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상 3인조, 나이트 가다> - 2탄(강남역 ‘시에스타’ 편)
대학교 1학년 때 ‘시에스타’란 나이트클럽이 강남역 뉴욕제과 뒤에 오픈했다.
사장이 이경규(코미디언)라고 했다.
‘오픈빨’이라고 나이트 오픈 초기에는 물이 굉장히 좋다.
물론 다 아시겠지만 ‘아직’ 순진한 분들을 위해 이 ‘오픈빨’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하고자 한다.
A급 웨이터들은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단골고객이 있다.
특히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대상은 20대 초반의 늘씬하고, 잘 놀고, 약간 골 빈(부디 비난하지 마시기를.), 약간 헤픈 여성들이다.
(골 빈 남자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부르지 않아도 찾아오는 나비들이다. 그래서 웨이터들이 그다지 신경 안 쓴다. 놀러 오라고 전화는 하지만 공짜로 뭘 주는 건 상대적으로 적다.)
보통은 초반엔 멋있는 스타일의 여자들이 많이 오고, 그 다음엔 그 여자들을 보러 멋있는 남자들이 꼬인다.
그 다음엔 B급들이 여자, 남자 순으로 오고 몇 달 가지 않아서 ‘물’은 평준화 된다.
그러면 잠시 영업을 중단하고 괜히 인테리어 공사를 핑계로 이름도 바꾸고 다시 오픈한다.
이런 상황의 반복이다.
나이트클럽 오픈 전부터 웨이터 조각에 들어가면서 A급 웨이터들에게는 스카우트 비용(무슨 명칭이 있는데 까먹었다.)으로 상당한 액수를 주고 업주측에서 데리고 온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보조 웨이터가 있는데 진짜 고객이 많은 웨이터들은 보조를 2명 이상 두기도 한다.
또 실력이 변변찮은 C급 웨이터를 자기 휘하에 흡수하기도 한다.
B급은 그럭저럭 버틴다.
이 A급 웨이터들의 1명 매상(수입)이 어지간한 B급 웨이터들 5명의 수입과 맞먹기도 한다.
나이트클럽에는 ‘지명’과 ‘순번’ 손님이 오는데 A급 웨이터들은 이 ‘지명’이 ‘순번’의 몇 배가 되어서 수입이 많아진다.
교훈 : 어느 직업세계에서나 A급, B급, C급이 존재한다.
A급은 금전적으로든 뭐든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B급은 먹고 살 수는 있다.
C급은 비참하다.
보통 노력으로는 A급이 될 수 없다. 이 A급도 과거에는 C급이나 보조일 때가 있었다.
모델링(따라 하기), 성실함, 투자, 외모(특수시장을 감안한) 등 여러 가지 노력의 결과가 정상의 A급 웨이터가 되는 길이다.
조금 부연 설명하자면 ‘조용필’이라는 웨이터는 90년대 나이트에는 항상 있었다.
요즘은 ‘권상우’인 지도 모르겠다.
보통 그 시대 최고 스타들의 이름을 가진 웨이터는 업소마다 하나씩 다 있으니까…
하여간에 손님들이 나이트 입구에서 아시는 웨이터 있으세요, 라고 지배인이 물었을 때 조용필이요, 라고 하면 이 손님은 조용필의 지명 손님이 된다.
이 때 없는데요, 라고 하면 지배인이 꼬마신랑 불러, 하면 순번 손님이 된다.
어쨌든 순번보다 지명으로 온 손님들에게 웨이터들은 더 잘 한다.
(※ 팁 1 : 해당업소 웨이터 이름을 잘 모른다면 나이트 오는 길에 벽보나 스티커 등을 유심히 찾아본 후 웨이터 이름을 알아내서 마치 자주 오는 손님처럼 ‘권상우요’라고 한다.
그러면 이 때 나타나는 웨이터 권상우는 얼굴은 미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최소한 1번 이상은 자신이 서빙을 한 손님인 줄 알고 더 열심히 부킹을 시켜준다. 단골인 줄 알고 아니면 단골 잡으려고… 한 술 더 떠서 ‘권상우 오랜만이에요.’하면 이 웨이터 감동한다.
반드시 웨이터 지명을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한마디로 대우가 틀리다.)
다시 시에스타.
강남역 뉴욕제과 뒤(현재는 노래방?)에 새로 오픈을 해서 강남역 나이트 클럽 업계의 판도변화를 주도했다.
당시는 ‘월팝(월드 팝스)’이 강남역의 지존이었으나 시에스타 때문에 상당 기간동안 2인자의 설움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잠시 오딧세이라는 클럽이 생기면서 다시 설움을 겪기도 했다.
월팝 투, 빠샤 원,투를 거치면서 다시 1인자의 자리를 되찾고, 향후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한다.
3등으로는 ‘헌터스’가 있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대부분 개장하기 전에 줄 서서 들어가지 않으면 좋은 자리(스테이지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지 못 하거나, 못 들어 갔다.
(혹시 요즘은 룸으로 들어가서 양주 시키는 게 폼 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해 본다.)
이 당시 유행하던 노래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건 엠씨 해머의 ‘You can’t touch this.”였다.
그리고 버닐라 아이스(바닐라라고 하면 촌스럽다.)의 ‘Ice, ice, baby.’였다.
당시 최고의 히트 곡이었다.
이 노래만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비장의 춤을 끄집어 낸다.
노래에 맞는 자신만의 고유한 춤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지금도 엠씨 해머의 ‘You can’t touch this.”를 라디오 같은 데서 들으면 혼자 추억에 잠기곤 한다.
여기서 나는 가수 ‘박진영’을 본 적이 있다.
남자친구들 몇 명과 ‘군무’를 췄다.
어디서 따로 연습을 해 왔는지 같은 동작을 서너 명이 추는데, 솔직히 멋있었다.
(이 때만 해도 박진영은 아마 대학교 1학년이었던 같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고, 같이 온 남자애들 수준이 괜찮았다.
그리고 어지간한 DJ들과도 친분이 있어 신청곡도 주문하곤 했다.
하긴 어떤 노래에 맞춰 군무를 준비했는데 그 노래가 안 나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오’양 비디오로 유명한 함성욱도 이 시기 최고의 DJ였다.
나이트 죽순이들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받았는데, 당시 DJ 중 최고 미남으로 꼽혔다.
1990년도 여름쯤부터 슬슬 강남역을 뜨고 호텔 나이트로 진출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강남역은 맥주 기본, 호텔 나이트는 양주 기본이었다.
금액 차이도 한 4-5배 정도 나는 수준이었다.
보다 큰 목표를 위해 서서히 준비를 해 나가야만 했다.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만 온다.
<다음에 계속…>
(예고 : <궁상3인조, 나이트 가다> 3탄. 호텔 나이트 편.
‘사가’,’ 단코’ 등으로 이어지는 나이트 세계의 치열한 부킹전.
잔머리와 호박씨의 숨막히는 정면대결.
부킹 잘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대 스스로를 부킹하라.
33세 젊은 죽돌이의 부킹일기
부킹왕의 365일
32세, 32명 죽순이 꼬시기
네 안에 잠든 끼를 깨워라.
혼자 힘으로 부킹왕이 된 사람들의 21가지 원칙 등이 이어집니다.
기대하시라. 커밍 순.
아- 내가 써 놓고도 부담스럽다.
도대체 뭘 믿고 이런 걸 올리는지…
아직 아무 것도 안 써 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