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지 황석영 중단편전집 1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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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배워서 사회의 가장 낮은 일에 매달려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무지몽매한 사람들, 가진것이 없어 가진자가 제공하는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도 마다할 수 없고 오히려 감사해하며 가진자 들의 부의 재생산을 위해 고단한 하루살이형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힘없어 억눌리고 아니꼽고 더러워도 풀어가는 방식을 제대로 알지 못해 마냥 당하고야 살아가는 답답하고 가여운 사람들 등등의 인간 유형에 대해 황석영은 관심을 가지며 지금까지 몰두해왔다. 세상의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나보다 더 비천하고 곤궁한 인간들에 대한 탐구는 기본적으로 그들에 대한 같은 인간으로서의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리라


같은 처지에 내몰린 사람들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유대감을 느끼게 되고 한사람 두사람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쌓였던 불만과 불평을 늘어놓게 되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마침내는 개선과 시정을 위한 행동에 들어가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나약하기 이를데 없는 대중도 서로 합치고 힘을 모으면 당당한 민중이 되어 사회의 부패와 부조리를 타파하는 데 한몫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낱 대중이 민중이 되어 우리 사회의 개선을 위해 기여한 사례는 그 성공보다는 실패로 끝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볼 수 있다. 왜 그런가? 대중이 민중으로 변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어디까지나 본질적으로는 대중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 각개격파식으로 전개되는 외부의 회유와 압력에 여전히 무력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사회를 바꾸고 나라를 변화시킨다는 원대한 꿈은 그들에게는 없었으며 오직 현실의 고단함과 억울함이 시정된다면 적어도 나 하나라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있다면 그들을 외관적으로 결속할 수 있도록 만든 민중이라는 외투는 얼마든지 벗어던질수 있고 스스럼없이 무리속에서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위와 동혁은 끝까지 투쟁할 수 있는 인물이었으나 나머지는 그렇지를 못했다. 억울한 호소가 수용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오른 것만으로도 이미 성취한 것처럼 그들은 여전히 순진하였고, 위기모면을 위해 펼치는 공사소장의 쇼와 기만책에 그대로 무너질 만큼 그들은 여전히 어리석었으며, 수없이 단련되고 경험을 축적하여 단계적으로 대응책을 조절할 수 있는 노련한 작업반장류에 비해 그들은 여전히 즉흥적이었고 미숙했다. 중상으로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었던 대위를 남겨두고 동혁은 스스로 산화해버리고 말았다. 힘없는 대중이 민중으로 전환하여 모이고 외치고 싸웠어도 대부분 실패로 끝난 아픔과 공포를 동혁은 자기 목숨을 버림으로써 극복하고 승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순리적인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한 개인의 목숨이 필요로 하는 사회는 비상식적인 사회다. 지금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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