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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망매
고종석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5월
평점 :
품절
고종석의 두번째로 출판된 소설이다. 이전에 난 그의 세번째 소설 <엘리야의 제야>를 읽었고, 이제야 <제망매>를 읽었다. 첫번째 소설인 <기자들>은 지금 절판되어 온데간데 찾을 수가 없다. <기자들>을 제외한 두 소설로서 고종석을 느껴본다.
<祭亡妹>라는 제목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동일 제목의 고대 향가다. 향가는 "삼국시대 말기부터 고려 초까지 존속하였던 향찰(鄕札)로 표기된 한국 고유 정형시가(定型詩歌)"라고 정의된다. '제망매가'는 월명사라는 신라 경덕왕 때의 승려가 지은 것으로, 죽은 누이의 명복을 비는 10구체 향가로서 누이와의 못다한 정과 뼈저린 사별의 아픔이 종교적으로 승화되어 있다. 고종석의 <제망매>도 이와 크게 달리 하지 않는다. <제망매>안에는 '제망매', '서유기', '찬 기파랑', '사십세', '전녀총의 이여성 회장님께 드리는 공개 서한' 의 다섯개의 짧막한 소설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 즉 소설 제목 '제망매'는 <제망매>가 담고 있는 다섯개의 소설 중 하나를 책의 제목으로 택한 것이다.
고종석의 소설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 세번째 작품 <엘리자의 제야>를 통해 그의 소설의 주된 내용과 문체를 맛본 나는 그의 소설에 매료되었고, 돈이 생기자 보고 싶은 수많은 책들을 놔두고 그의 두번째 작품 <제망매>를 선택했다.
그의 소설은 지식인의 눈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적이나 한편 세속적이고 일상적이다.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내용들 속에서 그는 '아웃사이더', '마이너리티'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비주류를 대상으로 하다보니 당연히 정치적 색채를 띠게 된다.
나는 고종석의 소설에서 항상 픽션과 논픽션을 구분하지 못하겠다. 그의 소설 속에는 그의 살아온 배경과 주변인물들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이야기들 중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 책의 장르가 '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허구인데, 그의 소설 속에는 상당부분 진실이 담겨있다. 그것은 그의 신문사를 때려치고 파리로 간 그의 경험이기도 하고, 언어학을 공부한 그의 학문적 배경때문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가 한국일보에 지금까지도 연재하고 있는 '고종석의 오늘'이라는 코너에 등장하는 역사속의 인물들을 소설에 담아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모든 경험들이 소설 속에 녹아들어가 있는 것인데, 나는 그중 진실이 어디까지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어쨌든 이것은 나의 불평불만일 뿐이다.
<제망매>를 읽고 난 뒤에, 한가지 그에 대해 불편한 점이 있다면, 소설의 하나인 '전녀총의 이여성 회장님께 드리는 공개 서한'이다. 엄밀히 이것은 소설보다는 편지글이라고 해야 온당하다. 그는 이 글에서 머리가 나쁘고 이쁜 아이와 머리가 좋고 못생긴 아이는 동등하게 취급받아야 한다고 피력한다. 즉, 직장에서 용모를 직원채용의 선정기준으로 하는 것은 고용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누가 간섭하거나 부당하다고 말할 게재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얼굴이 못생기고 머리가 좋은 아이가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는 그를 옹호하면서, 머리가 나쁘고 얼굴이 이쁜 아이가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는 그를 옹호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그것은 부당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그의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이해가 되면서도, 나의 '자유주의'에서는 심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함을 느낀다. 고종석은 스스로를 '중도우파', '자유주의자'라 지칭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그의 견해는 타당하다. 하지만 나의 '좌파적 자유주의'에서 보면 이 견해는 받아들이기 거북하다. 나는 고종석의 다른 면은 모두 좋아하지만 가끔씩 등장하는 그의 지나친 '자유주의'적 견해에 대해서는 심히 불쾌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