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 전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2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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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나는 이야기책을 무척 좋아했던 아이였다. 외숙모 집에 놀러 가는 걸 좋아했는데, 그곳엔 세계명작동화와 전래동화 그리고 내 또래의 사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촌은 자주 책 보던 나를 싫어했다. 한 날은 내게 부탁을 했다. 엄마가 너 가고 나면 꼭 잔소리하셔... 울 집에 오면 이제 책 그만 보면 안 될까라고... 반면에 우리 부모님은 먹고사는 일이 급하셔서 어린 내가 책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셨던 것 같다. 그러다가 고학년이 되었고, 시골에 영업 오신 보따리장수의 꾐에 넘어가신 건지 딸이 책 좋아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아신 건지 백과사전 전집을 사주셨다. 백과사전 전집 국어 편에는 유명 작가와 작품이 예쁜 삽화와 함께 간략히 줄거리가 적혀져 있었다. 그림이 이쁘기도 했지만, 그 부분을 반복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 중 하나가 이솝 우화였다. 

그런데 서평을 쓰면서 아니 이솝 우화 전집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아니... 개인적으로는 좀 충격적이었다. 나는 '금도끼, 은도끼'가 우리나라 전래동화인 줄 알았다. 세계 각국에는 민담 형식으로 비슷한 내용을 담은 이야기들이 많이 존재한다. 때문에 나는 이 이야기도 그렇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아니... 내가 이 이야기의 원작을 몰랐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듯하다. 내가 알고 있던 '금도끼 은도끼'는 원작인 이솝 우화에서 발췌한 것으로, 우리나라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이야기가 전통 전래 동화로 너무나 잘 각색되어서 우리 것인 줄 알았던 것이다. 이 사실을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걸까? 

이솝 우화에서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는 대부분 익숙하게 들어왔던 것인지라 아마 나처럼 놀란 독자도 분명 있으리라 생각 든다. 또 하나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서울쥐와 시골쥐' 이야기 역시도 프랑스나 영국과 같은 유럽 국가들 중 한 지역의 전래 동화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역시도 이솝이 원작이라고 한다. 이뿐이 아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우화는 '개미와 쇠똥구리'라는 이야기로 이솝 우화에 있었다. 익숙한 이야기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지,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사실은 이솝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사실이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그가 죽은 뒤에도 끊임없이 전해져 온다는 사실이 내게는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이쯤 적고 보니 이솝이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해졌다. 도대체 이솝은 어떻게 이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까? 우화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우선 나는 현대 지성에서 출판된 이솝 우화 전집을 읽었고, 이 책은 총 358가지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리고 본 책 P.426에는 이 책에 대한 박문재 옮긴이의 해제가 삽입되어 있다. 이 해제만 읽어도 이솝에 대해 좀 더 알찬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우화는 일반적으로 설화나 비유와는 달리 그만의 독자적인 특성을 가진다. 그리고 그 특성의 일차적 목적은 도덕적 교훈을 제시하는 데 있다. 오늘날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솝 우화 같은 형태의 우화는 일찍이 기원전 3천 년경부터 수메르어와 아카드어로 존재했다고 한다. 그 후로 우화가 발전되면서 그리스, 아프리카, 인도 우화로 나눠지게 된다. 먼저, 아프리카 구전 문학은 스토리텔링과 관련된 풍부한 전통이 있다.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세계의 그 어느 곳보다 자연과 밀착해 살아가면서 동물과 식물 강과 평야 그리고 산 등에 친숙했다. 때문에 어른들이 자녀에게 삶의 교훈을 가르쳐주려 할 때 우화를 그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박문재 옮긴이는 말한다.

인도 우화의 특징은 전통 종교인 힌두교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신들이 다양한 형태의 동물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기원전 1천 년경에 많은 동물을 등장시켜 수백 가지의 우화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인도 우화는 이솝 우화보다는 이야기의 길이가 더 길고, 동물들이 주로 속임수를 씀으로써 서로의 기지를 가늠하려 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을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로 묘사하지 않았다 한다.

고대 그리스의 경우, 최고의 서사 시인이었던 호메로스가 활동하던 기원전 8세기에는 우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 몇몇 그리스 시에서 우화가 등장한다. 현재 우리가 아는 고대 그리스인 중에서 우화를 본격적으로 만들어낸 사람들은 소아시아에 살던 그리스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아시아는 우화에 자주 등장하는 사자가 출몰하던 지역이었고, 전승에 따르면 우화 작가인 이솝이 태어난 곳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이솝"은 영어식 이름이고 그의 원래 이름은 "아이소포스"라고 한다. 이솝은 우화 작가로 꽤 유명하지만, 그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거진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그에 대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각각 이렇게 표현했다. 그리스 역사가인 헤로도토스는 이솝은 실존 인물이며, 기원전 5세기 중 후반쯤 우화를 쓰기 시작했고, 사모스 섬사람이며, 이아드몬의 노예로 있다가, 델포이 사람들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그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고,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도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희극 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는 델포이 신전에서 황금 잔을 훔친 이솝을 델포이 사람들이 고발했다고 말했고, 그리스인 플루타르코스는 그가 불경죄를 저지르는 바람에 델포이 사람들이 그를 낭떠러지로 떠밀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 책에는 이 사실을 증명하는 듯한 이야기가 한편 실려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초기 그리스 자료들을 보면, 이솝은 기원전 620년경 흑해 연안에 있는 트라키아 지방에서 태어났다. 트라키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출신지이기도 했다. 그 후에 로마 제정 시대의 몇몇 저술가는 이솝의 출신지를 다른 몇몇 지역으로 달리 보고 있는데, 이후의 이솝에 관한 재밌는 정보는 이 책을 통해서 아이들과 함께 살펴볼 것을 추천한다. 사실 나는 이솝이란 인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다만 그는 천재적인 이야기꾼이며 지혜롭고도 미스터리한 인물이라는 인상만 가지고 있었다. 다만 나는 전집을 통해 현대인의 관점에서 상상력을 자극하고 창의력을 발휘해 본다.(이솝 이야기를 원전에서 확대시키거나 색다른 시각에서 쓴 동화책도 있다.) 혹은 이야기의 순서나 결말을 다르게 재구성해보기도 한다.

이솝 우화 전집을 읽으면서 내가 발견한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우화는 동물을 사람처럼 인격화해서 교훈을 주기 위해 만든 이야기다. 하지만 이솝 우화 전집을 통해 나는 그의 이야기가 단순히 동물들만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의외로 그리스 신들이 자주 등장했고, 제우스나 제우스의 심부름꾼이자 아들인 헤르메스가 자주 등장했다. 서양은 중세 시대를 거치면서 '이성'을 강조했고, 현대에 이르러 과학의 꽃을 피웠다. 그래서 그리스 로마신화는 서양인의 사고관에 있어 근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뿐만 아니다. 그의 이야기는  사람들도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하고 있다. 

사실 이솝이 살았던 시대는 이솝 우화가 우화적 성격보다는 신화적 성격의 색채가 더 강했다고 한다. 그리고 후대로 구전되어 오면서 점차 신화적 성격이 퇴색되어 갔다고 한다. 엘렉산드로스 대왕에서 시작된 헬레니즘 시대 이전에는 우화를 '로고스'라고 부르는 경향이 우세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뮈토스'라는 단어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현대지성은 이 '로고스'와 '뮈토스'에 대해 좀 더 설명하지만, 이 역시도 책을 보는 재미를 위해 여기서는 간략히만 언급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솝 우화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재미있고 교훈적인 이야기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솝 우화는 성인들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고, 당시 대중 연설가나 수사학자들이 대중들 앞에서 자신의 연설을 재미있고 재치 있게 제시하고자 사용했다. 이쯤 설명을 들어보니 초창기 시절 왜 이솝 우화를 로고스로 표현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솝 우화의 세계는 사실은 야만적이고, 거칠며, 잔인하고, 자비나 동정이 없으며, 폭군이 다스리는 체제 외의 다른 정치체제는 나오지 않는다. 그 세계에서는 잔인함과 무자비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교활함, 사악함, 살인, 속임수, 사기,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는 것, 조롱, 경멸이 주를 이룬다. 솝 우화는 동물 세계와 인간 세상 둘 모두에 정글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전제한다. 아마도 동물 이야기를 통해 인간 세계를 묘사하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이리라... 

또한 이솝 우화는 평범한 고대 그리스 사람의 일상적인 삶과 그들이 경험 속에서 얻은 지혜들을 담고 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상인이나 농민들을 통해 우리는 당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어떻게 살아갔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 삶의 민낯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이솝 우화의 특징은 그리스에서는 볼 수 없는 동물들의 등장이다. 사자, 코끼리, 원숭이, 이집트 코브라, 낙타 등이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리비아 우화'를 연구하면서 이솝이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노예 일지도 모른다고 추정했다. 왜냐하면 코끼리가 새끼 돼지를 무서워한다는 사실은 그 지역 출신이 관찰해야만이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후대에 이 동물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추가되었을 수도 있다.

평소 이솝 우화에서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만 알고 있었던 나는 해제 덕분에 제법 이솝에 대해 아는 척? 을 할 수 있게 됐다. 사실 이 기쁨은 잠시고, 아이와 풍성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더더욱 반갑다. 유년기의 내가 이솝에 대해 알았더라면 밤마다 나는 이솝의 다양한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솝 우화는 앞서 밝힌 것처럼 잔혹한 면도 있다. 하지만 인간 세상은 법과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간의 도덕심도 중요하다는 사실이 세월이 더해 갈수록 실감하게 된다. 이솝 우화의 교훈은 우리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버팀목과 울타리가 되어주었고, 앞으로도 되어줄 거라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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