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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 가는 길 ㅣ 황석영 중단편전집 2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황석영에 대한 관심은 최근의 일이다. 그가 우리 문단의 거목이며 보수의 이문열이 있다면 진보에는 황석영이 있다는 문단의 평가는 그간 나의 눈과 귀에 잡히지 않았다. 아니 전혀 잡히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요즘처럼 강렬하게 내 의식을 사로잡지는 못하였다. 나는 기억한다. 최초로 그를 만난 것은 작품을 통해서가 아니라 텔레비젼 화면속이었으며 그때 그는 김대중 대통령후보 찬조 연설자로서 지지연설을 하고 있었다. 1987년이다. 기골장대하고 길게 드리워진 모발을 가지런히 빗고서 눈은 가느다랗고 폭은 짧은 편이었지만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만남은 끝이었다가 느닷없이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와서는 국보법 위반으로 큰별을 달게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외피적인 근황만 그저 뉴스속에서나 내 시선을 붙잡았을 뿐이었고 끝내 그의 정신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느낄 수 없었다.
자신의 사고를 행동으로 옮기는 소신과 용기는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건만 나에게는 일종의 거부감 같은 것이 있다. 운동은 꾼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작가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두가지 일을 모두 진정으로 잘 할 수는 없으며 소설가 황석영은 어디까지나 소설가이어야 하며 그때서야 비로소 황석영다울 수 있다는 믿음은 소설이외의 딴길로 외도하는 그를 진정성있게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어 버렸다. 물론 나의 시각일 뿐이다. 그리고 최근에 나는 나의 오해 일수도 있고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는 지금까지의 태도가 그릇된 것이었다면 기꺼이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주 그를 만날 작정을 하였다. 작가가 현실에 참여하여 그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간혹 작품세계와 실제 세계가 들어맞지 않아 날 당혹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황석영은 아니다. 그가 정녕 현실에 계속해서 참여하자고 한다면 일관된 자세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단편이라서 그런가. 여태까지의 나의 책읽기는 주로 장편에 치중되어서 축약의 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까. 아무튼 황석영은 대단히 불친절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내 성질이 몹시도 급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그의 작품은 독자의 편한 책읽기를 용납하지 않는 어려운 것들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차분한 음미를 통해서야 진가가 드러나므로 독자의 인내를 필요로 하거나이다.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황석영이냐 아니면 작가 탓만 일삼는 천박한 본인인가? 아무튼 첫 대면한 황석영은 그리 호락하게 나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독자라면 으레 이러한 통과의례를 거쳐야 함을 넌지시 알려주듯이 말이다
나는 계속해서 황석영과 소통하며 과연 무엇이 사실인지를 밝혀낼 것이다. 물론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