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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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사람들에게서, 서로에게 끌린 나름의 확실한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외모가 비슷하다든가, 생활태도나 옷을 입는 취향 등이 비슷하다든가, 겉 보기에는 조화롭지 못한 커플이라도 오래 함께 하다보면 '음, 사귈 만해.' 하고 수긍이 가는 부분이 생기는 법이다. 그러나 내가 그날, 츠구미와 쿄이치에게서 순간적으로 감지한 것은 보다 한결 강한 것이었다. 그렇다. 아까 그 츠구미란 이름을 말했을 때, 내 안에서 그와 츠구미가 완전히 하나로 포개져서 빛났다.-97쪽

"사랑이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빠져있는 거야. 나이가 몇이든. 그러나. 끝이 보이는 사랑하고 끝이 안보이는 사랑은 전혀 다르지. 그건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 수 있어.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즉 더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야. 지금 우리 마누라를 처음 알았을 때, 갑자기 내 미래가 무한해지는 듯한 느낌이었어. 그러니까, 꼭 합치지 않아도 상관없었을지도 모르지."-121-122쪽

"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저 말이죠. 지금까지는, 뭐가 어떻게 되든, 그러니까 상대바에 눈앞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피워도, 아무리 좋아하는 남자가 손을 잡게 해달라느니 만지게 해달라느니 해도,뭐랄까...... 강 건너 불구경하는 느낌이었어요. 강 건너에 불이 났는데, 이쪽 어두운 강가에서 구경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언제 불이 꺼질지 뻔히 보이니까, 졸리고 따분했거든요. 그런건 언젠가는 반드시 끝나니까요. 사람들은 연애에서 뭘 추구할까 하고 생각했어요. 이 나이에."

"그야 그렇지. 사람이란, 자기가 준 만큼 돌려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는 법이니까."-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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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누의 집 이야기
이지누 지음, 류충렬 그림 / 삼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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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집이란 목수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 탓인지 집은 주인의 생각을 빼다 박은 닮은 꼴일 수 밖에 없다. 그래야만 서로 서걱대지 않고 물 흐르듯이 집과 사람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7쪽

어느날부터 우리들은 집주인의 생각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규격화, 표준화되어 만들어진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집주인의 생각은 사라지고 오히려 집에 생각을 맞추면서 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아파트나 빌라 혹은 연립주택이라는 공동주택이 만들어지고 나서부터이다. 그때부터 참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편리함이나 합리적이라는 것을 얻기는 했지만 그만큼 잃은 것도 많았다. 그곳에 살면서부터 우리들의 할머니나 할아버지,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은근히 혹은 넌지시 배울 수 있었떤 것은 깡그리 사라지고 말았다. 또 바뀌어 버린 집 구조 덕에 마당을 가지지 못했으니 사람 살아가는 데 중요한 의례인 관혼상제가 모두 집 밖으로 치러지고 만다. 그것은 몹시 슬픈 일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살이에서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많았기에 그것이 집 밖으로 나가자 사람도 덩달아 따라 나가서는 아직껏 돌아오지 않고 있는 듯 보여진다. -11쪽

그러나 요즈음 만들어지는 공동주택의 대문은 대개 밖을 향해 열린다. 이는 서구적 건축양식의 결과이며 사고의 차이에서 나오는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문은 무엇을 맞아들인다는 개념이 강한 반면 서구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다는 생각이 강하다. 또 우리는 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거나 배려하는 편에서 안으로 당겨서 열었지만, 서양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밖으로 밀어서 문을 열었던 것이다. 그것은 소극과 적극의 개념을 낳고, 다시 보수적이거나 진취적 혹은 폐쇄적이거나 개방적인 사고를 만들어주며, 그것이 곧 민족성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모든 문이 안으로 열렸던 것은 아니다. 대문만 그랬을 뿐 광이나 부엌과 같은 곳의 문은 바깥으로 열렸다. 그것은 좁은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넓게 활용하려는 지혜였던 셈이다.-49쪽

요즈음에는 공동주택 중에서도 원룸이라는 주거형태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그곳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많이 탄다고 한다. 이는 공간을 지배하지 못하고 공간에 지배당하기 때문이다. 우리네 살림살이에서 주어지지 않던 혼자만의 공간을 다스릴 힘이 없으니 상대적으로 외로워지는 것이다.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꿋꿋하게 견디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과거에 자신이 지니고 있던 사고방식과 조금씩 달라졌음을 고백하곤 한다. 사는 공간이 달라진다는 것은 사고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집이라는 것은 단순히 건축학적 구조물로만 보는 것은 무리이다. 적어도 집은 그 자체로 다분히 철학적이기 때문이다. 집에 관한 한 모든 것이 그렇다. 문짝 하나 다르게 다는 것이 무슨 문제일까 싶기도 하지만 그것은 매우 많은 고민을 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49-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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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미스 - 눈 많은 그늘나비의 약속
심승현 지음 / 예담 / 2006년 4월
품절


"당신이 해님을 바라보듯 나 역시 당신을 그리워했습니다.
당신이 해님에게 자신을 보아 달라고 가슴 애태우면서 기다렸듯이
나 또한 당신을 바라보며 매일을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해님이 너무 눈부셔 당신을 보지 못하듯
당신도 왜소한 나를 바라봐 주지 않더군요.

알고 있나요?
나는 매일 당신을 향해 꽃가루를 뿌렸어요.
하지만 당신은 오히려 그 꽃가루 때문에 재채기를 하고 성가셔 했죠.
저는 이제 꽃가루를 다 써버렸고 벌거벗은 얼굴로 흉하게 변해 버렸답니다."-85쪽

"그랬구나 ... 미안해.
난 그것도 모르고 세상에서 슬픈 건 나 혼자뿐이라고 생각했어.
나를 보아 주지 않는 해님 프리조니님만을 원망했을 뿐,
나로 인해 가슴 아파하는 이가 있다는건 상상도 못했어.
만약 네가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꽃가루를 뿌렸다는걸 알았다면
아마 난 그 꽃가루를 성가셔 하지 않았을 거야.
하얀 눈송이가 내리기 전날 가슴 벅참으로 꽃가루를 기다렸을 텐데 말이야.
꾸르야.
이제 네 마음을 알았으니까
더이상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마.
너의 친구가 되어 줄게."-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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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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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아까, 소타로가 말했었다. 다나베의 여자친구는 1년 을 사귀었는데도 상대방을 잘 알 수 없어 지겨워졌다고. 다나베는 여자를 만년필이나 뭐 그런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는 유이치를 사랑하지 않으므로 잘 안다. 만년필에 대한 그와 그녀의 생각이 질과 무게에 있어 전혀 달랐던 것이다. 세상에는 만년필을 죽기로 사랑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 점이 너무 슬프다. 사랑하지 않기에 알 수 있는 일이다. -41-42쪽

나는 두 번 다시란 말이 지니는 감성적인 어감과 앞으로의 일들을 한정되는 뉘앙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생각난 <두 번 다시>의 그 엄청난 무게와 암울함은 잊지 어려울 만큼 박력이 있었다. -48쪽

정말 홀로서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뭘 기르는 게 좋아. 아이든가, 화분이든가. 그러면 자신의 한계를 알 수 있게 되거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거야. -58쪽

인생이란 정말 한번은 절망해봐야 알아. 그래서 정말 버릴 수 없는게 뭔지를 알지 못하면, 재미라는 걸 모르고 어른이 돼 버려. -58쪽

그녀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 제멋대로 배우는 것은 좋지만 그 행복의 영역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고 세뇌되어 있다. 아마 그들의 자상한 부모들로부터. 그리고 진정한 기쁨이 뭔지를 모른다. 어느 쪽이 좋은지, 인간은 선택할 수 없다. 각자는 각자의 인생을 살도록 만들어져 있다. 자신이 실은 혼자라는 사실을 가능한 한 느끼지 않을 수 있어야 행복한 인생이다. -79-80쪽

하지만, 미카케 씨는 애인으로서의 책임은 하나도 지지 않아요. 연애의 달콤함만 쉽게쉽게 탐닉하고, 그러니까 다나베 씨가 그렇게 우유부단한 사람이 돼버리는 거라구요. 이렇게 긴 머리칼에 날씬한 여자가 앞에서 어른거리니까 다나베 씨가 점점 교활해지는거라구요. 늘 그렇게 어중간한 형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으면 편리하겠죠. 그렇지만 연애란,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돌봐주는 힘든 일이 아닐까요? 그런 무거운 짐은 다 던져버리고, 뻔뻔스런 얼굴로, 난 다 안다는 태도로......, 이제 그만 다나베씨를 놓아주세요. 부탁이에요. 당신이 있는 한 다나베씨는 아무데도 갈 수 없어요. -97쪽

사람이란 상황이나 외부의 힘에 굴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의 내면 때문에 지는 것이다. 이 무려감, 지금 그야말로 바로 눈 앞에서 끝내고 싶지 않은 것이 끝나가고 있는데, 조금도 초조하거나 슬퍼할 수 없다. 한 없이 어두울 뿐이다.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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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홀릭 2 - 변호사 사만타, 가정부가 되다
소피 킨셀라 지음, 노은정 옮김 / 황금부엉이 / 2006년 4월
구판절판


하지만 게임은 계속된다. 우리는 구애를 하는 두 명의 무용수처럼 고랑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한다. 겉으로는 나무딸기를 따는 일에 집중하고 있지만 실은 오직 서로를 의식하고 있다. 한 고랑이 끝날 때마다, 그는 입이나 손가락으로 내 몸의 한 부분을 스친다. 한번은 그가 나무 딸기를 먹여주기에 그의 손가락을 이로 지그시 깨물어버렸다. 그를 갖고 싶고 그를 어루만지고 싶지만 그는 진전을 보이기 전에 돌아서버린다.

...중략...

나는 열기 속에 땅을 딛고 서서 숨을 몰아쉬며 그를 갈구하고 있다. 폭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가 다가와 몸을 굽힌다. 그의 입이 내 젖꼭지를 찾고 나는 거의 정신을 놓는다. 이번에는 그도 다시 멀어지지 않는다. 이번에는 진짜다. 그의 손이 나를 더듬고 스커트가 땅에 떨어지고 그의 청바지도 미끄러진다. 나는 전율하며 그를 움켜잡고 소리를 지른다. 잊혀져버린 나무딸기는 땅에 흩어져 우리 두 사람 밑에서 짓이겨지고 있다. -77-78쪽

스물아홉을 지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나이가 주는 압박감을 알지 못한다. 인생을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묘한 나이. 아무 일 없이 순탄해도 은근히 마음 산란한 나이, 스물아홉. 그런데 항상 일류로만 살아온 사만타가 스물아홉의 어느날 난생처음 좌절을 겪는다. 이제껏 쌓아온 모든 것이 일순간 무너져버리고 의미를 상실해버린다. 운명은 마땅히 기댈 곳도 없고 안길 곳도 없는 사만타를 어느 결엔가 기차역으로 이끈다. 인생이라는 기차는 사만타를 낯선 역에 떨구고 사만타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자기가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좌충우돌 깨달아간다. 그녀는 일생일대의 실수란 없다는 사실, 인생을 망치는 일 이라는 것은 없다는 사실, 알고 보면 인생은 무척이나 회복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터득한다.

사만타는 스물 아홉이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걱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고무처럼 회복력이 뛰어나니까. 충분히 사랑스러우니까. 그녀는 이제 서두르지 않을 거니까. (옮긴이 노은정)-319-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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