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누의 집 이야기
이지누 지음, 류충렬 그림 / 삼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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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집이란 목수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 탓인지 집은 주인의 생각을 빼다 박은 닮은 꼴일 수 밖에 없다. 그래야만 서로 서걱대지 않고 물 흐르듯이 집과 사람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7쪽

어느날부터 우리들은 집주인의 생각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규격화, 표준화되어 만들어진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집주인의 생각은 사라지고 오히려 집에 생각을 맞추면서 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아파트나 빌라 혹은 연립주택이라는 공동주택이 만들어지고 나서부터이다. 그때부터 참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편리함이나 합리적이라는 것을 얻기는 했지만 그만큼 잃은 것도 많았다. 그곳에 살면서부터 우리들의 할머니나 할아버지,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은근히 혹은 넌지시 배울 수 있었떤 것은 깡그리 사라지고 말았다. 또 바뀌어 버린 집 구조 덕에 마당을 가지지 못했으니 사람 살아가는 데 중요한 의례인 관혼상제가 모두 집 밖으로 치러지고 만다. 그것은 몹시 슬픈 일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살이에서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많았기에 그것이 집 밖으로 나가자 사람도 덩달아 따라 나가서는 아직껏 돌아오지 않고 있는 듯 보여진다. -11쪽

그러나 요즈음 만들어지는 공동주택의 대문은 대개 밖을 향해 열린다. 이는 서구적 건축양식의 결과이며 사고의 차이에서 나오는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문은 무엇을 맞아들인다는 개념이 강한 반면 서구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다는 생각이 강하다. 또 우리는 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거나 배려하는 편에서 안으로 당겨서 열었지만, 서양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밖으로 밀어서 문을 열었던 것이다. 그것은 소극과 적극의 개념을 낳고, 다시 보수적이거나 진취적 혹은 폐쇄적이거나 개방적인 사고를 만들어주며, 그것이 곧 민족성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모든 문이 안으로 열렸던 것은 아니다. 대문만 그랬을 뿐 광이나 부엌과 같은 곳의 문은 바깥으로 열렸다. 그것은 좁은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넓게 활용하려는 지혜였던 셈이다.-49쪽

요즈음에는 공동주택 중에서도 원룸이라는 주거형태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그곳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많이 탄다고 한다. 이는 공간을 지배하지 못하고 공간에 지배당하기 때문이다. 우리네 살림살이에서 주어지지 않던 혼자만의 공간을 다스릴 힘이 없으니 상대적으로 외로워지는 것이다.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꿋꿋하게 견디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과거에 자신이 지니고 있던 사고방식과 조금씩 달라졌음을 고백하곤 한다. 사는 공간이 달라진다는 것은 사고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집이라는 것은 단순히 건축학적 구조물로만 보는 것은 무리이다. 적어도 집은 그 자체로 다분히 철학적이기 때문이다. 집에 관한 한 모든 것이 그렇다. 문짝 하나 다르게 다는 것이 무슨 문제일까 싶기도 하지만 그것은 매우 많은 고민을 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49-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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