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건록 - 일본의 청일전쟁 외교 비록
무쓰 무네미쓰.나카츠카 아키라 지음, 이용수 옮김 / 논형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건건록은 1910년 한일병합(경술국치)이란 조선 국권 침탈이 어떤 연유로 일어나게 된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 책의 묘미는 무쓰 무네미쓰의 외교전략입니다. 이 책은 특히 외교관이나 앞으로 외교관의 꿈을 가진 젊은이들 혹은 세계정세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읽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쓰는 뼛속 깊이 국익만을 생각한 인물입니다. 열강의 무분별한 침략 행위를 보면서 그리고 일본이 지난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과정을 타산지석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조선을 발판 삼아 북진정책의 꿈을 현실화한 숨은 전략가이기도 합니다.


이 책이 소름 돋았던 이유는 일본의 꽤 능력 있는 정부 관리가 냉정하게 국제 정세를 읽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자국의 득실에 있어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했었다는 점 등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더군요.

일본은 동학의 난 이전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조선과의 강제 수교를 맺습니다. 이때 국내 정세는 반외세. 봉건사상 혹은 개혁 바람으로 말 그대로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근대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조선은 신식 군대를 세우게 되고 이로 인해 구식 군대가 차별 당했다 여긴 구식군대는 일본 공사관에 불을 지르고 일본인을 해치는 사건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 일로 흥선대원군이 청에 볼모로 끌려가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동학농민운동까지 일어나면서 조선은 청에 의존도를 높이게되죠. 더불어 청의 조선 정치 개입은 일본의 심기를 건드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책 도입부부터 냉정하게 바라보기 힘들어 책장 넘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각주에서 언급하고 있던 사건들을 하나씩 찾아 읽음으로써 그리고 운요호 사건에서부터 파란만장한 일련의 사건들을 알아가게 되면서부터 역설적으로 책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제 눈에 밟혔던 장은 제13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영사재판제도와 전쟁과의 관계라는 제목이었습니다. 바로 치외법권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서구 열강들이 약소국을 어떤 거점으로 서서히 식민지화 했는지를 무쓰는 외교의 관점에서 기록해 놓았더군요. 사실 소름 돋은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일본도 일찍이 경험한 치외법권을 꼭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이 법에는 득과 실이 있고 자국에 득으로 작동되게끔 어떻게 사고하느냐?라는 그의 생각이 무서웠다고나 할까요?

"치외법권이라 부르는 제도의 근원을 찾아보면, 구미 각국 정부가 이른바 기독교 국가 이외 나라의 제도와 법률은 신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 나라와 처음에 조약을 체결할때 반드시 그 조약 안에서 자국민을 위한 영사재판관할을 시행한다는 조항을 만들고, 결국 어떤 나라의 영토 안에 다른 나라의 작은 식민지를 두는 것과 같은 일종의 변형체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189

아무튼 다시 한번 건건록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고종 31년에, 동학당이 난을 일으키자(한국에서는 동학혁명·동학농민운동·동학운동 또는 동학 농민혁명·갑오농민전쟁이라 한다. 동학교도들이 스스로를 '동학당'이라 칭한 역사적 사실은 없다... 역서의 성격상 원저자의 '동학당의 난'을 그대로 인용하여 쓰기로 했다. 17쪽 주석 참고) 조선이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하게 되고 일본은 북진정책을 펼치며 경제적 군사적 요충지로 삼으려했던 조선이 청과 긴밀한 관계를 맺자 청일전쟁을 일으키게 된 것이지요. 청일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나고 승전국 일본이 중국의 요동반도를 요구하게 됩니다. 이에 남하정책을 추진했던 러시아와 대립하게 되고 이로써 일본은 삼국간섭을 받게 됩니다.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힘에 의해 승전국 일본은 기세가 한풀 꺾이게 되죠. 이 이후에 벌어진 을미사변부터 을미개혁까지(청일전쟁시 일어난 갑오개혁이 중간에 중단되었다가 러일전쟁으로 일본이 승전국이 되면서 다시 재개된 3차 갑오개혁)의 이야기는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시하게 다루는 내용은 역시 청일전쟁이죠.

우리나라 일부 사람들이 일본 침략을 두고 일제가 조선을 돕기 위해 펼친 정책이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그분들께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지신 분들께 이 책을 읽고도 변함없으실지 여쭤보고 싶더라고요. 이 책은 꽤 조선을 걱정하는 척, 위하는 척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들의 검은 속내가 그대로 여과 없이 드러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기록이 훗날 외교 문제가 될까 싶어 고양이가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듯 교묘히 그들의 지략을 후손들에게 들려주는 듯한 인상도 받게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 아팠던 점은 조선이 외교 정세에 무지했다는 점... (사실 청과 아라사(현 러시아) 또한 국제 정세에 엄청나게 무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무조건 외세의 힘에 의탁하려 했었다는 점(청일 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이후 갑오개혁이 진행되면서 남하정책과 북진정책의 충돌로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간섭), 진정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신하들이 많이 없었다는 점, 조선이 침탈 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목숨 걸고 이를 저지할 인물이 없었다는 점 등등 당시 풍전등화에 놓여있던 조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해 읽는 동안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역사를 바로 세우려면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냉정하게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은 외교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국가를 다스리는 자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굴거나 외세의 힘에 무조건 의탁하려고자 한다면 어떤 사단이 나는지를 명백히 보여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에도 역사의 굴레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으니 말이죠.

해당 게시물은 논형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