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빈치 코드 - 전2권 세트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이토록 화제가 되는 책에는 뭔가가 있다.

소설이라는 장르에 있어서는 관심이 가면서도 읽을 책을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항상 다른 여타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에 우선순위를 두기 때문에 그다지 많이 읽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간혹 이슈가 되는 소설들 혹은 '읽을 책' 목록에 올려놓은 소설 중에서도 매우 관심이 많이 가는 소설들의 경우에는 다른 인문/사회과학 서적보다 우선하게 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 <다빈치코드>를 읽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 중 이 어두운 붉은 계열의 바탕에 금박 글씨가 새겨진 책표지를 보이는 이들이 꽤 많았고, 신문에서도 대형서점에서도 인터넷서점의 이메일 소식지에서도 <다빈치코드>는 수없이 등장했다. 그리고 결국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내가 자주 이용하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의 이 책의 현재 판매부수는 실로 엄청나다. 한권 값치고는 조금 싼편이지만 전권 2권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돈주고 사보기는 쉽지 않은 선택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문학 주간베스트 1위'를 달리고 있으며, 184,300권의 셋트가 팔렸고, 낱권으로 팔린 부수까지 셈하자면 두배는 잡아야할 것이다.

<다빈치코드>에 이어서 후속작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관련된 책들도 출간되고 있으며, '다빈치'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일단 팔리고 보는 것이 지금의 대세다. 마치 예전에 <아침형 인간>이 힛트치면서 이와 관련된 '뭐뭐뭐 인간' 시리즈가 대거 등장하며 판매부수를 올렸던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그저 미국에서 한때 평범한 교사였다고 소개되는 저자 '댄 브라운'은 이 책으로 인해 엄청난 수입을 올리지 않았나 싶다. 소개를 보자면 그는 이 책 이전에도 <다빈치코드>에 등장하는 기호학자 주인공 랭던 교수를 다른 책에서도 등장시켰으며, 그렇게 보자면 어쩌면 이 책은 이전에 출간된 다른 소설들의 후속작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앞서 출간된 소설들은 힛트치지 못했지만 <다빈치코드>로 인해 일약 스타 작가가 된 그의 다른 작품들도 판매량이 급상승하지 않을까 싶다. 더군다나 <다빈치코드>의 랭던교수가 다른 소설에도 주인공이라고 하지 않는가.

일단 그저 일단 교사였던 그가 이렇게 다양한 영역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대단해보인다. 마치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보는 듯한 이 책은, 물론 <장미의 이름>의 세밀한 묘사와 정교한 스토리와 구성에 비교하기에는 무리이지 싶지만, 여튼 이 책을 보면서 움베르트 에코를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에코가 세계적인 기호학자라는 점과 댄 브라운이 일반 교사였다는 점을 비교해본다면 댄 브라운의 <다빈치코드>는 에코의 그것을 뛰어넘는다.

이 소설에 나오는 종교적 비밀의식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댄 브라운의 이야기는 이 책이 단지 '소설'이상임을 입증한다. 어쩌면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주장을 어필하고자 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거대한 음모론을 제기하며 성의 영역인 '종교'를 건드린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내용들은 많은 교인들 사이에서 논쟁이 될 만하다. 판매금지 운동이 아직 벌어지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모든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로서의 품질 보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빈치 코드>는 충분히 베스트셀러의 기질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스테디셀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한때 유행에 따라 읽고 그쳐버리는 소설정도 이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계속 추이를 지켜봐야할 문제이지만 나의 예감이 틀리진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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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구조 내에서 상징형식 개념 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10
에른스트 캇시러 지음, 오향미 옮김 / 책세상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던 책이다. 이해할 수 없었던 원인의 1차적 책임은 내게 있을 터이다. 나의 내공이 부족한 탓이다. 알아듣지도 못할 책이 나올리는 없을테니까. 그러나 2차적으로는 참 어렵게 쓴다. 책을. 이 사람. 캇시러.

<인문학의 구조 내에서 상징형식 개념 외>라는 책은 책세상 출판사의 고전의 세계' 문고판 시리즈 10번째 작품이다. '문화철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출한 철학자 에른스트 캇시러의 <인문학의 구조 내에서 상징형식 개념> 이라는 논문과 <문화 철학의 자연주의적 논거와 인본주의적 논거>라는 논문을 묶어 낸 책인데, 두 논문 다 저자가 말하려는 바에 대해서 그 내용은 물론이고 주제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는게 이 책을 읽은 내 감상이다.

어쩌면 반복해서 문장 하나하나 꿰뚫어가며 느리게 그러나 끈질기게 파고든다면 '이해'에 도달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인내심이 그 정도까지 허락지는 않는다. 이 책을 읽은 것은 순전히 나의 호기심 때문이었고, 수업의 일부로서 다뤄져 레포트를 제출하라는 요청이 있었다면 좀더 세심하게 주의깊게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난 지금 호기심에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그렇게 자세히 볼만한 인내심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래서 무슨 소린지 모름에도 불구하고 더 읽지는 않겠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모를까.

에른스트 캇시러는 서양철학사에서는 '최근'을 살다간 사람이기 때문에 '서양철학사'라는 제목으로 나오는 두꺼운 책들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마치 얼마전 하늘나라로 떠난 자크 데리다와 먼저 떠난 미셸푸코가 '서양철학사'에 등장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캇시러는 사실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요청으로 처음엔 법학을 공부했지만, 이후에 여러가지 찍쩝거리다가 철학이 자신의 적성에 맞음을 알고 이후로는 철학을 파고든다. 그는 신칸트주의자라고 불리우는 헤르만 코엔이라는 철학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며, 이후에 논문제출시에는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심사가 지연되자 딜타이의 추천으로 무사히 심사를 통과하게 되기도 했다. 그는 1차대전과 2차대전을 모두 겪었으며, 2차대전이 끝나기 얼마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전쟁통 속에서 느낀바를 토대로 <자유와 형식>이라는 책을 집필했다고 하며, 독일이 나치정권에 넘어간 뒤에는 그곳을 떠나 영국, 스웨덴, 미국 등에서 연구를 하고 강의를 했다고 한다.

캇시러는 우리에게 알려지길 이 책의 제목과 같은 논문으로보다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서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은 흔히 캇시러 철학의 입문서로 일컬어지며 캇시러 자신이 스스로 쉽게 쓴 저서이기에 캇시러를 이해하는데 있어 제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난 읽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인문학의 구조 내에서 상징형식 개념 외>라는 책을 통해 본 캇시러는 같은 책세상문고 고전의 세계 문고판으로 나온 딜타이의 <체험, 표현, 이해>라는 책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캇시러가 딜타이의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지는 모른다. 그의 생애에 있어 내가 알기로는 캇시러의 학위논문 통과에 딜타이가 약간 힘을 실어줬다는 사실 이외에는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이 사소한(?) 사실을 알기 전에 두 책을 읽으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둘다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것인데, 이상한 것은 그 '이해하기 힘듦'이 칸트나 헤겔을 읽을 때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면서 캇시러와 딜타이만은 동일했다는 점이다.

어쨌든 난 이 책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고, 기회에 된다면 다음에 또 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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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중의 최악! 이보다 더 못한 영화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여고생 시집가기>는 절대로 볼만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관객을 우롱하고 모욕했다. 유치한 영화려니 하는 생각쯤은 예고편을 보거나 그렇지 않은 관객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바이지만, 그 유치의 정도가 그래도 <그놈은 멋있었다> 나 <어린신부>, <동갑내기 과외하기> 정도에서 그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철저하게 '유치' 그 자체를 달리고 있다.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오덕환 감독은 <기적>이라는 단편영화를 제외하고는 이 영화가 그의 감독으로서의 첫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영화는 망할 듯 하다. 작품성이 없으면 상업성이라도 있든가, 상업성이 없으면 작품성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 둘의 극단도, 둘 사이의 어느 지점에도 위치하지 않음으로써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외면받을 듯 하다.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것이 오히려 의문이다. 분명히 망할 것을 알았을텐데 왜 내놓았을까. 이 영화는 비디오로 볼만한 가치도 느낄 수 없다. 영화를 본 내 돈이 너무나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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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가이즈> 개봉될 때부터 별로 관심을 두지도 않았고, 상업성면에서나 작품성면에서나 성과를 거두리라 기대조차 접었던 영화였다. 대개 이런 코믹영화들은 그냥 심심풀이 땅콩용으로 나오는 '그저 볼거리'인 영화인지라 그렇다.

 아무리 영화계 대부 박중훈이 나오고, 차태현과 한은정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는 '그저그런 코믹영화'라는 평 이상을 받기는 힘들다. 원래 시나리오 자체가 그러니까.

 시나리오는 박헌수 감독이 직접 맡았다. 그는 이전에도  <주노명 베이커리>, <진짜 사나이>, <구미호> 등의 코믹영화들을 많이 다루었고 역시 최근의 영화도 <투가이즈>와 같은 코믹영화였다. 그가 감독을 하지 않고 각본만 쓴 <화산고>나 <싱글즈> 같은 경우는 그래도 어느 정도 관객들 사이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영화격에는 속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감독으로 나선 영화는 모조리 큰 실패를 낳았다. 그래도 감독으로서의 욕심때문인지 계속해서 도전은 하고 있지만 이런 코믹영화들로는 성공을 거두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안되는 영화에 계속 시도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다지 별로 기대할 것 없고, 볼만한 것도 없는 영화다. 평이 너무 가혹한지 모르지만 사실 그렇다. 박중훈과 차태현, 한은정 정도까지 나왔다면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젊은 관객들의 눈길을 받을만한데도 철저하게 소외당했다. 그냥 너무 우울하거나 슬퍼서 웃고 싶다면 봐도 괜찮은 영화지만 그 이상은 기대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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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헐크>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대략적인 줄거리를 예상할 수 있다. '헐크'라는 소재가 새로운 것도 아니고 이전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헐크'의 이미지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신선하게 각색해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 영화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영화 <와호장룡>으로 유명한 이안 감독의 이 작품은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2004년에 개봉한 영화 <트로이>를 통해 먼저 접하게 된 에릭 바나를 2003년에 개봉한 영화 <헐크>를 통해 다시 보는 느낌이 새롭다. 만약 <헐크>를 먼저 봤다면 난 <트로이>를 보면서 <헐크>의 에릭바나를 연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트로이>를 본 뒤 '헥토르'라는 인물을 통해 강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그를 떠올릴 수 있었다. '헐크'라는 진부한 소재를 어떻게 새롭게 만들었느냐 하는 것도 영화를 보는 관점을 형성하지만, 에릭바나를 보는 것 또한 또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었다.

 136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게 영화의 기승전결을 잘 이끌어낸 듯 하고, 영화를 통해 새로 관심갖게 된 여배우 제니퍼 코넬리를 알게 되어 기쁘다. ^^; 조사 결과 70년생으로 미국태생이며, <헐크>이전에는 <뷰티풀 마인드>와 <레퀴엠>, <폴락>, <웨이킹 더 데드>, <다크시티>, <악의 꽃> 등에 출연했지만 불행히도 내가 본 영화는 <폴락> 하나뿐. 기억을 떠올려보니 앵무새 폴락의 본래 주인이 나중에 어른이 된 후가 그녀였던 것 같다.

 영화감상의 말미에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영화를 보면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과연 잘못된 과학의 희생자로 태어난 헐크를 어떻게 대해야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과거의 여자친구이자 동료 과학자인 베티는 그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대하지만, 그의 아버지이자 잘못된 실험의 주인공인 데이비드와 연구자 글렌은 그를 하나의 실험대상물로 볼 뿐이다. 또 그를 대하는 태도를 넘어서 그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끔 '위험한 존재'로 변한다면 그를 죽여도 되는가? 하는 문제도 함께 제기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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