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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 유학과 서학의 창조적 종합자 ㅣ e시대의 절대사상 5
금장태 지음 / 살림 / 2005년 3월
평점 :
개인적으론 살림출판사의 'e시대의 절대사상'시리즈를 보면, 그린비의 '리라이팅 클래식'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두 시리즈의 취지는 비슷하지만, 재야(?)학자들이 경쾌하고 개방적으로 써내려간 '리라이팅'시리즈에 비해, '절대사상'시리즈는 강단학자(?)들의 성실한 설명이 돋보이는 편인데, 두 시리즈 간의 같은 취지속의 수많은 '다름'들은 독자에게 뜻하지 않는 즐거움을 준다. 특히나 이 책의 경우, 이전에 읽었던 고미숙씨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 읽는 내내 생각나서, 비교를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었다.^^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먼저 1부에서는 정약용의 사상과 생애에 대해 설명하고 있고, 뒤 2부에서는 정약용의 주요 저작들 중 읽어볼만한 부분들을 저자인 금장태 교수가 추려서 수록하고 있다. 2부에 수록된 글들은 주로 1부에서 이미 설명한 것과 관련된 글들이 대다수이기에 옛 글임에도 불구하고 쉬이 읽힌다.
따지고보면 박지원에 비해 정약용은 '모범생'이었다. 비록 그는 젊은 시절, 당시로써는 금단의 학문이었던 서학을 공부한 경력이 있는 터라 그로인해 주변으로부터 수없이 모함을 받고 실제로 말년의 삶은 귀향지에서 보내긴 했지만, 아울러 실제 정조에게 벼슬에 물러나고자 하는 의사를 수없이 표명했다고는 하지만, 그는 어쨌건 기본적으로 벼슬자리 언저리에 계속 머물렀던 '주류적'인 인사였고, 다소 유쾌하고 여유가 있었던 박지원에 비해, 정확하고 엄격하며 성실성을 그 장점으로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디오니소스와 프로메테우스? 박지원과 정약용의 인간형을 '거칠게' 비유하자면 이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듯 싶기도.
아울러, 그가 자식들에게 쓴 편지 등을 보면, 그는 자신이 시간이 지나 죽어'잊혀지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 했던것 같다. 그는 자신의 사상과 지식들이 후세에 이어지는 것에 대해 가히 '편집증적'으로 집착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누군가가 다룬다면 꽤나 흥미있는 주제가 될 듯 싶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점이, 어쩌면 개혁적이면서도 또한 시종일관 '주류지향적'??이었던 그의 삶을 설명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의 학문적 방향(?)-학문의 표준은 어쨌건 경전 그 자체에서 논해야 한다는-은 다소 꽉 막혀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또한 그런식의 학문 방향이 자칫 교조적이고 보수적으로 흐를 위험이 있어보이기도 했지만,(이런 측면에서 개인적으로는 그의 '모범생'적 인상이 더욱 강해지기도 했고) 이러한 발상은 당시 사정에 비추어본다면 온갖 설들로만 어지러워져 난삽해져가고만 있는 조선의 사상적 논란들을 교통정리 할 수 있는 유일한 실현 가능한 해결책이었기에 어느정도의 진보성을 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건 결국, 모두들 알다시피 그의 치열한 애민사상과 학문적 노력들은 오늘날 그를 '영원하게'만들었다. 그는 하늘에서나마 만족하고 있을까? 하지만, '민'을 언제나 그 중심에 두었던 그의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구현'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것을.
책은 정약용에 대한 간단한 소개정도에 주력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우리의'(?) 사상가라고 하지만 아는바가 거의 없는 나의 무식함 때문이었다. 허기사, '근대'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그 소중했던 우리의 과거들을 얼마나 많이 '밀어버렸'던가. 근대화의 수많은 폐단들이 새삼스럽지만도 않은 오늘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발상의 전환을 위해서라도 정약용은 한번쯤 읽혀질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단절되어버린 조선의 철학적 전통은 '이제부터' 만들어나아가야하는 것이기에.
ps.여담이지만, 정약용이 서학을 공부했던 죄로 주변으로부터 모함을 당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단지 사회주의, 혹은 맑스를 공부했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라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는-그런데 재미있게도 이런 류의 비난을 하는 사람 대부분은 '사회주의'가 뭔지도 모른다-오늘의 우리사회가 떠오르는건 나뿐인건가? 우리사회에서 오늘날까지도 불온시되고 있는 어느 서양의 현인은 '역사는 되풀이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라고 했다지만, 되풀이되는 역사마저 희극으로 봐줄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