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2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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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지음) / 박희진 (옮김) / 솔 (펴냄)


 



이 책을 한 번만 읽고 서평을 쓴다는 것은 나의 오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사유가 깊은 시적인 소설이다. 그녀 스스로도 이 작품을 두고 소설이라고 칭하기보다는 시나 희곡에 가깝다고 표현했다할 정도니 말이다. [파도]라는 작품은 그녀 내면의 삶에 대한 다양한 관점 그리고 감정들이 녹아있다.


그녀의 글을 접하노라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기존 소설 양식에 익숙한 우리들의 편견 일 뿐이다. 그녀의 문장을 계속 접하다 보면...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문장 혹은 이런 깊은 고뇌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전환된다.


나는 사진 속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깊은 산속 조용한 샘물에 살고 있는 요정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저 우수에 찬 눈빛을 바라보면... [파도]와 같은 작품의 탄생은 우연이 아닌 필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울프의 이런 실험적인 도전과 그 결과물은... 그녀의 뛰어난 감수성, 지적 능력, 삶에 대한 고뇌 등 그녀가 살았던 당시 시대에 비추어 봤을 때 너무나 영민했고, 너무나 섬세했던 그녀가 너무나 일찍 그녀의 세상과 만나버린 비운의 여주인공이기도 하다.


[파도]는 새벽에 출현한 태양이 정오를 지나 해 질 녘까지 하루의 과정을 인간의 인생에 빗대어 전개되는 방식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인 수잔, 지니, 로우다 버나드 루이스, 네빌 그리고... 그들 모두의 이상향인 퍼서빌... 그들 각자의 대화는 독백 형식으로 각각의 인물들 내면과 고뇌 그리고 삶을 차분히 그려내고 있다. 아니... 때로는 격정적으로 그려질 때도 있다.





마치 잔잔한 파도가 그 어떤 날은 바람에 몸을 맡겨 강렬히 쏟구쳐 오르는 것 처럼... 우리네 인생도 꼭 그것과 닮았다...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은 심각하다. 조숙하다. 삶을 대하는 자세가 진지하다. 창녀의 길을 걷는 지니 조차도,,, 화려한 옷, 분...그리고 춤... 그 아름다움을 쫓아가는 지니 조차도... 삶은 쉽지 않다.


유년기 시절 수잔은 지니가 루이스에게 키스하는 장면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고 이 모습을 본 버나드는 그녀의 울음에 가슴 아파한다. 너무나 섬세해서 그래서 겁이 많았던 로우다 인생을 가장 회의적으로 보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호주출신 은행원을 아버지로 둔 루이스와 훗날 연인이 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리고 루이스는 퍼서벌과는 가장 대조적으로 그려지는 인물이다.  '대조' 그렇다 그녀 문학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이 '대조'의 미학이다. [등대로]에서는 어둠과 등대같이, 램지부인과 릴리 브로스코우 같이, [파도]에서는 퍼서벌과 루이스처럼, 수잔과 지니처럼... 루이스는 큰돈을 벌지만,,, 그녀와 함께 했던 다락방에서 로우다 그리워한다.

수잔은 그녀의 어머니와 같은 삶을 살기에는 너무나 지적인 여성이다. 그녀 내부에는 무한한 열정과 재능이 있다. 그녀는 그와 같은 재능을 아이를 키우고 농장물을 키우고 그렇게 하루하루 그녀의 어머니가 그렇게 살았듯 그녀도 그런 삶에 순응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녀 내부에 절망감과 무력감이 찾아 들기도 한다. 평범한 삶,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 그녀는 그 모든 삶이 평화롭고 만족스럽지만,,, 그녀의 열정... 그녀의 재능을 놓고 보면... 무언가 권태롭다. 퍼서벌을 가장 사랑했던 네빌은 가장 평범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삶의 모습을 하며 살아간다.


등장인물들 중 가장 섬세하고 겁이 많아 늘 친구들을 따라 하고 그러면서도 미워한 로우다는 루이스와 연인으로 지내다 자살을 한다. 작가는 그녀의 자살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들의 구체적인 사랑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는다. 내가 본 그녀의 작품 속 특징은 이처럼 원인과 결과를  찾아볼 수 없다. 삶의 고뇌라는 흐름을 쫓다가 갑자기 죽음이라는 결과를 독자들에게 던져버린다. 마치... 우리의 인생 자체가 아무 인과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그들 모두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준 퍼서벌은 울프가 현실 속에서 잡지 못한 그녀의 '이상'이었을까? 퍼서벌은 인도에서 낙마로 죽음을 맞이하고 그 시점에 버나드의 아이가 태어난다. 그들이 가장 믿고 따르고 닮고 싶어 했던 퍼서벌... 그 심각하고 중요한 상실의 사건 속에서도 주변은 그 어떤 흔들림도 없이 흘러간다.


이 소설 후반부에는 버나드가 각 친구들의 상황을 들려줌으로써 이야기가 정리되어가는 인상을 받는다. 나는 소설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유령 같은 그녀의 형체 속 옷자락을 겨우 잡아 끈 느낌이 들었다. 이 소설은 한 번만 읽고 이해하기엔 쉽지 않은 소설이다. 그리고 한 번만 읽기엔 그녀의 아름다운 문장과 삶의 고뇌 그리고 열정이 아쉽다. 문장을 반복해서 읽을 때마다 전해져 왔던 그 아름다움과 전율을 몇 번이나 느꼈는지 모른다. 그만큼 그녀의 작품은 하나같이 매력적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꼭 이 작품을 만나보라고 하고 싶다. 인생을 살면서 이런 아름다움을 미쳐 만나보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면... 너무나 아쉬우니까... ​

 


"내 안에서 파도가 일어선다. 나는 다시 한 번 새로운 욕망을 ...

자존심이 강한 말같이 내 밑에서 용솟음치는 어떤 것을 느낀다...

어떤 적이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느끼는가?

그것은 죽음이다. 죽음이 적이다.


...


인도에서 말을 타고 달렸을 때의 퍼서벌처럼 말에 박차를 가한다.

정복당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고, 너를 향해 내 몸을 던지노라, 오오 죽음이여!"


파도는 해변에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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