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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말 - 포스트코로나, 공자에게 길을 묻다
최종엽 지음 / 읽고싶은책 / 2020년 10월
평점 :
『공자의 말』 은 『논어』 20편 중 일부분을 개인, 수양, 성장, 리더, 관계, 가정, 조직, 공공의 순으로 발췌하여 점층적 구조로 서술해 놓은 책이다. 그리고 저자를 통해 흥미로운 점 몇 가지를 새로 알게 되었는데, 우선 1621년에 『논어』가 라틴어 최초로 번역되었다는 점, 18세기 유럽 최고의 지식인들이 공자의 사상을 공부했다는 점, 공자 사상이 영국의 명예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에 이르기까지 약 100여 년간 18세기 유럽 계몽주의 사상의 씨앗이 되었다는 점 등이다. 특히 볼테르는 영국의 경험론을 바탕으로 합리주의를 선도한 인물로, 훗날 합리주의를 버리고 공맹 철학을 근대화 혁명의 지도 이념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런 부분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 호기심이 일어나면서 『공자의 말』이 주는 또 다른 독서의 즐거움을 맛보게했다. 그리고 이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동양 사상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최근 공자의 사상을 접하면서 나의 아집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다시 한 번 더 자기반성을 하게 되었다.
공자가 살았던 기원전 2500년에도 사람들은 고통과 걱정에 시달리며 살았고, 현대인들 역시도 여전히 그 굴곡의 삶을 답습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성현의 가르침을 돌아보고 그들의 발자취를 짚어보는 것이리라... 특히 공자는 술이편에서 옛 것을 믿고 좋아했다고 한다. 이를 술이부작 정신이라하며 이를 통해 온고지신이 가능하게 되었다 한다. 내가 공자 사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이유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공자는 대단한 이상주의자이면서 현실주의자였다. 그래서 그는 '예(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내용)'로 현실 상황에 맞게 융통성 있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지혜'라 보았다. 이런 점이 내게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예로 '의'라는 것은 스승님을 공경하는 진실된 마음을 뜻하며, 그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예'라는 것은 예의를 갖춤에 있어 형식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가 없으며, 형편에 맞게 격식을 갖춘다는 지극히 단순한 가르침이 공감이 갔다. 그의 사상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라며 터부시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공자의 이런 점 때문이다. 논어는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의 기본 도리를 강조하고 있으며, 특히 마흔이 넘는 연령층이 읽는다면 고전이 주는 삶의 깊은 의미를 맛볼 수 있으리라... 본책은 손이 자주 가는 위치에다 두고 반복적으로 펼쳐서 읽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면서도 또 읽어보는데, 읽을수록 구절과 관련 있는 하루 일과가 회상되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 좋았고, 짧은 글귀가 주는 여운과 반성이 다시 내 영혼에 각인되어 좋았다.
인이란 무엇일까? 어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사람을 용서하는 마음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마음이다. 자기가 서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먼저 서게 해주고, 자기가 달성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먼저 달성시켜주는 마음이다. 그래서 공자를 성인이라 부른 것이었을까?
공손, 신중, 용감, 정직한 것은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좋은 덕목이지만 여기에 적절한 규범과 절차인 예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저 공손하기만 하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비굴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저 신중하기만 하면 두려워하는 듯한 인상을 주게 됩니다. 모든 일에 용감하기만 하면 일을 더 어지럽게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정직하기만 하면 융통성도 없고 꽉 막힌 듯한 인상을 주게 됩니다. 맺고 끊는 규범과 절차인 예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195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동안의 무지를 깨닫게 된다. 이전부터 사람의 이중성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으로 마냥 수긍만 하면서 살아왔는데,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도록 가르치는 학문이 있었다니... 이런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니... 그럼... '중용'을 또 새롭게? 파야 할까? 공자는 아는 게 즐겁다 했는데... 갑자기... 느린 나는 아는 게 두렵다.(이런 식으로 나아감과 물러섬의 반복의 연속이다.ㅡㅡ)
그러나 이 책 말미에 한 마디 희망의 빛을 저자는 안겨주었으니... 공자의 사상은 크게 맹자와 순자로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되는데, 노나라 사람 증자는 공자로부터 아둔하다는 평을 받았는데, 성실함과 충실함으로(이라는 전제가 또 어깨에 짐을ㅡㅡ) 공자의 맥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공자 사후 내성파를 주도했으며, 증자의 사상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를 통해 맹자로 이어진다.
반면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는 공자의 유학을 발전시킨 사상가로 맹자와 쌍벽을 이루는 인물인데, 공자의 정신적인 면은 증자, 자사, 맹자를 통해 발전하였고, 공자의 형식적인 면은 자유와 자하, 순자에게 계승되었다고 한다. 맹자의 사상이 주관적이고 이상적이었다면 순자의 사상은 객관적이고 현실적이었다고 한다. 그렇다. 공자는 이 두 사상을 다 아울러 실천한 스승이었고, 이를 학문이란 이름으로 더운 세분화, 구체화, 체계화 한 인물이 바로 이 두 분 되시겠다.
오늘날 관점에서 논어는 비판적 논쟁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공자의 논어를 반복해서 읽어보면 '옛 것의 좋은 점은 받아들이고 오늘날의 사정에 맞게 고쳐 사용하자 혹은 융통성 있게 행동하자'는 그의 사상에서 본다면, 우리가 공자의 사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저지르는 우매한 행동일런지도 모르겠다. 고전은 읽어도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아니 읽으면 읽을수록 앞서 알지 못했던 새로운 뜻과 시각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고전이 주는 묘미이며, 우리가 『공자의 말』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