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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꿈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23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종소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평점 :
도스또예프스끼(지음) ㅣ 박종소 (옮김) ㅣ 열린책들 (펴냄)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또예프스끼의 세 번째 작품 아저씨의 꿈을 만났다. 앞으로도 그의 작품을 계속 만날 예정이라 그리고 고전문학은 이미 전문가들에 의해 내용 정리가 되어 있기에 이분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믿을 수 있는 정보가 쉽게 보이지 않았다. 인터넷에 정보가 넘친다고 하지만, 이 정보가 고급 정보인지 그것을 골라내는 안목을 기르는 게 우선 시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믿을 만한 기관에서 교수님들의 강연이 있어 참고해 볼 수 있었다.
도스또예프스키는 모스크바에 있는 빈민 의사 출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귀족 출신이었으나 집안 형편은 가난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며, 그의 소설 속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엄격한 분이셨다. 도스또예프스키는 작가가 되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강요로 빼쩨르부르그 육군 공병학교에 입하하게 된다. 그러던 중 농노들의 폭동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고, 그 이후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25살 그가 쓴 첫 작품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비평가들 사이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게 된다.
그는 러시아의 절대 왕정을 지지하던 골든의 입장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게 되고 그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이는 당시 사회적으로 젊은이의 반항을 겁주기 위한 방안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몰랐던 도스또예프스키는 실제로 사형장에 끌려 나오게 되고 형장에 서게 된다. 사형이 집행되려는 그 순간 황제의 특명으로 형 집행은 멈추게 되고, 시베리아 옴스크에서 10년간의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간질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으며, 심각한 도박병을 가지고 있었다.
도스도예프스키의 일대기를 읽고 러시아 문학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왜 그의 작품이 내게 그렇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는지 뼈 속 깊이 전해져 왔다. 다반 이 앎이 마른 대지에 잠시 더위를 식혀주는 지나가는 비이기에... 흐르는 시간속에 잊혀짐이 안타깝다. 그래서 열린 책들을 통해 꾸준히 만나게 될 도스또예프스키 책들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해보고자 한다. 아무튼 그의 이런 드라마틱한 인생은 고스란히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다.
그의 작품을 연구해본 대다수 전문가들은 초기, 중기, 후기로 구분지어 작품을 분류하는데 있어서 큰 이견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28살부터 38살까지 그가 경험한 10년간의 유배 생활 때문이라한다. 강력 범죄자들과 함께 보낸 10년의 시간은 인간 본성을 관찰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됐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는 각종 강력범들과 같은 방에서 생활 했어야만 했다. 더군다나 19세기 귀족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로 인해 신분만 귀족이었던 도스또예프스키는 늘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그들과 함께 지내야만 했다. 그는 그들이 미웠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의 가장 더럽고, 추악한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들은 사람을 죽인 행위, 아동을 학대한 행위, 여성을 억압한 행위등등 그들의 악행을 무용담 늘어 놓 듯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어떤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옥살이 이야기가 오버랩 되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선한 마음도 분명 있지만 이런 추잡한 마음 반성이라고는 절대하지 않는 마음도 분명 있다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말이다. 도스또예프스키는 그런 인간이 처한 환경이 자체가 지옥이라고 규정지었다 한다. 그는 수용소 자체가 어찌 보면 철학적 사유를 하고 깨달음을 얻는 공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왜 그의 작품에서 깊이가 전해져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왜 그의 작품이 그리도 끌리고 좋았는지 이제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다른 이들에 비해 섬세하고도 치밀하게 인간의 추악함을 적나라하게 잘 묘사될 수 있었는지 특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작품이 왜 대작이라고 일컬어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어떤 전문가는 그의 작품을 두고 허무주의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마지막 작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보면 그와 같은 해석은 좀 동의하기가 어렵다. 이런 배경 지식을 습득한 이후 [열린 책들 출판사]에서 역자 해설, 작품 평론, 작가 연보를 재독해 보았다. 훨씬 내용이 더 잘 숙지되었다. 그리고 작품 평론 마지막 부분을 통해 <아저씨의 꿈>에 대한 비하인드스토리를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이 이야기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러시아의 힌 지방 소도시 모르다소프 시에는 속물적이고, 탐욕스러우며, 허세와 과시욕이 넘치는 지방 귀족들이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특히 소설 속 주인공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모스깔료바는 이 지역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훌륭한 부인으로 사교계에선 그녀의 영향력이 제법 강력하였다. 그녀에게는 무능한 남편과 지적이고 마음 착한 미인 딸이 있다. 그 딸은 23살이 되도록 결혼을 못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1년 전 지방 초등학교 선생과 묘한 관계를 맺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어느날 이 무료한 도시에 K 공작이 방문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산송장에 가까울 정도로 늙었다. 머리는 다빠지고 없어 가발을 쓰고 있고, 새까맣게 반들거리는 콧수염, 구레나룻, 턱수염이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으며, 얼굴 속 주름은 지분으로 가렸고, 옷차림은 최신 유행 옷차림에 한쪽 눈은 유리로 된 의안에 한쪽 다리는 절름 걸음이다. 그뿐 아니라 치아란 치아는 모두가 의치다. 의치 때문에 그가 쏟아내는 발음도 명확치 않다. 더 심각한건 치매 정상까지 있는지 금방 본 사람도, 일도 기억하질 못한다. 하지만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중 유일하게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딸 지나를 설득시켜 이 시체 공작과 결혼을 추진시킨다. 그리고 청혼 과정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 바로 아저씨의 꿈이다. 공작의 외양 묘사나 그가 마리야와 한 약속을 끝까지 자신이 꾼 꿈이라고 우기는 모습 등등 공작의 인물 유형을 희화화 시킴으로써 소설의 재미로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를 통해서는 당시 러시아 지방 귀족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사실 도스또예프스키가 유배 생활이 끝난 이후 처음 쓴 작품으로 작품을 쓰는 동안 검열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반응 했을 듯 하다. 그의 작품을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초기에 대해서는 내가 작품을 근거로 강의를 듣지 않아 다음에 초기 작품을 읽게 되면 다루도록 하겠다. 중기에서는 감성주의와 리얼리즘이 동시에 나타난다. 아저씨의 꿈 역시 이러한 특징이 잘 보여지고 있다. 특히 도스또예프스키는 문학 세계는 나와 타자의 관계라고 하는데 이 부분도 작품을 읽으면서 하나씩 익혀나가고 싶다. 타인에 대한 지나친 의식 이런 특징은 작품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도 매우 잘 나타난다. [아저씨의 꿈]에서도 타인의 구설수, 타인의 시선, 타인 의식을 끊임없이 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지나 아파나시예브나가 애인이 죽은 이후 그의 집에서 나와 길을 걷는데 자신에게 끊임없이 구혼을 했던 빠벨 알렉산드로비치의 대사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공작은 뒤늦게서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게 되고 자신은 꿈을 꾼 것 뿐이라고 꿈 속에서 청혼을 한 듯 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마리야의 말에 흔들렸다가 헛소리를 했다가 치매 걸린 노인 마냥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래서 친척들이 그를 정신병원에 보내겠다는 말을 한 듯 하다. 즉 전혀 근거 없는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마리야는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고 그런 어머니의 뻔뻔스러운 추태를 보며 유일하게 양심을 가진 딸 지나 아파나시예브나가 자신의 집에 와서 공작과 자신의 청혼이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하러 온 어중이 떠중이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된 욕심을 고백한다. 그런데 그녀의 그 용감한 고백은 그녀를 파멸로 몰아 놓게 된다. 다음날 사람들은 앞다퉈 험담하기 바쁘다. 그러던 중 아파 죽어가는 그녀의 옛 애인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한번만 자신의 아들 임종을 봐달라며 애절하게 부탁하게 되고, 입장이 곤란한 그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애인의 어머니를 따라 그를 보러 간다. 두 사람의 회환의 눈물을 흘리고, 딸이 사라진 사실을 안 마리야는 그녀의 미래를 위해 딸을 찾아가지만, 그녀는 한사코 남자 곁을 떠나지 않는다. 결국 눈 속에서 어머니는 혼자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지나는 남자의 죽음을 밤을 새워 곁에서 지켜보게 된다.
하지만 그의 곁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임종을 지킨 그녀에게 남자의 어머니는 이 한마디를 던질 뿐이였다.
너 때문에 이런 변을 당했다. 네가 내 아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망할 년 같으니라고!
이 요망한 계집 같으니라고, 네가 내 아들을 죽였다.!
온갖 구설수를 다 감수하고 엣정을 생각해서 기껏 달려와 밤새워 임종을 지켜준 그녀에게 남자의 어머니가 한 말이다.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서 어머니의 잘못된 선택에 자신도 잘못된 행동임을 알면서도 동참했고, 그 행위를 진심으로 뉘우친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사고를 한 인물 지나 아파나시예프나
그녀의 집안은 이후 그 소도시의 집을 팔고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있던 농장도 팔더니 먼 곳으로 떠나버린다. 그리고 어느날 빠벨 아파나시예브나는 한 화려한 사교장에서 신분이 높은 고위직의 아내가 되어 사교장에 있는 지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소설은 끝이난다.
이 소설의 끝은 참 씁쓸하다. 이런 끝맺음 때문에 그를 허무주의라고 하는걸까?
하지만 그가 당시 부패한 절대왕정에 대해 비판 성명을 읊었다는 죄명으로 10년의 유배 생활을 했다면.... 그리고 그 이후 끊임없이 가난에 시달렸다면.... 그래서 그가 얻은 것이 병이라면... 도스도예프스키 강의를 들으면서 깨달은게 있다. 대작이라고 명명하는 작품이나 작가들은 일단 이유는 알고봐야 한다는 점이다. 그에 대해서 알게 되니 작품에 대한 이해가 한결 더 친숙하게 다가와지는 듯 하다. 이런 좋은 작품을 접할 수 있게 해준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