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이 처음으로 보도된지도 상당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워낙에 사건자체가 많은 시민들을 자극하고 그들로 하여금 분노케 한지라 그 파장이 수그러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수사과정에서 성폭행 당한 여중생들을 향한 밀양 경찰관들의 비인권적인 폭언과 수사방식이 국민들을 더욱 분노케했다.

사건은 이렇다. 자매가 포함된 여중생 몇 명을 경남 밀양의 학교 폭력조직 '밀양연합' 소속 41명이 1년간 집단 성폭행했다. 밀양시 3개 고등학교의 선 후배 사이라고 하는 이들 가해자 12명은 올해 초에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14살짜리 여중생을 만나 둔기로 때린 뒤 여인숙에 데려가 집단 성폭행했다. 또 이 장면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해 그녀의 동생과 사촌언니도 유인해 성폭행하고 금품을 강탈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 가해자는 지난달 말 경남 창원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여중생 두명을 유인해 20여명이 집단 성폭행 하는 등 지금가지 수명의 여중생을 상대로 성폭행했다. 성폭행을 당한 여중생 사이에는 수면제를 과다복용해 자살을 기도한 이도 있었고, 지금까지 산부인과 치료를 받는 이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수사하는 경찰이 성폭행당한 여중생을 불러다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여경과 대화하고 싶다는 이들의 의견을 묵살했고, 한 경찰은 이들에게 "내 고향도 밀양인데 너희가 밀양물 다 흐려놨다"라고 발언하고, 수사과정에서 이들이 가해자들과 가해자의 가족들에게 노출되도록 내버려둔 점 등이 비난을 사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지난 토요일에서는 광화문에서 촛불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나 역시 경찰관의 수사과정에 분노했고, 무엇보다 엽기적인 사건의 가해자들이 비록 고교생이라 할지라도 강력처벌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중국철학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공자와 맹자를 비롯한 유가와 노자와 장자를 비롯한 도가도 있지만, 법가라는 무리가 있다. 법가의 대표적인 사상가는 한비자이며, 한비자 이전에도 맹자와 동시대 인물로서 '신도'라는 사람이 있었고, '신불해'와 '상앙'이 있었다. 한비자는 이들 세 학파의 주장이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하였고, 이를 종합하기에 이른다.

한비자는 법이란 펴서 널리 알린 문서로서 백성들은 이를 통해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게 된다고 했다. 일단 법이 공포되면 군주는 백성의 행동을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어야 하며, 군주를 세를 갖고 있으므로 법을 어기는 자는 벌을 주고, 법을 잘 지키는 자는 상을 준다고 말한다.

"성인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있어서, 백성들이 스스로가 착한 일을 한다고 믿지 않고, 다만 백성들이 나쁜 일을 하지 않게 만든다. 한 나라 안에서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열손가락 꼽기 힘들지만 백성들이 나쁜 일을 하지 않게 만들어 놓는다면 그 나라는 모두 잘 다스려질 수 있다. 다스리는 자는 대다수를 상대해야지 몇몇 사람을 위주로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군주는 덕을 일삼지 않고 법을 일삼는다"

이 사건을 보는데 있어서 내가 한비자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렇다.

맹자는 사람은 본래부터 선하다고 하며 성선설을 주장했고, 고자는 사람은 본래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성무선악설을 주장했으며, 순자는 사람은 본래부터 악하다고 하며 성악설을 주장했다. 참고로 한비자는 순자의 제자이다. 다만 한비자가 순자와 다른 점이라면, 순자는 인간은 본래 악하더라도 인위적인 교화에 의해 선해질 수 있다고 보았지만, 한비자는 인간은 원래 악한 상태로 있다고 하여 오로지 법에 의한 통치만을 주장했다.

나는 인간은 본래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래 선한 채로 태어난 것은 아니고, 자라면서 선한 본성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악한 본성은 본래 있지 않고 외부적 요인에 의해 후에 생겨난다고 본다. 따라서 나는 성선설에도 성악설에도 성무선악설에도 공감하지 않는다. 굳이 셋중 하나를 고르라면 맹자의 입장이 될 터이다.

따라서 인간은 선한 본성을 지니고 있기에 살아가면서 이를 키워 선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수 있다. 하지만 선한 본성을 잃어버리고 악함을 후천적으로 얻게 된다면, 그는 다시 선한 본성을 되찾기가 힘들다고 본다.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선한 본성을 잃었고, 악함을 얻게 되어 이와같은 엽기적인 사건을 벌였다고 본다. 이들은 사건이 만천하에 공개된 뒤에도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도리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따지고 있다 하니 가히 이들의 악한 성질은 극에 달했다고 봐야겠다.

가해자들이 악한성질을 갖게 된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 부모의 행실이 올바르지 못해 보고 배운 것이 그 뿐인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유유상종이라 하여 사귀는 친구들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또, 어릴적부터 그를 통제하고 가르침을 주는 이가 없어 장시간 무방비로 각종 유혹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어느 하나를 원인이라 보기에는 어렵고 언급한 것들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원인이 뒤범벅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이는 본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사회의 잘못이다.

하지만, 사회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모든 범죄는 사회적 원인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오로지 그 원인을 사회와 국가에만 책임지울 경우 개인은 언제나 무죄라는 울타리 속에 보호를 받게 된다. 분명코, 이들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은 이들을 잡아주지 못한 모두의 책임이지만, 범죄가 성립되고 난 뒤에는 이들의 잘못을 덮어두기 어렵다. 오히려 한비자와 같이 법에 의한 강력한 처벌을 통해 이들을 다스려야 한다. 도덕적으로 교화시키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따라서 나는 집단 성폭행 가해자가 비록 미성년자일지라도 전원을 모두 구속하여 법정에 세워놓고 강력한 처벌을 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오늘 인터넷 신문을 보니 중국에서도 고교생의 여중생에 대한 집단 성폭행이 이뤄졌으며, 이들 고교생은 사형내지는 무기징역, 10-20년의 징역에 처했다고 한다. 나는 이들을 사형시키거나 무기징역을 가하자고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가석방 없는 10-20년 정도의 징역살이 정도는 마땅히 가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그 징역의 과정에는 도덕적 교화작업이 포함될 것이다. 도덕적 교화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는 아래서 따로 다루겠다.

모든 강력범죄에는 강력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동일한 범죄에 대한 동일한 처벌까지 주장하지는 않지만, 그에 맞먹는 처벌을 가해야만 다시는 동일범죄가 발생하지 않는다.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가해자는 법의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며, 인권적 모욕을 가한 경찰관과 가해자의 가족 또한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며...

1. 법과 도덕
나는 한비자에 동감하지는 않는다. 한비자는 인간은 선해질 수 없고 오로지 법에 의한 강력한 통치만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법과 같은 강제적 제제는 필요하다. 바로 지금과 같은 경우이다. 그러나 이로 그쳐서는 안되고 이후에 인위적인 도덕적 교화의 과정이 추가되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친 뒤에도 선성을 다시 얻지못한다면 그때 포기해도 늦지 않다.

2. 궁형
성폭행 범죄자에 대해서는 궁형을 처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사기>로 유명한 사마천은 물론 성폭행으로 궁형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궁형을 받은 대표적인 유명인물이다. 궁형은 남성의 성기를 잘라내는 형벌로, 고대중국에서는 널리 행해졌던 가혹한 형벌 중 하나이다. 이를 성폭행범에 한해 도입하자는 것이다. 잘라내고 치료를 잘해줘서 죽지만 않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성기를 잘라낸다는데 성폭행 범죄를 행할 남자는 없을 것이다.

3. 도덕적 교화
선한 본성을 잃어버리고 악한 성질을 얻은 자에 대해 도덕적 교화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도덕적 교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난 종교인은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그 본성을 바꾸기 적절한 것은 종교가 아닌가 한다. 기독교든, 천주교든, 불교든, 이슬람교든 상관없다. 종교인과 가까이 하게 하여 마음 속에 진정한 종교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오늘날에도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널리 행해지고 있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교화방법이다. 이와 더불어 책을 읽도록 한다.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책을 읽음으로써 깨우치는 바가 많고, 그 본성 또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또한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특별할 것 없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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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가 본 알기 쉬운 대학 - 신완역, 양장
강병창 엮음 / 명문당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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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의 수많은 역서 중의 한권인 이 책은 다른 역서들과 좀 차별화되는 점이라면, 각 문장에 한문 음을 달았고, 경제인의 관점에서 부가적인 해설을 덧붙였다는 점이다. 음을 달았기에 읽다 모르는 한자가 나오면 음과 동시에 '자의'를 보고서 따로 옥편을 찾지 않고 이 책만 보고도 독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번역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억지로 맞춘 것 같은 부분이 눈에 띄어 그다지 좋은 역서로 추천할만하지는 않다. 또한 굳이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대학>을 번역하지 않아도 되는데 불필요하게 수많은 역서에 한권 더 추가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썼다는 해설은 사실 없어도 무방한 부분이고, 이 부분이 없어도 되는 부분이라면 굳이 이 책은 많은 역서들 중에 하나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양장본의 형태를 띠어 값이 비싼 것도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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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집주 (全) - 원본비지
김혁제 옮김 / 명문당 / 198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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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본비지 대학집주>는 순전히 <대학>이라는 옛 고서 그대로 세로쓰기를 하고, 번역이나 해설 등 토시하나 안달고 원본 그대로 출판된 책이다.

 역자는 김혁제씨로 이분은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회원이면서, 대학역학교육학회 수석고문이라고 한다. 역학 관련해서만 60여권을 도서를 저술한 역학계의 원로로 불리운다.

 이 책은 순전히 4학년 2학기 마지막으로 들은 '한문'수업 때문이었다. <책문>이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학교 과선배이자 선생님이었던 김태완 선생님의 가르침 하에 한학기동안 한문 수업을 들었는데, 이 수업에서 <대학>을 다루었다.

  다음은 <대학>의 또다른 책 <경제학자가 본 알기 쉬운 대학>에 나와있는 역자의 글을 대신함으로써<대학>을 소개하겠다.

 "<대학>은 옛날 태학에서 자기 몸을 닦아 장차 사람들을 관리할 사군자, 즉 엘리트를 가르치던 수기치인지술에 관한 교과서이다. 그런데 이 <대학>은 원래 <예기>의 49편 중의 42편에 있던 것이다. <대학>에 관해서는 북송 때의 사마광이 주석한 <대학광의>가 처음이며, 그 뒤에 정명도, 정이천의 <대학정본>이 있었고, 그 제자 여대림의 <대학해>가 있었다. 이윽고 주자가 제가의 학설을 종합, 절충, 보완하여 <대학장구>를 편찬함으로써 비로소 <대학>은 <논어><맹자><중용>과 더불어 유교경전의 사서로 되었다."

 "<대학>은 사군자가 장차 남을 다스리기 위하여 자기를 닦는 규범을 말한 것이니, 소위 칙규지학이며 사서의 첫째로 가는 까닭이다. 따라서 현묘지학을 말한 <중용>, 무보지학을 말한 <논어>, 발원지학을 말한 <맹자>와 그 범위가 다르며, 또 <대학>은 도를, <중용>은 명을, <논어>는 덕을, <맹자>는 성을 위주로 하는 바이지만, 이 넷은 모두 이(理)로써 꿰뚫으니 결국 '사서'는 통리(通理)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책은 순수하게 원본의 한자만으로 쓰여져있기에 독학자가 볼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다만 원본을 가지고 또다른 해설이 있는 역서와 함께 본다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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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50
고미숙 지음 / 책세상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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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는 최근 고전 리라이팅 열풍의 시작이 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쓴 고미숙씨의 초기작품이다. 98년부터 책을 써왔던 그녀에게 어쩌면 2001년에 나온 이 책은 초기 저작이라 하기엔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대중에게 커밍아웃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이 책은 초기저작이다.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는 역시 값싸고 얇은 책세상문고판 시리즈의 50번째 작품이다. 철학자 탁석산 씨가 이 문고판 시리즈의 첫장을 장식한 이후로 이 시리즈는 학계의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재야 학자들의 데뷔무대가 되고 있다. 그런면에서는 고미숙씨 또한 예외는 아닐성 싶다.

 지금 이 시점에서 고미숙씨는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맛보았다. 절반의 성공은 대중들에게 그녀의 이름을 각인시킬 정도의 활발한 저작활동을 했고 그 저작들이 일정부분 그녀에게 명예를 안겨주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절반의 실패란 그녀의 책을 읽은 다수의 독자들이 안티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연예인들의 안티와 같은 조직적인 안티카페를 만들어 불매운동을 벌인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녀의 글쓰기 방식과 내공에 딴지를 거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녀 스스로가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는 수밖에는 없겠다. 하지만 대중적 글쓰기 라는 점에서 그녀의 글이 읽기 쉬운 것은 사실이고 이점은 장점으로 인정을 해도 좋을듯 하다.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를 통해 그녀는 지금까지의 한국의 근대성이 이론이나 사상사를 통해 이루어져 한국의 근대가 미화되거나 과잉 해석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근대성을 체크해본다.'민족, 섹슈얼리티, 병리학'이라는 부제를 통해서 말이다.

 이 책은 매우 쉽다. 모든 장의 시작이 그녀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으로부터 시작해 보편담론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독자가 첫발을 디디기 쉽다. 그리고 다소 독선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주장은 지금까지의 논의와 색다르기 때문에 '다양성'의 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그녀는 가라타니 고진과 미셸푸코와 같은 세계적인 석학들의 저서를 통해서 그들의 말을 그들이 본래 주장한 의도와는 상관없이 부분부분을 떼내어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는데에 인용하고 있다.

 이 책 안에는 가라타니 고진과 미셸푸코 뿐 아니라 강유위와 신채호도 들어있다. 이는 순전히 그녀가 다방면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너무 여러 방면에 눈독을 들이다보니 깊이가 떨어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넓지도 깊지도 않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다지 학문적 깊이는 느끼지 못했다. 이점을 이 책의, 혹은 고미숙씨의 단점으로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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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집에서 농땡이치다 쇼파에 누워 리모컨이나 켠게 화근(?)이 되어 보게 된 영화. 하지만 영화가 재밌어서 보고 난 뒤 후회는 없다.

 영화 제목 '단테스피크'는 'Dante's peak' 로 굳이 해석하자면 '단테의 꼭대기' '단테의 봉우리' 정도겠는데, 영화 속에서는 미국 내 1만 7천명이 거주하는 산을 끼고 있는 조용한 마을의 이름이다. 이 마을에는 휴화산이 있는데 이 화산의 폭발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일들이 영화의 내용이다.

 얼굴이 참 익숙한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이 지질연구가로 나와 영웅 역할을 맡는다. 오래토록 화산활동이 없었던 조용한 마을의 화산활동 기미가 보인다고 판단한 해리달톤(피어스 브로스넌)이 마을 시장(여자)과 그녀의 아이들을 구출해내는 장면을 담았다.

 1997년에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이후의 재난영화들보다 훨씬 재미있다. 남이 재난당하는 것을 두고 '재미있다'고 말하긴 뭣하지만 어디까지나 영화속 내용이니까 '영화'로서 본다면 재미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 영화가 국내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제쳤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지진, 해일, 화재, 화산폭발 등의 자연재해를 다룬 영화에서는 많이 뒤쳐진다는 느낌이다. 물론 국내에는 아직까지 재해를 다룬 영화가 별로 없지만 말이다.

 <단테스피크>에 나오는 화산활동의 모습은 굉장히 사실적이다. 물론 실제로 화산의  활동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이 영화를 보니 고등학교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것들이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화산재, 화산구, 화산폭풍, 용암 등에 관한 것들이 말이다. 중고등학생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면서 수업을 하면 참 효과적이겠다는 생각도 든다.

 한가지 지적할 것은, 용암을 해쳐나가는 이들의 모습이 아무리 영화라지만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천하무적이라는 점이다. 용암위를 달려가는 자동차나, 용암이 산에 있는 목재로 만든 집 벽면을 뚫고 나왔음에도 그 가까운 거리에서 사람들이 아직까지 생존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화산폭풍에 휩싸였으면서도 죽지 않았다는 점이 그렇다. 어디까지나 영화니까 이런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 보여도 그냥 그러려니 한다.

 참 재밌는 영화다. 사실적이고, 긴장감도 있으며, 사랑을 느낄 수도 있는 영화. 추!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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