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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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깊이에의 강요 |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 열린책들 (펴냄)

 

『깊이에의 강요』책 안에는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 문학의 건망증 이렇게 4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인상 깊은 작품들이며, 이야기는 짧지만 결코 의미는 짧지 않은 책이다. 요즘 현대인들은 생각하게 만드는 텍스트 읽기를 귀찮아하는 듯하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편리함이라는 이름하에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많이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깊이에의 강요』는 짧은 텍스트지만 생각의 너울을 형성시켜주는 책이라 본다. 




 깊이에의 강요

소묘를 뛰어나게 잘 그리는 젊은 여류 작가는 어느 비평가의 말 한마디로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시작은 그 비평가의 말이었지만, 결국 그녀가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 데에는 대중들의 깊이 없는 생각들 때문이다. 한 여류 작가의 삶을 통해 대중이 보여준 가벼움을 신날 하게 비판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 승부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한 젊은이와 이 마을 체스 고수인 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장은 너무나 신중해서 지루하게 게임을 끌고 가다가, 결국에는 상대를 분노하게 만들어 실수하게 해서 장고 끝에 승리를 쟁취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와 실력 다툼을 벌였던 사람들은 이 이름 모를 청년을 응원한다. 이 부분을 보면서 사람들의 묘한 심리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누군가가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면 이상하게 흠집 내고 싶어 하고, 그들의 승부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치부한다. 혹은 평가 절하하거나, 이유 없이 시기 질투하기도 한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가? 아무튼 유일하게 자신의 단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우리의 주인공 장!!! 하지만 그는 젊은이와의 체스에서 그가 거머쥔 승리가 얼마나 치졸한 승부였는지를 깨닫게 된다.


동네의 체스 고수는 대단한 도덕적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체스판을 팔에 끼고 체스 말이 들어 있는 작은 상자를 손에 들고 집을 향해 터벅터벅 걷고 있는 지금, 자신이 오늘 실제로는 패배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것은 복수할 기회도 없고 장차 찬란한 승리를 통해 보상할 수도 없기 때문에 끔찍한 결정적인 패배였다. 그래서 그는 ㅡ평상시에 그는 위대한 결심을 하는 남지도 결코 아니었다. ㅡ이것을 마지막으로 체스를 영영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그는 다른 퇴직자들처럼 불 게임, 도덕적인 요구가 별로 없고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사교적인 놀이를 할 것이다. 35쪽



장은 체스를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우리에게로 시선을 옮겨서 생각해보자. 이런 깊은 자각이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것이 가능하고, 또 그러한 깨달음을 실천으로 이끄는 것이 쉬울까? 




◆ 장인뮈사르의 유언

보석 세공업 사업으로 부자가 된 뮈사르는 쉰다섯이 되자 파리에서 파시로 이사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거주지에서 고요한 행복과 기쁨을 누리며 살다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즉 현재와 같이 전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병을 얻게 된 것이다. 그의 유일한 낙은 장미를 가꾸는 일이다. 이 장미 가꾸는 일 때문에 그는 흙을 만지며 일하게 되고, 흙을 파다가 조개 암석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조개 암석을 통해 지구의 근원을 깨닫게 되고, 지구의 화석화 과정과 인간 육신의 변화에 대해 자신이 깨달은 점을 미지의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소설이다. 


나는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어 현재의 참담하기 그지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또한 그날 이후로 진실, 우리의 삶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전 우주의 처음과 흐름과 종말에 대한 진실이 나에게 한 조각 한 조각 모습을 드러낸 것도 사실이다. 진실의 얼굴은 소름 끼치고, 메두사의 머리처럼 그것을 본 사람은 죽음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우연이든 끊임없는 탐구의 결과이든 일단 그것에 이르는 길을 발견한 사람은, 휴식과 위로가 없어도, 아무도 고마워하는 사람이 없어도 그 길을 끝까지 가야 한다. 43쪽


이 구절이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얼마나 다양한 생각을 만들게 할까... 뮈사르는 조개 화석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지구의 외형과 관련해 아주 다양한 물질들이 끊임없이 조개 성분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조개화가 지구의 외형뿐 아니라 현세의 모든 삶, 지구상 아니 전 우주의 모든 사물과 존재를 지배하고 있는 보편적인 원칙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55쪽


장인 뮈사르가 발견한 사실은 지구라는 행성이 점차적으로 조개화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이 소설은 굉장히 철학적인 내용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총 4편의 소설 중 가장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그렇지만 어찌 보면 오늘날 세상을 비유적으로 풍자한 것은 아닐까?라는 온갖 생각들이 머리에 떠오르고 사라지게 한 단편이다.




◆ 문학의 건망증

이 단편은 내가 가장 잘 기억하고 있던 이야기다. 왜냐하면 글 속 화자가 언급하는 독서 이후의 망각에 관한 경험이 엄청난 공감을 형성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자는 당부한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는 힘을 다해 레테의 물살을 버티어 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혹시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이렇게 생각해 본다.  (인생에서처럼) 책을 읽을 때에도 인생 항로의 변경이나 돌연한 변화가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독서는 서서히 스며드는 활동일 수도 있다. 의식 깊이 빨려 들긴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용해되기 때문에 과정을 몸으로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독자는 독서를 통해 변화하면서도, 독서하는 동안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줄 수 있는 두뇌의 비판 중추가 함께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76쪽



진정으로 위안이 되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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