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제일 인기 없는 감독, 김기덕.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버림받은 감독, 김기덕. 
  그치만 유럽에서 제일 잘나가는 감독, 김기덕.

  김기덕 감독 만큼이나 말 많은 감독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감독이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완성된 영화를 걸만한 극장이 없는, 상반된 두 가지 모양새를 가지고 있는 감독이다. 그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가학과 피학의 변태성, 그리고 적나라한 잔인함, 여성비하적 태도 등이 대중이 싫어하는 주된 이유일 터이다. 남성보다는 많은 여성들이 김기덕 감독을 싫어하고, 또 그를 좋아하는 매니아적 여성팬층도 있는 것은 또다른 묘한 모습이다. <해안선>이라는 영화 역시 그가 지금껏 해왔던 작업의 연장선이다. 장동건이 주연으로 출연했다고 해서 세간의 관심을 좀더 이끌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김기덕 표' 영화는 어디가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군대생활의 장면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현재에는 찾아보기 힘든 요소들도 가지고 있다. 아무리 군대가 민주화된다 하더라도 역시 군대인 점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고, 그렇기에 변할 수 없는 부분도 당연히 있다. 왜냐면 군대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민주화된 현대의 군대에서 이 같은 장면들이 많이 사라진 것은 또 사실이지만, 지역에 따라, 부대에 따라 차이가 있고, 여전히 어떤 곳은 이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또다른 사실일터이다. (참고로 내가 근무했던 강원도 강릉의 어느 부대 또한 그러했었다. 그리고 나는 영화에서 보여지는 많은 부분을 몸소 체험했다. 당하는 자로서) 소위 말하는 까라면 까 정신. 하라면 한다, 할 수 있다, 등등의 무대뽀식 상하 명령과 복종의 체계. 내가 군대를 싫어하는 주된 요인이다.   영화는 이를 적나라하게 그대로 보여준다.

   "경고! 밤 7시 이후 이곳을 접근하는 자는 간첩으로 오인되어 사살될 수도 있습니다" 

  간첩 잡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강상병. 군사 경계 지역 안에서 야밤에 쾌락을 즐기던 남자와 여자. 강상병의 야시경에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가 잡히고 그대로 발포, 사살. 남자는 포탄에 온몸이 찢겨죽고, 여자는 미쳐버렸다. 괴물체를 잡았다는 이유로 포상을 받은 강상병은 휴가 중 애인으로부터 버림받고, 부대에 왔으나 정신이상으로 의가사제대, 하지만 그는 미친 채 다시 부대로 돌아와 부대원들을 하나 둘 사살한다. 정사를 벌이다 애인이 죽어버리고, 자신은 미쳐버린 미영은 헤헤 거리고 주변을 돌며 부대원들와 섹스를 하고, 임신한다. 동생의 임신을 알게 된 오빠는 끝내 그들 중 하나를 찔렀다가 경찰서로 연행된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영화에서 다소 작위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간 것도 사실이지만, 감독은 대한민국의 군사적 현실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다. 간첩을 잡기 위해 밤에 잠도 자지 않고 눈에 불을 켜고 해안경계근무를 서는 병사들이 간첩이 아닌 민간인을 사살하고 표창받는 어이 없는 현실을, 죄 없는 사람 죽이고 포상휴가까지 받은 병사가 사람을 죽였다는, 죄 없는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미쳐가는 현실을, 남들이 보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소대장을 비롯한 부대원들이 미친여자를 강간하고 임신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야밤에 초소안에서 아이를 지워버리는 그런 현실을. 너무나 작위적이라고 말 할지 모르지만 해안경계근무를 서며 부대에 근무해본 경험으로 말하건대, 현실과 많이 어긋났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민간인과 군인의 충돌로 인한 사고사례는 하루에도 몇건씩 접수되고 있으며, 군인의 민간 여자 강간, 강도, 폭력, 절도 등등의 사건들은 상당부분 병사들에게 전파되지 않고 묻혀진다. 그것이 대한민국 군대의 현실이다.

  군대 중 죽은 병사는 '자살'처리는 기본이다. 백일 휴가를 앞두고 잔뜩 들떠있던 한 녀석이 어느날 아침 바다 위에 시체로 둥둥 떠있다면, 그것은 자살이다. 군대는 재조사를 요청하는, 의문사 진상 규명을 요청하는 많은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자살로 결론내린다. 7,80년대의 일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이다. 민주화 민주화 그러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상당 분야에 있어 민주화되지 못한 곳이 수두룩하며, 군대 또한 그곳 중 한 곳에 불과할 뿐이다. 병사들의 복지를 위해 월급을 올렸다는, 병영생활개선을 위해 좁은 침상이 아니라 침대를 놓겠다는, 컴퓨터를 통해 가족들과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밥을 줄이고 반찬의 종류를 늘리겠다는, 기타 등등의 언론에 오르내리는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그저 겉모습에 불과할 뿐이다. 폭력을 근절하겠다고 외치고, 캠페인을 한다고 해도, 군대에서는 결코 폭력/가혹행위를 근절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군인들이 더 잘 알며, 군대 내에서 행해지는 부적절한 행위들의 상당수가 아무렇지 않게 소초장 선에서, 중대장 선에서, 대대장 선에서 무마된다는 것 또한 군대를 다녀온 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터.

   영화 <해안선>은 우리나라의 군대 현실에 대한 많은 부분을 생각케해준다. 한번쯤 꼭 봐야할 영화이다. 군대에서 <블랙호크다운> 같은 전쟁영화를 보여주며  저 장면에서 쓰이는 장비가 무엇이라는둥 하는, 전쟁의 참혹함은 배제한 채 전쟁을 즐기고 있는 군대 간부들이여 각성할지어다. <블랙호크다운>을 통해 당신들이 병사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각종 신종 화력무기의 강력함이 아니라 전쟁의 참혹함이다. 군대 비판을 차단하기 위해 한참 군대문화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던 <한겨레21>의 구독을 못하게하는 것도 그들의 잘못이다. 비판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조직은 언젠가 와해될 수 밖에 없다. <해안선>과 같은 영화를, 군인이라면 꼭 봐야한다. <국방신문>에는 주적 북한을 없애자 류의 글이 아니라 군대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점들을 알리는 글이 실려야한다. 현실에 눈감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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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마니아 2006-07-27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군대를 안갔다와서 그런지. 이 영화 보고 해병대 (영화 실제 배경) 출신이 제법 멋있어 보이더라구. 장동건의 연기 변신도 넘 멋있었구. 이 영화 촬영할 당시 배우들이 고생 무진장 했다더라. 김기덕 감독이 해병대 출신이라서 scene 하나하나를 실감나게 만들려고 지옥 훈련을 시켰다더라.
너 이 참에 '용서 받지 못한 자'도 한 번 보지 그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작품과 동명인데. 우리랑 동갑내기 감독이 작년도에 중앙대 졸업 작품으로 만들었던 거야. 난 해안선 볼 때완 달리 이 영화 보고 군대는 정말 안좋은 곳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 너가 이 영화 보면 저절로 욕이 나올 꺼다. 강추!!!

마늘빵 2006-07-27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영화 제목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 음. 그렇군. 그거 한번 보고 싶군. 김기덕이 해병대 출신이었나 근데? 흠. 안어울리는데.