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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생리학 ㅣ 인간 생리학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류재화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2월
평점 :
공무원 생리학 |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 페이퍼로드 (펴냄)
공무원 생리학에서 우선 생리학의 뜻과 이 책의 저자 발자크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저자 발자크는 평생에 걸쳐 글을 써온 프랑스 출신의 사실주의 선구자다. 그리고 그는 나폴레옹 숭배자이기도 했다. 그가 공개적으로 쓴 글 수만 하더라도 90편이 훨씬 넘는다. 소르몬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공증인이 되기를 바랐던 부모의 뜻과는 달리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였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2년간 파리에서 쪽방 생활을 하며 글쓰기에 전염한다.
발자크가 언급한 생리학은 21세기의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학이나 생리학과는 의미에 차이가 있다. 당시에는 생명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미비한 시기였기에 19세기 생리학은 생물의 기능이 나타나는 과정이나 원인을 생명체의 형태를 관찰하고 기재하는 데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공무원 생리학이라는 글 자체도 기록 문학으로 분류되며, 오늘날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사실을 글로 또는 영상으로 올리는 르포도 이와 같은 르포르타주(report) 형식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르포르타주는 어떤 사회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가 아닌 보고자(reporter)가 자신의 식견을 배경으로 하여 심층 취재하고, 대상의 사이드 뉴스나 에피소드를 포함시켜 종합적인 기사로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정의 출처 : 두산백과) 따라서 우리는 기록 문학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그의 공무원 생리학은 조롱과 풍자가 만연하다. 공무원의 필요성에 대해 그 타당성을 적시하면서도 관료주의 사회가 주는 병폐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환경에 기생하는 생물에 대한 관찰 보고에 맞게 그는 공무원 집단 내 환경부터 그곳에서 있는 말단 임시직부터 고위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을 알려 주고 있다.
사실 생리학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고 내용만 읽었다면 이 글이 주는 참신함과 재미를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발자크가 살았던 시대는 로베스피에르가 이끈 자코뱅당의 공포정치로부터 시작된 의회의 출편부터 혁명파, 왕당파 등 사회적 대혼란을 겪던 시대였다. 더군다나 나폴레옹의 등장은 사태 수습이 아니라 점점 더 첨예한 대립으로 치달았다. 이런 점에서만 보면 나는 『공무원 생리학』이 행정 관료들의 이권만을 챙기는 모습을 비판한 글이라고만 이해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와 함께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생명체라는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이를 관찰하고 들려주는 재미는 놓치지 않고 보아야 한다. 그래야 이 글의 재미를 한 층 더 깊게 맛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당시 관료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는 현재도 평행이론처럼 병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놀랍지 않다.
특히 그의 글에는 그만의 예리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각 공무원들의 겉모습, 직책, 그들이 보유한 재산, 결혼한 아내, 각자 즐기는 취미 생활 등을 통해 관료인의 특징을 그때나 지금이나 공감가게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날 독자들에게 읽는 즐거움을 준다. 이 책은 단순히 관료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좀 더 생각을 확장해 보면,,, 정치는 생물이라는 진부한 표현이 사실은 역사에서도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과거의 역사가 된다. 그가 던진 화두 작은 정부로 가느냐? 큰 정부로 가느냐?의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숙제이기도 하다.
책 속에서 발견한 문장 몇 개를 발취해 보았다.
▶낭비는 도덕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사안이다. 다만, 각 부처끼리 서로 공모하면 된다. 그러면 낭비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유출'을 하려면 시급하지도 꼭 필요하지도 않은 공사를 하면 된다. 30쪽
▶분명, 관료주의에는 잘못이 있다. 느려 터졌고 무례하다. 참신한 기획을 방해하고 진보를 더디게 한다. 31쪽
▶법원, 교도소, 치안 다 그만큼 비용이 들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돌려줘야 하는 건 없다. 따라서 관공서 만세! 그리고 그들의 당당한 보고서도 만만세! 32쪽
▶그렇다고 해서 제발 이런 원색적이고 처절하며 잔인한 말은 하지 마시기를. " 우리 아이는 공무원이 될 거야."
아, 나도 안다. 지금 이 시대에 행정직만큼 선망하는 게 없다는 것을. 고등학교에는 이런 꿈을 가진 아이들이 득실하다. 36쪽
▶"아니, 지금이 무슨 정부인데?"
"그러게, 다들 대충 하는데." 1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