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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의 경제학의 향연 - 경제 위기의 시대에 경제학이 갖는 의미와 무의미
폴 크루그먼 지음, 김이수.오승훈 옮김 / 부키 / 1997년 11월
평점 :
소위 '강단 경제학'이 이야기하는 실물경제 문제의 처방책이나 방향제시라는 것의 대부분은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뭔가 좀 뜨뜻미지근한 구석이 있다. 외팔이 경제학자를 원했다는 어느 대통령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 집단간의 갈등과 타협 거기에 드라마틱한 요소도 조금씩 요구되는 현실정치에, 이도저도 아닌 것이 딱부러지는 이야기라고는 눈꼽만큼도 해주지 않는 경제학은 피해갈 수 없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썩 구미가 당기는 주제가 아닌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무튼간에 시장통의 아주머니부터 주상복합 펜트하우스의 회장님까지 경제의 중요성을 외치는 세상이라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경제'학'적 처방책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담보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왜? 민주주의 사회에서 경제'학'적 탐구가 정책화되는 과정에는 어느정도의 속류화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고, 그 속에서 소외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경제'학'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경제사/경제사상사를 다룬 본서는 다른 경제서적과는 달리 경제학적 탐구의 결과물이 각 정파들의 정치적 프로젝트와 화학반응을 일으켜 어떻게 속류화되는지를 중점적으로 탐구하고 비판하고 있다.(해서, 분량을 염두에 두지 않고 메시지만 파악한다면, 외려 '정치서'로 읽힐 지경이다) 즉 학자가 이야기하는 경제학/경제정책과 정책기획가가 이야기하는 경제학/경제정책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보면 그렇다. 경제학자들이 웬종일 매학기마다 방에 틀어박혀 연구를 한다고는 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아는 그들의 학적 결과물이라곤 기껏해야 엊그제 경제과목 막 배우고 나온 고등학생마저 조금만 노력하면 비판의 메스를 들이댈 수 있을 정도이다. 부두교 경제학의 창시자 쯤으로 이해되는 프리드먼도 그렇고, 무역이 무슨 경제전쟁인양 묘사하던 리버럴 계열의 경제학자들도 그렇고 이러한 논리들에 기반하여 추진되는 정책들의 취지를 듣다보면 조금 허무해진다(아니, 그 이상한 수학식에 그래프 그려대면서 내린 결론이 고작 이거란 말이야?) 어디 그것뿐인가, 그들이 '이야기했다고 여겨지는'현실 경제문제에 대한 처방책이란 것도 결국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었음을 국민들이 체감하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이처럼 우리가 알고있는 기존의 상식-그것이 통화주의자에 대한 상식이건, 케인지언에 대한 상식이건-이 정책기획가들의 속류화를 거쳐 왜곡된 내용의 것임을, 그리고 그러한 속류화 속에서 우리가 수용가능한 수준을 넘어선 왜곡과 아전인수격 논리로 가득차게 되었음을 신랄한 문체로 비판한다. 물론 그렇다고 저자가 정책기획가들의 존재의의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선거에 참여한 정당이, 아울러 이를 통해 선출된 민주정부가 국민에게 경제정책내용을 이야기하고 설득함에 있어 어느정도의 속류화는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저자도 인정하는 바이다. 사실 한 정부의 역량으로는 어찌할 수 없을만큼 장기적인 거시경제의 파동 속에서 정부정책이 경제에 대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란 극히 미미한 것도 사실이고, 때로는 한 국가차원에서 쓸 수 있는 수단이라는게 매우 제한적인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모두 기도나 드립시다.'라는 답을 원하는 유권자는 아무도 없다.(그리고 정부나 정치인은 그런 소릴 하라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정부나 정책기획가 스스로가 자신마저 속이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저자는 진지한 보수주의자들의 경제학이 어떻게 공급중시 경제학으로 속류화 되었는지, 아울러 케인스주의 경제학과 이의 발전적 변형-저자가 말한 바 QWERTY경제학-은 어떻게 전략적 무역론으로 속류화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이들의 주장을 효과적이고 신랄하면서도 매우 위트있게(?) 비판한다. 전자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감세가 경기를 회복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후자에 대해서는 무역을 마치 전쟁처럼 바라보는 시각이란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논리인지에 중점을 맞춘듯한 저자의 비판은, 실상 오늘의 우리사회를 사로잡고 있는 두가지 유령-감세의 신화와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시대정신(?)-에 대한 비판과 조응하는 면도 있어서 오늘의 우리 현실에 적잖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비교적 다소 전문적인 논의와 설명 속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바는 간명하다. 정부가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다. 하지만 국민 뿐 아니라 자신마저 속이는 정책적 속류화 과정은 경제 뿐 아니라 다른 사회정책에까지 악영향을 미쳐('감세'라는 경제 정책의,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경제정책의 모토가 사회정책에까지 이어져 어떠한 엉뚱한 결과를 낳고 있는지에 대한 사례는 요 며칠자 신문들 만으로도 충분할 듯 싶어서 생략한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저자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경제학은 그것이 학교 켐퍼스 밖으로 나오는 순간 정치와 만나 정책화되는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논리가 빠진 '순수한'경제학 운운하는 것은 현실로보나 당위로보나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외려 '순수한'경제학 운운하는 담론이야말로 우리가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파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아닌지 항상 경계해야 할 일이다.) 아울러 정책기획가들의 경제정책이란 것도 아주 무용한 것은 아니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어떠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문제를 줄일 수는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나 정책기획가, 혹은 정치인들이 이러한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국민을 속이는 것을 넘어 자신 스스로도 속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증적인 자료마저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가며 일종의 도그마에 빠져 특정정책을 밀어붙히는 정부의 태도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근대학문의 꽃으로서의 '경제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신학'이다. 도처에 경제와 관련된 도그마로 가득찬 오늘, 속류화된 경제정책의 무서움을 제대로 체험하고 있는 오늘, '경제신학자'들만이 도처에 판치는 듯한 오늘의 우리사회에 근 10년전 출판된 경제학자의 책이 적지않은 의의를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 같다. 일독을 권한다.
ps. 제목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에 비해 아주 쉬운 책은 아니다.(그렇다고 어려운 책도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입문서'를 기대한 독자라면 얻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다.) 원론적 지식이 어느정도 갖춰진 독자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듯. 사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경제학과 경제사에 대한 설명보다 '정치'에 관한 서술 부분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