그의 시각이라던지, 함께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반된 덕목들이 한 개체나 한 사안에 공존함을 파악하려는 그의 일련의 작업들이라던지, 또 그런것들을 통해 엿보이는 그의 문학적, 예술적, 신화적 상상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오늘의 우리에게 충분히 의미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논리적인 무언가를 바라는 독자라면 융이야말로 최악의 심리학자이겠지만, 인간사의 많은 부분은, 그리고 그들이 모여 이룬 사회의 본질은, 무조건 논리를 찾는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융의 학문적 업적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하겠다. 무엇보다 그의 생애나 학문적 성과는 '재미있다'는 미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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