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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 대한 자성(磁性)론]

 

 

오늘은 어쩌면, 님들께 부탁을 드리는 장이 되지 싶다. 오래도록 많은 글을 준비하면서도 뭔가 해결하지 않고서는 진행되지 않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견 그게 다행이기도 하다. 눈치채지 못한 채 지나쳤으면 어찌할 뻔했는가. 난 여전히 허공에다 대고 무익한 고함을 치는 꼴이 될 뻔하지 않았나.
그리고 또 아주 조심스럽기도 하다. 부탁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나 스스로 교만에 가득 찬 이야기일지도 모르는 까닭이다. 이전에 둘러 둘러 조심스럽게 표현하였지만, 너무 둘러 표현한 까닭에 다들 눈치채지 못한 듯한 걱정도 있다. 그래서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제시하려고 하는데, 그게 듣는 사람도 불편하겠지만, 사실 꺼내는 내게도 불편하다.


아무튼 지금까지 거론한 이야기는 대략 다음 정도가 되지 싶다. 비록 표현법이야 달라도 의미는 통한다.

(1) 부에 대한 야성론
(2) 부에 대한 사랑론 (이부 분은 아직 미완. 너무 깊은 주제라 한계를 절감하는 중)
그리고 이제 언급할 (3) 부에 대한 자성(磁性)론

 

 

[당신이 부에 대한 자성을 가져야 한다.]

세상에 돈은 흘러 다닌다. 내게 있었다가 또 다른 사람에게 가기도 한다. 돈은 언제나 내 곁에 흘러 다닌다. 문제는 내게 그 돈에 대한 자성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돈에 대한 자성이 강할수록 많은 돈이 내게 붙어 있게 된다.
당신은 어떤가. 돈에 대한 자성을 가졌는가. 나를 치고 지나는 돈이 얼마나 많은가. 그 돈 가운데 일부분만이라도 내게 붙어 있다면 될 텐데, 그 돈들이 나를 치며 지나치고 만 것이 문제다.

돈에 대한 자성, 다른 말로는 돈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다. 당신에게 돈에 대한 자성이 없다면, 돈은 당신을 부딪치더라도 당신에게 붙어있지를 못한 채 당신을 지나치고 만다. 설사 로또에 당첨되더라도 그 돈이 당신 것이 되지 못한다. 그 돈은 당신을 치고 지나쳐버린다. 그것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당신을 아주 황폐하게 만들고 지나쳐버린다.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은 먼저 돈에 대한 자성을 길러야 한다.

언젠가는 투자클럽도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하지만, 동일한 맥락이다. 돈에 대해 나만큼 알지 못하다면, 그 투자클럽을 내가 전횡하고 따로 유용하더라도 당신이 제재할 수 있겠는가. 알아차리기나 하겠는가.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고서야 온전해진다고 들었다. 투자클럽을 운영할 때도 그러하다. 특정 한 사람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는 그 참가자 모두가 일정 수준 이상의 부에 대한 식견을 갖추고 난 뒤라야 한다. (물론, 내가 그 돈을 전횡하고자 한다면, 나 이외의 대다수가 돈에 무지하기를 바라겠지만.)

 

 

[어떻게 자성을 가질 것인가]

(1) 먼저 당신이 철이 되어야 한다.

어쩌면 다른 말로 한다면, 배우려는 자세라고 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배우려는 자세. 한껏 자신을 낮추려는 자세.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려는 자세. 아직 당신에게 자성을 갖지는 못했지만, 언제든 자기력을 내뿜는 사람이 곁에 온다면, 즉각 반응할 수 있는 그 자세.
더 상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보강하려고 한다. 우선은 그 하나만.

 

(2) 자성을 가진 사람 곁에 되도록 가까이 가는 것이다.

주위에 성공자를 가까이 둘 수만 있다면 그들의 곁에 다가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전에 모시고 있는 사장님이 있다. 전형적인 자수성가한 분인데, 아주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많은 직원들이 그분을 대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린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그분이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전 직원이 마음이 한껏 풀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내게는, 그 분이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하루 손해보는 느낌이 들었다. 이 직장을 다니면서 가장 큰 수익은 저 성공자의 말과 행동을 보고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가 출근하지 않는다니? 손해 아닌가. 실제로 그분의 말씀 하나 하나가 내게는 너무 달콤해서, 다이어리에 일일이 기억을 더듬어 가며 적어두기도 했다.

그런 나를 두고, 주위 사람들은 새디스트와 매조키스트가 잘도 만났네, 라고 빈정대곤 했지만, 아무튼 내게 그분은 아주 강한 자기력을 뿜어내는 사람이었다. 난 그분의 자기력을 받아들이며 더욱 큰 자기력을 갖게 된 것은 분명하다.

 

(3) 자성을 가진 사람이 쓴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성공자를 만날 수 없다면, 그런 사람들이 쓴 책을 늘 곁에 두는 것이 한 방법이다.
아마 대개의 성공학서적들이 대개가 다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당신이 그 글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까닭일 수도 있다. 지나치게 요약정리하려는 습성이 반영된 까닭일 수 있다.
이해하지 못한 채 요약하자니, 읽으면서 놓치는 부분은 영영 알아차리지 못하고, 아는 부분만 걸러진다. 아는 부분이 늘 같은 까닭이다.

하지만 우선은 먼저 당신은 철이 되어야 한다. 철이 되지 않는다면 자성을 가진 사람을 만난들, 책을 읽는들 유익할 게 없다.

 

 


[사람들은 오해한다- 다양한 차원으로]

처음 글을 올릴 때 반응이나, 이제 와서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의 반응이나 비슷한 게 하나 있다.

"그래, 다 좋은 소리인데, 그렇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말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줘."

실제로, 아쉬웠던 것도, 얼마를 들어 얼마를 벌었다는 식의 글에 대해 더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에는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없다. 내가 이런 글을 쓸 자격이 되는가에 대한 증명으로 삼을 뿐이지, 정작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런 류에 집중한다.

그런데 구체적인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나 또한 매번 동일한 사례를 경험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 이야기를 해준다는 말인가. 해 줄 수는 있다.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사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브로커들을 찾아가면 아주 상세하게 잘 알려준다. 그들에게는 아주 명쾌한 정보도 있고 아주 명쾌한 테크닉도 있다. 그들을 만나면 어서 빨리 하지 않으면 놓칠 것 같은 기회도 부지기수로 많다. 구체적인 것을 원한다면 나를 찾을 게 아니라 브로커를 찾는 게 빠르다. 하지만, 브로커들은 당신을 걱정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만 집중한다는 사실을.

 


[오해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 - 지금껏 잘못된 교육을 받았다?]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 것.
그것은 당신이 나와 같은 관점을 가지기 바란다. 내가 세상을 잘 알고 있다는 뜻도 아니고, 바람직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뜻도 아니다. 단지, 재정면에서 만큼은 (또 내가 가진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기 전에는) 나와 같은 시각을 갖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내가 발견한 기회를 당신이 그대로 본다면 좋겠다. 내 눈에 드러난 위험한 요소를 당신이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내가 가지 않는 길에 당신이 나서지 않기를, 내가 가는 길에 당신 역시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단 한 번도 "꿈을 크게 가져라" 는 말을 들어보지 못하고 살아온 까닭이다. 꿈을 갖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세대로부터 교육을 받아왔고 그들에게 길들여진 까닭이다.
삶에 대한 반듯한 자세가 인격적으로 유익한 것이지 그 자체가 바로 내게 돈을 끌어들이는 힘이 된다는 것 역시 누구에게 들은바 없다.
뭔가 남들이 알지 못하는 유착관계나 은밀한 거래가 돈을 번다고 들어왔던 까닭이다.


한 교사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고 몸에 전율이 흘렀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옮기면서 내내 전율이 흘렀다.
"꿈이 없는 교사가 꿈이 없는 학생을 만들어내고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당당함이 부족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더 이상 꿈꾸지 않는 교사가 학생들도 자신과 같은 부류로 만들어버린다는 말이다.
핑계를 대려는 것은 아니지만, 돌이켜 보면 내게도 그러했다. 아주 불쾌한 기억뿐만 아니라,
한참동안 세상에 대해 오판하게 만들었던 소위 개똥철학에 얼마나 오래도록 매달려 있었던가. 기억나는 부분이 상당할진대, 기억조차 나지 않고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 침잠해 들어간 부분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익숙하지 않은 것은 불편한 법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어쩐지 잘못된 듯한 법이다.
재정 교육이라 하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에 대한 테크닉을 공부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익숙한 것이다. 재정교육에 진지하게 부에 대한 갈망을 가져라는 말은 아주 낯선 이야기이다.

 

 

[오해의 실례 하나]

그래서 일까, 내 글을 보면서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또 오해한다. 내 글을 나름대로 판단하고 요약 정리하는 것이, "뼈를 깎는 절약을 실천하고 --> 종자돈을 만들고 --> 투자하라" 이렇게 정리가 되는가?
그런 정리를 보면서 난 한참동안 절망한다. 그들은 이미 나 이전의 사람들이 주입한 논리에 나를 꿰어 맞추려는 것이다. 정말, 묻고 싶다. 그런 논리를 만든 사람은 돈을 벌었는지? 그 논리를 만든 사람이 그 책을 통해, 또는 강연을 통해 돈을 번 거 말고, 그 이전에 돈을 벌었는지? (물론 이런 말을 하기에 나 역시 초라하고 부끄럽다. 고작, 얼마를 가졌다고.)

물론 내가 썼던 글 속에 그런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틀렸다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또 놓치는 것이 있다. 내 글을 좋아해 주어 고맙기는 하지만, 그는 또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를 놓치고 있다.

말주변이 없고 필력이 딸리는 탓에 한 마디로 요약해서 정리하는 법을 모른다. 하지만, 지금에서 보니 그런 요약정리에 익숙한 것 역시 꼭 좋은 것은 아니지 싶다.

실례로 한 가지만 말하고 싶다.
물론, 절약을 실천하여 종자돈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비슷한 듯 하지만 아주 다르다. 이 차이가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내 이야기를 여전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내가 글을 잘못 쓰고 있음을 용서해주기를 바란다.)

절약을 하지 않는 사람이 부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투자할 종자돈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절약을 하지 않는 사람이 부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속에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절약을 실천하지 않을 것인가. 부자가 되기를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이 공부하지 않을 것인가.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시간을 낭비할 것인가.
절약을 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 속에 처음부터 부에 대한 소원함이 없기에, 그 사람은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종자돈이 만들어지고 아니고는 그 다음 문제이다. 절약하다가 사고나 실수로 그 종자돈을 잃어버렸을 때 그는 절망할 것인가. 종자돈만이 목적이었다면, 그는 분명 절망할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여전히 인생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야성을 지니고 있다면, 그 종자돈의 유무와는 무관하게 돈을 벌 것이다.
그 차이는 아주 크다. 아주 비슷한 듯 하지만, 그 내용상 차이는 아주 크다.

허튼 구호는 무익하다. 무엇을 해라. 무엇을 해라. 무엇을 해라.
그 말이 허튼 구호에 머무른다면 아무 것도 안 된다.

나는 누누이 이야기한다. 부에 대한 이중성을 깨트리고(적어도 이 카페를 찾아오는 님들은 이 부분은 이미 된 듯 하다.), 진지하게 부를 갈망해라고. 이것이 최초의 걸음이다. 진지하게 부를 갈망할 것. 절약이 문제가 아니다. "그래, 주식은 하지말고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라 이거 아냐?", 이런 식으로 지나치게 단순화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자산이라는 것이 동산 아니면 부동산인데, 어떻게 그렇게 간단하게 요약하고 마는가? 부동산은 어디 한 종류만 있다던가. 부동산 투자법은 어디 하나 뿐이던가.

 

 

[님들에게 드리는 제안 또는 부탁]

누구든 자신에 대해서는 과대평가하는 면이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나 역시 그런 오류에 빠지지 않을까 아주 자주 돌아보곤 한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마음을 아주 낮추고 나를 대하지 않는다면 내게서 얻을 것은 없다. (그래서 책에서도 앞 단원에, 피터 린치와 워렌 버펫에 대해서 언급했다. 내가 스스로 내 말을 귀담아 들어달라고 말할 수 없었던 까닭에 그렇게 둘러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또, 바로 이점이 내가 가까운 사람에게 재정과 관련된 말을 꺼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까운 사람들은 내 옛 모습을 아는 까닭에 아주 높은 마음의 벽을 쌓아두고서 나를 대한다. 약점 많고 흠 많은 나에게서 무슨 유익한 말이 나올까 아주 쉽게 판단해 버린다.
그렇게 판단을 내리고 나면, 내게서 얻을 것이 없다. 내가 아무리 부어주고 싶어도, 그가 만들어 놓은 벽에 부딪쳐 모두 밖으로 쏟아지고 만다.
책을 썼다는 사실도, 부모 형제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친척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뒤늦게-어제서야- 알린 사람 몇 있다.) 내 글이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유익할 수 있겠지만, 나를 아는 사람에게는 전혀 영향력을 미치지 못할 것을 아는 까닭이다.

한계다. 한계를 절감한다. 내 속에 가득한 것을 꺼집어내는 법에 서투르다. 어쩌면 내 속에도 아주 명확하게 정리가 되지 않은 까닭은 아닐까 하고 의심해 본다.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으면서 그걸 꺼집어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것이 또 기만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 질문해 본다.

어쩌면, 아주 쉽고 간단하게 요약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쓰는 글이나 하는 말이 매번 비슷하게만 들리겠다.
왜?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 부분은 그냥 흘려버리기 때문이다. 아는 부분만 들리기 때문이다.

"그래, 결국 공부하라는 말이냐."
"그래, 결국 절약하라는 말이냐."

그렇다. 별반 새로울 것 없다. 그래서 글쓰기가 부쩍 힘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제안하고 싶다. (일견, 부탁이기도 하다.)
마음을 한껏 낮추고 나를 받아들여 줄 것. 그래서 나의 모든 것을 마치 스폰지처럼 쫘악~ 빨아들여 줄 것. 지나치게 요약하지 말고.
당신은 내가 갖지 못한 아주 특별하고 대단한 재능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내가 쓴 문장 하나 하나 흘려 듣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문장 하나를 써놓고 이렇게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까, 저렇게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까 고심하면서 꼭 집어내지 못해 매번 안타까워하는데, 그걸 아주 간단하게 표현하게 되면 아마 그 사이에 중요한 것이 생략되어 버릴 것이다. 말이란 아주 미묘해서 요약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행간의 의미도 요약하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비록 비슷한 말처럼 여겨질지라도, 계속 접하면서 내게 조금씩 조금씩 물들어 가기를.
물론, 내가 인생을 잘 살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나 역시 고백하건데, 여전히 길찾기를 하고 있는 길 잃은 양에 불과하다. 하지만, 적어도 재정면 만큼은 아직까지는 나를 의지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의 모든 가치기준을 무시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당신이 마음을 여는 만큼, 같은 말도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법이다.

그렇게 당신이 내게 붙어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석에 붙어있는 바늘처럼) 내게 있는 자성을 그대로 띄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게서 완전히 떨어져나간다 하더라도 독자적으로 자력을 내뿜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한들, 내게 자성이 약해질까? 아니다. 함께 자성을 띄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난 더욱 자성을 보존하기에 유익하다.

 

하기는,
나를 쉽게 판단하는 것은 어쩌면, 당신 역시 자성을 지닌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쉽게 붙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와 아귀가 맞아 더욱 강하게 붙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나를 밀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는 내가 가진 그 기운을 전할 수 없다. 당신이 나를 불편해하듯, 나 역시 당신을 불편해 한다. 우리 둘 중 어느 누군가 자신의 자성을 버려야 한다.

 

오늘의 글은 상당히 불쾌할 수 있을 듯 하여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님들의 관대한 마음에 의지해 본다.

 

죠수아
건강과 웃음/ 순수와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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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에게 띄우는 가을날 밤의 연서]

 


아비가 된 듯 합니다. 세상에 내가 만든 생명이 있다면 아마 꼭 이런 심정이지 싶습니다.
자랑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를 쑥스러움에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항상 다음 수순에 대한 꿈을 꾸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제 앞에는 제가 미처 짐작도 하지 못한 시나리오가 놓여 있었습니다.
1998년은 제게 절망의 해였습니다. 그 시절, 전 제 인생에 아무리 기가 막힌 인생역전 시나리오를 구상한다 하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제가 2001년에는 어느 듯 희망의 해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알았습니다. 이것은 내 인생이 아니구나. 내 인생이 아니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내 의지가 아니었구나. 이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구나.
아주 큰 신세를 진 인생이구나. 그렇게, 빚진 인생이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얼마든지 세상을 천덕꾸러기로 살 수 있을 텐데, 왜 내게 이런 회복을.

그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보니 정확하게 작년 이맘때로군요. 분주한 일상에 묻혀 지내다가, 문득 멈추어 서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 분주했고 너무 어수선했던 탓인지, 멈추고 가만히 이것저것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뜬금 없는 감상이었습니다.

많은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점심 식사 무렵 들었던 생각인데, 저녁에는 사직서를 쓰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날 밤으로 제 애마를 끌고 고향으로 내려와 버렸습니다.

내려오면서 내내 제 속에 맴돌았던 말은,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였습니다.

한 달은 주어진 평화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하루 4시간 자는 게 소원이 되었던 일상에서 벗어나 하루 14시간을 잠에 취해 지내기도 했습니다. TV가 없던 초라한 지하 원룸에서 벗어나 매일같이 케이블로 지나간 드라마를 모조리 섭렵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일신상의 걱정거리를 해결하는데는 큰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누리기에는 부족하지만, 적어도 제 인생에 더 이상 돈벌이에 대한 중압감은 없습니다. 그런 처지에 아주 마음 넉넉하게 주어진 평화를 누렸습니다.

영적인 신령함이나 열심히 없는 제가 새벽을 깨우기 시작한 것은 올해 봄이 되어서입니다. 그 새벽에 깨어나 구했던 것은 비젼이었습니다.

"이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

몇 달을 그 하나의 주제로 구하고 있었지만, 응답 없는 질문에 지쳐버렸을 즈음입니다.

새벽녘에 고속도로를 운행하다 사고를 당했습니다. (저는 당했다고 하는데, 보험사 측은 제가 일으켰다고 하더군요.)
일 주일간을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지난 시간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그 글을 인터넷에 띄우게 되었죠. 내심 왜소한 심성을 드러내는 것 같아 불안하며 조심하는 마음이 아주 많았습니다. 어떤 반응을 얻을까 얼마나 두렵던지요.

제 글을 좋아해 주는 분들을 보며 자신감을 얻기도 했고, 또 제 글에 불편해 하시는 분들을 통해 속 상해 하기도 했습니다. 넘을 수 없는 깊은 오해는 마치 벽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몇 몇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게 어떤 시나리오가 기다리고 있을까 전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설악산행을 계획했던 것은, 조선일보를 보며 설악산 단풍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서였습니다.
함께 동행자를 모을 때도 제게는 어떤 시나리오가 기다리고 있는지 짐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설악산을 내려오면서, 산행을 준비하느라 서로 소식을 전하는 창구로 만들었던 카페를 존속시키자고 할 때만 해도, 그럴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카페를 처음 열었을 때만해도, 전 비젼을 그리지 못했습니다. 아무런 꿈을 꾸지 못했습니다. 그냥, 그 날 산행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좋았고 함께 나누었던 경험이 소중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문득, 3년 전 제 꿈이 떠올랐습니다.
늦은 시간 운전을 할 때면, 잠을 깨우기 위해 저 자신에게 외쳤던 그 고함소리가 떠올랐습니다.

 


[성공하겠다면서, 왜 공부하지 않습니까?]-----------------------------

성공하고 싶습니까?
예, 성공하고 싶습니다.
성공하고 싶습니까?
예, 성공하고 싶습니다.
하시는 일은 잘 됩니까? 남들 보다 승진은 빠릅니까? 돈은 모이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다시 묻겠습니다. 정말 성공하고 싶습니까?
예, 성공하고 싶습니다.
(목소리는 고함으로 변했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거짓말하지 마세요!
성공하고 싶다면서 왜 공부하지 않습니까?
성공하고 싶다면서 왜 책을 읽지 않습니까?
성공하고 싶다면서, 왜 시간을 낭비하고 돈을 허비하고 있습니까?
거짓말하지 마세요.
당신은 처음부터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아닙니까?
처음부터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공부하지 않는 겁니다.
당신은 처음부터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책을 읽지 않는 겁니다.
당신은 처음부터, 당신은 처음부터, 처음부터,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돈을 허비하는 겁니다.
아닙니까?
아닙니까?
거짓말하지 마세요.
거짓말쟁이가 성공할 수 있습니까?
사기꾼이 리더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 거짓말하지 맙시다.

 

저 자신에게 외쳤던 고함이었습니다. 악을 쓰듯이 목청껏 외쳤기 때문에 이쯤 되면 한참을 쉬어야 했습니다.

 


[저는 못 볼 것을 보았습니다.]-----------------------------------


예, 어쩌면 저는 성공에 대한 갈망이 아주 작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제 멈출 수 없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서 못 볼 것을 보았습니다.
절대 보아서는 안 될 장면을 보고 말았습니다.
저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언젠가 제가 성공자가 될 텐데, 음악 소리에 맞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자유를 누리며 춤을 추는 모습이 보입니다.
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세상에서 지쳐서 실망하고 저에게 왔을 사람들이, 저의 말에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며 다시금 기운을 차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렇게 파이팅을 외치며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전의 제 인생에 결코 허락되지 않은 장면입니다.
그렇게, 저는 제 인생에서 못 볼 것을 보았습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멈출 수 없습니다.
멈출 수 없습니다.


3년 전, 잠을 깨우기 위해 밤늦은 시각 운전할 때면 외치곤 했던 내용입니다. 매번 조금씩 바뀌기는 했어도, 제 귀에는 그 외침이 아직도 울리고 있습니다.
카페을 열 때만 해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그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오늘 밤,
늦은 시각에 다시 그 꿈에 취해 봅니다.
가능할까요. 저는 보이는데. 저의 미래가 보이는데. 님들에게는 어떻습니까? 보이시나요?

몽상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역사는 결국 몽상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안 되면 어떻습니까. 안 된들 잃을 것도 없는데.
가다 멈추면 어떻습니까. 간 곳만큼 남을 텐데.

전 보입니다. 제 꿈에 동참해주실 분들이 보입니다. 행여 이 순간에도 저를 오해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미세한 파도에 끄떡하지 않고 대양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배가 되고 싶습니다.

 


이게 오늘밤, 제 서툰 사랑고백입니다.

누구나, 비록 가까운 사람에 대한 사랑법에는 서툴러도, 그 속에 불특정 다수에 대한 사랑은 품고 있을 것임에.

 

죠수아.
건강과 웃음/ 순수와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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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잡기, 그 위험에 대한 허접한 생각들]

 


어쩐지 먼저 글<오직 한번, 단 한 번만 부자가 되어라>에서, 본 줄기 보다는 지엽이 강조된 듯 하다. 조금은 엉뚱하게도 길목잡기를 노려라~는 메시지가 전달된 듯 해서 부랴부랴 글을 정리하게 된다.
늘 한계를 절감한다. 같은 하늘을 보는데도 보는 사람마다 느끼는 감상이 다른 것을. 그런데 문제는 말이 길어질수록 오해의 여지가 더 늘어난다는 것은 아닐까? 그것 참, 난제다.

그래서 옛 현자들은 말을 아끼라고 그토록 충고를 해대곤 했나 보다.

 


[1].[길목잡기 성공 사례 하나]----------------------------------

올림픽도로를 탈 때마다, 한강 남쪽으로 길게 군집한 거대한 현대아파트를 보면 늘 길목잡기의 진수를 떠올린다.
박정희 대통령이 댐을 건설하기 위해 많은 건축업자를 불러들였다고 한다. (그 댐이 무엇인지?) 한강이 자주 범람하니 한강 상류에 큰 댐을 건설해서 수위를 조절할 계획을 보여주고 입찰하라는 내용이 골자였다나.
많은 건설(토목) 업자들이 나름대로의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입찰 단가를 조정하고 있을 때, 정주영 회장은 있는 돈 없는 돈 모조리 끌어다가 강남 벌판을 매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댐은 건설되었고, 이후 한강의 범람은 사라지게 되고, 효용가치가 높아진 강남 땅에 투자가 시작되었다. 먼저 그 땅을 선점하고 있던 정주영 회장은 엄청난 부를 얻게 되었다고. 그리고 현대 건설이 초기에 가졌던 엄청난 시행착오 속에 대외적인 신뢰를 쌓기까지의 손실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도 그때 마련한 재력이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길목잡기에 성공하면 엄청난 부를 잡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성공 신화를 흉내내기에는 어려운 면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2].[더 흔한 길목잡기의 실패 사례]--------------------------


[특허 상품에 투자]

며칠 전 치과를 다녀왔다. 잘 아는 교회 집사님이고 해서 자주 찾게 되는 곳이다. 몇 해 전 특허 난 신상품 개발에 3억을 투자했다고 하는데.

투자의 계명 중에 하나. "절대 특허 상품에 투자하지 마라."
어쩌면 아주 상식일 수 있는 그 계명을 몰랐던 까닭에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특허 상품에 투자할 수 없는 것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시장인 까닭이다.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이다. 이미 엄청난 경쟁 속에 휘말려 있더라도 시장이 완성된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질지 어떨지도 모를 곳으로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근본적으로 사양산업은 없다는 말도 같은 맥락으로 통한다. 같은 곳에서 같은 장사를 하는데도 어떤 사람은 10년만에 재벌 기업을 만들고, 어떤 사람은 평생 그 장사 그대로 하고있고, 또 어떤 사람은 망해서 나간다. 근본적으로 사양산업은 없다. 사업 자체가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사업주 당사자의 운영의 묘미일 테다. 그러니 이미 시장이 만들어 진 곳에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것이 좋다. 독점의 매력에 혹해서는 안 된다.
섣부르게 길목잡기에 나섰다가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도 보지 못하고 고사될 수도 있다.

 

[비데 산업]

실제로 대구의 한 업자가 IMF 직전에 외국을 다녀본 경험을 바탕으로 이 나라에 비데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는 엄청난 돈을 들여서 비데를 홍보하고 다녔지만, 일 처리 후에 물로 아랫부분을 씻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던 사람들에게 도무지 먹혀들지 않았다.
지금은 비데, 돈이 없어서 설치하지 않는 것이지 한번 경험해 본 사람들은 그 청결함과 그 상쾌함에 누구라도 호응한다. 그 사업자가 2,3년만 늦게 시작했던들. 아니면 그가 조금 더 많은 자금으로 조금 더 버틸 수 있었던들. 어쩌면 성공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너무 앞서 나갔던 것이다.

미래를 제대로 예측했다 한들, 시점을 맞추어 길목잡기를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입시 학원]

이전의 글에서 보였듯이, 1990년 당시 시사저널에서 본 기사 중에, 장차 10년 뒤에는 대학이 문을 닫게 된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것을 보고 대뜸 들었던 생각은, 앞으로 입시 학원이 줄줄이 문을 닫겠군, 였다. 대학 가기가 엄청 쉬워지겠네. 그런데 누가 학원을 나갈까. 그렇게 아주 단순한 구도를 머릿속에 그렸던 것이다. 그리고 입시학원을 하겠다는 마음을 아예 갖지 않았고, 그 후 7,8년 동안 그쪽 산업을 돌아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어떠한가? 사교육 시장은 어쩌면 유일하게 신규 고용을 창출하는 시장이 되어 있다. 연 30조원대의 대형 시장(2003.10.17. 동아일보)으로 성장해 있다. 우리나라 국방예산보다 더 클 뿐만 아니라, 교육 예산의 배수에 가깝다. ((맞나? 맞는지 틀렸는지, 엉터리를 쓰는지 바른 말을 하는지. 그대는 속고있는가?)) 어떻게 강남 아파트 값을 잡겠다는 정책에 학원가 세무사찰이 이루어지는가. 당신은 그 함수관계는 명쾌하게 보이는가.

시장이 변화된 것이다.
내가 입시를 치르던 당시에만 하더라도 사교육은 재수생을 대상으로 했던 것이 거의 전부였다. 그게 아니면 불법 비밀 과외였다. 하지만 지금은? 고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또 초등학생으로 그 대상이 확대되었다.

심지어 유치원시장도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유치원생들도 오전에 유치원 다녀오면 오후에는 영어유치원을 또 나가는 형편이다. 초등학생들도, 심한 아이는 5,6개 학원을 동시에 다닌다. 대치동 한 곳만 영업하는 학원이 450곳이나 된다. (철새님 맞습니까? 오래되어 기억이 잘.... 가물가물 합니다.) 세상에, 450곳이라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창원과 마산 지역 통틀어 250개의 학원이 있을 뿐인데. ((역시 맞는지 모르겠다. 기억이라는 것은 늘 불완전한 거라. 근거가 불확실한 것은 여간 불안한 게 아님))

단순하게 미래에 대학이 학생 수급에 곤란을 겪을 것이라는 기사로 아주 짧게 판단한 결과는, 뭘 잃은 것은 없지만, 적어도 내 시야를 아주 제한해 버렸다. 제한한 만큼 기회를 놓친다.


길목잡기의 위험 중 하나를 보인 것이다. 미래를 간단하게 진단하고 그 길목을 잡겠다? 만만치 않은 것이다.

 


[온라인 서점]

인터넷 시대가 오면서 아마존 사이트에 대한 신화가 회자되기 시작했다. 온라인 서점인데 엄청나게 컸대더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었다. 그래서 당시에 몇몇 출판사 업자들을 만나봤지.
"우리도 온라인 서점을 한번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요?"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 몇 가지.

1. 미국은 땅이 워낙 넓어서 책 하나 사러 가기가 만만치 않은 나라이다. 그것은 책뿐만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작아도 동네마다 책방 없는 곳이 없다.

2. 미국은 택배 시스템이 아주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우체국이 제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3. 미국인들에게 통신판매는 아주 익숙하지만, 한국인에게는? 직접 현품을 보지 않고 산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 보지 않고서 뭘 믿고 사겠는가. 결재는?

4. 한국의 유통 시스템 속에서 대형 서점의 입김을 피해서 온라인 서점에 저가로 납품할 회사가 없을 것이다.

등등등.

그 방면에 몇 십 년 간 종사한 사람들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아예 마음을 접고 말았지. 하지만, 그 후 2년도 채 되지 않아 예스24, 알라딘 등이 뜨기 시작했다. 지금 예스24는 매출액 기준이 교보문고보다 더 커졌다.
왜 그 때 시작하지 않았던가. 온라인서점에서 책을 주문할 때마다 드는 회한이다. 어쩌면 나에게는 의지가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그때 결단을 내리지 못했고, 그것은 미래를 잘못 예측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1. 그 후 짧은 시간에 택배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 통신 판매 산업 역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3. 집집마다 인터넷이 깔렸다. 세상에 이렇게 될 줄이야 누가 짐작이나 했는가.

미래를 전망한다는 것은 참으로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해분야의 종사자에게도 그럴진대.

 

[3].[미래 전망에 대한 다른 생각들]---------------------------------------


미래전망에 대해 기가 막혀했던 것은,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P.F 드러커의 저서(책 이름이 기억 안남)를 통한 내용들이었다. 그 책에 참으로 많은 예측이 있었는데, 읽으면서 과연 이대로 될까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나름 기억해 두었다가 이 책대로 이루어지는가 보자, 하면서 떠올렸던 것이 소련의 붕괴에 대한 예측이었다.

당시 소비에트연방은 고르바쵸프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발트 3국(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을 필두로 활발한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이것은 장차에 소련 붕괴의 시발점이 될 거라는 예측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소련이 붕괴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 그 엄청나고 거대한 나라가 무너진다? 세상에나. 그 점들 말고도 참 많았는데, 그 책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꼭 하나 기억하고 있다가 검증해봐야지 하고 생각했던 게 그것 뿐이라 다른 점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고, 미래 전망이라는 것이 자료만 충분하다면 그리고 충분한 혜안을 갖추고 있다면 불가능하기만 한 것은 아니구나 여길만 하다.


그리고 비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 다음은 <The Perfect Business>에서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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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에 미국의 한 언론사가 74명의 저명한 전문가들에게 1990년을 예측해 보라고 한 일이 있다. 여기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대기업 회장이거나 상원의원이거나 대통령 자문위원회 등 권위 있는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예측 중에 정확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0. 소득세 신설
0. 냉난방 조절이 되는 빌딩과 집
0. 여성의 투표권 획득
0. 관광과 은퇴 생활을 위한 땅이 된 플로리다.
0. 도시 근교의 확산

이 정도면 괜찮은 실력이다. 하지만 틀린 것도 있다.

0. 기구(氣球)를 이용한 하늘 여행 (아무도 자동차의 엄청난 영향력이나 비행기의 발명을 예상하지 못했다.)
0. 기차보다 빠른 여행 수단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0. 우편물은 여전히 합승마차가 배달하거나 기송관(氣送管, 서류 등을 바람의 힘으로 보내는 관)으로 보내질 것이다.
0. 법이 단순해져서 법률가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어쩜 그리 낙관적일 수가)
0. 종교가 알코올 중독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다.
0. 범죄자들이 후손을 기를 수 없으므로 범죄가 최소화될 것이다.
0. 실업이 사라질 것이다.
0. 성격이 맞지 않는 부부들은 헤어질 것이므로 결혼이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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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에게는 1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는 예측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10년 정도만 볼 수 있더라도 성공하지 않을까.
10년? 하, 그것은 만만한 일인가.


부동산 투자를 말려왔던 것도 물론 내심 곧 이어질 상황에 대한 예측의 결과이기도 하다. 노무현대통령의 재신임 문제가, 앞으로 그가 강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구나 하고 짐작한 것도 예측이기도 하다. 그는 재신임을 거론하자 곧이어 위헌으로 판결된 토지 공개념이라는 강수를 꺼냈다. 그제는 또 여론의 수렴과정 없이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를 기정사실화 해버렸다. 또, 향후의 노동계 문제는? 아마도 지금 시점에 가장 먼저 고개를 치켜드는 노동조합은 아주 강한 본보기 철퇴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당분간은 자중하면서 협상에 임하는 것이 유익할 듯 하다.
하지만 이렇게 소소한 것 몇이 보였다 하여 길목잡기에 나선다는 것은 위험 천만이다.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모든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기상학에서 말하는 나비효과처럼, 어떤 요소가 나중에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할지 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지금은 전혀 커 보이지 않는 아주 사소한 문제가 증폭에 증폭을 거듭해 다른 인자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큰 흐름을 일으킬지도 모를 일이다.

수 년 전, 누가 인터넷이 이렇게 생활 속에 밀접하게 영향을 미칠 거라고 예측했다는 말인가. 1995년 당시만 하더라도 컴퓨터 쪽으로는 첨단이라고 자부를 했던 누구도, 인터넷이 이토록 파급 효과가 커질 것이라 짐작하지 못했다.

인터넷을 과대 평가한 측도 그렇다. 신문이 사라질 거라며? 책이 사라질 거라며? 재택근무가 활발해 질 거라며? 다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나.

며칠 전에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다녀왔다. 그 점에서도 떠올려보길, 비디오가 개발되자 극장이 사라질 거라는 전망도 여지없이 깨어지지 않았나.

물론 맞는 전망도 본다. 처음 국내에 멀티플랙스가 도입되기 전에 기사를 통해 미국의 영화관이 그렇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멀티플랙스를 도입하는 길이 극장들의 적자를 해소할 대안이네 하는 사설을 본 적이 있다.
그때만 하더라도 멀티플랙스의 성공을 누가 장담할 수 있었을까. 극장 하나를 짓는데도 적지 않은 투자를 해야 하는데, 대여섯 개를 동시에? 나에게 돈이 있다면 그 위험에 스스로를 내몰아 배팅할 자신 있는가? 하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게 성공할까 내심 기대하며 지켜보기로 했다.
(이래서, 시간이 지나면 더욱 많은 기회가 더욱 쉽게 보일 거라 장담한다.)
아무튼 요즈음의 멀티플랙스를 볼 때면 선견지명을 가진 자들에게 감탄한다.

 

[4].[결론]-----------------------------------

미래에 대한 예측은 성공하면 좋지만 실패하면? 기업이야 10가지를 던져놓고 그 중에 하나만 건져도 다른 손실을 상쇄하고도 큰 수익을 만들어낸다지만. 개인은? 고작 한두 가지 밖에 집중할 수 없는 손 짧은 개인은? 딱 맞아 떨어져 엄청난 부를 잡을 수 있겠지만, 만일 잘못된 판단이라면?


10억 정도의 자산이라면 파생금융을 이용하여 리스크 0에 수렴하는 포트폴리오가 작성된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10억이란 상상도 못할 큰돈이라 깊게 공부할 생각을 못했다.) 큰 수익은 아니더라도 절대 잃지 않는 안전한 게임을 펼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면이야 한번쯤은 길목잡기를 시도해 봄직 하다. 그게 실패하고서도 다른 곳의 수익으로 메울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개인은 위험에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행여 이전 글 <오직, 단 한 번만 부자가 되라>는 글에서 제시된 인구통계를 이용한 예측에 근거해서 이런 저런 상상을 해 보는 것까지는 좋은데, 분명하지 않는 길로 섣부르게 자신을 내몰지 말기를.

그리고, 지금처럼 불확실할 때는 설사 기회를 놓치더라도 저 돈은 내 인연이 아니겠거니 체념하는 것이 좋다.

주식시장이 활황일 때는 절대로 주식시장을 돌아보지 않는다. 내게 있어서 그 원리는 부동산 시장에도 동일하다. 올해 초부터인가, 부동산에 대한 매력이 떨어졌다. 매력 없는데 자주 돌아보지 않게 된다.

명심할 것. 옛 장수들은 이겨놓고 싸운다고 했다. 당신이 지금 투자를 할 때는, 이미 진입 시점에 수익을 결정해야 한다. 투자한 뒤에 상승하면 이익이고, 하락하면 손실인 게임을 벌여서는 안 된다. 그 게임은 적어도 10억 이상의 자산을 보유했을 때 벌이는 게임이다. 설사 잘 못해서 1,2억쯤을 날리더라도 끄덕 없는 사람들이 벌이는 게임이다.

"승부는 싸워봐야 안다."라고 외치는 호기로운 장수는, 그 기개는 가상하지만,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무지몽매한 장수이다. 현실은 여전히 변한 것 없다. 당신에게는 당신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자존심과 꿈이 걸려 있다.
천천히 가더라도 안전한 길. 반드시 승리하는 길을 권한다.

 


서둘러 쓴 만큼 정리가 안 되어 드러내기가 쑥스럽다.
일견, 내몰리는 것 역시 그만큼 조심스럽다. 님들의 용납을.

 

 

 

죠수아.
건강과 웃음 / 순수와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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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

그때 갑자기 해가 가려졌다. 구름이 해를 가리는 것과는 아주 다른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나와 태양 사이에 있는 무엇인가 커다란 불투명체가 이 섬을 향하여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3킬로미터 정도의 높이로 떠 있었으며, 6,7분 동안이나 태양을 가렸다.
--조나단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중에서

 

 


오늘은 부정적으로 여겨질지도 모를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일견 용납을 바라며, 동시에 자료 수집이 부족한 까닭에 반론을 부탁드린다. 진지한 반론이 보다 많은 것을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신만 알고 감추어두지 말고 함께 나누어 보다 명확하게 진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내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말, 글 중에 ()를 이용한 부분에 답을 찾아주시는 분들께 아주 감사할 마음이다. 뽀뽀라도 해주고 싶을 정도로.

 

 

요술램프에서 정령이 말한다. "오직 하나의 소원만 들어주겠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원할 것인가?
(엉? 왜 세 가지 소원이 아니지?)

 


[가난은 굴레다.]-------------------------------------

지난 번 오프모임에서 어쩌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그때가 2차 모임이었던가. 모임의 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기침은 배로 늘어났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떻게 그 이야기가 흘러나왔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굴레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듯 하다.

굴레. 가난은 굴레다.
내 아버지가 가난했고, 내 할아버지가 가난했듯이, 내가 이대로 가난하게 산다면 내 아이도 가난하고 내 손자도 가난하게 산다고. 그래서 굴레라고. 돌고 도는 굴레라고. 누군가 깨트리지 않는다면 그 굴레는 영원히 계속 돌아갈 거라고.

가끔씩 그런 사람을 보게 되고, 또 나 자신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때 그 땅을 샀어야 했는데.
그때 그 학교를 들어갔어야 했는데.
그때 공부를 좀 더 할 것을.
그때 그 사람을 꼭 잡았어야 했는데.
그때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그때, 그때, 그때...

지난 시간을 두고 후회할 것은 아무리 회한이 심하다 한들 돌이킬 수 없다. 문제는 그 회한의 순간에도 놓치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이다. 난 내 아들이 또 손자가, 왜 할아버지 때는 그 사업을 하지 않았어요? 또는 왜 할아버지 때 그 땅을 사지 않았어요?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
(떽~~~! 못된 것!)

가난은 굴레다. 내 아버지가 가난했고, 내 할아버지가 가난하게 살았듯이, 내가 이대로 가난하게 산다면, 그것은 내 아이도 손자도 쭉~ 가난할 거라는 의미이다.

그 증거로 하나만 제시하고자 한다.


입시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곤 했고 또 한다. 강남에서도 잠깐 있었다. 흔히들 오해하는 것처럼 부유층 자녀들이 건방질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어느 계층 어느 부류에서도 빗나간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적어도 내가 접한 아이들 가운데, 부유층의 아이들일수록 더욱 예의 반듯하고 깍듯했다. 설사 고액을 지불하는(주 3일, 두 달에 500만원을 지불하는 녀석도) 가르치는 자에 대한 경외심을 확실하게 챙겼다.
그들을 보며 또 그들의 부모들과 상담하며 알게 된 것.

일반적으로 강남은 졸부촌이라고들 말한다. 그 말이 영 틀린 것이 아닌 것이 전통적인 부자동네는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이사를 갈 사람도 없고 그 동네로 이사를 들어올 사람도 없는 까닭에 집값이 별로 움직이지 않는다.((여기에 예를 들 수 있는 동네는 님들에 보충을 좀 해주셨으면... 특히 설 토박이분들. 잘못되었으면 역시.. ))

하지만 강남의 부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상당수가 꽤 많은 교육을 받은 엘리트라는 점 역시 무시 못한다. 땅을 들고 있다가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부자가 되어버린 사람 역시 없지 않겠지만, 그런 사람 찾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그들은 아마 진작에 강남 바닥에서 밀려났지 싶다.
강남의 엘리트들은 대개가 소위 명문대를 졸업하고, 또 유학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 유학을 다녀왔고, 사짜의 전문직이거나 장짜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높은 교육을 받은 것에 대한, 학벌에 대한 메리트를 충분히 누리는 사람들이고 또 그래서 학벌에 대해 집착한다.

그들에게는 옛날,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추구해야만 했던 시절의 찌들린 흔적이 없다. 그들은 사회에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기회를 충분히 활용했고(때로 편법도 있었겠지만)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특별히 자녀들의 교육에 아주 관심이 높다. 관심이 높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공부를 했던 사람들인지라 어떻게 공부를 해야하는지 나름대로의 노하우도 튼튼하다. (지방에 내려와서 그게 더 여실히 구분된다. 공부해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교육열이 높은 것인가?)
그들은 자신들이 걸었던 길, 가 보았던 길로 자녀들을 이끄는 것이다.

그들의 자녀들은 가진 자의 당당함과 함께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를 터득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부모를 보며 직접 배웠으리라 짐작한다.

그래서 추측해볼 수 있다.
이전의 세대(그래야 이 땅에 자본주의가 얼마나 되었나)에서는 자녀에게까지 부를 영속시킬 수 없었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제는 자녀들에게 부를 영속시키겠구나. 그들의 자녀들까지도 부유하게 살겠구나. 그들은 이미 부모들이 이룩한 언덕 위에서, 부모들을 보며 스스로 체득한 부의 원리를 발현시키며 더욱 빠른 걸음으로 더욱 큰 부자가 되어가겠구나.
그렇게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들에게 부는 영속한다. 지금 자신이 부자이듯이 자녀들도 부자로 살 것이고, 그들의 손자도 그 후대도 역시 부자로 살 것이다. 돈을 물려준 게 아니라, 엘리트의 자질을 물려준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사실 그들을 대하면서 섬뜩하게 여겼던 것은 바로 내 아이들이다. 내 아이들은?

스타트랙을 보면 라퓨타라는 행성이 있다. 처음 그 이야기는 죠나단 스위프트가 지은 걸리버의 여행기에 등장한다. 이후 일본 에니메이션에서도 그 이름을 많이 도용한다. 하록 선장이라든지에서도 라퓨타가 묘사된다는데 보지는 못했다.
가끔 카페 이름을 라퓨타라고 지은 곳도 본다. (아, 강남에서도 봤다.)

라퓨타. 천공의 섬. 하늘 위에 떠 있는 섬을 말한다. 그 라퓨타는 지상과 떨어져 있다. 지상에는 노동을 하는 평민들이 있고 그들이 바치는 조공으로 라퓨타는 하늘 위를 떠다니면서 문화생활을 향유하고 있다. 음악과 예술과 사교를 즐기면서 넉넉한 귀족 생활을 하는 동안에 땅 위에서는 그들의 사치를 감당할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뼈가 빠지게 일해야 한다.

타워팰리스를 보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그 라퓨타를 이 땅위에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기술력과 법적 제약만 없었으면, 그들은 그들의 부로 천공의 섬을 만들고도 남았을 사람들이다. 서울 하늘 위에 붕 떠 있는 또 하나의 도시를 만들고도 남았을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럴 의지도 있고 능력도 있다. 다만, 현대의 기술이 따라가지 못한 것이지.

어쩌면 난 부유층의 아이들을 보면서 심한 절망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아주 되바라지고 건방지고 모가 심한 인격의 장애아이기를 기대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음 대에서는 변화가 있을 테지, 하고 기대한 것인지도. 하지만 그들은 (비교란 불가능한 거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오히려 더 사랑스럽고, 더 자랑스럽고, 더 어여쁜 짓을 하는 아이들인 것을 어떡하나. 그들 속에는 이미 어릴 적부터 성공자의 코드를 이식한 채 아주 편하게 다루고 있었다. 내가 억지로 성공자의 코드에 나 자신이 접붙임을 하려고 애를 쓰는 반면 그들은 손쉽게 다루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사랑스러운 만큼 난 더 절망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더욱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남은 자는? 내 아이는? (세상에 아직 결혼도 못한 총각이 참 멀리도 걱정한다.)

가난이 굴레이듯, 이제 성공도 부도 영속하는 세상이 되어버리면 어떡하나. 영원히 깨트릴 수 없는 계급이 되어버리면 어떡하나. 스스로 자유인이라 생각하지만, 그 모든 게 착각이면 어떡하나.
나 자신의 무엇을 자유롭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자유인이라고? 이 나라가 싫다 한들 어디로 갈 수 있나? 이 직장이 싫은데 그만 둬버릴 수 있나? 밤에 잠이 오지 않아도 억지로 잠을 청해야 하는 처지에 자유인이라고?


어쩌면 당신이나 나나, 자신의 혈통의 이전과 이후를 통틀어 유일하게 기회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증거 하나를 보이려고 한다.

 

 

[지금이 마지막 남은 기회의 시간이다.]---------------

(내 속에는 외침이 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진저~!)


근래의 부동산 폭등은 몇 가지 특이할 만한 점이 있다. 3년이라는 장시간에 걸쳐 상승한 점과 불경기 속에서 상승한 점이다.
이전의 <부동산 전망에 대한 단상>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기는 했지만 사실 그 무엇보다도 더욱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한다.

이 점은 검증된 것이 아니며, 비전문가인 개인의 의견이며, 또 얼마든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정말 이 글을 읽는 독자들로부터 진지한 반론을 듣고 싶은 소망이다.
부족한 논리에 대해서는 공중의 비판을 듣고 싶다. 정말.

 

내 나이 33세. 대학에서는 90학번.
한 친구가 졸업하던 즈음에 나에게 한 말이다.

"우리는 저주받은 세대야."

대학 입시 경쟁률은 우리 때가 4.4:1로 역사상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그 이후로 계속 낮아져서 현재는 1.1:1 수준. 원하기만 하면 누구라도 대학을 갈 수 있는 시대이다. 대학 정원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학생 수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학생 수가 줄어든다며 장차에 대학들이 10년 뒤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논리는 90년 당시 <시사저널(이것을 찾아볼 수 있을라나요?)>에서 읽었다. 지금 그대로 이루어졌다. 지방의 허접한 대학은 문을 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 치열한 입시전쟁을 치르고 대학을 들어왔다. 그 시점을 전후로 학생운동이 사그러든 것도 비슷한 맥락이 있다. 많은 주변 이유도 많았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현실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깨달은 것이다. 졸업 이후에 직장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많은 학생들이 캠퍼스의 낭만이네 어쩌네를 찾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일찌감치 두꺼운 토플 책을 껴안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졸업할 즈음에는 역시 최고의 취업대란을 겪어야 했다. 겨우 취업이라도 하려 했는데, 이내 IMF사태를 맞아 대량 실직을 경험해야 했다.
그 친구의 말대로 저주받은 세대인지도 모른다. 여타의 세대보다 유독 힘든 시기를 보내온 것이 분명하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면.

근래의 부동산 경기는, 여타 모든 조건들 보다 어쩌면 이 이유일 것이다. 어느 언론에서도, 어느 부동산 전문가도 언급하지 않아 내심 참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왜 저들에게는 안 보이는 것인가, 아니면 보이지만 말하지 않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잘 못 본 것인가.
아마 굳이 답을 찾자면, 그들은 보아도 이야기하지 않는 쪽에 가까울 듯 하다. 그들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입에 담아 스스로 자신의 밥벌이가 될 시장을 축소시키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3년 전, 부동산이 치솟기 시작한 시점. 내 나이 30세. 그 나이의 전후 3세씩. 27세부터 33세까지.
우리나라에 인구비중에 연령대별 가장 인구가 많은 집단이, 드디어 가정을 일구고 집을 장만할 시기가 된 것이다. 이 집단에 나는 껴들지 못했지만, 절대 다수가 동참한 것이다.


----------그림 참조(ok2002님 제공)----------<엉? 그림 어케 넣는 거죠?? html 편집기에 키가 없네요? 님들은 어케 한 건가....그림 널라 했는데... 안 되네요...몰러 통과..>

 


IMF를 지나면서 멈추어있던 그들이, 엄청난 주택 수요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부동산 상승세는 그 바람이라고 본다. 그렇게 본다면, 기존의 부동산 전문가들이 말하는 10년 주기설을 뛰어넘는 3년에 걸친 장기 상승이 설명 가능해진다. 부가가치의 하락이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신규 수요층의 발생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들이 소형평수 아파트를 차지하면서 기존의 거주자들을 윗 단계로 밀어 올렸다.
엄청난 인구가 한칸씩을 올라섰을 뿐인데, 그 위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점점 내몰린 것이다. 그렇게 연쇄반응으로 올라가고 올라가고 해서 타워팰리스까지 치솟은 것이다. 세상에. 분양가 9억에 프리미엄이 9억이라니. (요즘은 어떤가 못 봤다. 역시 잘못된 데이터는 지적해주기를 바라며)


인구추이를 본다면 향후 다시 또 이런 경기가 찾아올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20세라고 표시된 세대. 오직 한 번만 있을 테지만, 그래서는 별로 영향력이 없지 싶다. 그야 말로 마지막 부동산 경기가 될 테고, 그렇다면 그 마지막에 목매달 사람은 없을 테니까. 누구라도 폭탄을 껴안고 있다가 터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모르지. 장차에도 여전히 부동산 불패 신화를 주창할지도.

인구추이에 대한 이해를 하고 보면 많은 것에 응용할 수 있다. 그 날(오프모임 2부)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실버 산업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지만 가장 피크를 이룰 때는 아마 내 나이대가 고령이 되는 25년 뒤부터가 되지 싶다.
이 나이대의 집단이 이동하는 시점이 바로 돈이 흐르는 길목이다. 지금은 집을 장만했고, 또 자녀들의 이유식이나 유아 놀이기구, 놀이방 등이 한참이겠다. 그리고 5년쯤 뒤에는? 그리고 10년쯤 뒤에는?
이 나이군이 40대가 되면? 또 50대가 되면? 무엇을 찾을까 생각해본다면 그게 바로 돈이 흐르는 길목을 잡는 것이다.

너무 일찍 가서 자리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
IMF 직전에 비데를 수입했던 업자가 쫄딱 망한 사례를 알고 있다. 지금은? 엄청난 호황산업이 바로 비데이다. 그는 너무 일찍 갔던 것이다. 시장이 조성되기 전에 너무 일찍 앞서 가는 것은 유리하지 못하다.

줄곧 마지막 기회라고 하는 것도 여기에 있다. 아마 우리 이후에는 더 이상 쉬운 게임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아주 쉬운 게임을 펼칠 수 있었지만 이후로는 절대 만만하지 않는 게임이 남아 있는 것이다. 부동산을 사두면 마냥 오르는 시점은 더 이상 도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전과 동일한 게임에서는 선 경험자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고, 이전을 참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게임 자체가 달라지면 이제는 어렵다. 조언을 구할 데도 없고, 있다한들 그도 잘 모르는 게임은 처음 들어가는 나와 다를 게 없다.

 

 

[오직, 단 한번만 부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까지 이야기했던가. kiki님이 말씀하신다.

"보이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하시더니,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조급해지잖아요."

개인이 경제적으로 더 이상 걱정 없이 살아가는 데에는 아주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 나이대 별로 틀리겠고, 자산을 어떻게 운용하나 틀리겠지만 주거지 외에 5억 정도만 있어도 큰 걱정은 없다.
그리고 개인이 부자가 되어가는 길에는 아주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딱 두 번을 굴렀을 뿐이다. (구른다는 표현 외에 적당한 게 생각나지 않네요.) 한 번으로는 아직 불안하다. 두 번을 구르고 나니까 더 이상 미래에 대해 걱정이 사라졌다.
그래서 이야기 해주기를.

"10년을 걸쳐 부자가 되겠다고 생각하세요. 8년 동안 공부하고, 2년 동안 부자가 되는 겁니다."

10년 뒤에 부자가 되었다면 그것을 실패했다고 할 것인가. 10년을 투자해서 부자가 되었다면 그 인생을 두고 왜 그토록 느리냐고 이야기 할 것인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10년에 걸칠 게 아니라 20년인들 어떠한가. 아직 세상살이가 짧은 젊은 인생들이야 그 기간이 장구한 듯 하지만, 사실 지나고 보면 그래도 남은 삶이 더 많을 것을.

투자는 절대 서둘러서 안 된다. 하지만 공부는 아주 서둘러야 한다. 그러면 그 시간이 더욱 단축될 것이다.

(여기서 잠시 광고.
선한 부자 스쿨은, 공부하는 데 시행착오를 줄이고 보다 효율을 기하기 위해 준비중입니다.)

장담하건데, 당신이 지금 스스로 잘못된 걸음으로 내몰지만 않더라도 10년 이내에 당신이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얼마나 잘못된 걸음이 많았던가. 그래서 돌아와야 하는 걸음, 멀리 둘러가야 하는 걸음이 얼마나 많았던가. 빌려주고 돌려 받지 못하는 돈만 따져도 얼마인가. 나 역시 단 한번의 잘못된 투자로 지난 3년을 잃어버리게 만들었고, 장차의 3년까지 미리 당겨와 저당잡혀야만 했다. 그렇게 6년의 세월을 허비해야만 했다. 그런 과오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당신은 10년? 그만큼 안 걸린다. 절대.

그리고 명심할 것.

당신의 혈통에서 당신 이전과 이후에 마지막 남은 기회를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다. 이것을 놓치면 어쩌면 당신 후대에는 그 굴레를 끊기가 더욱 힘들 것이다.
그러니 이제 절대 시행착오를 겪을 여지가 없다. 오직 한 번. 단 한 번만 부자가 되기를 소망해야 한다.
부자가 되었다가 망했다가 다시 그 경험을 딛고 일어서서 부자가 된다? 앞으로는 점점 힘들지 모른다. 그러니 절대, 서둘러서 안 된다. (노랫말도 있던 것 같던데) 한 번∼, 단 한 번∼만 부자가 되기를 소망해야 한다.

조상훈 sens4u@msn.com

건강과 웃음/ 순수와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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