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썩은 잎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0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6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콜롬비아 출신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력이 있는 작가입니다. 이 작품을 읽고 책 후반부에 있는 작가 생애와 이력에 대해 읽어 보았는데요. 내용들이 앞서 읽었던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와 [썩은 잎]을 이해하는데 단초 제공을 해줍니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는데요.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살았던 90년대에는 그의 작품들이 베스트셀러에 들어설 만큼 인기 작가였다고 합니다. 대중성이 있는 작가였다는 거죠. 역시 작품은 시대와 함께 어우러진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더 하게 됩니다. 소설 속 화자는 세 사람입니다. 처음 등장하는 '나'라는 소년에서 소년의 할아버지와 엄마가 각각 화자로 등장합니다. 그들 세 사람이 한 의사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줄거리
마콘도라는 마을에 한 의사와 '풋내기'로 불리는 신부가 찾아듭니다. 의사는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의뭉스러운 인물입니다. 그는 빼어난 의술로 마을에서 돈을 벌고 그러던 중 바나나 회사가 들어오게 되면서 의사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바나나 회사가 진료소를 세우면서 의사는 점점 마을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그는 진료 보는 것을 그만두게 됩니다.
P.81 그는 마을의 유일한 의사였다. 그런데 바나나 회사가 도착하고 철도 부설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가 마콘도에 체류한 처음 사 년 동안 그를 찾아왔던 사람들은 바나나 회사가 노동자들을 위해 진료소를 설치하자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마도 썩은 잎들이 계획한 새로운 방향을 보았을 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명의 환자도 찾아오지 않은 채 수많은 날이 흘렀다. 그는 문에 자물쇠를 채웠고, 그물 침대 하나를 구입해 방 안에 틀어박혔다.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은 실제 일어나지도 않은 헛소문을 퍼트리며 의사를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의사는 자신을 소개해준 이 소설 속 주인공인 대령에 집에서 8년을 머물다가 대령의 수양딸로 있던 메메와 함께 길모퉁이로 거주지를 옮기게 됩니다. 메메와의 갑작스러운 동거 역시도 사람들은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길모퉁이에서 잡화를 하기 시작한 메메가 어느 날 보이지 않자. 그들은 의사가 그녀를 살해했다고 믿으며 그의 집을 급습합니다. 이렇게 마을 사람들의 오해는 깊어만 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나나 회사의 부당 착취에 항의하던 노동자들이 군부에 의해 무자비한 학살이 자행되고, 이미 회사와 함께 퇴소한 진료소에는 의사가 없었기에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서 유일한 의사였던 그에게 달려갑니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그들의 진료 요청을 거부합니다.
감상
마을에서 외면당했던 한 의사가 있습니다. 마을에서 무자비한 학살이자행되던 날 일부 부상자들은 의사는 그들의 진료를 기어코 거부합니다. 이 사건으로 마을 사람들은 의사에게 엄청난 분노와 원망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소년의 할아버지이자 그와 함께 살았던 ' 대령'만큼은 P. 82 그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소설은 몽환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의 소설을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표현하더군요. 처음에는 마르케스의 소설에 왜 이런 수식어가 붙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마콘도'가 사실은 마르케스가 살았던 '아라카타카'를 상징한다는 것을, 의사가 사실은 그의 외할아버지를 모델 삼았다는 것을, 바나나 회사는 실제로 있었던 유나이티드 프루트 회사가 콜롬비아 군부를 통해 최대 3000명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왜 그런 수식어가 붙게 되었는지도 조금씩 이해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소년의 아버지와 어머니(마콘도가 바나나 회사 덕분에 부를 축적하자 외부에서 온 이방인이란 생각은 살짝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역시도 바나나 회사와 함께 떠나고 말았지요.)와의 관계, '풋내기'로 불린 신부의 출현, 의사와 함께 살림을 차렸던 메메의 역할 등등 책 속 메시지를 다 소화해 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다음에 다시 읽었을 때 현재의 감상과 미래의 감상이 다를 것임을 알기에 기록차원에서 남깁니다.
스토리만 보면 의사의 행동이 야박해 보입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썩은 잎'을 환영했고, 경기가 좋을 때는 의사를 외면했으며, 마을의 번영이 회사가 떠남과 동시에 종식되자 그 화풀이를 엉뚱한 인물에게 전가시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의사는 바나나 회사의 본질을 이미 꿰뚫고 있었는데 말이죠. 그는 결단코 '썩은 잎'과 손을 잡을 수 없었던 거죠. 그런데 그들과 손을 잡았던 이들이 자신을 향해 근거 없는 소문을 만들어 내고 퍼트리고 비난했으니... 과연 의사만 나쁘다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마르케스가 하고 싶었던 말들이 아주 깊게 숨겨져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니면 제가 마르케스가 살았던 시대상을 잘 몰라서 작품 해석을 잘못한 것일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의 수작 [백년의 고독]을 반드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