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에떼 - 문화와 정치의 주변 풍경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2월
절판


중요한 것은 균형을 잃지 않는 일이다. 그 균형은 개인성과 집단성 사이의 균형이거나 회의와 수용 사이의 균형이겠지만, 더 일반적으로는 우익적 세계관과 좌익적 세계관 사이의 균형과도 무관치 않다. 인간은 불평등하게 마련이라는 생각과 인간은 평등해야 한다는 생각 사이의 균형, 인간은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생각과 인간은 사회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는 생각 사이의 균형 말이다. 그 균형은, 더 나아가, 인간은 (사회적으로든 유전적으로든) 결정될 수 밖에 없다는 차가운 인식과 인간은 자유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지녀야 한다는 뜨거운 믿음 사이의 균형이기도 하다. 그런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비평적 거리를 유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구겨진 기억 속에서] 中-58-59쪽

요컨대 [변호]의 저자는 친일파 내지는 친일 행위와 일본 식민통치를 동시에 변호하고 있다. 친일파에 대한 변호의 논거는 식민통치가 유난히 혹독했고 잔인했으므로 거기에 대한 저항이 불가능했다는 데 있고, 일본 식민통치에 대한 변호의 논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조선 사람들의 생존에 이전보다 그리고 동시대의 다른 많은 사회보다 상당히 나은 환경을 제공했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변호]의 저자의 생각에 따름녀 일본의 식민통치는 조선인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나빴지만 (정치적으로 나빴지만), 조선인의 생활 조건을 개선했다는 점에서는 좋았다(경제적으로 좋았다).
사실 친일파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변호도 없다. "그때는 저항할 처지가 아니었다구, 그만큼 일본 애들이 악독했다니까...... 그런데, 사실 저항할 필요도 없었어, 사실은 일본 애들이 좋은 일을 많이했거든."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아닌가? "유신 체제와 5공을 찬양하고 협력한게 잘 한 일은 아니지만 그땐 그럴 수 밖에 없었다구, 그 체제가 사람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정도로 혹독했거든... 그런데, 어찌 보면 사실 거기 저항할 필요도 없었어. 박정희, 전두환 때 우리 경제가 얼마나 나아졌는데."
그런데 이런 '균형' , 정치적 차원의 비판과 경제적 차원의 찬사 사이의 균형이 오래 가는 법은 없다. 너무도 쉽게 정치는 경제에 포섭된다.

[식민주의적 상상력] 中-106-107쪽

기실 [변호]의 저자도 자신의 첫 평론집 [현실과 지향](문학과 지성사, 1990)에 실린 '보수주의 논객을 기다리며'라는 글에서 보수주의라는 말에 아우라를 씌우려고 애쓴 바 있다. 그가 그 글에서 인용한 새뮤얼 브리튼에 따르면, 보수주의는 시장에서 나오는 소득과 재산의 분배 상태를 수락하는 데 비해 자유주의는 강력한 재분배 조세를 추천한다. 또 보수주의는 개인적 비용과 사회적 비용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을 경우에만 시장에 개입하는데 비해, 자유주의는 개인적 비용과 사회적 비용 사이의 차이에 대해 민감하고 시장에 훨씬 많이 개입한다. 자연히, 보수주의는 민간 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자유주의는 민간 기업에 대해 별다르게 강조하지 않는다.

[식민주의적 상상력] 中
-110쪽

우리가 인과율의 엄격함을 받아들인다면, 이것이 그 자체로 틀린 말들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과거가 운명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늘 다소곳하게 긍정해야 할까?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역사적 사실의 산물이다. 만일 조선이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지 않았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우리가 친일과 식민통치를 긍정해야 한다는 것은, 결국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과거를 긍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오로지 그 과거 때문에 자신이 있게 됐다는 이유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면, 폴란드의 절멸 수용소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미국으로 건너간 유대인 여성의 손녀는 "나는 아우슈비츠라는 역사적 사실의 산물이다. 아우슈비츠가 없었다면 나는 존재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홀로코스트와 거기 협력한 사람들에게 이해의 눈길을 보내야 할까? 킬링필드의 광란을 피해 20대 시절의 캄보디아인 아버지가 프랑스로 망명한 덕에 '존재하게 된' 프랑스 청년은 "나는 킬링필드라는 역사적 사실의 산물이다. 킬링필드가 없었다면 나는 존재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킬링필드와 그것을 주도하거나 협력한 사람들을 이해의 눈길로 바라보아야 할까? 이것은 거의 자기 모멸의 실존이라 할 만하다.

[식민주의적 상상력] 中

-116-117쪽

그러나 그런 사정이, [변호]가 시도하듯, 친일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은 안디ㅏ. 친일에 면죄부를 줄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법적 기반이 일본 제국주의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적어도 적극적 친일파는 해방된 조국에서 변두리로 물러나야 했다는 뜻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실제의 역사는 첫 걸음부터 그렇지 못했다. 그것은 제 한 몸 깨끗한 체하며 친일파를 권력 기반으로 삼았던 이승만 개인의 잘못만도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해방 공간을 메우고 있던 힘의 관계 때문이었다. 그 힘의 관계는 민족 내부의 역학이기도 했고, 국제 정치의 역학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 힘의 관계를 뒤집지 못한 채 해방 반세기를 넘겼다.
논리적으로라면, 해방 공간에서 적극적 친일파에게 남겨진 길은 둘이었다. 첫째는,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비판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었다. 둘째는, 비록 미국의 힘에 눌려 좌절하기는 했으나 대동아 공영권은 아시아의 궁극적 미래라는 논리를 굽히지 않은 채 일본으로 망명하거나 국내의 소수파로 남는 것이었다. 그러나 꾀 많은 그들은 둘 다를 거부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친일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숨긴채, 이제 새로운 가치가 된 반공의 전사가 되었다. 그 꾀는 적중해 그들은 해방된 조국의 주류로 남았다.

[식민주의적 상상력] 中
-118-119쪽

보수주의는 일반적으로 변화를 피하고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사상이나 습속, 태도를 가리킨다. 그것은 존재하는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니 무슨 이유에서든 그것을 억지로 바꾸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나 태도다. 거기에는,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거의 예외 없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비판적 방어 심리가 깔려 있다. 보수주의적 세계관에 따르면,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거나 적어도 덜 나쁜 것, 견딜 만한 것이다.

[작달만한 시민들의 우람한 보수주의] 中-144쪽

그렇다고 여성과 남성 사이에 또렷한 자연적 차이,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스포츠 경기에서 여성은 여성끼리, 남성은 남성끼리 경쟁한다. 더 나아가 그런 자연적 차이, 생물학적 차이가 사회적 차이를 어느 정도까지는 정당화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도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인간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구성된 문화나 문명이라는 것은, 이제는 초등학교 학생들도 이해하고 있듯, 자연에 거스른다는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반생물학적이라는 점도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문화는 자연의 지침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 자연을 제어하는 것이다. 위계적 질서는 자연적 질서다. 평등적 질서는 부자연스러운 질서다. 그러나 자연계에서 오직 인간만이 평등적 질서를 열망하고, 그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싸운다. 평등에 대한 열망은, 그 부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하는 유력한 표지 가운데 하나다. 당위는 존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남성의 지배가 실질적으로 보편적이라는 관찰이 이런 위계적 질서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으로 반드시 이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 마찬가지로, 남성의 정치 독점이 역사적으로 보편적이었다는 관찰이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주장으로 반드시 이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문화와 문명을 건설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반생물학을 위하여] 中-171-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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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술붐이 일기 한참 전, 대략 1980년대 후반즈음부터,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철학교육을 시도했던 그곳에서는, 가끔씩 전화가 온다. 대학을 막 졸업했을 때 사범대 출신도 아니고, 하늘대학도 아닌, 내세울 것 없는 나는 비정규직 교사 자리 하나 구하기 힘들었다. 졸업 후 힘겨운 겨울을 보내고 내가 처음 취직한 곳은 이곳이었다. 이름만 대면 관심있는 사람들은 다 알만, 우후죽순 여기저기 늘어난 청소년 철학교실의 모태가 되는 그곳에 이력서를 냈고, 전화가 왔으며, 면접을 봤고, 취직했다. 그리고 교육은 3개월 과정이었고 그간은 차비와 밥값만 제공되었는데, 나는 함께 들어간 다른 세 명과 함께 1개월 반 정도의 교육을 받고서 현장 투입되었다. 교사가 모자랐던 것이다. 수요가 많은데 공급이 되지 않은 탓도 있었고, 기존의 교사 중 그만두는 이들도 많았던 것이다.

  그곳에서 누군가를 사귀었고, 헤어졌으며, 직장이란 생각이 안들게 재미도 안겨줬고, 돈을 번다는게 쉽지는 않다는 생각을 느끼게 해준 곳이기도 했다. 출퇴근제가 아닌 수업이 있는 때 나와서 수업하고 빠지는 식인지라 매일매일의 스케쥴이 일정하지 않았고, 토요일은 수업이 많은지라 아침부터 밤까지 풀타임으로 일해야만 했다.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돈만 아니라면 이곳에 발을 붙여도 상관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때는. 그러나 역시 수업량에 따라 돈의 액수가 달라지는지라 많이 벌기 위해서는 많이 뛸 수 밖에 없었고, 매일같이 아침부터 밤까지 뛴다면 대기업 연봉을 능가하는 액수를 받을 수도 있었다.

  일하던 중 학교로부터 전화가 왔고, 고민 끝에 이곳을 등지고 학교를 택했다. 그곳에서는 일정한 출퇴근과 수업 이외의 업무를 가진 직위(?)를 제안했고 매우 구미에 당겼지만 거절했다. 원래 가고자 했던 곳이 학교였으므로. 사교육이냐 공교육이냐. 공교육에서 할 수 없는 부분을 사교육에서 충분히 메꿔 줄 수 있고, 교육의 질이나 학생수, 환경 면에서 사교육은 이상적인 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었다. 솔직히 두 가지를 병행하고 싶었고, 실제로 두 가지를 병행했다. 사립학교 기간제 교사로 갔던 나는, 내가 소지하고 있는 '철학교사자격증'으로 '기간제 교사자격'으로서는 도덕을 가르칠 수 없다는걸 뒤늦게 알았고, 학교도 그때까지 몰랐다. 꼬박꼬박 교사월급을 받아야했던 나는 시간당으로 계산하며 본래 받아야 할 돈의 반을 받아가며 3개월을 그곳에서 보냈고, 나왔다.

  공교육과 사교육을 병행하기는 힘겨웠다. 공교육과 사교육을 오가는 사이 나는 내 머리와 마음의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해야했다. 내용이나 방식이나 마인드면에서 많이 달랐기에. 처음 학교수업을 할 땐 그곳의 수업방식이 몸에 배었었고, 나중에 그곳의 수업을 할 땐 학교의 수업 방식이 몸에 배어있었다. 결국 뒤범벅이 되어버렸다. 재밌는건 학교에서 수업할 때 그곳의 수업방식을 도입하면 아이들은 새롭다고 좋아했지만 그곳에서 학교의 방식으로 수업할 땐 학생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대략 방법은, 누가 주도적이냐의 차이일터다. 교사가 가르쳐야할 내용을 전달하고 학생들이 받아들이는 식과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식의 차이랄까. 한 학급당 인원수가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개개인이 참여하여 토론하며 수업할 수 있기 위해서는 최소한 지금의  1/3 수준이 되어야 한다. 약 10명 정도가 있을 때 개개인이 모두 참여하는 수업이 가능하다.

  어쨌든, 나는 그곳을 등진 뒤로 계속 공교육에 몸담고 있고, 어느덧 횟수로 3년째 접어들었다. 학교에선 방학월급 다 떼먹었던지라 학비를 충당하기엔 수입이 부족했고, 경력에 방학기간이 포함되지 않아 나의 교직경력은 이제 1년을 넘어섰지만, 내가 학교에 몸담은 건 3년째다.

  오늘 또 전화가 왔다. 그곳에서 나름 나에게 잘해주던, 많이 신경써주시던 분으로부터. 토요일 수업을 맡아달라는게다. 나는 지금 엄연히 기간제교사고, 시간강사와 달리 기간제는 직업을 겸할 수 없다. 상황이 급박했는지, 그럴 때마다 그 분은 나를 찾았다. 너댓번은 연락을 받은 듯 한데 모두 거절했다. 한번은 할 수도 있었는데 시간표가 어중간하게 짜지면서 아예 안하겠다고 했다. 일정한 수입을 보장하는 곳이 아닌지라,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곳이 아닌지라, 기타 등등의 다른 이유들로, 교사가 많이 나가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 분은 오랫동안 그곳에서 일하며, 매일같이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면서도, 꾸준히 잘 버티는가보다.

  어떤 이유에서든 나를 찾아주는 사람에겐 고마움을 느낀다. 그것이 친분관계건, 내 능력이건, 아니면 정말 연락할 곳이 없어 나를 찾는 사람이건, 이유야 어떻든간에 나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일정 부분 누군가로부터의 청을 내 능력으로 간주하는 마음을 숨길 순 없다. 바램뿐이겠지만. 예전 밴드에서 공연을 뛰어야 하는데 드러머가 없다. 네가 필요하다. 는 전화를 받았다. 고맙다. 그들의 고마움을 청을 들어줌으로써 갚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거절하게 된다. 그것이 현재의 나의 상항과 맞물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짧은 통화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상대의 청이 나의 동의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오갔으리라 본다. 청을 들어줄 수 없음에도 이런 전화는,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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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28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러머로 청하는 전화, 일상의 반복된 생활에서 청량음료 같으네요. 거절하게 되더라도 반갑고 고맙고 흐뭇해지는 거...^^

마노아 2007-03-01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작년에 제 호봉보다 높게 책정되어 있기에 이전에 근무했던 사립학교에서 제 이름으로 '착취'를 했다고 생각했어요. 알고 보니 지금 있는 학교에서 행정실수를 한 거였지요. 얼마일지 모르겠지만 한꺼번에 목돈 나가게 생겼어요. 와방 미워하고 있답니다..;;;;;

이잘코군 2007-03-01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 네. 옛날 칭호죠. ^^ 지금은 주력산업(?)이 다르니. 기분은 좋더라구요.
마노아님 / 아 이런. 그럼 찔끔찔끔 받은거 뭉텅이로 반납해야하잖아요. 행정실 실수가 은근 많아요 이런게. 다 확인하고 받아야지. 그냥 들어왔나보다 그러면 안되겠더라구요.

깐따삐야 2007-03-01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실하면, 그 성실한 인상 때문에라도 여기저기서 부르는 사람이 많이 생기잖아요. 기분 좋으셨겠다.^^ 그리고 약 10명, 저도 완전 동의해요!

2007-03-01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춤추는인생. 2007-03-01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설령거절해야 할지라도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거.
그거 참 행복한 일이예요 님. ^^
 
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30년판이 나온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맨처음 <이기적 유전자>를 접한건 아마도 중학교 때로 기억한다. 1992년에 두산동아에서 첫판이 나왔는데, 셈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중학교 1학년 때인듯 하다. 중학교 때는 이 책이 어렵게 느껴졌다. 그 때 읽고 기억하고 있는건 맨처음 어떤 수프 속에서 생명이 탄생했다는 것 뿐이다. 이후 시간이 한참 흘렀고, 30년 기념판을 접했다.

  도킨스는 이 책에서 자신의 주장은 처음과 변함이 없고, 그동안 개정판이 몇 차례 나온 것은, 오직 자신의 주장을 좀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 문장을 손보고, 더 많은 예들을 집어넣었을 뿐이라 했다.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이런 말을 한다는건 둘 중 하나다. 자신의 이론이 정말 진리라고 믿고 있거나, 아니면 그것이 진리이거나. 그런데.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서, 심지어는 그와 비슷한 진영에 있는 학자들까지 그의 이론을 비판하는 것을 보면, 후자는 아닌 듯 하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썼던 당시 기독교계의 무수한 비판을 받은 것과 비교하여, 자신의 이론이 처음 나왔을 때 온갖 학계로부터 비판을 받았다고 말한건 그가, 아마도 다윈의 후예임을 자처함과 동시에, 다윈과 동급으로 취급되고픈 마음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기이론에 대한 자신감은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외부로부터의 귀를 닫아놨을 때는 이건 고집 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봤을 때 도킨스는 나름 외부의 비판에 대한 반론을 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변함없이 자신의 이론을 고수하는 것을 보면, 외부의 비판을 수용하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의 생물학적 주장에서 벗어나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나오는 비판은 어느 정도 도킨스에게 향할 것은 아닌 듯 하다. 생물학 내에서의 이론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의 영향력은 엄밀히 구분해야하므로 도킨스에게 죄를 부과하는 것은 100% 온당해보이진 않는다.

  유전자는 '자기복제자' 의미로서의 단위이고, 개체는 '운반자'의미로서의 단위이다. 즉 우리의 몸은 유전자가 자기복제를 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 매개체가 되는 것이고, 행위를 결정짓는 것은, 우리의 진화를 결정짓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유전자라는 것이다.

  도킨스는 일단 이 책의 1장을 통해서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 안에 진화와 다위니즘,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그룹 선택설이라는 소제목을 두고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도킨스의 이론을 이해하는데 있어 1장은 매우 중요하다. '이기적 유전자'라 할 때 유전자가 이기적이다라는 의미는, 일종의 비유로서 봐야지, 유전자에게 어떤 이타성이나 이기성이 잠재되어있다고 봐서는 안된다. 또한 그가 말하는 이기주의의 개념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이런 것들이 1장에 들어있다.

  이어서 그는 인간의 존재, 행위, 노화, 돌연변이 등 인간의 외양의 변화와 행동양식을 통해 유전자가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설명한다. 이 책은 매우 두껍고, 많은 부분이 인간의 모든 양식에 대해서 이기적 유전자가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드러내는가에 대해 말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최대한 많은 부분에 대해서 유전자의 영향력을 언급해야만 외부의 비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자신의 주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것은, 그 사람이 이타적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 사람을 구해야만 유전자를 보호할 수 있고 널리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과 어떤 관계냐에 따라서 이는 다르게 표출된다. 세포는 유전자의 화학공장이며, 유전자는 일종의 뉴런이다.

 도킨스는 유전자 gene에 이어 문화 meme의 개념을 창조하며, 이를 일종의 유전자의 '길게 뻗어나간 팔'정도로 다루고 있다. 인간에게 문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가 문화를 문화라 칭할 때의 그것과 도킨스의 그것은 엄밀히 다르다. 도킨스의 그것은 유전자의 변형된 형태로서 봐야한다. 그리고 이는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리 두거킨의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를 참조하기 바란다)

  애낳기와 애키우기에 있어서, 인구문제에 있어서, 가족계획에 있어서,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유전자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하는가. 모든 것이 이 책안에 들어있다. 그것을 믿고 안믿고는 독자 개인의 판단에 달려있으며, 단지 도킨스의 말만을 듣고 결론내리지 말고, 그의 비판자들의 목소리 또한 들어보고 결론을 내렸으면 한다. 도킨스의 이론과 주장은 나름 신선했고 충격적이었지만, 진실여부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과학자들이 이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기에 확신할 수 없다.

  또한 '이기적 유전자'이론이 생물학계를 넘어서 인간사회에 끼칠 영향력은 대단하고 무섭다. 흔히 유전자 결정론, 사회생물학 이라하는 것이 그것이며, 지금 내가 처한 모든 상황들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 것이란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 책만으로는 부족하고, 관련된 다른 책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최근 이상원 교수가 <이기적 유전자와 사회생물학>이라 하여, 이기적 유전자론을 요약/정리하고, 비판점을 다룬 책이 나왔다. 매우 쉽게 씌여졌고 얇으므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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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0735 2007-03-10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때 처음 접하셨다니 조숙하셨네요. 전 사회에 나와서 알았습니다. ㅠ.ㅠ
얼른 읽어봐야할텐데...

이잘코군 2007-03-10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때 모르고 구입한거죠. 그냥. 아마도 추천도서목록 보고 사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몇장 못봤었어요.

hillbilly 2007-04-21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내용 잘 읽었습니다. 내용 중 '이기적 유전자와 사회생물학' 의 지은이는 김상원 교수가 아니고 이상원 교수인 것 같습니다.


이잘코군 2007-04-21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런 제가 큰 실수를 했군요. -_- 저자의 성을 바꿔버리다니. 지적 감사합니다.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
리 듀거킨 지음, 이한음 옮김 / 지호 / 200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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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관심은 사회생물학이나 유전자결정론, 진화심리학 등의 관련된 분야들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그 와중에 접한 책이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 이다. 이 책의 제목 아래에는 소제목으로 '이기적 유전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동물들의 진화' 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개념은, 동물과 인간의 행동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유전자결정론으로 이어진다. 사람이 물에 빠진 상황에서 그를 구하는 나의 '이타적' 행동 조차도 도킨스의 눈에는 이기적인 유전자에 의한 것이다. 도킨스는 모든 인간과 동물의 행동을 이러한 '이기적인 유전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는 gene 말고 meme 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데, 혹자는 이를 두고 도킨스가 한발짝 물러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혹자는 이기적 유전자론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저걸 도킨스는 '밈'이라 부르는데, 이는 그리스어의 어근에 따르면 mimeme 이라 해야하지만, 유전자를 뜻하는 gene의 발음과 비슷하게 하기위해 meme이란 용어를 만들었다.

  인간에게서 보이는 행동양식은 유전자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밈에 의한 것이기도 한데, 이 밈이란 것은 결국 우리가 문화라 부르는 것의 총칭이다. 하지만 이 밈 역시도 유전자와 같이 "엄밀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구졸 간주해야"하며, "당신이 내 머리에 번식력이 있는 밈을 심어 놓는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당신이 내 뇌에 기생한다고 하는 것"이라 한다. 밈도 유전자와 같이 복제를 하며 자기 생존을 위해 목적의식을 가진 능동적 존재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하나 생긴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에게는 문화가 없을까?

  루이빌 대학에서 연구중인 진화생물학자 리 두거킨은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라는 책을 통해서 유전자 결정론의 헛점을 찾아 동물들도 사회적  협동을 할 수 있으며, 모방 인자를 통해 문화적 전달이 진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는 이전에 <동물들 사이의 협동이라는 책으로 과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의 첫장에는 "문화는 단순한 것에서부터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에게 작용하는 강력한 힘이다." 라고 씌여있다. 도킨스가 주장하는 유전자뿐만 아니라 문화까지도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에게 있어, 심지어 단세포에게까지도, 진화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두거킨은 이 두꺼운 책을 통해서 '거피'실험 과정에서 보고 관찰한 것들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1장 문화적 동물'은 중요하다. '2장 이기적 유전자의 길게 뻗은 팔'에서는 문화를 두고 일종의 이기적 유전자로부터 비롯된, 여기에서 가지를 치고 뻗어나간 곁다리쯤으로 간주하는 과학자들의 의견에 대해서 반박하고 있다. 앞선 도킨스의 '밈'이라는 개념은 문화의 총칭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화'의 개념이 아닌 유전자 개념으로부터 비롯된 즉, 유전자의 변형된 형태로서 바라볼 수 있는 개념이다. 즉, 도킨스의 '밈'은 '이기적 유전자의 길게 뻗은 팔'에 불과하다. 두거킨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를 동떨어진 다른 것으로 바라봐야하고, 그것이 인간 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있음을 말한다.

  두거킨은 유전자가 진화에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하진 않는다. 다만 그는 유전자 이외에 문화라는 것이 진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그래서 그는 도킨스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때와 같이 다양한 동물들의 예를 든다. 거피를 중심으로 하여, 제비, 기린, 세일핀몰리, 고래 등등. 두거킨은 유전자의 진화에 대한 영향력이 강할 때가 있고, 문화의 진화에 대한 영향력이 강할 때가 있다고 한다. '4장 문화의 의미'는 이를 밝히는데에 할애하고 있다. "행동생태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동물이 살아가는 환경이 자주 변하긴 하지만, 너무 자주 변하지는 않을 때에는 학습이 유전적 전달보다 더 선호된다고 말해왔다." 과학적 관점에서 정보습득의 경로는 유전부호, 개체학습, 문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문화적 전달이 유전적 재생산보다 정보를 축적하는 더 나은 수단이 되는가를 묻고 대답한다.

  실제로 동물들은 '모방'을 통해 동료의 행동을 따라하며 이것은 짝짓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두거킨은 이러한 동물들의 모방행위를 문화의 일종으로 본다. 두거킨의 문화개념은 우리 인간세계에 있어서의 문화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범위가 더 넓다고 해야할 것이다. 여러 실험을 통해서 그는 모방이 진화를 결정짓는 광경을 목격한 바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인간은 왜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식으로 행동을 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으며, 지난 세기 인류학, 생물학, 심리학 등의 학문이 이에 대해 대답하려 노력했다. 두거킨은 인간 "행동의 특성을 이해하려면 문화적 진화의 과정을 철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는 남의 행동에 맞춰 행동하도록, 대개 그들의 행동을 본뜨도록 진화해 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물에게 있어 뇌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으며, 한 개체의 독특한 행위와 이를 따르는 다수의 개체들로 인해 표준유전이론은 극적으로 무너진다. 우리가 유전자의 통제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거부하진 않지만, 문화적 진화는 언젠가부터 유전적 진화 못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고, 유전자에 의해 모든 행위가 결정된다는 유전자결정론은 진화의 한쪽면만을 바라 본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은 유전자뿐 아니라 문화의 영향을 통해 진화하며,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이 두거킨의 실험과 이론을 통해 입증되었다. 아직 명확히 진화에 대한 연구가 종결된 것은 아니다. 꾸준히 연구는 아직도 진행중이며, 앞으로 새로운 다른 연구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일단 그렇더라도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는 건 거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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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와 사회생물학 (양장)
이상원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30주년 기념판이 나왔으니 이 논쟁이 있은지도 벌써 30년이렸다. 30년간 서양에서 많은 학자들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개념과 주장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눴고, 그 중에는 이기적 유전자론을 지지하는 주장도 있었지만, 이를 비판한 학자들 또한 적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상황에 따라 도킨스와 함께 할 수 있으면서도 '이기적 유전자'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는 스티븐 제이 굴드가 있다. 그는 다윈의 후예라는 점에서 도킨스와 같지만, 생물학적 결정론이 유전자 결정론으로 모습을 바꿔 등장하는 것을 목격하고, 이것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우려한다. 생물학이 사회학의 영역에 발을 들여놨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현재 서울시립대 강의교수로 재직중인 이상원 교수는 <이기적 유전자와 사회생물학>이라는 얇은 책자를 통해서 그간에 논의되어온 이기적 유전자 논쟁에 대한 정리를 시도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함의하고 있는 바가 무엇이고, 그것이 왜 비판을 받는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먼저, 도킨스의 프로필과 기본적 관점을 살펴보고, <이기적 유전자>에 드러난 그의 주장들을 하나하나 우리말로 더 쉽게 풀어준다. 도킨스는 스스로 책을 매우 쉽게 썼다고 하고, 또 그러한 것이 사실이지만, 해당 분야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없는 나같은 이는 심정적으로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더 쉬운 해설서가 필요하다. 이 책은 도킨스의 이론에 대한 해설역할을 해줄 뿐 아니라 그간의 비판점까지도 담아내고 있어 '이기적 유전자'에 관해 정리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7장 생물학적 결정론과 사회생물학, 8장 과학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부분은 특히나 '이기적 유전자'를 생물학적 결정론, 사회생물학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를 살펴보고, 그것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알아본다.

  "사회생물학은 사회성 동물의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 자체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그런 유전 결정론적 구도 안에 우리 인간 종마저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촉발되었"으며, 인간의 모든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면, 지금의 사회적 위치는 자연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예를 들자면, 남녀차별이나 사회적 신분차, 계급, 불평등의 문제, 가부장제, 엘리트주의, 인종차별 등등의 모든 것들이 자연에 의해 불가피한 것이 되므로 생물학은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회생물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유전자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바라보는데, 인간의 삶은 단지 유전자뿐 아니라 문화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 것이며, 그 어떤 것도 우리 개개인의 삶을 결정짓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의 생물학적 특성, 특히 유전자가 우리의 삶에 심오한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와 유전자에 의해서 우리의 삶이 결정된다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는 1판이 번역된 이래 엄청난 판매량을 보여왔다. 베스트셀러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며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개정판이 나오고, 15년판이 나오고, 이제는 30년 기념판까지 나왔다. 도킨스는 스스로 개정판이라 하여 자신의 처음의 이론에서 달라진 것은 없으며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문장을 고치고, 예를 첨가하는 수준에서 머물렀다고 말했다. 그가 그만큼 거만하게 구는 것은 나름대로 이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수많은 과학자들과 인문/사회학자들의 그의 이론에 대한 비판은 각기 나름의 메세지를 전해주고 있다. 이 책으로 어느 정도 기본은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정리과 비판에 관한 내용이 그다지 깊이있진 않으므로, 나같은 입문자가 아니면 권하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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