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 탐정이 된 의사, 역사 속 천재들을 진찰하다
이지환 지음 / 부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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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재 건국대학교병원 정형외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계신 이지환 의사 선생님께서는 새로운 시각에서 책을 쓰셨는데요. 딥러닝 알고리즘이나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문헌 자료를 통해 유명인사들이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을 살펴본 책입니다. 


'모든 의사는 홈스의 후배다.'


저자는 책 서문에서 이렇게 자신의 직업을 명명합니다. 그러면서 스페인이 낳은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죽음과 죽음의 근거들 중 하나 인 스페인산 포도주의 관계를 설득력 높게 펼쳐내려가죠. 책에서는 총 10명의 인물이 언급됩니다.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도스토옙스키의 발작, 모차르트의 부종, 로트레크의 키, 니체의 두통, 모네의 눈, 프리다의 다리, 퀴리의 피, 말리의 피부 이렇게 챕터 목록만 봐도 어떤 인물을 먼저 읽어볼까? 눈을 밝히게 됩니다.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그는 스페인의 핫플레이스 거주자였던 요셉 바요트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집을 리모델링하게 되죠. 그래서 탄생된 건물이 카사 바요트!!! 그런데 카사 바요트 발코니 장식이 해골을 연상하게 한다는 점, 이 건물 유리창 사이사이마다 다리뼈와 무릎 관절을 형상화한 기둥이 있다 점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샀던 가우디 ㅠㅠ 여기서 우리는 궁금증이 발동하게 됩니다. 그는 왜 인체 뼈를 건축물에 이입시켰던 걸까? 저자는 그의 뼈 집착 원인으로 관절염을 꼽더군요. 그는 어릴 때부터 뼈가 아팠는데요. 그래서 평생을 양말은 두 겹으로 신고, 에스파드리유라는 푹신한 신발을 신고 다녔다고 합니다.


"가우디는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건축가로 칭송받는다. 그의 독창성은 병약한 어린 시절에 뿌리를 둔다. 가우디는 관절염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 힘들었고 많은 시간을 홀로 보냈다. 덕분에 자신을 탐구하고 자연을 관찰할 수 있었다." 45쪽 


관절염의 종류도 퇴행성 관절염, 통풍 관절염, 건선 관절염, 반응성 관절염, 류머티즘 관절염, 소아기 특발성 관절염 등 그 종류가 다양한데요. 이들 중 일평생 따라다니며 그를 괴롭혔던 관절염으로는 6세 때 병이 발병된 점을 근거로 반응성 관절염과 류머티즘 그리고 소아기 특발성 관절염으로 추려냅니다. 그렇다면 이들 중 진범은 누굴까? 저자는 각 관절염의 발병 원인 및 증상의 특징들을 명확히 나열하면서 진범을 찾아냅니다. 진범이 궁금하시다구요? 책을 읽읍시다.ㅎㅎㅎㅎㅎ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저는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그의 특별한 경험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어요. 그는 정치범?(당시 통치자의 잘못을 연설?했다는 이유로)으로 시베리아 유배를 10년간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살인범 등 각종 인간 유형들을 만나면서 범죄자들이 그들의 죄를 인정하거나 반성하기는커녕 서로의 악행을 자랑삼아 비교하는 모습에서 환멸을 느낍니다. 이런 경험이 그의 작품에 다수 담기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 경험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 수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도스토옙스키가 활동하던 19세기에는 간질에 대한 나쁜 인식 때문에 면밀한 기록이 남지 못했다. 사람들은 '악마의 하수꾼'이나 '알코올 중독자'라며 발작 환자들을 비난했고 지인들은 친우의 병을 쉬쉬했다." 69쪽


도스도옙스키는 간질로 평생 고통받았는데요. 그는 이런 발작 증세를 『여주인』이나 『상처받은 사람들』같은 작품 속에서 언급하기도 합니다.


간질 발작 환자의 뇌에는 '흥분 신경 세포군'이라는 초대받지 못한 전기뱀장어가 산다. 이들은 뇌 어딘가에 은밀히 숨어 비정상 전기를 뿜어내고, 잘 작동하던 뇌는 뜬금없는 충격에 교란된다. ... 흥분성 신경 전달 물질은 종종 도박 중독을 유발한다. 이 물질의 농도가 높은 간질 발작 환자들은 도박에 취약하다는 주장이 있고 흥분성 물질 억제제로 도박을 치료했다는 연구도 발표됐다." 65쪽


즉 그의 도박 중독은 의지의 문제가 아닌 뇌의 문제였다는 점!!! 특히 음주, 과도한 호흡, 수면 부족, 불빛의 깜박임 등의 외부적 환경까지 제공될 경우 더 잘 발병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오명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셔서 이지환 선생님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도스토옙스키 작가님을 엄청 사랑하거든요^^


▶제가 사랑하는 철학자 니체!!!

일반적으로 그의 죽음의 원인으로는 젊은 시절 성관계로 인해 생긴 신경 매독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런 견해에 대해 이지환 저자는 철저히 비판적 입장을 피력합니다.


"신경 매독이라는 진단은 확실하게 틀렸다. 신경 매독 환자는 식욕이 떨어져 살이 빠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니체는 엄청난 폭식을 해 댔다. 양쪽 동공 크기가 다른 것은 신경 매독의 특징이지만 감염 후 10 ~ 30년 뒤에 발생하는 증상이다. 그러나 니체는 어릴 적부터 동공 크기가 달랐다." 153쪽


그를 괴롭혔던 불면증과 두통은 점점 그의 신경을 공격적으로 바꿉니다. 책에서도 언급된 니체의 기괴한 행적들은 그를 사랑하는 제게 아픔을 줍니다. 그렇게나 고통 받았던 니체... 하지만 그런 고통의 삶조차도 사랑했던 니체의 삶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지환 저자는 니체의 정신 병리를 다양한 관점에서 점검해봅니다. 신체에서 나타난 증상들, 그의 동공, 그의 행적들 등... 뇌졸중, 유전병의 하나인 카다실 등 다른 병명도 언급하지만 이들 중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뇌종양을 언급합니다. 


" 신경외과 의사 크리스토퍼 오먼은 니체의 뇌종양이 그의 전두엽이나 측두엽을 누르며 서서히 자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전두엽이나 전측두엽에 똬리를 틀고 천천히 자라나는 뇌종양은 니체의 두통 및 안구 이상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더불어 정신병으로 고통받은 말년의 성격 변화까지 뇌종양으로 설명할 수 있다." 157쪽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프리다 칼로 

그녀의 불행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왜 끝없이 이어진 것일까요? 6세 때 프리다 칼로는 폴리오 바이러스에 노출됩니다. 보통 미친개나 민물 해산물을 익히지 않고 먹으면 걸리는 병이지만, 음식이나 식수에서도 기생하는 이 바이러스는 도시에서 발병될 경우 집단 감염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폴리오 바이러스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기형이 되기도 했다는군요. 이 바이러스는 1955년 조너스 에드워드 소크가 만든 백신으로 더 이상의 집단 감염은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프리다 칼로는 이 바이러스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이후 학교를 다니던 그녀에게 또 한 번의 불행이 찾아옵니다. 학교 버스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난 것입니다. 그녀는 이 사고로 자궁을 크게 다쳤고, 이후 디에고 리베라 사이에서 세 번의 유산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유산 경험은 그녀에게 엄청난 절망감을 안겨주었고 또 그것을 화풍에 담아냈다 하는군요.


그녀의 그림을 보고 많은 이들이 초현실주의라고 칭했는데, 당사자인 칼로는 그런 평판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린 그림 속 고통은 그녀 자신이었고, 그녀의 현실이였으니 말이죠. 폴리오가 안겨 준 상흔, 교통사고, 남편의 외도, 유산 그리고 허리 통증... 이뿐만 아니라 발가락을 잘라내는 수술부터 허리의 재수술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면 초인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고통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그녀의 정신력에 절로 감탄이 나오더군요. 


이지환 저자는 프리다 칼로의 병명을 언급하면서 외과 의학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도 들려줍니다. 마취제와 항생제(퀴리 부인에서 언급됩니다. 엑스레이의 출현, 방사능이 안겨준 딜레마까지... 전 이 책을 통해 방사능 치료가 뭘 의미하는지를 알게 되었답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책 내용을 너무 많이 언급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ㅠㅠ


해당 게시물은 부키출판사 지원도서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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