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 - 한국 풀뿌리민주주의의 현실과 전망, 민주주의 총서 04
하승수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소위 '풀뿌리 민주주의'로 상징되던 '지방자치'가 민주주의의 학교라는 이야기는 이제 어느덧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고리타분하면서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은 민주화운동 진영에서마저 지방정부나 지방의회를 직선제로 선출하게 된 것이 시기상조 아니었느냐, 실수아니었느냐 하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지경이다. 저자가 언급한바대로, 오늘의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라기보다는 풀뿌리 보수주의, 즉 민주주의의 걸림돌이자 보수주의의 보험같은 성격이 되어가는 듯 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저자는 지역에서의 시민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이에 대해 다소 장황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런저런 문제제기를 해 나간다. 민주화의 결실로 얻어낸 지방자치가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 지방의 기존 기득권을 어떻게 강화하고 있는지를 거시적, 미시적 측면과 통시적, 공시적 측면으로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는 본서는, 오늘의 지방에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드러내는 점에 있어서는 그 의의가 적지 않다하겠지만, 그럼에도 다소 원론적이랄법한 대안으로 인해 힘이 빠지는 면이 없지는 않다.

그렇다면 저자의 대안이 다소 힘이 빠지게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참여'를 강조하는 저자의 다소 이상적인 대안제시 때문일까? 그보다 문제는 오늘의 지역문제가 그렇게 간단하게 '참여'와 '지역'만을 생각해서 해결될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이는 우리 사회 대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때문이기도 하고, '발전'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왜곡된 발상 때문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오늘 한국의 사회구조가 지방을 결코 시민들이 '살고싶은 곳', 아니 심지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매년 언론은 '살기좋은 곳'을 발표하고 그 지역은 대부분 지방이다. 하지만 단순히 항목별 점수가 아닌 총체적인 한국사회 구조를 통해 생각해보자. 우리 사회는 정말 '수도권 쏠림현상'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 민망할 정도로 모든 것이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교육이건 문화건 경제건간에 어찌되었건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해야 그럴듯하게 살 수 있는 구조에서는 지역민에게 지역이 어떻게 발전되건, 어떻게 아름다워지건 그것은 그 다음 문제다. 특히나 변화를 바라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있어-하다못해 대학이라도-자신의 지역을 떠나 서울로 가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이고, 고향이 어떻게 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자신의 지역 시의원이 어떤 화상이 되건, 자신이 뿌리박고 살던 고향이 어떻게 변하건 그것은 오로지 서울로 향하기 위한 부차적인 효과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런면에서 지방 곳곳에 펼쳐진 공사판도 이해가 갈만한 현상이다. 이러한 사회구조에서 지역의 고향땅은, 많은 주민들에게 결국 서울로 갈 수 있는 자금줄로 보일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는 지방의 문제가 지방에서의 참여 같은 것으로 회복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토호들의 독주는 계속될 수밖에 없고, 지방 정치에 대한 참여동기는 보수적인 구세력이나 땅값상승에나 관심있는 외지인에게 더 강하게 제공되기 마련이다. 이처럼 지방자치의 보수화가 가속되는 상황을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극복하려면 단순히 지방을 '살기좋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힘들다. 때문에 실질적인 권력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것, 경제뿐아닌 문화, 교육의 인프라에 대한 거의 혁명적이랄만한 전향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것과 함께, 기존의 '좋은 삶'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어나가려는 작업-생태적 삶의 가치라던지, 지식에 기반한 경제 구조라던지 하는식으로(이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개인적으로도 생각이 잘 안선다.-_-;;;)-또한 양동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이 쉬운 작업은 아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이후 몇백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21세기 들어 더욱 미칠듯한 속도로 강화되고 있는 서울 중심주의를 해체하는 작업이 손쉬운 일이기를 바라는 것이 허망한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서울 중심주의와 지방의 피폐화가 이제 서울이라는 소위 '중심'마저 온전히 존재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는 오늘, 단순히 삶의 공간을 넘어서 지방이 오늘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오는 중대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 오늘, 지방에 대한 고민은 단순히 지역민만의 고민일수가 없다. 그런면에서 지방자치의 문제를 '드러내어'주기라도 하고 있는 본서는, 오늘의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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