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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필요 때문에 (연쇄)살인과 대량학살에 관한 책들을 들춰보게 됐다. '살인'에 국한하자면, 이 분야의 책들은 처음 찾아보게 됐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책이 콜린 윌슨의 <잔혹>이나 <살인의 심리> 같은 책들이니까 좀 오래 묵긴 했다. 도서관에서 '살인'이란 검색어로 뜨는 책들 가운데 몇 권에 관심이 갔지만 모두 대출중이었다.

 

 

 

 

그 책들이란 게 브라이언 이니스의 <프로파일링>(휴먼&북스, 2005)이나 <살인의 현장>(휴먼&북스, 2006) 같은 것이었는데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휴먼&북스, 2005)와 함께 '범의학과 과학수사 시리즈'를 구성하고 있었다. 한데, 모두 대출중. <살인의 현장>은 원서('Body in question')마저 대출중이었다.

책값이 좀 비싸긴 하지만, 지난 7월에 나온 이 책의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가 그다지 높지 않은 걸로 보아 대중적이지는 않은 이 책에는 일부 매니아 독자층이 있는 듯하고, 그들은 아마도 CSI 시리즈의 매니아층 일부와 겹치지 않을까, 라는 게 나의 추정이다. 하는 수없이 방향을 틀어서 로버트 레슬러의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바다출판사, 2004)를 대출할까 했더니 이마저도 이미 대출중. 나는 간신히 이 책의 구판인 (미래사, 1994)을 '꿩 대신 닭'으로 대출했다. 하지만, 구내서점에 가서 비교해보니까 분량에서 너무 차이가 나는지라(바다출판사판은 435쪽, 미래사판은 268쪽이다)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는 아예 구입을 했다(원저의 제목과는 무관한 국역본의 제목은 물론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본딴 것이리라).

알라딘의 소개에 따르면, "1994년 출간되었던 의 개정증보판이다"이라고 하는데, 똑같이 1992년에 나온 원저를 대본으로 하고 있으므로 '개정증보판'이란 표현은 국역본에만 해당한다. 그러니까 짐작엔 미래사판이 축약번역판인 모양이다. 한데, 이 '축약본'의 서두에도 들어가 있는 10페이지의 사진자료들이 '개정증보판'에는 왜 빠진 것인지? 더불어, '개정증보판'에는 "33년의 경찰 재직 기간 동안 시카고의 거리에서 여러 괴물들과 싸웠던 내 절친한 친구이자 처남에게 바칩니다"란 헌사도 빠져 있다(처남이 유감스러워하지 않을까?). 게다가 저자의 '감사의 말'까지.

물론 '축약본'도 문제점이 없지는 않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테니까..."라는 에피그라프가 빠져 있는 것이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인용한 것이면서 책의 원제를 따온 대목이기도 한. 요컨대, 94년의 초판에서 2004년의 개정판에 이르는 과정에서 우리가 잃은 것은 '처남'이요, 얻은 것은 '괴물'이 되겠다.  

로버트 레슬러(1937- )의 이 저명한 책에 대해서 내가 숙지하지 못한 것은 개정판이 지난 2004년, 그러니까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된 사정과 무관하지 않겠다. 뒤늦게 알아보니 이 '전설적인' FBI 수사관이 ‘연쇄살인범(Serial Killer)'이나 ‘범죄자 프로파일링(Criminal Profiling)’ 같은 말을 처음 창안한 사람이다(그러니까 그는 '연쇄살인범'의 '아버지'이자 '프로파일링'의 '대부'이다). <양들의 침묵>, <한니발>의 작가 토머스 해리스 또한 그 소설들을 쓰기 전에 로버트 레슬러에게 경험담을 실제로 듣고 참고했다고 하니까 더 말할 것도 없다. 재작년의 한 리뷰기사를 읽어본다.

 

 

 

 

경향신문(04. 08. 21) 유영철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구속기소된 시점에서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라는 책이 나왔다. 저자는 ‘연쇄살인범(Serial Killer)’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미국 연방수사국(FBI) 심리분석관 로버트 레슬러. 그는 범죄 현장 조사·감식을 통해 범인의 프로필을 추적하는 수사기법인 ‘범죄자 프로파일링(Criminal Profiling·범인상 추정)’을 처음 창안한 사람이기도 하다.

레슬러는 엽기적 살인이 발생한 현장 분석에서부터 시작해 교도소에 수감된 살인마들과의 면담을 통해 살인자들의 공통점과 범죄 심리를 해부하고 있다. 그는 1,488차례 방화하고 하룻밤에 6명의 여성을 살인한 데이비드 버코위츠, 마음에 둔 여인이 사랑을 받아주지 않자 마구 흉기를 휘두른 뒤 토막낸 듀안 샘플즈, 살해한 뒤 시체를 욕보이는 시간(屍姦)을 저지른 연쇄살인마의 대명사 ‘데드 번디’ 등 수십명을 인터뷰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본다.’ 레슬러는 인터뷰 과정에서 니체의 이 말을 유념하며 냉철한 이성을 통해 ‘괴물’들의 심연을 들여다봤다. 그 결과 연쇄살인마들은 통념처럼 가난한 결손 가정 출신이 아니며 오히려 중산층 이상 출신들이 많았고, 또 80~90%가 어린 시절 ‘냉담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당했으며 성적 도착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연쇄살인범들은 환상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들의 ‘충족되지 않은 경험’이 그 환상의 일부가 되어 다음 살인을 부추긴다. 저자는 연쇄살인범이라는 용어의 뒤에 숨어 있는 뜻은 진짜 이런 것이라고 말한다. ‘인육을 먹었다’는 등 유영철의 진술 하나하나가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이 때에 나온 이 책은 유영철의 심리를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해 볼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제목은 자극적이지만 엽기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책은 아니다. 최근에야 범죄 프로파일링을 시도한 한국 경찰의 과학수사 관계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김종목 기자)

06. 11. 21.

P.S. 레슬러의 책으론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외에 <범죄분류입문>, <이성 살인: 패턴과 동기> 등의 공저가 있다. <인터뷰>에 대한 반응으로 보아 나머지 책들도 소개됨 직하다...

 

 

 

 

P.S.2. <살인자들과의 인터뷰>와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 물만두님이 추천해주신 <마인드 헌터>(비채, 2006). 소설인 줄 알고 있었는데, 역시나 FBI의 베테랑 수사관이었던 존 더글러스의 회고록이라고 한다. <마음의 사냥꾼>은 그 구판이다. 내친 김에 떠올리게 된 책은 '경제학자' 에르네스트 만델의 <즐거운 살인>(시울, 2001). '범죄소설의 사회사'가 부제인데, 보관함에 넣어놓은 채 몇 년이 지난 듯하다.

그리고,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향수>(열린책들, 2006). 나는 아주 오래전 초판 번역으로 읽었는데(기억에 하룻밤에 읽은 책이다), 최근에 영화화되어 곧 개봉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들에 특별한 흥미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나는 <텍사스 살인마> 같은 영화를 취향상 보지 않는다) <향수>의 경우는 이야기도 되새겨볼 겸 한번 보고 싶다. 비록 나의 관심은 이런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에 더 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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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상 3인조, 수영장 가다>

 

 

혹시 로바다야끼에서 남자 몇 명이 ‘궁상맞게’ 앉아서 지나가는 여자나 여자들만 앉아있는 테이블을 힐끔거리는 걸 보신 적이 있다면 그 중에 한 명이 저였을 지도 모릅니다.

지하 고급카페에서 계단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침 흘리고 쳐다보는, ‘궁상맞은’ 남자들을 보신 적이 있다면 그 중에 한 명이 저였을 지도 모릅니다.

수영장에서 온 몸에 오일을 처바르고, 수영은 절대 안 하고, 선글라스로 눈의 궤적을 교묘히 숨긴 채 비키니 글래머를 감상하는 남자들을 보신 적이 있다면 그 중에 한 명이 저였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 난 궁상 패밀리의 일원이었다.

 

1990년 초반.

당시에 유명한 수영장은 워커힐호텔, 타워호텔, 서울교육문화회관, 한강 수영장이었다.

(지금은 어딘가요?)

왜 유명한 지는 아마도 아실 것이다.

그 곳은 타고난 몸매나 노력 많이 한 몸매가 아니고서는 절대 주목 받을 수 없는 곳이다.

그렇다면 나는?

노 코멘트다.

 

하여간에 그 곳은 최신 유행의 수영복은 다 출동한다.

그 당시 형광 비키니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노란색, 오렌지색, 핑크색

전통적인 강세인 화이트와 블랙은 디자인을 다양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표범무늬(호피)는 남자들을 아찔하게 만들곤 했다.

랩 스커트인가? 수영복 바깥으로 힙과 다리를 감싸는 천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다.

여자 수영복의 단가가 올라가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다. 투 피스에서 쓰리 피스로.

(사 줘 봐서 잘 안다.)

 

남자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일제(스피도나 아레나) 최신형 초삼각 팬티나 박서형.

대체로 근육질이나 단신은 초삼각을 선호하고, 호리호리한 몸매나 장신은 박서형을 많이 입었다.

남자들은 형편에 따라 순금목걸이, 18K, 은목걸이, 메달(십자가)과 줄로 된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남자들의 유일한 포인트가 목걸이다. (당시엔 귀걸이를 하는 남자들이 전무했다.)

구리빛이라는 의미의 Coppertone(?)과 하와이안 트로픽이라고 적혀 있는 선탠오일들과, 얼굴과 어깨에 마구 처바르는 SPF 30 전후의 선블록.

(아- 얼마나 오랜만에 입에서 튀어나오는 그리운 단어들인가? 음- 그립다.)

 

늘씬한 스타일의 여성들과 글래머 스타일의 여성들은 남녀 모두의 관심의 대상이다.

남자들도 키 크고, 잘 생기고, 체격마저 좋은 놈들을 질투하고 있었다.

수영장에 갔는데도 수영은 말 그대로 너무 더워서, 심심해서, 몸 풀려고 하는 거다.

오로지 목적은 선탠과 눈요기.

 

이번 여름을 위해 인공선탠을 미리 하고 온 여자들.

연초부터 부지런히 헬스클럽을 드나들면서 몸 만들어 온 남자들.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이라고 자부하며, 올 여름 반드시 주목을 받아야만 직성이 풀리겠다는 의지가 역력히 나타나는 스타일의 수영복을 걸치고 초여름 수영장 개장하자 마자 그 주 주말에 나타난다.

빠르면 6월 초, 중순부터 호텔 수영장은 개장한다. (요즘은 잘 모르겠다.)

7월 하순부터 8월 초의 피크타임에는 이미 그 동안의 작업을 통해 조달된 파트너와 근사하게 그을려진 구리빛 피부와 책과 과일이 선탠 베드나 돗자리 위에 있어야만 했다.

 

여자들은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지만 남자들 중엔 수영장 오기 전에 집에서 푸쉬업을 한 100번 정도 하고 오거나 아령을 한 200번 정도 하고 와서 자신의 가빠(갑바?)와 알통을 자랑한다.

(여자들은 똥배 나올까봐 굶고 와서 수영장 와서 배를 채우는 지도 모르겠다. 오후쯤 되면 긴장이 풀려서인지, 포기해서인지는 잘 모르지만 하여튼 엄청들 먹는다.)

 

우리 궁상 패밀리에게 유일하게 쥐구멍에도 볕 든 날이 있었다.

Pool 건너편에 현재 스코어 최강의 글래머 비키니가 등장했다.

(우리 궁상들은 그 녀를 ‘젖소’라고 이미 부르고 있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한 마디씩 품평회를 해댄다.)

 

다른 글래머 비키니들의 견제와 질투 속에서 ‘젖소’의 일거수 일투족에 남자들은 관심이 집중되곤 했다.

 

‘젖소’와 그 떨거지들이 물(!)이 어떤가 보러 다니는지 풀Pool을 한 바퀴 빙 둘러보던 중이었다.

아직, 미처 그 녀를 보지 못 했던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한 마디씩 평가하는 소리가 웅성웅성 들리던 바로 그때.

 

“어머, 오빠!”

우리 궁상들 순간 엄청 당황했다. (우리도 어머머.)

우릴 보고 그 ‘젖소’와 떨거지들이 아는 척을 하는 게 아닌가?

일순간 우리에게 수영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관심 집중.

그야말로 일약 스타가 되는 순간.

피부로 확 느껴지는 다른 놈들의 견제와 질투와 호기심.

(정말로 순간 정적이 흐른다. 진짜다.)

 

알고 보니 우리 서클(동아리) 후배 여자애였다.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 하고 ‘젖소’와 그 떨거지들이라는 둥, 농구공이라는 둥 그랬던 거였다.

언제 우리가 옷 입은 거만 봤지, 벗은 모습을 아니 비키니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있어야지.

평소엔 관심도 없던 후배 여자애들 덕분에 우리 궁상들은 수영장에서 나올 때까지 보무도 당당하게 설치고 다녔다.

“우리가 진짜 잘 나가는 줄 알 거야.”

 

멋있게 구워져서 하얀 힙에 대각선으로 ‘라인’이 제대로 나올 때까지 최소한 10여 번을 수영장에 갔다.

피부암이고 뭐고 간에 그게 ‘멋’인 줄 알았다. (사실은…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

 

멋있는 선탠을 위한 준비물

 

- ‘카퍼톤’이나 ‘하와이안 트로픽’ 같은 선탠오일

- 선블록과 선스프레이

- 모자

- 금목걸이

- 수건

- 책

- 시원한 생수와 음료수

 

 

멋있는 선탠을 위한 요령

 

1.       아침에 깨끗하게 샤워한다. 그리고 푸시업도 기본 100번. 당연히 아침밥 굶는다.

2.       일찍 개장하자 마자 수영장에 입장한다. (거의 9시 반경)

3.       선 블록(SPF 30 이상)은 얼굴과 어깨에 처바른다.

4.       나머지 부위에 선탠 오일을 듬뿍, 아끼지 말고 처바른다.

5.       반드시 모자를 쓴다.

6.       몸을 자주 뒤집어 준다.

7.       겨드랑이와 옆구리, 허벅지 부위는 잘 안 타므로 특별히 신경 쓴다. 이상한 자세가 나와도 뻔뻔스럽게 버틴다. 아니면 모자로 얼굴을 가려 버린다.

8.       탈수 예방을 위해 물을 자주 섭취한다.

9.       화끈거리는 부위(어깨, 가슴이나 종아리, 팔)에 선 스프레이를 수시로, 자주 뿌려 준다.

10.   얼굴에 한 번 더 선 블록을 처바른다.

11.   첫날인 경우 11시 반경에 집으로 돌아와서 찬물로 몸을 식혀 준다. (초기엔 정오의 햇빛은 반드시 피한다. 초기엔 절대로 돈 아깝다고 2시간 이상 하지 마라. 반드시 어깨에 껍질 벗겨진다. 그러면 스케줄에 차질 생긴다. 진도 못 나간다.)

12.   하루 정도 쉬면서 이튿날 똑 같은 방법으로 2-3회 수영장 간다. 어느 정도 피부가 적응이 됐다고 판단이 들면 시간을 조금씩 늘려 간다. 가족들이 너 흑인이냐, 라고 구박할 때까지 해야 ‘진정한 선탠’이라고 할 수 있다.

13.   잠이 많아서 오후에 가면 안 되냐구? (오후에 가면 자리가 없다. 선탠 베드도 없고, 돗자리 누일 장소는 화장실 바로 앞이나 쓰레기통 앞에나 남아 있다. 모자라는 잠은 수영장에서 책 보다가 퍼 자라.)

14.   개장하자 마자 부지런히 다녀 피크타임 때는 반드시 위에서 얘기한 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를 기원한다.

 

 

‘진정한 선탠인’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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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5-27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정말 재밌군요. 전 수영장은 별로 안갔습니다. 어릴때 배우러 다니느라 잠깐 들락거린것 이외에 다 커서는 거의 안갔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별로 땡기지 않았더랬습니다. 그런데 님의 글을 읽으니 안되는 몸매 이끌고라도 한번쯤은 가 볼껄 하는 생각이 드네요^^
 

<궁상 3인조, 나이트 가다> - 번외편(부킹 잘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예고 : <궁상3인조, 나이트 가다> 3탄. 호텔 나이트 편.

‘사가’,’ 단코’ 등으로 이어지는 나이트 세계의 치열한 부킹전.

잔머리와 호박씨의 숨막히는 정면대결.

 

‘부킹 잘 하는 사람은 분명 따로 있다.’

‘그대 스스로를 부킹하라.’

‘33세 젊은 죽돌이의 부킹일기’

‘부킹왕의 365일’

‘32세, 32명 죽순이 꼬시기’

‘네 안에 잠든 끼를 깨워라.’

‘혼자 힘으로 부킹왕이 된 사람들의 21가지 원칙’ 등이 이어집니다.

 

기대하시라. 커밍 순.

 

 

설마

위의 제목대로 시리즈물이 연재된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분은 없겠죠?

상식적으로 33세나 32세에 부킹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ㅎㅎ

그리고

부킹왕이 되는 21가지 원칙이 있으면 저 좀 가르쳐 주세요.

배우게

따라하게

 

또 설마

위의 패러디 제목의 책 원제목을 모르시는 분들은 없으시겠죠?

 

 

드디어 제가 경험하고 들은 ‘필살기’(어떤 분들은 ‘비기’라는 표현도 씁니다만…)를 몇 가지 쓰겠습니다.

부동산 투자와 마찬가지로 이것(부킹)도 시대상황과 환경이 많이 바뀌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역시 공부하고, 행동(실천)하여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준비를 해야합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교훈이 등장합니다.ㅎㅎ)

 

제가 이 행복한 부자 방에서 항상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태클 반사!”

 

그리고 25세 이상의 회원님들은 그냥 보고 즐기십시오.

실전 경험을 가질 목표가 아닙니다.

그냥 대리만족, 과거 회상용으로 즐기십시오.

저도 이 글을 그런 마음으로 올립니다.

25세 이하시라면, 아직 젊으시니까 제대로 한 번 노는 것도 나중에 늙어서 후회가 없을 듯 합니다.

30대만 돼도 놀러 잘 못 갑니다.

 

 

그럼 본론으로

성공확률 무시하고, 순서 관계 없습니다.

(다분히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이므로, 이런 부분에 반발이 예상되는 분들은 더 이상 읽지 마십시오. 할 수 없잖아요? 제가 남잔데요.)

 

 

부킹 필살기 하나.

 

부킹 잘 하는 A급 웨이터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A급 웨이터들이 A급 고객(킹카, 퀸카)을 확보하고 있다.

A급 웨이터는 나이트클럽 주변에 벽보나 스티커, 주변의 권유 등으로 정보를 입수해야 한다.

그리고 길 가면서 받은 웨이터 명함도 언제 쓰여질 지 모르니까 소중히 간직한다.

 

웨이터 ‘지명’을 통해 A급 웨이터의 테이블에 앉는다.

그리고 팁 몇 만원을 주면서 잘 부탁한다, 고 얘기한다.

(A급 웨이터들 중 상당수는 이 순간부터 우리 일행을 최고의 킹카로 소개하기 시작한다.

이름을 언뜻 들은 적은 있지만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느 정도 알려진 기업의 아들이다.

아버님이 유명한 정치인이다.

가진 게 돈 밖에 없는 집안의 자식이다.

이런 식으로 소개해 준다.

따라서 적절한 연기 실력이 요구된다.)

 

연기를 못 해 불안하다고?

그렇다면 말을 많이 하지 말, 말문이 막히면 씩 웃어라.

 

 

차도 반드시 가지고 가야 한다.

(1990년대 초반엔 차 수준이 지금과는 틀렸다.

그 때는 소나타도 굉장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대학생이 차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엄마 차를 많이 가지고 놀러 왔다.

아버지 차는 대부분 검정색 그랜저급이므로 조금은 여자들에게 의심의 소지가 있었고, 대부분이 엄마 차는 흰색이라서 주로 엄마 차를 많이 빌려 갔다.)

 

주의할 점 : 여성적인 느낌을 주는 소품들은 반드시 사전에 치워야 한다.

차 안에 향수 같은 것도 가급적이면 없애야 한다.

콘솔박스에 있는 내용물도 체크하고, 카세트 테이프나 CD도 젊은 취향으로 교체해야 한다. 킹카로 보이는 길은 사소한 것부터 시작된다.

세차는 일부러 안 해도 된다.

좀 지저분해 보이는 게 남자 차 같은 느낌을 준다.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1990년대 초반은 음주운전을 많이 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 보통 3명 정도가 가면

‘기사조’(운전을 위해 술을 거의 안 먹는다. 대체로 인물이 떨어지거나, 술이 약하거나, 말빨이 떨어지는 사람이 주로 담당한다.),

‘전투조’(제일 중요한 역할로 부킹의 중심에 서 있다.

처음의 어색함을 깨면서 자연스럽게 권하는 술 한 잔, 상대가 기대하는 수준 이하일 경우 빨리 보내버리는 냉철함, 흡족한 경우 최대한 오랫동안 붙잡아 놓기 위한 잔머리와 다양한 소재거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대화시 순간적인 임기응변과 고도의 순발력이 요구된다.

다른 전투조와의 호흡도 상당히 중요하다.)

로 일반적인 업무분장이 필요하다.

 

 

 

 

 

<다음에 계속…>

 

 

 

 

2탄 맛보기

 

복장 무지 중요하다.

최대한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거나, 실제로 고급 의상을 입어라.

시계나 목걸이 등도 잘 활용하라.

 

당연한 이야기지만 양주 시켜라.

주변이 대부분 양주면 당연한 거지만, 아니더라도 무조건 시켜라.

어쨌든 물 수준의 고저를 떠나서 양주는 기본이다.

물론 양주의 레벨은 예산에 따라 조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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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5-27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릴때는 나이트를 많이 갔었는데 주로 아는 사람들과 떼로 가서 그런지 부킹은 별로 안했습니다. 친구들끼리 가도 오로지 춤을 추러 갔지 부킹에는 별 관심이 없었더랬습니다. 근데 이 글도 상당히 재밌고 기대가 됩니다. 2탄 기다리겠습니다.^^
 

<궁상 3인조, 나이트 가다> - 2탄(강남역 ‘시에스타’ 편)

 

 

 

대학교 1학년 때 ‘시에스타’란 나이트클럽이 강남역 뉴욕제과 뒤에 오픈했다.

사장이 이경규(코미디언)라고 했다.

‘오픈빨’이라고 나이트 오픈 초기에는 물이 굉장히 좋다.

 

물론 다 아시겠지만 ‘아직’ 순진한 분들을 위해 이 ‘오픈빨’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하고자 한다.

A급 웨이터들은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단골고객이 있다.

특히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대상은 20대 초반의 늘씬하고, 잘 놀고, 약간 골 빈(부디 비난하지 마시기를.), 약간 헤픈 여성들이다.

(골 빈 남자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부르지 않아도 찾아오는 나비들이다. 그래서 웨이터들이 그다지 신경 안 쓴다. 놀러 오라고 전화는 하지만 공짜로 뭘 주는 건 상대적으로 적다.)

보통은 초반엔 멋있는 스타일의 여자들이 많이 오고, 그 다음엔 그 여자들을 보러 멋있는 남자들이 꼬인다.

그 다음엔 B급들이 여자, 남자 순으로 오고 몇 달 가지 않아서 ‘물’은 평준화 된다.

그러면 잠시 영업을 중단하고 괜히 인테리어 공사를 핑계로 이름도 바꾸고 다시 오픈한다.

이런 상황의 반복이다.

 

나이트클럽 오픈 전부터 웨이터 조각에 들어가면서 A급 웨이터들에게는 스카우트 비용(무슨 명칭이 있는데 까먹었다.)으로 상당한 액수를 주고 업주측에서 데리고 온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보조 웨이터가 있는데 진짜 고객이 많은 웨이터들은 보조를 2명 이상 두기도 한다.

또 실력이 변변찮은 C급 웨이터를 자기 휘하에 흡수하기도 한다.

B급은 그럭저럭 버틴다.

A급 웨이터들의 1명 매상(수입)이 어지간한 B급 웨이터들 5명의 수입과 맞먹기도 한다.

나이트클럽에는 ‘지명’과 ‘순번’ 손님이 오는데 A급 웨이터들은 이 ‘지명’이 ‘순번’의 몇 배가 되어서 수입이 많아진다.

 

 

교훈 : 어느 직업세계에서나 A급, B급, C급이 존재한다.

A급은 금전적으로든 뭐든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B급은 먹고 살 수는 있다.

C급은 비참하다.

보통 노력으로는 A급이 될 수 없다. 이 A급도 과거에는 C급이나 보조일 때가 있었다.

모델링(따라 하기), 성실함, 투자, 외모(특수시장을 감안한) 등 여러 가지 노력의 결과가 정상의 A급 웨이터가 되는 길이다.

 

 

조금 부연 설명하자면 ‘조용필’이라는 웨이터는 90년대 나이트에는 항상 있었다.

요즘은 ‘권상우’인 지도 모르겠다.

보통 그 시대 최고 스타들의 이름을 가진 웨이터는 업소마다 하나씩 다 있으니까

하여간에 손님들이 나이트 입구에서 아시는 웨이터 있으세요, 라고 지배인이 물었을 때 조용필이요, 라고 하면 이 손님은 조용필의 지명 손님이 된다.

이 때 없는데요, 라고 하면 지배인이 꼬마신랑 불러, 하면 순번 손님이 된다.

어쨌든 순번보다 지명으로 온 손님들에게 웨이터들은 더 잘 한다.

 

(※ 팁 1 : 해당업소 웨이터 이름을 잘 모른다면 나이트 오는 길에 벽보나 스티커 등을 유심히 찾아본 후 웨이터 이름을 알아내서 마치 자주 오는 손님처럼 ‘권상우요’라고 한다.

그러면 이 때 나타나는 웨이터 권상우는 얼굴은 미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최소한 1번 이상은 자신이 서빙을 한 손님인 줄 알고 더 열심히 부킹을 시켜준다. 단골인 줄 알고 아니면 단골 잡으려고… 한 술 더 떠서 ‘권상우 오랜만이에요.’하면 이 웨이터 감동한다.

반드시 웨이터 지명을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한마디로 대우가 틀리다.)

 

 

다시 시에스타.

강남역 뉴욕제과 뒤(현재는 노래방?)에 새로 오픈을 해서 강남역 나이트 클럽 업계의 판도변화를 주도했다.

당시는 ‘월팝(월드 팝스)’이 강남역의 지존이었으나 시에스타 때문에 상당 기간동안 2인자의 설움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잠시 오딧세이라는 클럽이 생기면서 다시 설움을 겪기도 했다.

월팝 투, 빠샤 원,투를 거치면서 다시 1인자의 자리를 되찾고, 향후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한다.

3등으로는 ‘헌터스’가 있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대부분 개장하기 전에 줄 서서 들어가지 않으면 좋은 자리(스테이지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지 못 하거나, 못 들어 갔다.

(혹시 요즘은 룸으로 들어가서 양주 시키는 게 폼 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해 본다.)

 

이 당시 유행하던 노래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건 엠씨 해머의 ‘You can’t touch this.”였다.

그리고 버닐라 아이스(바닐라라고 하면 촌스럽다.)의 ‘Ice, ice, baby.’였다.

당시 최고의 히트 곡이었다.

이 노래만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비장의 춤을 끄집어 낸다.

노래에 맞는 자신만의 고유한 춤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지금도 엠씨 해머의 ‘You can’t touch this.”를 라디오 같은 데서 들으면 혼자 추억에 잠기곤 한다.

 

여기서 나는 가수 ‘박진영’을 본 적이 있다.

남자친구들 몇 명과 ‘군무’를 췄다.

어디서 따로 연습을 해 왔는지 같은 동작을 서너 명이 추는데, 솔직히 멋있었다.

(이 때만 해도 박진영은 아마 대학교 1학년이었던 같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고, 같이 온 남자애들 수준이 괜찮았다.

그리고 어지간한 DJ들과도 친분이 있어 신청곡도 주문하곤 했다.

하긴 어떤 노래에 맞춰 군무를 준비했는데 그 노래가 안 나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오’양 비디오로 유명한 함성욱도 이 시기 최고의 DJ였다.

나이트 죽순이들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받았는데, 당시 DJ 중 최고 미남으로 꼽혔다.

 

1990년도 여름쯤부터 슬슬 강남역을 뜨고 호텔 나이트로 진출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강남역은 맥주 기본, 호텔 나이트는 양주 기본이었다.

금액 차이도 한 4-5배 정도 나는 수준이었다.

 

 

보다 큰 목표를 위해 서서히 준비를 해 나가야만 했다.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만 온다.

 

 

 

<다음에 계속…>

 

 

(예고 : <궁상3인조, 나이트 가다> 3탄. 호텔 나이트 편.

‘사가’,’ 단코’ 등으로 이어지는 나이트 세계의 치열한 부킹전.

잔머리와 호박씨의 숨막히는 정면대결.

 

부킹 잘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대 스스로를 부킹하라.

33세 젊은 죽돌이의 부킹일기

부킹왕의 365일

32세, 32명 죽순이 꼬시기

네 안에 잠든 끼를 깨워라.

혼자 힘으로 부킹왕이 된 사람들의 21가지 원칙 등이 이어집니다.

 

기대하시라. 커밍 순.

 

- 내가 써 놓고도 부담스럽다.

도대체 뭘 믿고 이런 걸 올리는지

아직 아무 것도 안 써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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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5-27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요즘에는 잘 모르겠지만 불과 3~4년 전만 해도 룸잡고 양주 시키는게 제일 잘 노는거였습니다. 부킹의 경우 대부분은 여자들이 웨이터 손에 이끌려 돌아다녀야 하는데 여자들이 룸잡고 놀면 웨이터들이 남자를 데리고 들어왔거든요. 제일 웃기는건 나이트가서 룸잡고 거기있는 노래방 기계로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한참 부르다 우리끼리 그랬죠. 이럴꺼면 노래방가지 뭣하러 나이트를 왔담? 웨이터 팁을 10만원씩이나 줘가면서 말입니다.^^
 

<궁상 3인조, 나이트 가다>

 

 

난 고2 때 처음으로 나이트를 가 봤다.

당시 강남역에 ‘유니콘’이라는 데가 최고였다.

(여기서 ‘최고’라 함은 물이 가장 좋다라는 말이다. 또 여기서 ‘물이 좋다’라 함은 스타일 좋은 남녀들로 들끓고 부킹이 잘 되는 그런 곳을 말한다. 굳이 이런 얘기까지 안 해도 될 것 같지만 그냥…)

 

한껏 어른스럽게 꾸미고, 적지 않은 돈을 가지고, 기대에 부풀어 줄을 섰다.

(정말이다. 이 곳은 업소 개장이 6시인가 했는데 거의 5시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언뜻 보기에 30% 정도는 고등학생인 것 같았다.

 

6시가 되자 문이 열리고 지배인(기도)이 줄 선 손님들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어려 보이는 몇 명은 주민등록증이 없다고 ‘뺀찌’를 먹고는 애걸복걸하기도 했다.

우리도 어려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코모도 같은 브랜드의 어깨에 뽕 달린 잠바 같은 걸 입고, 머리도 무스를 잔뜩 발라 넘겼다.

 

우리도 가슴 졸이며 순서를 기다렸다.

거의 1/3 정도가 ‘뺀지’를 먹었다. 떨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 차례가 되어서 지배인이 신분증을 요구했을 때

우리 중에 누군가가 “우리 형진(가명.21세)이 형 동생들이에요.”

 

 

당당하게 정문을 통과했다.

인맥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허접한 글 속에서도 반드시 교훈을 이야기하는 게 내 글의 특징 중 하나이다.ㅎㅎ)

 

 

여기도 선남선녀가 가득했다.

(오해 마시라. 내가 얘기하는 ‘선남선녀’는 일반적인 기준과는 다소 의미가 다르다.)

서울에 있는 늘씬하고 이쁜 여자들은 다 여기에 모인 것 같았다.

(나중에 이런 느낌은 고급 룸 살롱에서 다시금 느끼게 된다.ㅎㅎ)

 

처음으로 들어간 나이트클럽은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를 이런 파라다이스로 안내한 친구는 몇 번 와 본 애였다.

처음으로 들어간 나머지 둘은 굉장히 흥분되어 있었다.

 

기본을 시켰다.

그 당시 기본은 만원대였다. 아마도 15,000원 정도?

맥주 4병에 과일 하나 그런 식.

대학교 때는 절대로 기본 안 시켰다. 쪽팔리니까…

 

(부킹.

- 정말 그리운 단어다.

부킹의 세계를 떠난 지 어언 7-8년.

7-8년 동안은 돈이 없어서, 바빠서, 여자친구가 못 가게 해서, 이미 경쟁력을 상실해서 부킹의 세계를 명퇴할 수 밖에 없었다.)

 

부킹은 웨이터의 능력이 절대적이다.

능력이 떨어지면 무대뽀 정신이라도 있어서 많은 여자들의 손목을 잡고 데리고 와야 한다.

처음으로 웨이터의 손을 잡고 우리 좌석에 앉게 된 여자에게 우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추측컨대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좌석에 끌려온 여자를 포함해서 이 업소의 절반 정도는 고등학생이었다.)

 

처음으로 나간 스테이지에서의 어색한 춤.

왠지 딸리는 것 같은 외모.

자신감 상실.

거기서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동창.(서로 손가락질 하며 “너, 너.” 그러면서 도망 갔다..)

몇 번인가 한 부킹에서 전부 다 5분을 넘기지도 못 하고 여자들은 자리를 떴고, 부르스는 커녕 술만 상납했다.

 

몇 시간 만에 나이트를 나와서, 그래도 새로운 곳을 다녀온 설레임에 버스 타고 각자 집으로 갔다.

귀 속엔 쿵쾅 거리는 나이트 음악이 계속 들렸다.

그리고 결심했다.

‘빨리 대학교 들어가서 제대로 놀아야지.’

 

 

항상 얘기하듯이 소원은 이루어진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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